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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제 깨고 환자 편에 선 ‘작은 혁명’
[Issue] 프랑스 의료보험공단의 치료 포기자 구제 프로그램
[83호] 2017년 03월 01일 (수) 셀린 무종 economyinsight@hani.co.kr

경제적 이유로 치료 포기한 환자 파악해 세밀하게 지원… 수혜자들 “사람 냄새 나는 공단” 호응

프랑스 의료보험공단이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포기한 환자들을 파악해 치료받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환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프랑스 사회에서 관료제의 상징으로 인식돼온 의료보험공단의 환자 중심 서비스는 ‘작은 혁명’으로 일컬어진다. 프랑스 남부 소도시의 의료보험지사가 처음 도입한 이 프로그램은 현재 20개 지역 101개 의료보험지사로 확대, 운영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 혜택을 본 이들은 “사람 냄새가 안 나는 공단에서 처음 인간적 감동을 느꼈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관계자들은 이 프로그램이 애초 취지를 지속적으로 살려나가기 위해선 공단과 환자가 지속적인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셀린 무종 Céline Mouzon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여보세요? S선생님이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미앵(프랑스 북부 소도시 -편집자) 의료보험지사 ‘계약중단·정보부족·자격획득·보험비이용 지원팀’의 코린 드포스빌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주 선생님께서 지사를 방문하셨을 때 창구에서 상담을 담당했던 직원으로부터 선생님께서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희 연락을 받겠다고 동의하셨다는데, 맞습니까?”
 
아미앵 의료보험지사 건물 3층에는 직원 3명이 팀을 이뤄 치료를 포기한 가입자에게 연락해 가입자의 필요에 맞는 해법을 함께 고민하고, 실제 치료가 이뤄질 때까지 안내하는 일을 한다. 가입자 6천만 명을 관리하며 흔히 기계적인 거대 관료제의 상징으로 인식돼온 프랑스 의료보험공단이 이런 섬세한 맞춤 서비스를 하다니, 그야말로 작은 혁명이 아닐 수 없다.
 
   
▲ 프랑스 의료보험공단이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한 환자들을 위해 도입한 구제 프로그램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파리의 공공체육시설에서 의료보험공단 소속 치과의사들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진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REUTERS
 
이 일은 2012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 인근 가르의 의료보험지사(CPAM)가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우리 지사는 몇몇 환자에게 치료 지원을 목적으로 재정 보조금을 제공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분들은 보조금을 사용하지 않았다.” 가르 의료보험지사 국장 크리스티앙 파투의 회상이다. 파투 국장은 새 프로그램을 탄생시킨 사람 중 한 명이다. 당시 파투 국장은 가입자들이 지원금을 사용하지 않는 역설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수당·서비스 비이용 조사국(ODENORE)에 도움을 요청했다. 조사국 연구원이자 사회학자인 엘레나 르빌의 설명에 따르면 ‘의료서비스 비이용’이란 치료가 필요하지만 치료받지 않은 사실이 의학적으로 명시된 경우를 일컫는다. 반면 ‘치료 포기’란 가입자 자신이 치료가 필요 없다고 결정한 경우를 말한다. 르빌은 현재 가르 의료보험지사와 협업해 이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르빌 연구원은 치료 포기 상황을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당사자들, 즉 치료를 포기한 가입자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가르 의료보험지사는 첫 번째 실태 조사를 통해 조사 대상자의 30%가 치료를 포기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치료를 포기한 가입자의 94%는 치료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조사 대상자들이 지금 상황에 “만족한다”고 답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이들이 치료를 포기한 이유는 비싼 치료비, 교통수단 부재, 의사에 대한 두려움 등 다양했다. 서비스 비이용 조사국은 그 외에 ‘적절한 안내의 부재’도 치료 포기의 이유라는 것을 발견했다. 실제로 조사 대상자 중 한 명은 설문지에 이렇게 썼다. “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가 됐든 어디로 가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결국 가입자들의 필요에 부응하려면 의료보험공단이 새로운 방식의 가입자 관리를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파투 국장은 “의료보험공단이 지금까지 규칙을 적용하기만 했다”고 말한다. 즉, 기간 내에 치료비를 환급해주고 자격을 갖춘 사람의 가입을 결정하는 것으로 공단의 할 일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랬던 공단이 이제 변화를 위한 작은 실마리를 찾고 있다. 변화의 목적은 바로 가입자들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치료받도록 돕는 것이다.
 
