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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 고속철 성공할수록 ‘철도’는 멍든다
[국내 이슈] 고속철도 경쟁 시대의 그늘
[82호] 2017년 02월 01일 (수) 박흥수 anticap2000@hanmail.net

일반 철도 적자 메우던 철도공사 고속철도 분리해 전체 철도 서비스 악화

(주)SR가 운영하는 수서발 고속철도(SRT)가 2016년 12월 개통하면서 고속철도 이용이 훨씬 편해졌다. 서울 강남 지역이 주력 철도망에 연결된 것도 의미가 크다. 하지만 한국철도공사와 SR의 경쟁 구도 측면에서는 문제가 많다. 철도공사가 SR의 최대주주이지만, 수서발 고속철도가 성공할수록 철도공사는 한숨을 쉬게 되는 상황이다. 유일한 흑자 노선인 고속철도 수익은 SR와 나누지만, 철도의 공적 책임은 홀로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궁극적으로 한국 철도 전반의 부실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객원 연구위원 
   
에스아르티(SRT)로 명명된 수서발 고속철도 운행이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었다. 연말을 뜨겁게 달군 촛불에 가려 이목을 끌지는 못했지만, 운행 시작일인 2016년 12월9일 개통을 축하하는 기념식과 공연이 열렸다. 지난 한 달 동안 수서발 고속철도 이용객은 135만9800명, 하루 평균 4만3865명으로 출발부터 순항 중이다. 수서발 고속철도는 한국철도공사 고속철도(KTX) 대비 10% 저렴한 요금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서울~부산 기준 KTX의 5만9800원보다 12%나 싼 5만2600원의 요금이 책정됐다. 국토교통부가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부터 수서발 고속철도 분리를 추진하면서 약속한 내용이기도 하다. 수서 노선이 서울역보다 선로가 짧기에 기준 요금이 상대적으로 낮고 운행 시간이 단축될 수 있는 물리적 조건도 수서발 고속철도의 장점으로 작용한다.
 
수서발 고속철도를 이용한 승객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용의 편리함을 꼽았다. 강남, 강동, 경기 동부 쪽에 거주하는 철도 이용자에게 서울역을 대체할 수 있는 고속철도역이 가까이 생겼기 때문이다. 철도의 단점인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서비스가 안 되는 문제, 즉 접근성 문제를 해결한 만큼 그동안 서울역을 이용하던 서울 동남권 시민들이 체감하는 편리성은 높을 수밖에 없다.
 
강남의 개발과 확대라는 서울 개발의 역사로 볼 때 한강 이남의 핵심 개발 지역이 이제야 주력 간선 철도망에 연결된다는 것은 늦었다고 볼 수 있다. 수서역은 삼성역과의 연결과 수도권 급행 고속전철사업 등과 연계돼, 일본의 신주쿠역이나 오사카역 같은 메이저 철도역 단지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편리한 환승을 자랑하는 서울지하철을 통한 접근성 면에서도 나쁘지 않다.
 
수서∼평택 간 신설된 고속선로는 고질적 문제였던 한국 철도의 선로 용량 부족도 개선하게 된다. 최고 등급의 고속열차까지 입석을 마련해 달려야 했던 좌석 공급 부족을 어느 정도 해소하게 된다. 더불어 일반 철도의 확대 편성과 화물 철도의 증편을 통한 물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 철도수송분담률을 상승시켜 에너지, 환경, 교통 문제 해결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결국 수서발 고속철도 노선은 한국 철도가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성장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노선 운영권을 확보한 수서발 고속철도 운영회사 (주)SR는 예정된 성공 신화의 레드카펫을 걷는 길만 남았다.
 
   
▲ 수서발 고속철도(SRT)는 안정적 승객 수요로 흑자를 낼 것이 확실시되지만, 이 때문에 한국철도공사의 고속철도 수익으로 유지해온 일반 철도나 화물 철도의 운행이 축소될 것으로 우려된다. 2016년 11월2일 시범운행하는 수서발 고속철도. 연합뉴스
 
명암 교차하는 수서발 고속철도
그러나 수서발 고속철도의 성공적 출발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국토부가 수서발 고속철도를 철도공사에서 분리한 표면적 이유는 118년 독점 폐해를 극복하고 한국 철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한국 철도가 독점을 벗어나 경쟁하면 마법처럼 기사회생할 것이라는 국토부의 진단은 타당할까. 이를 알기 위해 특별히 연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보면 된다. 
 
