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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혁명가, 룰라
[Special Report] 브라질 대선
[6호] 2010년 10월 01일 (금) 로랑 자노 economyinsight@hani.co.kr

로랑 자노 Laurent Jeanneau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사회·노동 전문기자

   
 
‘보수적 금융정책’과 ‘사회정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는 룰라 정권이 일견 비상식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브라질이 빈곤 해소에 실질적 진전을 이뤄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는 10월3일, 브라질에서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그리고 1985년 군부독재가 종식된 이후 처음으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가 대선 무대에서 퇴장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상의 얘기일 뿐이다. 왜냐하면 룰라의 후광이 여전히 강한 빛을 발산하며 향후 대선 판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집권 2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금속 노동자 출신의 룰라 대통령은 요즘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여론 지지도는 무려 80%에 육박한다. 사실 룰라가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안 브라질은 빈곤층이 현격히 감소했다. 경기 호조세가 지속된 영향도 컸지만, 무엇보다 룰라 정부가 브라질 현실에 맞는 불굴의 정책을 펼친 덕분이다.
일개 선반공 노동자에서 브라질 최고 공직에 오른 룰라의 성공신화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시민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 예나 지금이나 대다수 서민은 룰라에게서 가족 같은 친근감을 느낀다. 상파울루 최대 빈민가인 헬리오폴리스에서는 누구나 플라나우투 대통령궁의 주인이 척박하고 가난한 북동부 지역을 떠나 대도시 교외 지역으로 이주한 사실을 잘 안다. 헬리오폴리스 주민의 대다수가 룰라가 걸어온 것과 비슷한 인생 역정을 밟았고, 그로 인해 룰라에게서 강한 동질감을 느낀다. 한 주민은 “룰라는 여기, 내 가슴속에 있다”며 주먹으로 가슴팍을 두드렸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브라질 북동부 바이아주 출신이다. 나도 그렇다. 그는 형제나 다름없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배경은 바뀌어도 시민들의 반응은 똑같다. 상파울루의 비즈니스 거리로 유명한 파울리스타 대로에는 피라미드 모양의 웅장한 빌딩 한 채가 우뚝 솟아 있다. 브라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자협회 중 하나인 ‘산업연맹’(FIESP) 본사다. 이 단체의 사회책임위원회 위원장을 맞고 있는 엘리안 벨포르도 대통령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룰라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그는 시민들이 꿈을 꾸도록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꿈을 현실로 옮길 수 있다는 사실까지 보여줬다”고 말했다. 여전히 극심한 사회 불평등으로 악명이 높은 브라질이지만 요즘은 신의 은총을 받은 듯 나라 전체가 행복한 기운으로 충만해 있다. 폴리스 연구소 소장이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라질어판 발행인인 실비우 카시아 바바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전 사회계층이 행복에 잠겨 있다. 부유층, 빈곤층 할 것 없이 모두 룰라 정부야말로 민주주의 시대 최고의 정부라고 입을 모은다”라고 말했다. 제툴리우바르가스재단 소속 정치학자 프란시스코 폰세카는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대통합”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경제는 보수, 복지는 진보
이런 상황은 노동자 출신이 브라질 정권을 잡게 되리라는 전망에 금융시장이 요동쳤던 과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2002년 선거전이 한창일 때, 룰라는 ‘자본’이라는 높은 장벽에 부딪힌다. 노조 지도자 출신인 룰라의 지지도가 상승하자, 시장의 신뢰도가 추락한 것이다. 헤알화 가치가 폭락하고, 국가위험도(한 국가의 채무 이행 능력을 의미한다)도 나이지리아나 시에라리온 정도의 불명예스러운 수준까지 상승했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브라질의 지급정지 사태가 임박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렇게 시장의 신뢰도가 급하락하면서 브라질은 심각한 위기 국면에 빠져들었다. 급기야는 2002년 8월, 선거일을 몇 개월 앞두고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300억달러 이상의 차관을 요구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된다. 물론 이것이 룰라의 당선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 깊은 앙금을 남긴다. 그는 전임자의 국정 성적표를 일컬어 ‘저주받은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플라나우토궁의 새 주인은 과거의 유산과 완전히 단절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는 좌파 성향의 지지자들을 실망시키면서까지 지극히 보수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이어나갔다. 처방약은 쓰디썼다. 정부가 취한 긴축정책으로 적어도 출범 초기 동안에는 사회복지 개혁 규모를 축소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빈곤 해소야말로 룰라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결 과제 중 하나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로 390억 개의 논거를 제시할 수 있다”고 호물로 파에스 사회개발·기아퇴치부 차관은 호언장담했다. 그가 말하는 390억이란 숫자는 사실 사회개발·기아퇴치부에 편성된 예산액이기도 하다. 