이 새로운 프로그램은 크게 두 축을 중심으로 한다. 첫 번째는 가입자별 치료 포기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의료보험지사에 설치된 ‘치료·보건 지역 지원 플랫폼(PFIDASS)’을 통해 문제 해결을 돕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프로그램은 2014년 11월 가르 지역 도시 님에 처음 도입되었으며, 2016년 초 프랑스 본토에 있는 의료보험지사 101곳 중 20개 지사로 확대됐다. 2018년 3월까지는 다른 80개 지사에도 점진적으로 프로그램이 도입될 예정이다. 현재 21개 지역에서 7천 건의 치료 지원이 진행 중이며, 의료보험공단 중앙본부(CNAMTS)가 직접 사안을 챙기지만 구체적 사업 결과는 2017년 봄에나 알려질 전망이다.
  
   
▲ 치료 포기자 구제 프로그램이 지속되려면 의료보험공단과 환자가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2016년 4월 파리의 한 병원에서 저소득층 환자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REUTERS
 
효율적이고 인간적인 의료보험공단
프랑스 중북부 솜의 의료보험지사는 2016년 3월부터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솜에서는 지원 플랫폼을 맨 앞에 소개한 코린 드포스빌의 전화 통화에 등장한 ‘계약중단·정보부족·자격획득·보험비이용 지원팀(ARIANES·아리안)’이라고 부른다. 마리크리스틴 클레프(59)는 솜 지사의 지원을 받은 300명 중 한 명이다. 클레프는 청력 감퇴 환자로 이비인후과 의사로부터 보청기 사용을 처방받았으나 너무 비싸 치료를 포기했다. “보청기 가격이 3600유로(약 440만원)인데 239유로는 공단에서 부담하고 1059유로는 공제조합에서 부담한다 하더라도 내가 지불해야 할 돈이 2300유로였다. 2300유로는 도저히 부담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2016년 9월 의료보험지사를 방문했을 당시 이런 사정이 창구 직원에게 알려졌다. 창구 직원은 클레프에게 가입자들의 치료 포기를 해결하기 위해 지원팀이 설치됐다며 나중에 지원팀 쪽에서 연락할 텐데 괜찮겠느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두 달 뒤 결국 지사의 도움으로 클레프는 보청기를 구입했다. 지원팀 상담사 코린 드포스빌은 가르 의료보험지사의 사회보건지원기금을 활용해 클레프의 보청기 비용을 해결했다. 사회보건지원기금은 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기금으로 예외적인 경우에 대처하도록 조성됐다. 물론 의료보험지사 직원의 도움이 없어도 클레프 스스로 기금을 요청할 수 있었다. 단,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클레프 자신이 기금의 존재를 알아야 하며 설령 알더라도 제도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했을 것이다.
 
마리크리스틴 클레프는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지금까지 공공기관 하면 딱딱한 인상을 가졌는데, 나를 도와준 의료보험지사는 매우 인간적이면서 효율적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클레프는 지원팀 상담사와 주당 3~4회 연락을 주고받았다. 솜 의료보험지사의 장이브 카사노 국장은 이 제도의 목표에 대해 “가입자와 공단이 개별적이고 지속적인 신뢰를 쌓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르 의료보험지사에서 해당 프로그램 혜택을 받은 가입자들도 클레프와 비슷한 후기를 남겼다. “보험공단이 날 도와줄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공단은 사람 냄새가 안 난다. 가입자는 보험증 번호로만 존재할 뿐 사실상 없는 거나 다름없잖은가. 그런데 여기선 마치 내가 유일한 가입자처럼 느껴졌다.” 핵심은 이제 가입자들이 의료보험공단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대상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엘레나 르빌 연구원은 “이런 후기들은 전반적으로 수혜자들의 프로그램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지원팀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들은 모든 일이 단지 일회성 지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공단이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고 돌봐준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그 과정에서 사회적 소속감도 느꼈다. 사실 치료 포기는 가입자의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 직장 생활,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지원팀의 도움을 받은 몇몇 가입자들은 치료가 끝난 후 다시 취업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르빌 연구원은 “치료를 받아도 걱정거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생활 조건 문제는 의료보험공단의 소관 사항이 아닌 데다 치료가 끝나도 생활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지원 절차를 중도에 그만두는 가입자들도 있다. “어떤 분은 워낙 궁핍한 상태에 있다보니 난방비, 주거비, 식료품비 등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느라 건강 문제는 최후까지 미룬다. 상담사들이 그들에게 치료 지원을 받으라고 다시 연락했지만 소용없는 경우가 많다.” 솜 의료보험지사 장이브 카사노 국장의 설명이다. 가르 지역의 중도 포기자 수는 지사에 등록된 지원 요청자 전체 2천 명 가운데 3분의 1에 이른다.
  
