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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차로 노숙 `벼락거지'들
[Cover Story] 미국 중산층의 몰락
[6호] 2010년 10월 01일 (금) 토마스 슐츠 economyinsight@hani.co.kr

   
 
토마스 슐츠 Thomas Schulz
<슈피겔> 경제부 에디터
 
미국의 거부들이 자신이 행하는 거액의 기부를 자축하는 동안 나머지 국민은 어느 때보다 더 힘든 삶을 살고 있다. 지금처럼 미국에 장기 실업자가 많은 적은 없었다. 최고 상류층과 빈곤층 사이의 빈부격차는 극단적으로 벌어졌다.
벤투라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으로 1시간 정도 자동차를 타고 가면 나오는 태평양 연안의 작은 도시다. 해안에서는 서퍼들이 파도타기를 즐기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기슭에는 고급 주택들이 모여 있다. 마치 동화책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이 도시는 미 캘리포니아주의 여러 도시 가운데서도 부유층이 사는 곳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지역 구세군 대표자인 윌리엄 핀레이 정위는 “이 도시 주민의 약 20%가 가까운 시일 안에 노숙인이 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라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여름 벤투라에서는 핀레이의 지도 아래 도시 내 자동차 숙박을 허락하는 시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는 미 전역에서 강력하게 금지됐던 것이다. 주민들은 멕시코 이주노동자가 가득 찬 더러운 미니버스가 밤에 그들의 대문 옆에 주차해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해 어느 순간부터 벤투라 주민들은 밤에 그들의 대문 옆에 주차하는 차들이 낡고 오래된 고물 자동차가 아니라 잘 손질된 ‘스테이션 왜건’(차 뒷면에도 문이 달려 있고, 뒷좌석을 젖히면 짐을 싣거나 잠을 잘 수 있는 승용차)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안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이 과일 수확을 위해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나 집 없는 노숙인이 아니라 얼마 전까지 그들의 이웃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핀레이도 그의 교회에서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에 나타나는 사람 수가 갑자기 두 배 이상 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베엠베(BMW)를 타고 오는 사람들도 있음을 알게 됐다. 핀레이는 이들을 ‘새로운 빈곤층’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전혀 다른 계층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꿈에도 자신이 노숙인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죠.” 이 새로운 빈곤층은 얼마 전까지는 돈이 충분했던 사람들이고, 몇몇은 아주 부자였다.
   
홈리스들이 모여 사는 캠핑촌의 한 텐트 내부 모습. 경제위기 이후 미국의 노숙 인구는 40% 이상 증가했다.

“저도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여기저기 찌그러진 오래된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기부된 음식을 먹고 살았죠”라고 핀레이는 말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빈곤에서 빠져나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 길이 바로 수백만 명이 걸어간 미국인의 길이다. “요즘에는 5만달러짜리 자동차를 타고 우리에게 오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큰 집에 살았지만 이젠 더 이상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사람들이죠.”

BMW 끌고 무료급식소로
오늘날 미국인의 길은 이전과는 다른 방향을 향하는 일이 많다. 위가 아닌 아래로. 한동안 미국은 지난 몇십 년 사이에 발생한 경제위기 중 가장 심대했던 위기를 무사히 극복하고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힘차게, 그리고 상처에서 완전히 회복돼 다시 일어선 것처럼 보였다.
지난해 가을에는 예상외로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얼마 전까지 망하기 일보 직전이던 은행들이 다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고, 상당수의 기업이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주식시장은 경제위기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고, 지난해에는 백만장자 비중도 17%에 육박하게 됐다.
지난 8월 초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인 빌 게이츠를 비롯한 미국인 억만장자 40명이 사후에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거액을 그냥 남에게 줘버릴 정도로 미국은 풍요로운 나라일까?
이들이 기부를 결심한 이유는 이미지를 위한 것 말고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미국의 거부들은 경제위기에서 살아남아 또다시 승리자가 됐지만 패자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고 ‘저 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미국 사회의 분노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기 때문이라고.
무엇보다도 저임금 계층에서 이미 경제성장의 활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가 장기 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수많은 국가적 지원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온기는 대중에게 거의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추락하고 있다. 최근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 국민의 70%는 경기침체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믿는다.
 
