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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과 실업이 만든 비극
[Cover Story] 딘 베이커 인터뷰
[6호] 2010년 10월 01일 (금) 이춘재 국제편집장 economyinsight@hani.co.kr

이춘재 국제편집장

   
딘 베이커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대표
‘거품은 미루지 말고 빨리 터뜨리는 게 낫다’는 소신을 피력한 경제학자 딘 베이커(Dean Baker·52)는 워싱턴 DC 도심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를 2004년 5월에 팔았다고 한다.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았기에 ‘행동하는 양심’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다. 딘 베이커는 9월8일 <이코노미 인사이트>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대해 “실제 내용을 들여다봐도 이것은 부양책으로 볼 수 없다”고 혹평했다. “경제대국 미국이 이제 삼류 국가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회피한 채 “미국은 경제적으로 평등했던 시대로부터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블로그 미디어 <허핑턴 포스트>를 이끌고 있는 아리아나 허핑턴이 최근 “미국은 제3세계 국가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위기로 미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음을 경고한 것인데, 그의 시각에 동의하는가?
미국의 중산층은 이번 경제위기 이전부터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1980년 이후로 미국의 임금인상률은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했다. (경기불황에 따른 실업난으로) 직장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 수가 점점 줄고 있고, 개인 의료보험은 심각한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개인연금 혜택도 점차 줄고 있다.
이런 위기는 미국 사회의 중산층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에서 실업의 공포로부터 안전한 계층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중산층은 재산의 상당 부분을 집에 투자한 상태인데, 집값 거품이 꺼져가면서 중산층의 많은 부가 사라지고 있다. 또 지난 10년 동안의 실업난은 앞으로 중산층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줄 것이다. 물론 좋은 소식도 있다. 새 의료보험 법안(Health Care Bill)이 국회를 통과해 오는 2014년부터 사회보장 시스템이 더 탄탄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의 중산층은 향후 10년 동안 더욱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나는 미국이 삼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경제적으로 매우 평등했던 시대로부터 점차 벗어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미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여전히 경제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우선 경제가 다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향후 2년 동안 1조2천억달러 정도를 추가로 지원하는 공격적인 경기부양책과, 물가인상률을 3~4%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 통화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오랫동안 의도적으로 무시해왔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수요를 정면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현대적인 철도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 미국 대부분의 철도는 80년 전보다 더 느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다른 선진국이 40여 년 전부터 혜택을 누리고 있는 고속철도를 보유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또한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시설을 보충하는 데 많은 돈을 써야 한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의료보험 체계도 고쳐야 한다.
   
지난 2008년 대선 유세를 위해 디트로이트의 한 자동차 공장을 방문한 오바마 미 대통령.

오바마 정부의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을 평가한다면? 

오바마 정부는 경제위기에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대응해왔다. 경기부양책(Stimulus Plan) 규모가 너무 작았음에도 정치권에서 마치 엄청난 규모인 것처럼 부풀리는 바람에 추가적인 부양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또한 미 연방준비위원회가 경제위기에 공격적으로 대처하도록 압박하지도 못했다. 1년이 다 되도록 연방준비위원회의 주요 보직 세 자리를 공석으로 남겨둘 정도다. 이런 정책적 실패로 인해 미 국민은 두 자릿수 실업률이 최소 1년간 더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실업 상태가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오는 시기는 아마도 2017년이나 2018년쯤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오바마 정부가 감세와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뼈대로 한 1800억달러 규모의 추가적인 경기부양책을 발표하지 않았나?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유용하지만 당장 내년부터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효과를 내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더욱이 이번 프로젝트는 사회간접자본의 부족분을 보충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 아까도 말했듯이, 미국은 유럽이나 일본이 40여 년 전부터 이용하는 고속철이 없다. 또 폭풍이 오면 정전되기 일쑤인데, 정전이 며칠씩 계속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상수도 시스템도 열악한데, 가령 워싱턴 DC의 경우 수돗물을 그냥 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회간접자본을 제대로 갖추려면 지금보다 10배 많은 돈을 써야 한다. 이번에 발표된 프로젝트는 이런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감세 정책은 그 효과가 불투명하다. 연구·개발 세금(R&D Tax) 공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계속 연장돼왔다. 아예 영구적으로 연구·개발 비용을 공제해주는 것도 좋을 수 있지만 경제적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다. 또 기업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그동안 투자액의 50%를 세액공제해줬던 것을 100%로 확대하기로 했는데, 이는 매우 제한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오히려 기업들이 세제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류상으로만 투자하는 등 당국의 눈을 속이도록 부추길 우려가 있다. 이런 세제는 경기부양 효과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부작용을 낼 수밖에 없다. 오바마 정부 관료들은 공화당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이번 대책을 경기부양책이라고 부르지도 못하는데, 실제로 내용을 들여다봐도 경기부양책이라고 볼 수 없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미국이 독일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에 비해 경제위기에 더 잘 대응해왔다고 했는데, 지금 독일 경제는 미국보다 더 좋아 보인다.
경제위기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거시적인 차원에서 독일보다 나았다. 그럼에도 독일 경제가 탄탄해 보이는 것은, 독일은 집값 거품 붕괴나 과소비와 같은 국내 시장의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경제위기로 인해 수출이 줄었을 뿐인데, 수출만 회복되면 경기도 곧 회복될 수 있는 상태였다. 다행히 독일은 현재 수출이 회복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독일 정부가 예고한 대로 긴축정책이 시작되면 국내 시장의 수요에 심각한 부작용을 줄 것이다. 또한 독일은 경제위기 이후 미국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노동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독일의 현재 실업률은 경제위기 초기 때보다 더 낮다. 이것은 독일 정부가 일자리 나누기를 비롯해 노동자의 일자리를 유지하려는 정책을 고수한 결과다. 경기가 잠재성장률 수준 이하의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은 위험하지만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데, 이것이 미국에서처럼 대규모 실업과 맞물리면 엄청난 비극이 되는 것이다.

딘 베이커
미국 진보 진영의 대표적 경제학자로 진보 성향의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센터(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미 의회 산하 경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빈부격차와 사회보장제도에 관해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였다. 저서로는 <가짜 이득>(False Profits: Recovering from the Bubble Economy·2010), <1980년 이후의 미국>(2007), <보수주의자들의 나라>(The Conservative Nanny State: How the Wealthy Use the Government to Stay Rich and Get Richer·200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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