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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돈’ 잡으려다 서민경제 잡을라
[Issue] 인도 화폐개혁 직격탄 맞은 경제
[82호] 2017년 02월 01일 (수) 자크 아다 economyinsight@hani.co.kr
고액권 유통 중단에 현금 86% 사라져 빈곤층 ‘타격’… 소비심리 위축 등 경제에도 악영향
 
인도 정부가 기존 고액권인 500루피와 1천루피의 통용을 중지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지만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하경제를 근절하고 투명한 세수 확보를 명분으로 최근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화폐개혁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부각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시장에서 현금 부족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은행을 이용하지 않는 소규모 자영업자, 일용직 같은 빈곤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자연스럽게 소비 심리마저 위축되다보니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크 아다 Jacques Adda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일국의 경제가 은행권이 없어도 잘 작동할 수 있을까? 온라인 가상화폐 비트코인과 디지털머니가 통용되는 오늘날 이런 질문은 시대착오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총거래 건수의 98%가 현금 거래이고 총거래액의 87%가 현금인 인도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최근 인도 정부는 대대적인 현금 탈피 정책을 가동하고 현금 보유자가 은행에 돈을 맡기도록 강제했다. 은행 저축을 강제하는 건 소득 신고를 강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세계 7위의 경제대국 인도의 골칫거리 중 하나인 지하경제의 영향력을 줄여나가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의 적용 방식은 물론 애초 정책 구상 자체가 너무 결점이 많다보니 인도 경제를 혼란의 도가니로 빠뜨린 것 말고는 소득이 없는 상황이다.
 
2016년 11월8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국민에게 사전 예고 없이 그날 밤 자정을 기해 모든 500루피(약 8800원) 및 1천루피(약 1만7600원) 지폐를 통용하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500루피와 1천루피는 인도 은행권 중 가장 고액권으로, 당시 두 지폐를 모두 합치면 인도에서 통용하는 모든 지폐 액면가 총합의 86%에 해당했다. 어쨌든 500루피와 1천루피 지폐가 법정 통용력을 상실한다는 건 해당 지폐를 지급 수단으로 수용해야 할 법적 의무도 폐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해당 지폐를 보유한 모든 국민은 은행에 지폐를 맡길 것을 권고받았다. 만약 옛 지폐 보유자가 현금을 빨리 손에 넣고 싶다면, 2016년 12월31일까지 시중은행에서 새로 발행될 500루피 및 2천루피(약 3만5천원) 지폐로 교환할 수 있지만, 날짜가 지나면 인도 중앙은행에서만 교환 가능하다.
 
   
▲ 인도 정부가 지하경제 근절을 명분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했지만 경기 악화만 불렀다. 2016년 12월30일 인도 서부 아마다바드에서 시민들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대형 사진을 밟고 있다. REUTERS
 
60만 개 마을에서 물물교환 재등장 
통화 흐름을 현대화한다는 목표 외에 모디 총리가 내세운 또 다른 목표는 이번 기회에 지하경제를 뿌리 뽑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하경제 근절은 대단히 칭찬할 만한 목표다. 사실 인도 국민이 ‘블랙 이코노미’라 부르는 인도 지하경제 산출량은 비공식 부문, 불법노동 부문, 범죄 부문을 모두 합쳐 인도 국내총생산(GDP)의 20~2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인도 정부의 세수가 GDP의 5.5%에 불과한 사실을 감안할 때, GDP의 4분의 1에 육박할 정도의 미신고 소득이라면 조세 당국의 금고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엄청난 규모다. 게다가 인도가 개발도상국임을 감안해도 5.5%의 GDP 대비 세수 비율은 너무 낮다.
 
정부는 이번 화폐개혁으로 고액권 은행 예금을 강제함으로써 불법 자금 보유자가 이제는 쓸모없어진 은닉 자금의 일부를 포기하게 만들거나 조세 당국이 자금 보유자를 파악해 세수를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사실 500루피와 1천루피 지폐 형태로 유통된 금액은 15조3천억루피(약 268조5천억원)로, 정부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이 중 인도 GDP의 3.5%에 해당하는 5조루피가 당국에 신고되지 않은 금액이었다.
 