어린이 25%가 국가 배급에 의존
이번 경제위기로 고통받는 계층은 여느 때처럼 항상 가난했던 빈민층만이 아니다. 이번에 심한 타격을 받은 계층은 양질의 교육을 받은 지식인과 충분한 수입이 있어 스스로 탄탄한 중산층이라고 믿고 있던 사람들이다. 지금 이 계층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미국인 10명 중 네 사람이 자신을 중산층으로 간주하지만 이런 사회적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포스트>는 최근 ‘중산층이여, 이젠 안녕!’이라고 헤드라인을 뽑고 ‘미국의 중산층이 체계적으로 파괴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25가지 통계 수치’를 발표했다. 미국인 블로거 아리아나 허핑턴(<허핑턴 포스트> 창립자)은 지난 8월 “미국은 제3세계로 추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는 묵시록과도 같은 경고를 보냈다.
실제로 미국은 아직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한 부동산위기와 금융위기, 경제위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닥친 부채위기 이후, 대공황 이래 나타난 적이 없던 ‘사회적 빙하기’에 들어설 위험에 처해 있다. 지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장기 실업 문제를 겪고 있다. 다른 경제위기 때보다 세 배나 높은 장기 실업률은 앞으로도 점점 높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위기가 공식적으로 종료된 뒤 지난 1년간 미국의 총실업률은 9.5% 선에 머물고 있지만 이는 정부의 통계일 뿐이다. 이미 구직을 포기한 사람이나, 한 달에 겨우 몇백달러의 임금을 받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예전에 모아둔 저축으로 버티고 있는 사람을 모두 합하면 실업률은 17%를 넘어선다.
미국 농림부는 최근의 연례 보고서에서 점점 증가하는 ‘영양 불안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미국인 5천만 명이 일시적으로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을 겪었고, 성인 8분의 1과 어린이 4분의 1이 현재 국가에서 배급하는 급식표로 살고 있다. 이는 지구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의 현실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성공에 대한 믿음과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최고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던 미국이 이러한 낙천주의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최근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시민의 과반수는 자녀의 상황이 자신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수많은 미국인은 이제 아메리칸드림이 허황된 꿈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현실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일자리는 점점 더 적어지는데 임금은 정체되고 빈부격차는 극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경제는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지만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고, 기업들이 수익은 내고 있지만 빈민 수는 늘어만 가는 상황을 겪으면서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위기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것처럼 최근의 경제위기는 단지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하는 최종 전환점”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식과 부동산 열기, 대책 없는 부채 만들기와 소비 열풍은 지난 30여 년간의 경제성장이 일반 대중의 삶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감추었을 뿐이다. 1978년 미국 성인 남성의 평균 연봉은 4만5879달러였다. 2007년에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4만5113달러다.
도대체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막대한 기업 매출액과 금융시장 붐으로 인해 생겨난 수익은 물론 지난 30년간 110% 성장한 국민총생산으로 만들어진 돈은 누구의 손에 들어간 것인가? 그 돈은 결국 언제나 충분하게 돈을 가지고 있던 자들에게 돌아갔다.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문
1973년 이래 미국인의 90%를 차지하는 서민의 수입이 매우 낮은 증가율을 보이는 동안, 최고 소득계층의 수입은 거의 3배로 늘어났다. 1979년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달성한 총수익의 3분의 1이 가장 부유한 계층에게 돌아갔다면 오늘날에는 그 비율이 거의 60%에 이르고 있다. 1950년 미국의 회사 최고경영자는 평균적으로 단순 노동자의 임금보다 30배 많은 연봉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 미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받는 연봉은 노동자의 약 300배에 이른다. 미국인의 1%가 오늘날 전체 국민 자산의 37%를 차지하고 있다. 빈부격차는 1920년대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다만 지금까지 이러한 현실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적었을 뿐이다.
   