이 부처에 할당된 예산(헤알화로는 390억, 유로화로는 170억에 해당하는 이 부처의 예산은 브라질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4%를 차지한다)은 사회복지부와 보건부에 이어 브라질에서 세 번째로 높다. 덕분에 투자는 소중한 결실로 이어졌다. “볼사 파밀리아(저소득층에게 생활 형편에 따라 매월 1인당 22~200헤알의 생계비를 지급하는 빈민구제 대책) 정책은 각 가정의 생활수준을 크게 향상시킨 것은 물론, 더 광범위하게는 사회조직 전반에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파에스 차관이 말했다. 응용경제연구소(IPEA)가 실시한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이 정책은 어린이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 예로 브라질에서는 16년 만에 어린이 노동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2003~2008년 어린이 영양실조도 62%나 감소했다.1)
룰라가 사회 부문에서 이룩한 또 다른 성과는 최저임금 인상이다. 2003년 1월에서 2010년 2월 사이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최저임금 인상률은 74%에 달했다. 더욱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제동을 거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같은 기간 공식 부문에서 창출된 신규 일자리 수는 1200만 개에 달했다. 서민층에 대한 대출 규제 완화에 힘입어 이 정책은 내수 소비를 진작하는 데 기여했고, 내수 성장은 브라질의 경제성장을 떠받치는 주요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분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책이다. 퇴직연금·장애연금·노령수당 등을 산정하는 데 최저 기준으로 활용됐기 때문이다”라고 브라질사회경제분석연구소(IBASE) 소장이자 포르투알레그리 세계사회포럼(WSF) 공동 창안자인 사회학자 칸디두 그르지보우스키는 말했다. 그는 또 “이 정책이 사회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기여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기 전에는 내 임금과 최저임금의 격차는 무려 40배에 달했지만, 지금은 30배로 축소됐다”고 덧붙였다. 한 사회의 소득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표인 지니계수도 2003년 0.58에서 2008년 0.54로 하락했다.2) 좀더 구체적으로 부연해 설명하면, 응용경제연구소의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2001년 이후 가장 빈곤한 하위 10%의 소득은 연간 8% 인상된 반면, 가장 부유한 상위 10%의 인상 비율은 1.5%에 그쳤다.
국가식량안보위원회 회장직을 역임한 경제학자 프란시스코 메네제스는 “이 정책 덕에 룰라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고 이는 2006년 재선에 디딤돌이 되었다. 수백만 명이 극빈층에서 탈출했고, 중류층에 합류하는 이도 나왔다. 브라질 중류층 비율은 2003년 전체 인구의 43%에서 현재 53% 이상 증가했다”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심각한 빈부격차
분명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소득이 최저임금의 절반보다 낮은 경우를 빈곤층으로 보는 브라질에서, 빈곤자 수는 2003년 7780만 명(전체 인구의 42.7%)에서 2008년 5370만 명(전체 인구의 28.8%)으로 약 2400만 명이 줄었다. 게다가 브라질은 유엔이 정한 새천년 개발목표 중 첫 번째 목표도 이미 여유롭게 달성한 상태다. 물론 최근 브라질이 겪고 있는 경제성장세가 빈곤 해소에 상당 부분 기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정책 역시 주효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무조건 장밋빛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곤란하다. 사실 브라질은 아직까지도 사회 불평등 수준이 심각하다. 공식 통계상 빈민층이 예전보다 부유해진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극부유층 역시 부를 늘리긴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고금리 유지는 금융자산을 지닌 일부 특권층의 배를 불려주었다. 캡 제미니와 메릴린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2008∼2009년 100만달러 이상의 금융자산을 지닌 브라질 국민 수는 약 12% 증가했다.
대대적인 규모의 빈곤퇴치 정책으로도 모든 취약 계층을 보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약 1100만 명에 이르는 최극빈층은 룰라가 마련해준 사회적 사다리에 올라타지 못했다”고 메네제스는 말한다. 볼사 파밀리아 정책도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전국 어디에서나 수당 지급액이 같기 때문에, 물가가 높은 도시는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취약 계층으로는 브라질의 토착민이 있다. 메네제스는 “대규모 대두 생산자에게 토지를 빼앗긴 브라질 인디오들이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족농업 지원책이 무색할 정도로 최근 몇 년 동안 토지 집중화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브라질 지리통계연구소에 따르면, 10ha 이하 소규모 농가는 브라질 전체 경작지의 2.7%를 소유한 반면, 1천ha 이상을 소유한 대토지 농가는 43%를 소유하고 있다. 토지개혁이라는 민감한 사안에서 룰라는 지지자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정부는 농업계의 정치적 후원을 잃지 않기 위해, 아마존 지역을 비롯한 일부 외곽 지역에 거주하는 무토지 농민에게만 국유지를 양도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토지 수용 방법도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브라질의 성장 모델은 여전히 유전자변형 콩, 사탕수수 등을 비롯한 농산물 수출에 크게 의존한다. 이 때문에 룰라에게 수출농업 발전3)은 중요한 전략적 과제로 여겨진다. 때로는 환경파괴라는 대가를 치르는 것도 불사한다. 2008년 5월 마리나 시우바 환경부 장관이 전격 사퇴한 사건은 금속 노동자 출신의 룰라 대통령이 얼마나 환경문제를 등한시했는지를 보여준 사례 가운데 하나다. 물론 룰라 이후의 시대에도 환경은 여전히 풀기 힘든 숙제로 남을 것이다.