1899년 한국에 처음 철도가 부설됐다. 대한제국 황실을 둘러싼 이권 쟁탈 속에 이완용이 미국인 제임스 모스에게 넘긴 경인선 부설권을 일본이 가로채 건설한 것이 한국 최초의 철도 노선이었다. 식민지 철도로 시작한 한국 철도는 1945년 해방될 때까지 46년 동안이나 일본 지배하에 있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이어진 한국전쟁은 전체 철도 노선과 차량 기지들을 초토화했다. 미군이 철수하며 남기고 간 기관차들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1960년대까지 전후 복구 사업과 시민 수송에 일익을 담당했지만 곧 몰락의 길을 걸었다.
 
고속도로 등장과 자동차 시대 도래로 철도는 사양산업 취급을 받았다. 거대 장치산업이기에 필연적으로 엄청난 재정이 소요되지만, 하락하는 수송분담률에 악화되는 수익성은 정부의 골칫거리가 됐다. 이 현상은 한국 철도만 겪은 게 아니라, 주력 수송 수단이 철도에서 자동차로 전환된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났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은 뒤에는 철도 민영화를 통한 정부 책임 해소가 정책 지향점이 됐다. 근현대 고난과 굴곡의 역사를 선로 삼아 달린 한국 철도였다. 이런 역사를 무시하고 118년 독점의 단맛에 취한 부실 기업으로 한국 철도를 규정하는 것이 국토부 철도 정책의 출발점이었다.
 
철도의 자연 독점성을 시장 독점으로 치환한 뒤 ‘독점은 악’이라는 상식에 기댄 프레임으로 철도공사를 단죄하는 것은 타당한 일인가. 독점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면 독점기업이 생산하거나 제공하는 상품은 시장 가치보다 더 높은 이윤을 보장한다. 그렇다면 철도의 독점이 강력한 시장 지배력으로 사회적 가치보다 높은 초과 이윤을 챙기는 독점이라고 볼 수 있을까. 철도공사는 원가 보상조차 되지 않는 열차 운임을 유지하고 있다. 운임의 결정이나 인상, 인하 여부도 정부 당국의 통제 아래 있다. 경쟁자가 없어 독점이라는 무기로 높은 수익을 올리는 일반적 시장 기업의 형태와는 완전히 다르다. 철도공사는 정부기관이던 철도청 시절부터 적자를 안고 살았다.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가진 독점기업이 수십 년을 적자에 허덕인다는 것은 모순이다. 한국 철도가 안고 있는 문제는 독점 체제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철도 민영화 드라이브가 가속화한 1990년대 한국 철도의 모델은 이미 민영화된 영국과 일본이었다. 외환위기 때 공기업 민영화는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에 요구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세계 각국에서 진행된 민영화의 실제 모습은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를 제도화하는 과정이었다. 민영화의 폐해가 심각해 정부마저 수서발 고속철도 분리를 철도 개혁이지 민영화가 절대 아니라고 강변하는 실정이다. 국토부의 처지에선 공기업으로 위장한 사기업을 만들든, 민영화하든, 공기업으로 유지하든 경쟁 체제란 이름 아래 철도공사를 잘게 쪼개는 것은 나쁠 게 없다. 산하기관 확대는 조직의 위상 제고로 이어지고 국토부 고위직들의 퇴직 뒤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불공정한 고속철 경쟁
경쟁의 전제 조건은 공정성이다. 그러나 철도공사 고속철도(KTX)와 수서발 고속철도(SRT)는 이 전제부터 수용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수서발 고속철도는 이미 수익 보장이 검증된 고속철도 노선만 운행한다. 또 서울 동남권과 경기 동부의 철도 이용 수요를 독점한다. 이런 점에서도 ‘철도 경쟁 체제’란 말의 허구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운영해야 할 역은 수서, 동탄, 지제역뿐이다. 차량 정비는 철도공사에 맡긴다. 전기와 시설의 유지·보수도 철도공사 책임이다. 운행 차량 32편성 중 22편성도 철도공사에서 임대한 것이다. 수서발 고속철도가 수익을 얻을 수 있게 최고의 요건을 마련해줬다. 
 