더구나 하루아침에 15조3천억루피라는 엄청난 돈이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상 대변(본질적으로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의 대변은 중앙은행이 시중에 발행한 통화와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보유하는 통화로 구성된다 -편집자)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은 정부로선 로또 당첨과 다름없다. 이 정도 엄청난 규모의 통화가 법정 통용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통화량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이 통화량 급감을 막으려면 말 그대로 쉴 새 없이 돈을 찍어내야 한다. 현재 인도처럼 은행의 민간기업 대출이 잘 돌아가는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새로 찍어낸 통화를 경제에 투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것, 즉 GDP의 7%에 이르는 정부 재정 적자를 보전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 당국은 비용을 안 들이고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
 
그러나 현금이 단지 편리한 탈세 수단만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현금은 은행 계좌가 없는 모든 국민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지급 수단이기도 하다. 인도 성인 인구의 약 절반은 은행 계좌가 없다. 임금노동자가 고용인구의 20%에 불과하고 노동자 7명 중 6명은 현금으로 보수를 받는 나라에서 어느 날 갑자기 현금의 86%를 유통에서 빼버리면 엄청난 경제 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보수를 받지 못해 해고당하고, 하청업체는 대금을 결제받지 못해 휘청거리고, 농민은 지급 수단이 없어 수확한 농산물을 못 파는 상황에서 정부의 화폐개혁은 단지 경제에만 악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500루피와 1천루피 통용 금지로 인도의 최빈곤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세계은행 조사에 따르면 인도는 1일 생활비가 1.25달러(약 1500원) 이하인 절대빈곤층이 3억 명에 육박하는 나라다.
 
   
 
 
물론 제때 새 법정화폐가 발행돼 시중은행 전체에 공급됐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도 중앙은행은 애초부터 정부 계획에 동의했음에도 유통에서 제외된 통화를 상쇄할 만큼 새 통화를 주어진 기간 내에 발행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발행 속도라면 새 통화를 목표만큼 다 발행하는 데 몇 달은 더 걸릴 것이다. 더 나쁜 건 중앙은행이 모든 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을 모디 총리에게 미리 알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 결과 현금지급기가 텅텅 비고 은행은 현금이 부족해 난리며, 경제활동은 급격한 침체를 겪고 있다. 인도 60만 개 마을에서 물물교환이 재등장했고 사람들은 돈 대신 쌀을 이용해 물건을 사고판다.
 
몇 주 만에 지급 수단 부족으로 민간 지출이 급락했고, 새 지폐를 구한 사람들은 지폐의 단기 부족을 예상해 돈을 쌓아뒀다. 그러다보니 돈이 흐르지 않는다. 게다가 은행은 혼돈에 빠진 상태다. 준비 없이 화폐개혁에 직면한 은행으로 GDP의 10%까지 해당하는 엄청난 현금이 갑자기 몰려들면서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도 인구의 3분의 2가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상황에서 새 지폐가 주요 대도시 위주로 공급되는 것도 문제다. 그 결과, 2016년 11월 한 달 동안 소매 판매액이 전년 동기 대비 10% 하락했다. 인도처럼 몇년 전부터 국내 소비가 경제성장을 이끄는 나라에서 소매 판매액이 급감했다는 건 필연적으로 장차 1분기, 혹은 2분기에 마이너스성장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하경제 근절 여부도 미지수
정부가 이번 조처를 발표했을 때 대중은 지지를 보냈다. 대다수 서민의 희생을 발판 삼아 부를 축적한 자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게 정부 정책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은 어느새 불만의 원천이 됐다. 정책의 최대 피해자가 빈곤층인 것도 문제지만, 탈세자와 지하경제의 다른 참여자들이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다. 사실, 현금은 지하경제 참여자 자산의 1~2%에 불과할 정도로 극히 일부를 구성할 뿐이다. 이들은 자산 대부분을 부동산이나 보석, 해외 자산 형태로 은닉해놓기 때문이다.
 
