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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로 성장한 경제 구조에 균열 오나?
[국내 이슈]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수출 한국’
[83호] 2017년 03월 01일 (수) 조계완 kyewan@hani.co.kr

세계무역 둔화, 보호무역주의, 원화 강세, 한-미 FTA 재협상 겹치면 혼돈에 빠질 수도

한국의 수출이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3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증가세를 보였다. 3년간 지속된 감소 추세를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태풍 직전 해가 반짝 비친 것과 비슷하다. 거대한 파도가 ‘수출 한국’ 정면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세계무역 둔화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가 재촉하는 보호무역주의, 원화 강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가능성이 최대 위협 요인이다. 어쩌면 ‘수출로 성장해온 한국 경제’라는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조계완 <한겨레> 기자
 
국내 소비 위축이 장기화하고 투자도 여전히 부진한 상태라서 수출이 한국 경기회복을 이끌 유일한 기둥으로 꼽힌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38.2%(2015년)에 이를 정도로 한국 경제는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소규모 대외 개방경제다. 그런데 다행히 요즘 수출이 모처럼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집계를 보면, 2017년 1월 수출(통관 기준)은 403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1.2% 증가했다. 전년 동기에 견줘 2016년 11월과 12월에 이어 3개월 연속 수출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 석 달 연속 수출 증가는 2014년 4월 이후 33개월 만이다. 지난 3년간 지속돼온 수출 감소 추세가 이제 끝나가며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안팎의 무역 여건은 ‘초불확실성’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를 필두로 한 반세계화 흐름 속에 각국의 무역제제가 강화되는 등 수십년간 지속된 글로벌 자유무역 기조가 후퇴하고 있다. 가격경쟁력을 좌우하는 환율도 그 향방이 불확실해지고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오는 4월 미국 재무부의 한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 속에 원화가치 절상 압력이 강력하게 일고 있다. 트럼프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공식 선언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가능성이 점차 고조되면서 북미 수출 전선에도 안개가 두텁게 쌓이고 있는 형국이다.
 
LG경제연구원은 2017년 2월15일 ‘수출경기 진단’ 보고서를 내고, 올해 하반기부터 수출 증가세가 다시 둔화되고 올해 국내 경기를 떠받칠 정도의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또한 “최근 석 달간의 수출 회복은 그동안 크게 위축된 데 따른 기저효과 측면이 크다”며 “수출 회복을 주도하는 품목도 석유화학·반도체·평판디스플레이 등 일부 품목에 집중된 반면, 무선통신기기·자동차·선박은 여전히 수출 부진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으로의 자동차 수출은 2016년 10% 가까이 줄어든 데 이어 올해도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1월 전세계 수출은 5만65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22% 줄었다.
 
LG경제연구원은 수출 증가세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최근 세계 경기 회복세가 빠르지 않고 △미국의 원화절상 압력이 수출 활력을 약화시킬 공산이 크다는 점을 꼽았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미국의 반덤핑·상계관세 등 비관세 장벽이 확대될 여지가 크고, 트럼프의 환율조작국 발언 이후 원화절상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데 오는 4월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 외환 당국이 환율 안정을 위해 개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당장 지정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인 ‘환율 발언’을 통해 긴장감을 유지시켜 실제로 원화가 강세에 머무르게 하는 효과를 이어갈 수도 있다. 강 연구위원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나타나는 세계 경기의 호전 흐름을 우리 수출업계가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게 된다는 뜻”이라며 “하반기에는 수출이 물량과 금액 모두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2017년 2월12일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길거리음악단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도 재협상을 선언했다. REUTERS
 
‘트럼프 경제학’과 수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월 취임사에서 미국 우선의 강경한 보호무역주의를 공식 선언함에 따라 우리 수출이 ‘트럼프노믹스’의 직접 영향권에 들면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부진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멕시코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멕시코에는 한국 기업 180여 업체가 진출해 최근 5년간 33억달러를 투자했다. 미국·멕시코·캐나다 등 3국이 맺은 NAFTA 협정을 교두보 삼아 멕시코로 몰려간 기업들은 수출 전략의 근본적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트럼프는 이미 중국산과 멕시코산 수입 품목에 각각 45%, 35%의 국경 관세 부과를 언급한 바 있다. 한국은행은 중국의 대미 수출이 10% 줄면 한국의 전세계 총수출이 0.36%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의 보호무역 공세로 중국·인도 등 신흥국 경기가 냉각되고 미·중 무역 분쟁이 격화하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시련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노믹스 시대의 무역·투자 질서’ 보고서에서 “트럼프노믹스는 전통적인 경제 이론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미국의 이익을 모든 판단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사안에 따라 다양한 정책들을 동원한다. 감세나 규제 완화와 같은 전통적인 정책 수단 외에 수입 장벽 강화, 환율 압박, 고율의 관세 부과 등 일방적 조처들을 제한 없이 사용해도 괜찮다고 믿는 것이 트럼프 경제학”이라며 “이런 정책들이 세계경제의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보호무역의 확산과 이른바 ‘근린궁핍화’의 일상화가 초래할 글로벌 교역 위축이다. 유병규 산업연구원 원장은 2월10일 서강대에서 열린 ‘2017 경제학 공동 학술대회’에 참가해 “미국의 트럼프,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 등 이른바 ‘스트롱맨 리더’ 시대가 전개되면서 보호무역 흐름이 거세지고 반덤핑·상계관세·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등 일시적 무역 장벽이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계 교역품에서 일시적 무역 장벽 조처가 취해진 교역품은 1990년 0.5%에서 2015년 2.5%까지 증가했다.
 