 

미국에서 자유시장 경제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돈을 못 버는 것은 다 자기 잘못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갈채를 받고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성공하는 사람 수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오랫동안 간과돼왔다. 통계상 저소득층에서 중산층의 상부로 올라설 수 있는 확률은 약 4%다. 이는 산업화된 다른 나라들에 견줘 낮은 수치다.
미국 정계는 지금까지도 점점 심화되는 사회적 위기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은 여전히 일자리를 기다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정부는 단순하게 미 국민이 스스로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소비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 최선일 것이다. 미 경제 규모의 약 3분의 2가 개인 소비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벤 버냉키가 시장에 계속 돈을 쏟아부어도, 국가재정 적자가 1조4천억달러에 이르렀어도 그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8월 초 자신의 칼럼에서 “미국의 가로등이 꺼지고 있다”며 도로 유지비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미국의 초라한 현실에 대해 일갈했다.
문제의 핵심은 많은 미국인이 더 이상 소비를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들은 저축해둔 돈도 없고, 소유한 부동산은 이제 가치가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더 이상 낮은 이율로 대출을 받을 수 없는데다 실직 중인 사람이 많다. 그래서 세금을 낼 형편도 못 된다.
 
“불 꺼진 비포장도로 위에서”
이 때문에 많은 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엄청난 재정 적자와 싸워야 한다. 심지어 하와이에서는 긴축재정으로 금요일에 학교를 닫는 일이 많다. 조지아주의 한 지역에서는 공공 버스 서비스를 완전히 중단해버렸다. 주민 38만 명이 살고 있는 콜로라도스프링스에서는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 가로등의 3분의 1을 켜지 않는다.
샤넬 사베드라는 이미 캄캄한 길 위에 서 있다. 그녀는 3주 동안 남편과 함께 차 속에서 잠을 잔 적도 있다. “이것은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에요. 단 한 번도.”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너무 힘든 상황이에요.” 그녀에게는 9살, 5살, 3살 된 세 자녀가 있다.
“우리는 여기보다 더 남쪽에 있는 샌 베르나디노에 집을 가지고 있었어요.” 2009년 7월 남편은 조립식 주택을 건설하는 회사에서 해고됐다. 가스회사가 가스를 끊었다. “아이들을 씻기기 위해 숯불에 물을 끓였어요.” 지난 8월 더이상 임대료를 낼 수 없게 된 그들은 집에서 쫓겨났다.
20년 전부터 미국 시민들은 점점 높아지는 기본 생활비와 싸워야 했다. 10년 전부터 미국 가정은 의료보험과 주택대출 상환에 이전 세대보다 두 배 이상의 돈을 지불해야 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하버드대학 교수는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의 수백만 가정이 이미 오래전부터 맞벌이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일반 가정은 그들의 모든 수입과 저금을 “그저 먹고살기 위해” 이미 다 써버렸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유치원비 없어 울먹이는 부부
이 때문에 미국인들은 교육·건강·소비 등을 빚으로 해결해야 했다. 개인 부채는 총 13조5천억달러에 이른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빚더미에 깔려 질식하기 직전이다. 미국인의 61%는 여유 자산이 없어 오로지 임금을 받아 다음 임금을 받을 때까지 생활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병원비마저 삶의 기반을 흔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샤넬 사베드라의 남편은 비행기 터빈을 만드는 회사의 창고에서 새롭게 일하지만, 가족이 노숙자의 집에서 빠져나오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사베드라는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했고 남편의 임금은 너무 적다. 이 부부는 미국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는 이른바 ‘워킹푸어’(Working Poor)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투잡’을 뛰어도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수입이 모자라는 ‘노동하는 빈곤층’이 된 것이다.
경기침체 이전의 미국이었다면 사베드라와 남편은 다시 위로 올라가기 위해 각자 다른 직장에서 일했을 것이다. 낮에는 월마트의 계산대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굽고, 새벽에는 경비원이나 청소부로…. 비록 저임금에 전망도 없는 직업이지만 그래도 둘이 힘을 합쳐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녀가 원하는 직업은 무엇일까? “판매원이든 간호보조원이든 어떤 직업이라도 상관없어요. 매일 이력서를 쓰지만 내가 일할 곳이 없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 Der Spiegel(distributed by NYT syndicate)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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