법정 통용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은행에 저축된 지폐 총액은 2016년 12월 초 현재 12조6천억루피에 이르렀다. 이는 정부 예상 수치인 10조루피를 훌쩍 뛰어넘는 액수이며, 옛 화폐를 교환하려면 아직도 4주나 시간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폐 총액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문제는 정책의 적용 방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도 정부의 이번 정책은 지하경제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대신 자금 세탁 시간 부족으로 미신고 상태인 현금만을, 즉 지하경제의 피상적 현상만을 공격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일단 남아 있는 검은돈이 신규 지폐와 교환되지 못해 폐기되거나 세금·벌금 납부를 통해 합법 자금으로 전환된 뒤 지하경제는 중앙은행이 신규 발행한 지폐를 이용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다시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이번에는 법망을 피하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중앙은행이 1천루피 지폐를 그보다 고액권인 2천루피 지폐로 대체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아마 중앙은행은 지폐를 신속히 발행할 능력이 없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인구의 절대다수는 이런 고액권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너무 고액권이라 소액권으로 바꾸기 힘들어서 거래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액권은 부동산이나 보석을 사들일 때 조세 당국을 피해 큰돈을 지불하는 데는 유용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모디 총리도 어조를 바꿔 지하경제 근절보다 인도를 디지털 경제 시대로 이끌어줄 통화제도 근대화를 개혁의 목표로 강조한다. 하지만 인간 행동의 끈질긴 관성에 부딪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돈과 관련된 행동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은행 계좌 보급이 지폐 사용 감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은행 계좌가 없던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계좌를 개설해도 그저 새 지폐를 얻기 위한 창구 외의 방식으로 사용할 거라는 보장이 없다. 이에 대해 세계은행은 2014년 인도에서 은행 계좌 보유자의 43%는 실제 어떤 인출이나 예금 거래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해도 모디 총리의 미래가 반드시 어두운 것은 아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화폐개혁의 경기 후퇴 효과가 정책 적용 단계에서 발생하는 것을 넘어 계속 지속되지 않는다고 전망한다. 따라서 4년 전부터 연평균 7% 성장률을 기록하는 인도 경제는 아마 2017년 봄부터 공공부문 임금 인상과 공공투자 확대, 농산물 수확량 증가가 기대되기 때문에 일시적 후퇴를 벗어나 급반등할 것이다. 그리고 부자의 탈세 근절 정책은 언젠가 좀더 다듬어지고 현실에 맞는 개혁 정책으로 등장할 것이다. 
 
   
▲ 2016년 12월3일 인도 북부 알라하바드의 한 은행에서 시민들이 사용 중지된 고액권을 신권 화폐로 바꾸려 창구로 몰려들고 있다. 이번 인도의 화폐개혁으로 평소 은행을 이용하지 않는 빈곤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REUTERS
 
■ 최후의 가치 저장 수단, 금
인도에서 대표적 지급 수단은 현금이지만, 국민이 가장 근본적인 가치 저장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금이다. 실제 인도 가계저축의 22%가 금일 정도로 많은 국민이 돈을 모으면 금으로 바꾼다. 금은 결혼식이나 각종 행사에서도 가장 선호되는 선물이다. 인도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금 소비 국가로, 세계 금 수요의 25%를 차지한다. 인도에서 소비되는 금의 90%가 수입되며, 금 수입은 평균 인도 총수입의 10%에 해당한다. 이는 인도의 경상수지 적자액과 거의 같은 규모다.
 
과도한 금 수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바로 직전 정부인 만모한 싱 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금 수입세를 10%까지 인상했다. 하지만 실제 수요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015년 11월 모디 정부는 국민이 자신의 저축을 금 연동 국채에 투자하도록 법을 개정하고 초과이득세 면제 혜택을 부여했다. 금 연동 국채는 은행 저축을 보유한 국민 일부에게 매력적인 투자처지만 은행 계좌가 없는 대다수 국민에겐 그렇지 못하다.
 
이번 화폐개혁의 예기치 못한 효과 중 하나는 본질적으로 금에 기반을 둔 비공식 금융의 유통망을 완전히 마비시킨 것이다. 왜냐하면 인도에서 금은 대출받을 때 담보물이 되기 때문이다. 대출 건수의 4분의 3이 현금 대출이고 상환도 현금 상환인 상황에서 지폐 부족은 채무자의 부채 상환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채권자들은 신규 대출을 꺼렸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7년 1월호(제364호)
La guerre du cash a commencé
번역 민지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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