   
▲ 한국철도공사의 고속철도(KTX)는 수서발 고속철도가 분리되면서 수익 규모가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된다. 고속철도의 회사 분리는 철도공사의 독점을 깨겠다는 국토교통부의 의지에 따라 이뤄졌다. 2010년 11월1일 울산역으로 처음 운행하는 고속철도. 한겨레 박종식 기자
 
반면 철도공사는 전국에 600여 개 역을 관리하고 구조적으로 적자를 면할 길이 없는 지방선과 화물 수송을 책임지고 있다. 사회적 역할에 따라 떠안은 새마을호와 무궁화호, 광역 통근열차 등 일반 열차의 많은 적자 역시 철도공사의 부담이다. 그동안 KTX의 수익은 한국 철도망을 유지하는 산소호흡기 같은 역할을 해온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흑자 노선인 고속철도의 상당 부분을 SR에 떼어줌으로써 철도공사는 만성적 적자 구조에서 벗어날 길이 막혀버렸다. 결과적으로 수서발 고속철도의 성공은 한국 철도의 균형발전을 가로막는 대못이 될 것이다.
 
더욱이 수서발 고속철도의 이익은 철도공사 고속철도와 달리 철도 이용자 복지를 위해 사용할 수 없다. 수서발 고속철도의 수익 일부는 선로 사용료 명목으로 고속철도 건설 부채를 탕감하는 데 쓰인다. 철도 건설의 국가 책임이 법에도 명시돼 있지만, 실제로는 운영사의 수익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수익의 또 다른 부분은 SR에 대한 투자자인 철도공사,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중소기업은행, 한국산업은행에 배당금으로 주어진다. 이 4대 주주가 SR의 성공에 따른 이익을 챙기는 구조다. 다행히 41%의 최대 지분을 가진 철도공사가 배당 수익을 얻기는 하지만, 그에 비할 수 없는 수익 감소를 겪게 된다.
 
수서발 고속철도를 운영하는 SR는 철도공사의 자회사다. 원칙적으로 지주회사인 철도공사가 관리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국토부가 제어하고 있다. 애초에 철도공사를 주주에서 배제하려 했으나, 수서발 고속철도의 민영화 논란이 커지자 주주로 참여시켰다. 이에 따라 자회사의 성공이 모회사의 자립을 위협하는 이상한 구조가 됐다. 이런 황당한 구조는 당장 폐해를 낳고 있다. 철도공사는 벽지 노선 열차의 운행을 대폭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공공서비스의무(PSO) 지원 금액을 정부가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이 금액이 전년보다 650억원이나 줄어들어 경전선, 동해남부선, 영동선, 태백선, 대구선, 경북선의 열차 운행 횟수가 대폭 줄어든다. 이 조처는 열차 이용 환경 악화→이용 기피→적자 가중→열차 이용 환경 추가 악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철도역이나 노선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지역 문화와 공동체가 무너지는 일이다. 국토부는 철도공사의 적자를 가중하는 지방 노선은 민간 등 제3사업자나 도로교통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가까운 일본의 ‘철도시설운수정비지원기구’에서 2006년 발표한 보고서 ‘지방철도 활성화를 향해’에 따르면 철도가 사라지면 인구가 줄고 대체 교통으로 들어온 버스회사도 수익이 악화돼 떠나게 된다. 결국 공공교통 수단이 사라짐에 따라 인구 유출이 가속화하고 지역사회는 더욱 황폐해진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힘을 쏟는 것은 국토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수서발 고속철도 개통으로 철도망이 확장되고 고속철도 이용 환경이 개선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철도 발전의 전기가 될 수 있는 수서발 고속철도가 한국 철도의 새로운 질곡이 되고 있다. 한국 철도를 망가뜨리는 국토부의 끈질긴 노력과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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