유 원장이 이날 발표한 ‘세계무역 환경과 수출 전망’을 보면, 한국의 2011~2015년 연평균 수출 증가율은 2006~2011년 연평균 수출 증가율과 비교할 때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가전, 통신기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거의 모든 업종별로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 한국 총무역액은 2011~2014년 1조달러를 돌파한 이후 2년 연속 감소세가 지속 중이다. 대외무역 환경도 나빠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성장률이 3%대를 지속하는 등 위축이 장기화하고 있는데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교역증가율 둔화가 현저하다. 아시아 지역 총수출 증가율(전년 대비)은 2010년 약 20%대에서 그 뒤 계속 줄어 2016년 하반기에 4.5%로 떨어졌다.
 
한국의 미국 수출 상위 10대 품목에 대한 미국의 보호무역 조처(반덤핑·세이프가드·비관세 기술장벽·상계관세 부과 등)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월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트럼프 보호무역주의 확산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자동차(부품), 전자기기, 기계류 등 한국의 대미 수출 상위 10대 품목에 대한 미국의 보호무역 조처는 1992~1999년 62건에서 금융위기 이후인 2008~2016년 1274건으로 20.5배 대폭 늘었다. 보호무역 조처 가운데 대부분(93%·1187건)이 기술장벽 조처였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에 따라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폐기되면 한국엔 첫해에만 28억달러(약 3조2천억원)의 수출 손실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11월1일 한쪽이 비어 있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 부두. 연합뉴스
 
한-미 FTA 재협상 충격 오나?
전자기기와 기계류에 대한 보호무역 조처 건수가 같은 기간에 각각 34.3배, 49.3배 증가했고, 대미 수출 비중이 가장 높은 자동차(부품)와 관련된 품목은 약 7.1배 증가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0년 이후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역대 최고치에 근접하면서, 중국·한국뿐 아니라 멕시코 등 자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는 국가에도 보호무역 조처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미국의 보호무역 조처 건수 중 80%가량이 중국산과 한국산 제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미 FTA 재협상도 잠재적 걱정거리다. NAFTA를 실제로 폐기하면 그 연쇄효과로 한-미 FTA 재협상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FTA 재협상에 나서면서 미국의 수입관세율이 FTA 이전으로 복원될 경우 자동차·철강 등 7대 주력 산업의 수출손실액이 첫해 28억달러, 5년간 총 268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이 제시됐다.
 
최남석 전북대 교수(무역학)가 최근 내놓은 ‘한-미 FTA 재협상론과 국내 경제 파급효과’ 논문을 보면, 한-미 FTA의 품목별 양허관세율이 모두 정지돼 협정 발효(2012년) 이전의 평균관세율로 복귀할 경우 첫해 수출손실액이 자동차(14억5천만달러), 기계(3억7천만달러), 정보통신기기(4억1천만달러), 석유화학(1억9천만달러), 철강(1억7천만달러), 섬유(1억7천만달러), 가전(2억달러) 등 7대 주력 수출산업 그리고 법률 서비스까지 합쳐 총 28억4천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6년 대미 상품수지 흑자 규모는 233억달러다. 물론 FTA 재협상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전에 단기적으로 반덤핑·상계관세 등 한국 수출 제품에 대한 미국의 비관세장벽이 확대될 여지가 크다.
 
“현재 상황에서 우리 기업에 주어진 옵션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우리 기업은 세계시장 개방이 계속 확대되고 협력이 더욱 강화될 것을 전제로 글로벌 생산분업과 가치사슬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수출과 글로벌 생산지 전략을 운용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기존 흐름과 역행하는 정책들이 쏟아져나오니 방향 전환이 힘겨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전망하기도 어렵다. 트펌프 정책의 실패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바야흐로 수출로 성장해온 산업화 이후 한국 경제가 거대한 도전과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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