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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침체가 구조화한 ‘탈세계화’ 바람
[Cover Story] 저물어가는 세계화- ① 탈세계화를 이끄는 힘
[82호] 2017년 02월 01일 (수) 크리스티앙 샤바뉴 economyinsight@hani.co.kr

바야흐로 탈세계화 시대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탈세계화 시대를 선언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오랫동안 세계화가 모두에게 혜택을 줬다고 믿어온 경제학자들도 생각을 바꿔 세계화를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금융위기 이후 장기 침체는 탈세계화 바람을 더욱 거세게 했다. 국가 간 자본이동과 국제무역이 최근 10년 사이 눈에 띄게 줄었다. 세계화가 가져다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무역 확대로 한층 풍요로워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힘을 가진 쪽의 필요에 따라 이뤄졌고 부작용도 심각했다. 이제 세계 곳곳에서 세계화의 패배자로 불리는 계층의 저항이 점점 격렬해지고 있다. 탈세계화 바람이 언제,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현대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화상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_편집자 

 

   
 
자본이동·국제무역, 경기 침체와 함께 크게 축소… 현대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화상 표출
 
탈세계화의 가장 강력한 조짐은 금융 부문에서 이미 시작됐다. 국가 간 자본이동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10년 사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국제무역 증가세도 크게 꺾였다. 중국이 내수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면서 국제무역 위축은 더 심화됐다. 마지막으로 ‘장기 침체’도 탈세계화에 기여했다. 탈세계화로 향하는 강력한 힘이 도처에서 솟아나고 있다. 

크리스티앙 샤바뉴 Christian Chavagneux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이제 진실을 말해야 할 때다. 세계화가 많은 해악을 낳았다는 진실 말이다.” 2016년 11월24일치 프랑스 경제일간지 <레제코>(Les Echos)에 실린 마뉘엘 발스 당시 총리의 발언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영국 국민이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했고, 중국과 멕시코에 독설을 쏟아내며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유럽에선 극우 민족주의 정당이 득세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수 유력 정치인은 경제 세계화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만능열쇠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여러 나라에서 세계화가 과연 좋은 것인지 의심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 많은 국민이 세계화를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경제학자들도 더 이상 ‘행복한 세계화’를 믿지 않고 오히려 세계화가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경제학자와 정치인의 현실 인식이란 언제나 현실보다 한 박자씩 늦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화의 승자와 패자가 누구인지 토론의 장이 열렸지만, 지금은 세계화가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화를 후퇴시키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둔화시키는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기업과 금융의 세계화가 무한정 확대될 거라고 믿었다. 놀랍게도 최근 몇 년간 일어난 일련의 변화는 무한 세계화에 대한 믿음을 흔들고 있다.
 
크게 후퇴한 금융 국제화
가장 놀라운 것은 글로벌 금융의 후퇴다. 1950년대 이후 국제 자본이동이 꾸준히 증가해왔고,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정보통신기술(ICT) 발전과 외환시장 자유화는 국제 자본이동을 더욱 촉진한 첫 번째 동력이었다. 1980년대부터 각국 정부가 재정 적자를 메우려고 국공채 발행을 늘리는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국공채 매입이 가능해지면서 국제 자본이동은 한층 가속화했다. 1990년대 들어 금융서비스가 자유화됐고, 경제주체들은 자국이 아니라 타국에서도 쉽게 금융·은행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Subprime·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가 터졌다. 이 정도 규모의 금융위기라면 투자자들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으리라는 것쯤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충격의 여파는 단순히 투자 열기를 가라앉힌 정도를 훨씬 뛰어넘은 것으로 보인다. 매킨지글로벌연구소 추정에 따르면 서브프라임 위기가 터지고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국제 자본이동의 총생산 대비 비중은 2006년 정점을 찍었을 때의 1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크게 감소했다.
 
이 현상을 좀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비록 각국 정부와 기업이 국제시장에서 자금을 융통하는 경우가 예전보다 줄었지만 총액 자체는 여전히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렇더라도 기업 간 투자가 과거보다 줄어든 것은 분명하다. 2007년만 해도 기업의 국제투자는 2조달러가 넘었지만 2015년에는 1조5천억달러로 감소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기업 투자의 약 30%는 각종 규제를 피하거나 조세 당국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 식 자본이전에 불과하다. 따라서 기업의 세계화도 그만큼 과대평가됐다고 할 수 있다. 주요 20개국(G20)이 기업의 탈세 행위를 막을 목적으로 도입한 조세정보 공유제도가 기대한 만큼 효과를 본다면 투자를 빙자한 기업의 자본이전도 감소할 것이다.
 