 

   
 
거침없는 브라질 경제

중앙은행이 2010년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을 7.5%로 전망하면서, 브라질 경제는 요즘 룰라가 자주 쓰는 표현대로 ‘마법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신규 일자리가 올 1분기에만 약 100만 개에 달했고, 올 한 해는 약 250만 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브라질이 ‘글로벌 위기’라는 초대형 태풍을 완전히 비껴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2009년 국내총생산(GDP) 감소율이 0.2%에 그치는 등 충격은 비교적 약했다. 몇 주 전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룰라는 “브라질은 금융위기에 가장 늦게 돌입해서 제일 먼저 탈출한 국가”라며 으스댔다.
하지만 모든 경제지표에 청색불이 들어온 것은 아니다. 과대평가된 헤알화는 수출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증가 일로에 있는 인플레이션이 2010년 5.5%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은 과거의 악몽을 되살렸다. 이로 인해 중앙은행은 지난 4월 9.5%라는 높은 수준의 기준금리를 다시 한번 상향 조정했다. 낮은 저축률과 열악한 인프라, 고급 인력 부족 등 여러 구조적 약점도 남아 있다.
ⓒ Alternative Economiques
번역 허보미 위원

1) 볼사 파밀리아가 유일한 빈곤퇴치 정책은 아니다. 식량 확보, 지역별 불평등 해소, 대학 내 차별 근절을 위한 중요한 정책들이 실시됐다.
2) 지니계수는 소득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0~1의 값을 갖는다. 0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정도가 낮다.
3) 2003∼2009년 농산물 수출이 약 111% 증가하면서 수출액이 647억달러에 달했다. 농업은 브라질 전체 수출의 40%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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