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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경영권 행사 땐 ‘눈 가리고 아웅’
[국내 이슈] 미래전략실 해체 삼성, 어디로 가나
[84호] 2017년 04월 01일 (토) 곽정수 jskwak@hani.co.kr
‘총수 구속’ 막지 못한 문책 성격 강해... 계열사 자율경영 여전히 의문
 
삼성이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창립 이래 처음 총수가 구속되는 사태를 맞아 그룹 해체로 이어질 수 있는 단안을 내렸다. 이제 삼성은 각 계열사 대표이사와 이사회 중심으로 자율경영을 하게 된다. 미래전략실 해체는 경영 쇄신의 일환으로 발표됐지만 ‘총수 구속’을 막지 못한 문책 성격도 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쇄신안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 이유다. 과거에도 삼성은 초대형 비리로 위기를 맞을 때마다 쇄신안을 내놨지만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됐다. 무엇보다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을 계속 행사할 경우 계열사 독립경영은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곽정수 <한겨레> 선임기자
 
“우리는 폐족입니다. 다 죽어야 합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한 팀장(사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이다. 삼성은 2017년 2월28일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해체를 핵심으로 한 경영 쇄신안을 발표했다. 당일 오후 2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미래전략실의 최지성 실장(부회장), 장충기 차장(사장) 등 경영진 5명을 ‘비선 실세’ 최순실씨 등에게 433억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일괄 기소한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미래전략실 해체는 2016년 12월6일 국회 국정 농단 청문회에서 이 부회장이 이미 약속한 일이다. 하지만 특검 해체일에 바로 단행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룹 경영에 꼭 필요한 미래전략실의 일부 핵심을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등 3대 계열사로 이전해 충격을 최소화하는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삼성의 컨트롤타워 해체는 2008년 삼성 특검에서 이건희 회장 등 그룹 수뇌부가 경영권 불법 승계, 차명계좌 운용 등이 드러나 배임·탈세 혐의로 기소되면서 전략기획실(현 미래전략실) 해체를 선언한 뒤 8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미래전략실에선 전략·인사·경영진단·기획·홍보·법무·금융일류화추진 등 7개팀 200여 명이 일해왔다.
 
미래전략실 해체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2008년 경영쇄신안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2008년과 2017년 경영쇄신안 발표는 여러 점에서 유사하다. 둘 다 특검 수사가 직접적 계기가 됐다. 특검 수사로 그룹 수뇌부의 불법 혐의가 드러나 기소된 것도 유사하다. 경영쇄신안의 핵심이 미래전략실 해체와 경영 수뇌부 퇴진이란 점도 동일하다. 하지만 차이도 있다. 2008년에는 미래전략실에서 이학수 실장과 김인주 차장만 퇴진했다. 2017년에는 미래전략실 팀장 7명이 모두 물러났다. 2008년에는 미래전략실이 겉으로는 간판을 내렸지만 뒤로는 여전히 활동해 비판의 대상이 됐다.
 
삼성은 이번에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한 임원은 “2008년 같은 꼼수나 국민에게 오해를 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룹의 3대 주력 계열인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이 미래전략실 기능을 대체하는 일도 절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장 큰 차이는 총수 관련 부분이다. 2008년에는 이건희 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통해 “국민 여러분께 많은 걱정을 끼쳐드렸다. 이에 따른 법적·도의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히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2017년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뇌물공여, 횡령 등으로 구속 기소됐지만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경영 퇴진 발표도 없었다.
 
   
▲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7년 2월26일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삼성은 창립 이래 처음 총수가 구속되면서 그룹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해온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연합뉴스
 
한순간에 백수 된 미래전략실 임원들
미래전략실 해체와 팀장 전원 사임은 박근혜·최순실과의 정경유착 과정에서 불법 혐의가 드러난 데 따른 경영쇄신책의 일환으로 발표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재용 부회장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해 삼성 창업 79년 만에 총수로서 첫 구속이란 불명예를 안긴 데 대한 문책 성격이 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부회장의 분노는 여러 대목에서 감지된다. 전직 팀장(사장 또는 부사장급) 7명에게는 상담역·보좌역 자리가 일절 주어지지 않았다. 미래전략실 전직 팀장들은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삼성을 완전히 그만뒀다. 말 그대로 백수가 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래전략실 해체와 팀장급 전원 사임 자체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삼성 안팎에선 “직전 주말에 이 부회장을 면회한 고위 임원을 통해 ‘시간을 끌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중이 전달된 것 같다”는 얘기가 돈다. 미래전략실 팀장 사임도 발표 당일 오전까지 미래전략실 안에서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다. 전 미래전략실 임원은 “실장과 차장을 제외한 나머지 팀장들은 원소속 계열사로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당일 낮에 상황이 급변했다”고 말했다.
 
