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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 곧 스타트업이다
[집중기획] 독일의 디지털 시대 생존전략- ① 유럽 스타트업의 허브
[85호] 2017년 05월 01일 (월) 마르틴 헤세 외 economyinsight@hani.co.kr
독일은 디지털 시대에 실리콘밸리의 혁신에 밀려 세계경제의 선도적 위치를 미국에 내줬다. 제조업 최강국의 전통으로 여전히 호황을 누리지만 하루아침에 기업의 존폐가 갈리는 오늘날 자칫 방심하다 언제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독일은 위기감을 느끼고 창업정신으로 무장한 스타트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여러 환경 요인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가진 인재와 언제든 시제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제조업 인프라, 스타트업이 본궤도에 오를 때까지 탄탄한 재정적 도움을 주는 투자자본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도에 열려 있는 개방성과 실패를 포용하는 사회적 인내심도 동반돼야 한다. _편집자
 
   
 
최근 수년간 신설된 스타트업 6천 개... 창업 문화 꽃 피워 기술혁신 기대 증폭
 
유럽 대륙에서 독일 베를린은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자리잡고 있다. 보수적 기업문화가 만연한 제조업 강국 독일에서 이 변화의 바람은 아주 고무적이다. 급속하게 바뀌는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더 많은 창업자를 배출해야 한다. 이제 제조업만으로 세계경제를 선도할 수 없다.
 
마르틴 헤세 Martin Hesse
아르민 말러 Armin Mahler
안카트린 네치크 Ann-Kathrin Nezik <슈피겔> 기자 
 
니콜라이 엔슬렌(33)과 안드리야 페허는 위선적인 겸손 따위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이 대학생 신분으로 창업을 결심했을 때 목표는 분명했다. 회사를 크게, 아주 제대로 키우는 것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 엔슬렌은 “우리에게 한계는 하늘”이었다고 말한다.
 
이 말대로라면 두 사람에겐 아직 성장 여지가 충분히 있다. 얼마 전 이들이 설립한 회사 시냅티콘(Synapticon)은 직원 45명과 함께 독일 슈투트가르트 인근 쇠나이히의 새 본사로 입주했다. 소박한 오피스빌딩 안에서 그들은 로봇용 지능제어 장치를 개발 중이다. 컴퓨터에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인텔 부품이 들어 있다는 표시 -편집자)가 당연한 것처럼, 로봇에는 ‘시냅티콘 인사이드’가 당연해지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두 창업자는 말했다. 과대망상일까, 아니면 오늘날 독일에 절실하게 필요한 바로 그 창업정신일까?
 
쇠나이히 지역은 로베르트 보슈와 고틀리프 다임러가 창업한 곳이다. 그들이 각각 세운 회사는 지역 주민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슈투트가르트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대부분 안정적 직장을 찾아 보슈나 다임러벤츠에 입사하려 한다. 혹은 세분화된 전문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중소기업인 ‘히든챔피언’에서 일자리를 찾는다. 하지만 이곳에서 세계시장을 이끌 새로운 기업을 찾기는 힘들다. 독일에는 선도기업이 시급히 필요하다.
 
“독일인이 창업을 잘한 시절이 있었지만 그건 벌써 150년 전”이라고 엔슬렌은 말했다. “현재 독일은 소프트웨어 개발이 취약하다”고 동업자 페허가 설명했다. 페허는 “과거 독일 소프트웨어 업계의 성공은 시대를 잘못 만났다. 성공은 오히려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진단은 독일 뮌헨에 있는 막스플랑크혁신경쟁연구소 소장 디트마어 하르호프의 의견과 일치한다. 다만 하르호프는 독일인이 창업정신을 상실한 시기가 그렇게 먼 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룬디히와 닉스도르프 세대 이후 어느 순간 창업가 정신과 능력을 잃어버렸다.” 전후 독일의 경제 기적은 기업가 막스 그룬디히와 컴퓨터 선구자 하인츠 닉스도르프 같은 인물들이 이룩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새로운 일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베를린의 한 게임 개발 스타트업을 방문해 직원이 캐릭터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다. 베를린은 유럽의 트렌디한 도시답게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창업하려는 젊은이들이 몰려 있다. REUTERS
 
꿈틀대는 독일 스타트업
독일 경제는 아직 탄탄하지만, 경제의 동력이 되는 본질적 요소는 계속 변하는 법이다. 독일 경제의 강점은 끊임없는 제품과 기술의 향상이다. 독일은 세계 최고의 자동차와 기계설비를 생산한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경제의 근본 요소 ‘혁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숨길 수 있었다. 혁신은 신기술, 신제품, 신사업모델처럼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능력이다.
 
모두 자기를 보호하기 바쁜 구조를 가진 대기업에서 혁신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혁신은 자유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혁신은 잃을 건 적고 얻을 건 많은 젊은 기업에서 잘 자라기 마련이다. 풍부한 자본 등 성장에 적합한 생태계가 조성된 지역에서도 번성한다. 미국에선 1970년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기업이, 2000년대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자산가치가 높은 기업들이 탄생했다.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하면, 믿기 힘들겠지만 2조5천억유로(약 3021조원)에 달한다. 이는 주식시장에 상장된 독일 모든 기업의 시가총액을 합한 액수보다 많다.
 
