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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 뒤에 그들이 있었네
[스포츠 경제]
[6호] 2010년 10월 01일 (금) 김창금 economyinsight@hani.co.kr

김창금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두 골을 넣은 축구 국가대표 수비수 이정수. 그가 신었던 축구화가 ‘미즈노’라는 사실을 아는 팬은 많지 않다. 그러나 월드컵 무대에서의 노출 효과는 분명했다. 그동안 국내 시장에서 나이키와 아디다스에 밀린 미즈노 축구화의 매출은 이정수의 ‘골폭풍’ 이후 크게 높아졌다. 초·중·고 축구 선수를 중심으로 미즈노 축구화 열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을 상품명에 등장시킨 나이키의 ‘에어 조던’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농구의 전설을 상표에 등장시킨 이 농구화는 지금까지도 독립된 브랜드로 미국에서 출시되고 있다. 골프계의 아이콘 타이거 우즈에 대한 천문학적인 투자는 스타 스폰서십의 결정판이다. 스타를 닮고 싶어하는 대중의 욕구와 브랜드 관리 기법이 결합한 스타 마케팅. 선수의 부침에 따른 위험부담이 크지만 시장은 여기서 결정된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오은선.

적극적인 스타 마케팅의 모습은 아웃도어 시장에서도 볼 수 있다. 아웃도어 기업들은 아예 산악인을 기업 임원으로 영입해 브랜드 관리를 한다.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8천m 이상의 고봉 14개를 등정한 엄홍길은 프랑스 상표 밀레의 이사이고, 히말라야 14좌뿐만 아니라 대륙별 최고봉과 남극점을 주파한 박영석은 노스페이스 제품을 생산하는 골드원코리아 이사다. 등반 중 사고로 숨진 여성 산악인 고미영의 14좌 등반을 도왔던 김재수 대장은 코오롱챌린지팀에 소속돼 있다. 올 초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오은선 역시 블랙야크의 이사다. 노스페이스와 코오롱은 국내 빅3 브랜드고, 블랙야크는 4위권에 있다. 나머지 30여 생산기업 중에서도 등정대를 후원하거나 간판 인물로 산악인을 내세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경우가 있다.

에베레스트와 히말라야를 가는 이유  
아웃도어 전문지 <어패럴뉴스>가 최근 발표한 ‘아웃도어 마켓 동향’을 보면, 올해 국내 아웃도어 시장 규모는 최대 3조원까지 예상된다. 노스페이스와 코오롱, K2 등 빅3의 매출 목표는 1조원을 훌쩍 넘는다. 블랙야크나 라푸마 등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남대문시장 등에서 팔리는 시장표나 직수입 브랜드까지 품목도 다양하다. 경기침체에도 아웃도어 시장은 10년간 20% 이상씩 성장해왔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런 흐름은 제품의 기능과 실용성에서 비롯한다. 초경량, 발열, 방수·투습성 등 원단 자체가 기능성을 우선시한다. 여기에 다양한 색감을 적용하는 등 디자인의 혁신으로 일상에서도 광범위하게 입을 수 있는 캐주얼로 인식되면서 시장은 더욱 커지는 추세다. 글로벌 브랜드의 국내 진출도 봇물처럼 많아졌다. 애초 프랑스 브랜드 라푸마의 국내 라이선스를 얻은 LG패션은 라푸마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자 국내 브랜드 사용권리를 아예 사버렸다. 프랑스 라푸마 그룹의 또 다른 상표인 아이더와 밀레 또한 국내 기업인 케이투코리아와 에델바이스가 갖고 있다.
아웃도어 시장의 마케팅 전쟁은 산악인 스폰서십과 업체별 고산 등반 후원 경쟁도 한몫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등정 여부는 소비자의 충성도나 신뢰성을 크게 높이는 요인이다. 후발주자인 국산 브랜드 블랙야크는 올 상반기 오은선의 히말라야 14좌 고봉 완등으로 전국 190개 매장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블랙야크 박은주 홍보팀장은 “세계 최초라는 것과 여성 산악인의 성취라는 점에서 브랜드 친밀감과 인지도가 크게 올랐다”고 설명했다. 밀레도 2009년 엄홍길을 간판으로 영입하면서 매출액이 급신장했다. 2년 전 매출이 650억원이던 중견 밀레는 지난해 900억원, 올해는 2년 전의 두 배인 1300억원을 매출 목표로 잡고 있다. 이 산악인들은 각종 프로모션과 이벤트와 결합해 꾸준히 홍보대사 구실을 한다. 아웃도어 제품의 품질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산악인=엄홍길’로 연상되는 등식은 브랜드 가치를 높여준다.
업계의 과열경쟁은 어두운 측면도 있다. 과거 엄홍길과 박영석이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14좌 등반 경쟁을 펼칠 때 개인 간의 라이벌 대결로 인식됐다. 그러나 지난해 고미영과 오은선이 벌인 히말라야 14좌 도전은 결승점을 앞두고 초를 다투는 경주처럼 보였다. 히말라야 14좌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칸첸중가(8586m)를 올랐느냐 오르지 못했느냐라는 논란이 국내 산악인으로부터 제기되면서, 코오롱과 블랙야크 간의 시장 대리전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대한산악연맹이 8월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반 여부에 대해 ‘오르지 않았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면서 의구심은 더 커졌다. 확정적으로 등반 실패를 입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급하게 결정을 내린데다, 회의에 참석한 엄홍길·박영석·김재수씨 등이 아웃도어 업계에 직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신중파이던 엄홍길은 나중에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오은선의 명예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코오롱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산악 전문 브랜드로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기업이다. 전문적으로 산을 가는 분을 후원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 간 경쟁적인 등정주의는 알피니즘의 정신을 상실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낸 2009년 <체육백서>를 보면, 등산은 걷기와 보디빌딩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생활체육 참여율을 자랑한다. 업계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산에 오르는 사람의 인구를 1500만 명까지 보고 있다. 이런 잠재력은 아웃도어 시장의 활력 기반이다. 코오롱이 지난해 내놓은 자체 발열 소재가 들어간 ‘라이프 테크’ 고어텍스 재킷은 한 벌당 130만원이다. 히말라야 산악 트레킹도 가능한 이 옷은 내놓자마자 200벌이 소화됐다. 동네 뒷산을 올라도 장비만큼은 브랜드로 갖추고, 신발도 명품으로 맞춰야 직성이 풀리는 게 우리네 이웃의 모습이다. 보온 파카만 하나 더 구비하면 북한산 오르는 사람의 절반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명품족이냐, 실속파냐 
등반 경쟁이나 마케팅 혈전, 한국인의 명품 선호 등의 이면에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 성균관대 김용준 교수(경영학)는 “외국 사람들에 비해 훨씬 고가의 스포츠 장비를 갖추는 한국의 특징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장기적으로 한국에서도 글로벌 무대에 진출할 상표가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설명했다. 200만원짜리 명품 가방이든 남대문에서 산 2만원짜리 가방이든 상관없다는 실속파 소비자가 늘어나는 것도 변화다. 각종 후원을 통해 한국 등산 발전의 촉진제가 되어온 아웃도어 업계와 산악인들도 ‘오은선 논란’을 통해 자기성찰의 기회를 갖는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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