미래전략실 대관조직 해체 발표도 이 부회장의 심기를 반영해준다. 다른 그룹의 경우 2016년 9월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의혹이 본격 제기되기 이전에 비선 실세 최순실의 존재를 제대로 아는 곳이 거의 없었다. 반면 삼성은 막강한 정보력을 통해 최씨의 존재를 진작에 파악했고 이를 활용해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으려다 화를 자초한 꼴이 됐다. 장충기 차장이 이재용 부회장 구속 사태의 1차 책임자로 꼽히는 이유다. 장 차장은 삼성의 정보 수집과 대관 업무를 총괄하는 기획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특검에 압수된 장 차장의 휴대전화에서 과거 수년치의 전화통화·문자메시지·카톡 내용이 그대로 드러난 것도 구설에 올랐다. 미래전략실의 다른 고위 임원들은 보안상 6개월마다 휴대전화를 교체하는데, 정작 보안 책임자인 장 차장이 이를 지키지 않아 특검에 중요한 증거를 안겨준 꼴이 됐다.
 
삼성이 그룹 체제를 유지하면서 컨트롤타워를 없앤 것은 육·해·공군이 있는데 통합 사령부가 없는 것에 비유된다. 군대를 효율적으로 지휘하려면 통합 사령부는 필수불가결하다. 삼성도 컨트롤타워 기능을 대체할 새로운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는 한 미래전략실 해체는 임시 방편일 수밖에 없다. 삼성은 계열사 자율경영 강화를 강조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동안 삼성 계열사 최고경영자 인사는 총수의 지시를 받아 미래전략실이 발표했다. 계열사 자율경영 시대에는 누가 최고경영자 인사를 결정하느냐는 의문을 낳는다. 최고경영자 스스로 자신의 진퇴를 결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거수기에 불과한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향후 계열사별 최고경영자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이사회와 크게 다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미래전략실 해체에도 불구하고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을 계속 행사하는 한 계열사 자율경영은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소장은 “삼성이 그룹을 해체하지 않으면서 미래전략실을 없애는 건 말이 안된다”면서 “결국 미래전략실 기능을 일부 축소해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등 핵심 계열사 내부로 이전하는 또 다른 꼼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래전략실 문제의 핵심은 법적 실체가 없다보니 막강한 권한은 행사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고, 총수 일가와 가신 그룹들의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편법·불법 행위까지 서슴지 않은 것이다. 컨트롤타워 기능이 음성적으로 이어지면서 이런 폐단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경영 쇄신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 2017년 3월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운송업체 직원들이 해체된 미래전략실의 이삿짐을 옮기고 있다. 삼성이 미래전략실을 해체했지만 계열사 자율경영이 정착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연합뉴스
 
총수 공백에도 미미한 내부 위기감
이재용 부회장 구속과 미래전략실 전격 해체는 삼성 3세 경영 시대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검 수사에 따르면 박근혜·최순실에 대한 뇌물공여는 이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정부의 도움을 얻으려는 목적이었다.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공정거래위원회의 신규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삼성물산 주식 매각 물량 축소,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손쉽게 하기 위한 금융위원회 로비 등이 모두 포함된다.
 
시장에서는 삼성의 지배체제 재편이 ‘삼성생명 지주회사 전환→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지주회사 통합’이란 3단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삼성은 최순실 사태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박근혜 정부 임기 중에 무리를 해서라도 최소한 1~2단계를 밀어붙일 의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국정 농단 사태와 특검 수사로 급제동이 걸렸다. 앞으로 최소 수년간은 추진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하기 이전인 1990년 중반 부친 이건희 회장과 가신 그룹이 주도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인수 등의 사건으로 ‘재벌 3세의 불법 편법 상속증여의 상징’이라는 깊은 낙인이 찍혔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쓰러진 뒤 사실상 그룹 총수 역할을 해왔지만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7년 2월17일 이 부회장 구속 때 보수 언론과 경영계에선 삼성의 총수 공백 사태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일상적 경영은 계열사 최고경영자 등 전문 경영진이 알아서 하지만 그룹의 큰 사업 방향과 대형 투자, 기업 인수·합병 등은 총수가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는 게 재벌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한 달여 지난 시점에서 살펴보면 삼성 내부의 위기감은 크게 감지되지 않는다. 삼성에서 25년 이상 일한 계열사의 간부는 “이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면 공백이 크게 느껴지겠지만, 처음부터 역할이 크지 않았다면 공백을 못 느끼지 않겠느냐”고 에둘러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그동안 “경영권 승계는 단순히 지분만 확보한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삼성 임직원들에게 경영 역량과 리더십을 인정받고 나아가 사회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진정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과의 정경유착을 통한 무리한 경영권 승계 작업으로 위기를 자초했다.
 
삼성 3세 경영 시대를 성공적으로 열기 위한 두 조건으로 경영 성과와 사회적 존경이 꼽힌다. 이 부회장은 3세 경영 시대를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발목이 잡힌 꼴이 됐다. 앞으로 재판 결과에 따라서는 수년간의 경영 공백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삼성그룹과 이재용 부회장의 운명이 짙은 안갯속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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