독일 상위 30개 회사로 구성된 종합주가지수 닥스(DAX)를 살펴보면 30개 회사 대다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설립됐다. 소프트웨어 회사 에스에이피(SAP) 정도가 국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신산업 시대의 독일 기업이다. 독일 경제의 전망은 어둡다. 인터넷기업이 전통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에선 미래가 유망한 최첨단산업 분야 기업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독일은 20세기에 불어닥친 기술 변화의 큰 흐름을 대부분 놓쳤다”고 투자전문가 프랑크 텔렌(44)은 말한다. “검색엔진과 모바일 인터넷, 온라인 동영상, 소셜미디어 모두를 미국이 틀어쥐고 있다. 독일은 이제 전세계에서 통할 무언가를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 텔레비전 시청자에겐 스타트업 오디션 프로그램 <야생사자들의 동굴> 심사위원으로 잘 알려진 텔렌은 독일 스타트업계의 개척자다. 그는 충격적 파산과 성공적 창업을 모두 경험했다. 현재 그는 독일 바이에른주에 있는 한 스타트업에 희망을 걸고 있다. 릴리움에이비에이션(Lilium Aviation)은 수직 이착륙하는 초소형 개인용 전기항공기를 개발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타트업 팀원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났고, 내 기술자문도 이 소형 항공기가 하늘을 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아미트 싱 구글 부사장이 2017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가전전시회(CES)에서 구글이 진행 중인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독일은 2000년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신사업 발굴 경쟁에서 미국에 완패했다. REUTERS
 
스타트업 중심 ‘팩토리’
시냅티콘이 로봇 시스템 시장을 정복할지, 릴리움에이비에이션이 항공운항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건 이들이 무언가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거대한 도전에 나서는 젊은 창업자가 더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많은 일이 벌어졌다. 독일스타트업협회 추산에 따르면 약 6천 개 스타트업이 생겨났다. 독일스타트업협회는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있다. 정치권에 가깝기 때문만은 아니다. 독일 수도 베를린에선 젊은 창업자들이 주요 경제적·상징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다른 지역, 특히 뮌헨에서도 흥미로운 스타트업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 스타트업계 창업자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신규 창업자 중 여성은 단 14%에 불과하다.
 
베를린의 팩토리(Factory·스타트업이 모여 있는 곳 -편집자)는 독일 스타트업계의 수도를 상징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출현한 인터넷기업과 투자자의 네트워크를 대표하는 장소다. 그러니 팩토리에는 당연히 탁구대가 있다. 공동 탕비실은 물론이고 일하다 중간에 낮잠을 잘 수 있는 수면실도 갖췄다. 벽은 벽돌 외장재로 돼 있고, 의자는 미국 디자이너 찰스 임스가 만든 제품이다. 의자에는 헤드폰을 낀 채 맥북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젊은이들이 앉아 있다. 외형으로 보자면 스타트업의 클리셰(진부한 표현이나 고정관념 -편집자)에 부합한다.
 
베를린장벽 인근에 있는 이 건물은 과거 맥주 양조장이었다. 2011년부터 몇몇 부동산 개발업자가 디지털 기업을 위한 캠퍼스로 개조했다. 위층에는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 트위터(Twitter) 같은 기업이 입주했고, 1층에는 협력작업 공간과 작업실, 그리고 프리랜서, 창업자, 기타 회원들을 위한 만남의 장소가 마련됐다.
 
점점 더 많은 ‘구경제’(Old Economy·제조업 중심 경제 -편집자) 회사들이 스타트업과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팩토리는 이런 수요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종의 클럽처럼 기존 회사들은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회원이 되면 팩토리 캠퍼스에 입장하고 각종 행사와 네트워크 형성에 참여할 수 있다. 도이체방크와 자동차부품 공급업체 셰플러(Schaeffler)도 회원사다. “다른 종류의 문의는 거절한다”고 팩토리 최고경영자(CEO) 우도 슐뢰머는 말했다. “가끔 기업 경영자들이 전화해 ‘한번 구경하러 가도 되느냐’고 묻는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동물원이 아니다.” 팩토리가 추구하는 것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같은 눈높이에서 만나는 것이다.
 
“지금 모두 베를린에서 구원자를 찾고 있다”고 얀 베커스(34)가 말했다. 그는 2008년 경영학을 전공하기 위해 고향 뮌스터를 떠나 베를린으로 왔다. 그는 명확한 목표를 지녔다. “나는 정보통신 기업인이 되고 싶었다.” 당시 스타트업계는 경제위기가 한창인 때라 기업컨설팅 업체나 투자은행에 취직하지 못하고 베를린으로 옮겨온 100여 명이 이루고 있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업체 스투디비즈(StudiVZ)가 이곳의 스타였지만 얼마 안 돼 페이스북의 압도적 공세로 실패를 맛봐야 했다. 바로 베를린 정보통신 생태계가 시작된 시점이다.
 