국제 자본이동의 둔화는 무엇보다 은행의 국제 활동이 줄었다는 사실로 설명될 수 있다. 은행의 국제 활동이 줄었다는 건 은행의 해외 지사 설립 열풍이 잦아든 것뿐만 아니라 은행의 해외 대출이 감소한 것까지 포함된다. 좀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은행 간 해외 대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결국 국제금융이란 금융을 위한 금융과 다름없고, 은행들은 실물경제를 지탱하기에 앞서 투기하거나 투자하기 위해 서로 자금을 빌려주고 빌려왔다.
 
이 은행 간 대출이 2007~2008년 위기 이후 감소했다. 특히 전세계로 보면 은행 간 대출은 약 33% 감소했지만, 유럽 은행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2008년 최고점을 찍었을 때의 절반 수준까지 감소해 그야말로 반토막이 났다. 지난 몇 년 동안 계속된 은행 간 대출의 감소가 단시일 내에 반전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감소 추세가 과연 어느 수준에서 안정될지 알려면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금융 국제화만 둔화된 것은 아니다. 모든 경제학자가 최근 국제무역 증가세가 위기 이전보다 많이 꺾였다는 데 동의한다. 국제무역은 1980~2007년 세계 국내총생산(GDP)보다 두 배나 빠르게 증가했으나, 2007~2011년 불안정 시기를 거쳐 지금은 그저 증가하는 데 의미가 있는 수준을 유지할 뿐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2016년 세계 무역성장률을 1.7%로 예상한다.
 
현재 경기 침체로 세계경제 성장률이 낮다보니 무역도 증가세가 약한 것일 수 있다. 경제성장률이 감소하면 재화·서비스 수입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의 교역 침체에는 더 구조적 요인이 작용했다. 국제무역의 60%는 다국적기업의 여러 자회사 간에 발생하는 교역이다. 따라서 국제무역은 기업의 투자 전략이 투영된 결과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오늘날 기업이 투자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상황이란 것이다.
  
   
▲ 중국이 내수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면서 국제무역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컨테이너가 없어 한산한 중국 상하이항에 화물선이 정박해 있다. REUTERS
 
장기 침체에 따른 국제무역 둔화
지금까지 기업들은 주로 공장을 해외로 이전해 생산비를 줄이는 전략을 채택해왔다. 이는 기업의 가치사슬(Value Chain·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가 주창한 개념으로 기업이 원재료를 사서 가공, 판매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편집자)이 전세계적으로 분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들은 부품별로 최저 비용 생산이 가능한 지역을 물색해 가치사슬에 포함시킨다. 미국 애플의 아이폰을 예로 들면, 터치스크린은 일본에서 생산됐고, 카메라는 미국에서 만들었으며, 프로세서는 한국에서 만들었다. 그리고 중국 협력사가 터치스크린, 카메라, 프로세서를 비롯한 모든 부품을 조립해 아이폰을 만든 뒤 각국에 수출한다. 바로 이 전략이 흔들리는 것이다.
 
