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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죽인 보수’의 반격은 없다
[윤희웅의 선거와 경제] 5월 대선 때는 보수층이 되살아날까?
[84호] 2017년 04월 01일 (토) 윤희웅 waymaker@opinionlive.co.kr
정치권 일부에서 ‘샤이(숨죽인) 보수’가 선거 때 살아나리라는 기대 섞인 주장이 나온다. 보수라고 내세우기 부끄러운 사람이 많아서, 요즘 여론조사가 부정확하다는 얘기다. 이 주장은 과거 선거 결과를 보면 근거가 없다. 게다가 이 논리는 ‘민심’을 잃었다고 비판할 근거를 빼앗는 걸로 귀결되고 만다. 민심을 잃은 게 아니라 ‘지지 민심’이 숨죽이고 있다고 강변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샤이 논의’는 선거 뒤 투표 결과와 사전 예측이 불일치할 때나 쓸 수 있는 개념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아마 ‘샤이(shy) 보수’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앞두고 탄핵 찬반 여론의 변화를 기대했던 배경 말이다. 박 전 대통령 쪽은 최순실 국정 농단이 세상에 알려진 초기에 잔뜩 움츠린 보수층이 결국엔 기지개를 펴면서 탄핵 반대 기류가 거세질 것으로 보고 나름의 전략적 행보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대한 보수 지지층의 복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초기부터 탄핵소추안이 헌재에서 재판관들의 만장일치로 인용될 때까지 탄핵 찬성 여론은 80% 내외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헌재 결정 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 불복 시사 발언과 서울 삼성동 ‘사저 정치’를 보면 아직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뿐만 아니다. 현재 보수 성향 대선 후보들이 선거전에 희망을 품고 여럿 뛰어든 이유도 바로 샤이 보수가 결국 ‘투표하는 보수’로 적극 경향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권 일부에선 현재 발표되는 여론은 비정상적 상황에서 조사된 것이므로 실제 표심을 정확하게 보여주지 못한다는 주장이 제법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보수층임을 자임하기 부끄럽기 때문에 여론 조사에 참여하지 않거나 거짓 응답을 내놓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침묵의 나선 이론’을 거론하며 사회적 주류 목소리와 본인의 목소리가 다를 때 침묵 모드로 전환하게 된다는 나름의 이론적 근거도 제시한다. 결국 지금은 숨죽이지만 대선 투표에선 숨은 표심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면서 반전이 기다릴 거라고 주장한다.
 
원래 ‘샤이 논의’는 선거가 끝난 뒤 투표 결과와 사전 예측이 불일치할 때 이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물론 선거 전에 얘기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후보들 간, 또는 어떤 정책 이슈의 찬반 격차가 매우 작을 때 주로 거론된다. 지금처럼 일상적으로 논의되는 용어가 아니다. 또 지금처럼 정치세력 간 지지율 격차가 현저할 때 사용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 ‘샤이 논의’는 원래 선거가 끝난 뒤 사전 예측과 투표 결과가 불일치할 때 이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적 상황이 불리해 불만이 있는 쪽에서 이를 방어하려고 사용한다. 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보수 성향 시민들. 한겨레 김태형
 
지금 정치권 일각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샤이 논의는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비친다. 최근 조사된 여론의 결과가 부정확하고 왜곡돼 있기 때문에 한쪽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발생한 정치적 상황이 불리해 불만이 있는 쪽에서 이를 방어하기 위해 적극 인용하는 것이다. 아직 선거가 한 달 이상 남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부적절하고 단순한 예측을 위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건전한 논의라고 보기 어렵다.
 
샤이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의 여론조사 결과는 틀리며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핵심인데 이 논의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 주장이 쉽게 통용되면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첫째, 만약 언제나 샤이층이 존재한다면 모든 선거 결과는 박빙의 승부가 나야 한다. 매 선거 결과가 비슷해야 한다. 지난 대선과 그 전 대선은 물론 다가오는 대선도 그 결과는 아주 미묘한 차이만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샤이층이 최종 투표에선 원래 성향대로 투표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많은 선거가 대체로 경쟁 구도로 치러지지만 모든 선거 결과가 미세한 차이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한 쪽 세력의 지지층이 붕괴된 상황에서 실시돼 결국 1위와 2위 후보 간 득표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선거가 종종 있다. 2007년 대선이 대표 사례다.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이명박 후보였다. 야당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절반에 육박하는 48.7%의 득표율을 얻었다. 반면 여권 후보인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고작 26.1%를 얻는 데 그쳤다. 진보적 성향인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와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가 얻은 5.8%와 3%를 합쳐도 34.9%에 불과했다. 당시 보수 진영에선 선거 막판에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출마해 15.1%를 얻었다. 이명박 후보의 득표율과 합하면 63.8%에 달했다. 만약 진보 정권에 실망했지만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은 샤이 진보층이 존재한다면 최종 득표율에서 진보 후보들의 득표율 합이 전체 투표의 절반 가까이 나와야 했다. 샤이층이 존재하고 반드시 실제 투표에선 원래 이념 성향에 맞게 드러나는 것이 법칙이라면 그러한 일방적인 결과가 나왔을 리 없지 않겠는가. 어떤 세력이 신뢰를 크게 잃으면 선거에서 득표율도 그에 맞게 떨어지는 게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둘째, 샤이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 여론 결과는 잘못됐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면 이후 들어서는 정권이 국정운영을 잘못하더라도 비판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모든 정권마다 숨은 지지층이 있을 텐데 이것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여론이 나오면 해당 정권은 조사된 여론의 부정확성을 지적하며 국민과 언론의 질타를 회피하려 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샤이 논의는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방어용으로 거론돼서는 안 된다. 애초 우호적이던 지지층이 왜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출하지 않고 꺼리는 샤이 현상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되돌아보는 것이 정치세력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정치세력의 정책과 행보에 대중이 반응하고, 이에 대응해 정치세력이 방향을 재설정하는 지극히 바람직한 정치적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대중의 반응에 맞춰 잘못을 고치고 다시 신뢰를 얻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유권자가 자연스럽게 정치적 성향에 맞게 지지를 표출할 수 있다.
 
‘샤이 트럼프’와 브렉시트의 예를 들면서 최근 샤이층으로 인해 투표에서 반전이 있지 않았냐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례와 지금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단순 비교하기는 무리다. 샤이 트럼프와 브렉시트는 특정 유권자 그룹의 경제적 혜택 여부와 직결되는 이슈였다는 특성이 있다. 이민자 유입을 차단해 미국 백인 노동자와 영국 기존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켜주겠다는 캠페인 메시지가 먹힌 것이다. 결국 트럼프 지지자와 브렉시트 찬성파는 더 강한 의지를 갖고, 더 많이 투표장을 찾은 것이다.
 
우리의 경우 싸늘한 평가를 받는 옛 여권 세력이 당장 재건되는 게 합리적 보수층에 경제적 혜택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 진보층이든 보수층이든 부정과 부패에 대해서는 지지를 철회하거나 지지 강도를 낮추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이번 대선은 그렇다 치더라도 내년 지방 선거 때, 또는 그 뒤 다시 보수층이 이전처럼 지지를 회복할 수 있고, 그 경우 샤이층이 존재했다고 할 수 있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것은 현재의 정치적 국면이 종결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결과물로 이해해야 한다. 충분히 정치적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정치적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지 샤이층 존재의 근거는 될 수 없다.
 
* 윤희웅은 오피니언라이브(OPINIONLIVE)에서 여론분석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과 민(MIN) 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을 거쳤다. 대중심리의 형성과 표출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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