   
▲ 프랑스에 거주하는 빈민들의 대부분은 주거비, 식료품비 등 의식주 해결을 걱정하느라 건강 문제는 최후까지 미루는 경우가 많다. 2017년 1월 한 노숙자가 영하의 날씨에도 니스의 거리에서 잠을 자고 있다. REUTERS
 
공단-시민단체-의료기관 벽 허물기
치료·보건 지역 지원 플랫폼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효율적이면서 안정적인 문제 파악 네트워크가 구축되어야 한다. 가입자들의 문제를 파악하는 일은 창구 직원 등 의료보험지사 내부 직원들이 담당할 수 있다. “만약 어떤 민원인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한다면 창구 직원은 혹시 그가 치통이 있는데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건 아닌지 자문해볼 수 있다.” 솜 의료보험지사의 발레리 아데의 설명이다. 인지 업무는 내부 직원뿐만 아니라 의사·간호사 등 의료 인력, 사회복지 부처, 직업훈련 부처, 기타 단체 등 의료보험지사 외부에서 담당할 수도 있다. 솜의 경우 문제 파악 네트워크 인원은 100여 명이다. 이 프로그램의 선구자인 가르 지역은 문제 파악을 담당하는 인원이 500명에 육박한다. 엘레나 르빌 연구원은 “지원 플랫폼의 중요 과제 중 하나는 해당 지역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이라며 “그래야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는 사람을 포함해 가입자들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파악하고 네트워크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원 플랫폼 외에 여러 기관이나 단체가 의료보건 분야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돕고 있다. 따라서 치료·보건 지역 지원 플랫폼은 해당 지역 내 이런 기관들과 협업해 일관된 해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지원 플랫폼은 의료보험지사 내외의 여러 부서 간 경계를 허물어 긴밀한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 이를 통해 공단-시민단체-의료기관의 벽을 허물 수 있다.
 
또 다른 과제는 실제로 이런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과 관련이 있다. 사실 치료 포기 가입자를 파악하고 지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문제 파악 업무를 맡은 직원들은 새로운 업무가 원래 하던 일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지원 업무를 맡은 직원들은 가입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과한 부담을 느낄 수 있으며, 때로는 양심의 문제에 부딪치면서 윤리적 고민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심리 문제까지 고려한 직원 교육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치료·보건 지역 지원 플랫폼은 지역별 특수성에 적응해야 한다. 각 지역은 기존 치료시설, 의료인력 투자, 공단과 공제조합의 관계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보인다. 아미앵의 코린 드포스빌은 이 과제가 새로운 도전이긴 하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의료보험지사의 임무에 부합한다고 말한다. 같은 지사의 로라 보두앵도 지역에 맞는 해법을 찾는 것은 지사의 존재 이유 자체라며, 직원들도 이처럼 일상 업무를 하면서 의료보험지사가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할 수단을 가진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남은 것은 전국 모든 의료보험지사의 국장들이 보험공단의 업무 방식의 쇄신이자, 핵심 과제의 심화라고 볼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적용 과정에서 얼마나 강한 의지를 보여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7년 2월호(제365호)
La Sécu s‘attaque aux renoncements aux soins
번역 민지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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