이후 베커스는 20여 개의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그는 ‘연쇄 창업가’다. 최신 프로젝트인 핀립(FinLeap)은 보험영업직을 불필요하게 만들 앱이나 디지털 자산관리 앱 등 여러 아이템을 키우려 한다.
 
“사업모델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핀립은 경험이 많은 경영자를 찾고 있다.” 베커스는 얼마 전 미디어그룹 베르텔스만 자회사 아르바토(Arvato)의 전 최고경영자(CEO)를 스카우트했다. “WHU(사립 경영학 전문대학 -편집자)를 갓 졸업한 사람과 함께 은행을 설립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베커스는 생각한다.
 
WHU 졸업생 중 다수가 베를린에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학 후배들을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올리버 잠버의 영향 때문이다. 잠버의 상장기업 로켓인터넷(Rocket Internet)은 ‘스타트업 공장’으로 불린다. 이 회사는 수많은 신규 업체를 배출하고 있지만, 대부분 다른 기업의 사업모델을 그대로 따라한다.
 
로또 노리는 ‘먹튀’ 창업자
최근 스타트업계의 융성은 기존 산업을 자극할 요인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베를린 경제에 추진력을 제공했다. 베를린투자은행 추산에 따르면 2016년 디지털 업종은 지역 총생산의 약 8%를 차지한다. 이는 건설업종 비율보다 크고, 제조업 전체가 차지하는 비율과 거의 비슷한 수치다. 현재 베를린 디지털 업종에서 약 7만7천 명이 정규직으로 일한다.
 
이들 중 약 5천 명은 온라인 유통업체 찰란도(Zalando)의 베를린 본사에서 일한다. 회장 로베르트 겐츠(33)는 프리드리히샤인 지구와 크로이츠베르크 지구의 경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본사 4층에 앉아 있었다. 그는 공동경영자 2명과 함께 큰 사무실에 놓인 자기 책상에서 일한다. 본사 건물은 공사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몇달 뒤 이곳에 찰란도 직원 5천 명을 위한 캠퍼스가 만들어진다.
 
2008년 겐츠와 그의 학교 친구 다비트 슈나이더가 설립한 찰란도는 급속하게 성장했다. 인터넷에서 신발을 판다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연매출 36억유로(약 4조3500억원)의 기업을 낳았고 탄탄한 수익모델이 됐다. 찰란도는 2015년 중순 엠닥스(MDax)에 상장됐다. MDax는 독일 주식업계의 2부리그다. 이곳에서 찰란도의 시가총액은 항공사 루프트한자보다 많다. 찰란도는 조만간 DAX에 상장될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인터넷기업 중 최초일 것이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아마존 같은 외국 경쟁업체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겐츠는 찰란도를 온라인 유통업체에서 다양한 사업모델을 접목할 수 있는 기술 플랫폼으로 변신시키려 한다. 이미 자사 물류센터의 물품만 판매하지 않고 패션 브랜드나 의류 매장이 직접 배송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찰란도는 몇 주 전 뮌헨의 한 운동화 프랜차이즈 판매점을 인수했다. “유럽 의류시장의 매출 규모는 연간 4천억유로(약 484조23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우리가 차지하는 비율은 1%도 안 된다”고 겐츠는 말했다.
 
겐츠는 회사 지분을 팔아 큰돈을 번 뒤 빠져나갈 생각은 꿈에도 한 적이 없다. “베를린에서는 여전히 다른 회사에 팔려고 스타트업을 키운다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기업은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다. 좋은 시절이든 힘든 시절이든 기업을 사랑해야 한다.”
 
이스라엘 출신 야론 발러가 베를린의 디지털 생태계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는 이유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3억달러(약 3400억원) 규모의 벤처캐피털 펀드 타깃글로벌(Target Global) 경영자인 그는 “베를린의 디지털 생태계는 균형감각을 잃었고 사업가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지배한다”고 말했다. “건강한 스타트업계에는 사업 아이디어와 기술혁신 모두 필요하다.” 베를린의 스타트업 중 대다수가 여전히 온라인숍 또는 쇼핑몰을 운영한다.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자본이 많아야 버텨낼 수 있는 사업모델이다.
 
여러 사람에게 중요한 해가 될 2017년의 출발은 그다지 좋지 않다. 1월 온라인 경매 사이트 옥셔나타(Auctionata)가 파산 신청을 했다. 2월 말엔 스웨덴 투자회사 신네비크(Kinnevik)가 보유 주식 중 절반을 팔자 잠버의 회사인 로켓인터넷의 주가가 급격히 하락했다. “베를린 스타트업계의 상황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야론 발러는 예측한다.
 
ⓒ Der Spiegel 2017년 12호
Unternehmen Weltspitze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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