우선 다국적기업이 진출한 신흥국의 노동임금이 오르고 있다. 또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나 2013년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라나플라자’ 붕괴 참사는 기업이 자사의 글로벌 가치체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계 곳곳에 분산된 가치체인의 일부를 다시 본국으로 되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소비자 기호의 변화에 좀더 신속하게 대응하려는 기업의 의지도 가치체인 축소에 한몫하며, 장거리 운송에 따른 환경 비용도 생산과정의 국제화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중국의 변화도 결정적이다. 중국은 국내 경제에 집중하는 성장 전략을 채택했다. 지금은 수입하던 상품을 점점 더 국내에서 생산하며, 수출하던 상품은 국내에서 더 많이 판매하려 한다. 이 모든 흐름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뒤 중국에서 조립하는 중간재의 세계 교역량이 감소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처럼 다국적기업의 전략적 변화는 탈세계화에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장기 침체’도 세계화의 둔화에 기여했다. 여러 학자들은 선진국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져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은 앞으로 25년에 걸쳐 사회 전체에 보급될 현재의 기술혁신이 과거 혁신에 비해 생산성 향상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측면에서 장기 침체를 설명했다. 반면 래리 서머스나 폴 크루그먼은 세계경제가 투자에 비해 저축 과잉 상태라서 이것이 지속적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장기 침체 현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국제통화기금(IMF)부터 유럽중앙은행(ECB)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문가가 수입 상품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투자 활동의 둔화가 얼마나 기업의 지속적 전략을 반영하고 세계화 둔화에 기여하는지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경제의 탈세계화로 향하는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 물론 지금으로선 과연 이 움직임이 어디까지 갈지, 얼마만큼 지속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21세기 자본주의는 20세기 후반 자본주의가 걸었던 길과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 더 이상 세계화를 믿지 않는 경제학자들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세계화가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많은 경제학자가 생각을 바꿔 세계화를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현대경제학의 아버지’로 숱한 경제이론을 정립한 폴 새뮤얼슨은 이미 2004년에 부유한 나라도 외국과 교역 과정에서 가난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국제무역에서 새뮤얼슨의 이론, 특히 발라사-새뮤얼슨 효과(개방경제에서 교역재인 제조업의 노동생산성 향상이 고임금을 가능케 하고 이것이 노동집약적 산업에 고임금·고생산성 형태로 전파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이렇게 되면 전 산업의 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제무역에서 교역 조건이 개선된다는 주장 -편집자)는 흔히 국제무역 자유화의 논거로 인용돼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도 2007년 자신이 틀렸음을 고백했다. 10년 전 자신이 발표한 내용과 반대로 세계화는 승자만 낳는 게 아니라 패자도 양산하며 불평등을 키운다고 인정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이 대두됐다. 2006년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였던 라구람 라잔은 국제 자본이동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강조했으며, 2007~2008년 위기 이후에는 비슷한 내용을 보여주는 수많은 연구가 발표됐다.
 
2016년 말 국제금융의 대가 배리 아이컨그린은 세계화가 숨을 거둘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요즘 세계적으로 ‘핫한’ 경제학자 중 한 명인 대니 로드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등 굵직굵직한 국제 무역조약이 타결이나 비준에 난항을 거듭하는 현 상황을 만족스럽게 보고 있다. ‘장기 침체론’의 주창자 래리 서머스는 책임감 있는 국가주의를 전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폴 크루그먼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제는 세계화를 어느 정도 종결된 프로젝트로 간주하고 더 이상 이 주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게 세계화를 바라보는 가장 좋은 태도일 것이다.”
 
   
▲ 국가 간 자본이동이 최근 10년 사이 크게 주는 등 탈세계화의 가장 강력한 조짐이 금융 부문에서 시작됐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강세장을 상징하는 황소상이 서 있다. REUTERS
 
■ 세계화는 끝나지 않았다
많은 요인이 경제의 탈세계화를 촉진하지만, 그렇다고 세계화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앞으로 국가 간 경쟁이 예전보다 덜할 수는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기타 신흥국에 이어 아프리카가 시장에서 새로운 행위자로 등장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전통적 강세 부문인 농산물과 원자재 부문의 변화가 예상된다. 예전에 이들 국가는 농산물과 원자재를 그대로 수출했지만 앞으로는 현지에서 가공 과정을 거쳐 수출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경제학자 장조제프 부아로는 아프리카가 ‘세계화 3.0’의 주요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세계화 3.0이란, 예컨대 중국이 지난 30년 동안 경험한 것처럼 제조업체의 해외 공장 이전에 기반을 둔 모델이 아니라 자본·기술·사람의 이동이 한데 뒤섞인 형태의 세계화 모델이다.
 
많은 전문가는 세계화의 새로운 국면은 정보 교환의 세계화와 디지털 세계화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다양한 판매 전략과도 부합한다. 전통 수출 상품을 새로운 매체를 이용해 판매하는 것이다. 예컨대,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 사이트에서 직접 구매하는 행태가 전체 전자상거래의 15%를 차지하지만, 2020년에는 30%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소셜미디어 덕분에 개인이 세계를 좀더 열린 시각으로 보게 되고 이는 세계화한 경제보다 세계화한 개인이란 결과를 낳을 것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7년 1월호(제364호)
Les forces de la démondialisation 
번역 민지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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