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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94번째 채용지원서 쓰다
[Cover Story]대졸 실업
[6호] 2010년 10월 01일 (금) 파비안 리슈케 economyinsight@hani.co.kr

파비안 리슈케 Fabian Lieschke 프리랜서 작가

올해 24살의 톰은 워싱턴 DC 조지타운대학에서 공공정책학을 전공한 대졸 실업자다. 톰은 지금 스타벅스 매장에서 노트북으로 93번째 채용지원서를 작성하는 중이다. 깜박거리는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그는 커피를 벌써 두 잔째 마시고 있지만 피곤은 여전히 가실 줄 모른다. 노트북의 키보드에 “I am thrilled about this job posting”(귀사의 채용공고를 보고 저는 짜릿함을 느꼈습니다)라는 문장을 타이핑하는 톰의 얼굴은 짜릿함은 고사하고 피곤으로 찌들어 있다. 하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미국인 특유의 낙천주의는 채용지원서에도 배어 있기 마련이다.
스타벅스 매장에는 톰 말고도 노트북으로 채용공고를 서핑하거나 채용지원서를 작성하는 20대 중반의 젊은이가 상당수 눈에 띈다. 최근 미국 전역의 커피전문점과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미국에서 현재 직장을 구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힘들어졌다. 특히 톰의 세대에게는 구직 활동이 고문이나 다름없다. 경기침체는 한때 무한한 가능성의 국가로 여겨지던 미국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그중에서도 노동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고학력 구직자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대졸 구직자가 경기침체기에 겪은 경험은 미국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백수들이 스타벅스를 찾는 까닭
경제위기 초반만 해도 고학력 구직자는 ‘일시적인 실업’을 즐기는 여유를 부렸다. 고학력 구직자의 일시적 실업을 의미하는 ‘펀임플로이먼트’(Funemployment·Fun+Unemployment)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자아성찰과 자기계발의 기회를 갖는 등 자신의 실업 상태를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느긋하다가도 아무런 결실 없이 실업자 신세로 몇 개월을 허송세월하고 나면 달라진다. 대졸 구직자들은 경기침체라는 냉정한 현실에서 자아성찰이나 자기계발은 한낱 사치에 불과했음을 뼈저리게 인식하게 된다. 미국 대졸자들이 첫 직장을 찾기까지 현재 평균 9개월이 소요된다. 무보수 인턴직 등 갖가지 구직 활동도 취직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구직자들의 좌절감은 더욱 깊어진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시의 한 흑인 여성이 정부의 적극적인 실업 대책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일자리는 권리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

특히 학자금 대출금의 상환 부담까지 안고 있는 미국의 수많은 대졸 구직자들은 값비싼 대학이 정말로 올바른 투자였는지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일대학의 경제학자 리사 칸은 미국 대졸자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높은 실업률이 대졸 신입사원의 초봉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해당 국가의 실업률이 높을수록 신입사원의 초봉은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경기침체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낮은 연봉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연봉이 낮은 수준에 멈춰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호황기의 대졸자들과 비교해 경기침체기의 대졸자들은 일반적으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직장에서의 위험부담을 피하지 못하고 연봉이 낮은 직장도 쉽사리 그만두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고용주로부터 직장 동료들과 비교해 야심이 적다는 평가를 받는다.
 
‘펀임플로이먼트’ 세대의 비애
호황기와 불황기의 대졸자 간 심리적 차이도 확연히 드러난다. 실업의 어두운 터널을 뚫고 취직을 하더라도 경기침체기의 대졸 구직자들은 한 번 상실한 자신감을 쉽사리 되찾지 못한다. 사회학자 크리시아 모자콥스키는 한 연구조사를 통해 젊은 시절 실업 기간이 평균 이상으로 길었던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 정신질환을 앓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회·경제적 동향을 연구하는 일본생산성본부는 불황이 젊은 세대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일본에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일본이 경제침체의 깊은 늪에 빠져 있던 1990년대에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30대 중반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의 경제위기는 자신감으로 넘치는 ‘톰의 세대’에게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일류 대학 졸업장은 언제가 됐든 톰의 취직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기대치를 밑도는 낮은 연봉도 결국은 받아들일 톰은 취직 후에도 구직 중에 체험한 현실의 냉정함을 오랫동안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다. 경제위기를 통해 자신의 경제적 취약함을 뼈저리게 느낀 미국의 ‘펀임플로이먼트 세대’에게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여유도 일종의 사치다. 2008년 재정위기 이후 미국의 실업률은 계속 증가하더니 실업자 수가 무려 800만 명에 육박했다. 중산층과 하류층의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가 더욱 희박해졌음은 당연한 결과다.
미국의 장기 실업으로 올해 미국 내 적잖은 도시와 지역이 타격을 입었다. 1970년대 도시의 실업률이 사회 전반에 끼치는 파장을 조사했던 하버드대학의 사회학과 윌리엄 윌슨 교수는 이번 경제위기로 미국 사회에서 약물중독, 결손가정, 조직범죄 등 사회적 범죄가 최악의 수준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버드대학의 캐서린 에딘 교수도 연구자료를 통해 중산층이 경제위기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윌슨 교수의 예상을 뒷받침했다.
에딘 교수는 2009년 여름, 연구팀과 함께 필라델피아의 외곽 지역에서 진행한 현장조사에서 현지 주민들의 사회적 참여도가 현저히 줄어드는 현상을 확인했다.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당시 교회와 사회복지기관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줄어드는 반면, 이혼율 급증과 함께 약물·알코올 중독자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하위 중산층의 급격한 붕괴는 경제위기가 단순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처받은 젊은이들이 미국을 이끌면
미국의 젊은 세대가 후일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맡게 되면 어떤 행동양식을 보이며, 또 장기 실업의 뼈저린 체험과 중산층 붕괴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국의 젊은 세대는 아메리칸드림의 원동력인 ‘능력 지상주의’를 더 이상 신봉하지 않으며 국가의 주요 책무가 부의 재분배에 있다고 믿는 등 사고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유럽처럼 미국도 탄탄한 사회보장제도를 점차 추구할 것으로 점치며,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 자체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말한다. 반면 혁신과 이민을 통해 미국이 특유의 활력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법안을 둘러싼 대대적인 저항은 대서양의 반대편에 있는 미국과 유럽이 지리적 차이만큼이나 각기 추구하는 바도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톰의 세대가 어떤 방식으로 미국을 이끌고 나가든 이번 경제위기는 젊은 세대의 행동양식을 결정지을 중요한 지표로 작용할 것이다. 경제위기는 미국의 향후 수십 년간의 모습을 이미 바꿔놓은 셈이다.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맡게 되기까지 요원하기만 한 톰은 조만간 94번째 채용지원서를 작성할 것이다.
ⓒ Die Zeit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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