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 Culture & Biz
     
콘텐츠산업의 ‘불황 5계(五計)’
[Culture & Biz] 불황에 대처하는 콘텐츠산업의 자세
[82호] 2017년 02월 01일 (수) 문동렬 redbros@redbros.co.kr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콘텐츠산업도 분야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공연, 전시, 영화 등 소비성이 큰 분야는 관객의 발길이 줄어 찬바람을 맞고 있지만 드라마나 게임 등 이른바 ‘거실 문화’는 되레 반사이익을 얻기도 한다. 어느 분야가 됐든지 불황에 대처하는 나름의 대책이 필요한 때다. 수십 년간 콘텐츠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제작자들이 말하는 ‘불황 탈출기’를 소개한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경제가 불황이다. 굳이 어려운 통계 지표를 들지 않아도 누구나 피부로 느끼고 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들려오는 말인지라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계속되는 불황에 이미 소비 심리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데다 최근 시국 상황이나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보복, 미국 금리 인상 소식 등이 겹치며 이번 겨울은 경기가 더욱 꽁꽁 얼어붙는 것 같다.
 
   
▲ 시국이 어수선할수록 관객은 재난영화를 통해 희망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2016년 11월 서울 성동구 CGV왕십리에서 열린 영화 <판도라> 시사회에서 감독 박정우, 배우 김남길, 문정희, 정진영, 김대명, 김주현, 김명민(왼쪽부터)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황이 불러온 소비 심리의 빙하기는 실물경제를 위축시키고 각종 산업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불황 특수를 누리는 극히 일부 산업 외에 대부분의 산업은 불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비스산업으로 분류되는 콘텐츠산업 역시 경기에 민감한 산업 중 하나다. 불황일 때 사람들이 제일 먼저 소비를 줄이는 게 여가 비용이고, 대부분의 여가 선용에 콘텐츠산업이 맞닿아 있다는 걸 감안하면 불황이 콘텐츠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황의 영향은 콘텐츠산업 분야별로 조금 다르다. 공연이나 전시, 영화같이 소비성이 큰 분야는 불황이 악영향을 미치지만, 드라마나 게임 같은 소비성이 낮은 분야는 꼭 악영향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소비를 줄이기 위해 외출을 자제하는 만큼 드라마나 게임 같은 ‘거실 문화’는 매출이 오르기도 한다. 그래도 흥행이 지상 과제인 콘텐츠산업에서 꽁꽁 얼어붙은 경기는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은 환경이다. 그렇다고 호황이 오기만을 넋 놓고 기다릴 수 없는 법, 지금도 한국 콘텐츠산업은 장기 불황 때 다양한 고육지책을 동원하며 고군분투 중이다.
 
몇 년 전 일이기는 하지만 2012년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에선 수도권에 사는 20~49살 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해 불황 기간에 나타나는 다섯 가지 소비 유형을 발표했는데, 이를 두고 마케팅 업계에선 ‘불황 5계’라 불렀다. 불황에서 살아남는 다섯 가지 계책이란 뜻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경기 침체기에는 어려운 것보다 단순하고 감각적인 것에 끌린다는 ‘본능지계’, 돈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을 위한 특정 소비가 느는 현상을 보인다는 ‘보상지계’, 불황에 덜 민감한 20대 젊은 층을 공략한다는 ‘청년지계’, 불황이어도 가족을 위한 소비는 포기 못하는 ‘가족지계’, 마지막으로 안전한 소비를 위해 신뢰감 있는 브랜드를 찾는다는 ‘상표지계’가 있다.
 
낭만과 희망이 사라진 시대의 선택
한국 콘텐츠산업에도 이런 과학적 조사 방법은 아닐지라도 수십 년간 콘텐츠산업 내에 축적된 제작자들 나름의 경험과 흥행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자마다 ‘불황 5계’가 있다. 지금부터 소개할 내용은 그동안 많은 제작자에게서 들은 ‘불황 노하우’를 필자가 정리한 ‘콘텐츠 업계판 불황 5계’라고 하겠다. 해마다 많은 콘텐츠가 대중을 만나지만 그중에서도 불황 심리를 잘 읽어 이를 적절하게 작품에 버무려낸 작품들은 확률적으로 좋은 반응과 높은 수익을 거둬왔다. 콘텐츠산업은 그 특성상 대중의 욕구에 민감하다.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촉’이 발달했다. 그런 의미에서 ‘콘텐츠 업계판 불황 5계’에서 대중이 불황 시기에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콘텐츠산업 불황 5계의 첫 번째는 왕도라 할 수 있는 ‘낭만지계’다. 불황일수록 여성의 치마는 짧아진다는 속설이 있지만, 제작자들의 오랜 경험상 역시나 불황에는 ‘낭만적 로맨스’나 ‘판타지’가 잘 먹힌다. 영화 분야에서도 한국형 멜로의 전성기가 1998년 외환위기 때부터 시작된 것을 보면 신빙성 있는 이야기다. ‘로코’라 불리는 로맨틱코미디는 작품별로 부침이 있지만 여전히 텔레비전 안방극장과 겨울철 극장가의 단골 메뉴다. 낭만적 로맨스만으로는 좀 식상한 면이 있다고 하여 여기에 ‘판타지’를 섞는 콘텐츠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한 神-도깨비>(tvN)는 콘텐츠 업계의 낭만지계가 적절하게 반영된 좋은 예다. <구르미 그린 달빛>(KBS)이나 <화랑>(K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SBS) 같은 판타지 사극이 최근 TV에서 많이 보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희망지계’다. 불황이기에 더욱 희망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현실에서 충족할 수 없는 욕구를 콘텐츠에서 찾아낸다. 제작자는 불황일수록 스토리가 암울하거나 ‘새드엔딩’ ‘배드엔딩’이면 작품이 그렇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아냈다. 2016년 영화가에서 <부산행> <터널> <판도라> 등 재난영화가 줄지어 개봉하고 나름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희망지계’가 적절하게 반영된 사례라 할 수 있다. 갑자기 닥친 재난에 어려움을 겪다가 마지막에 이를 극복하며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재난영화 구조상 불황이나 어지러운 시국에서 희망을 찾고 싶은 이들이 재난영화를 찾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콘텐츠산업의 불황 대책인 ‘낭만지계’나 ‘희망지계’는 대중에게 어렵고 힘든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진통제 역할을 해왔기에 콘텐츠 업계에선 오랜 기간 왕도처럼 자리잡은 불황 5계 중 하나다. 콘텐츠 업계에서 뼈 굵은 투자자들 역시 ‘낭만지계’나 ‘희망지계’는 투자 대상 선정에서 많은 가산점을 준다고 할 정도다. 물론 시대를 역행하는 ‘이단아’가 가끔 나오기는 하지만, 불황의 시대에 역행하는 그들이 성공할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불황기에는 투자자도 모험보다 안정을 선호하기에 요즘 나오는 각종 콘텐츠의 흐름이 엇비슷할 수밖에 없는 건 다양한 콘텐츠가 나와 시장이 확대되기를 바라는 제작자로서는 안타깝지만 경영자로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다. 
 
앞에 소개한 두 가지가 왕도라면 나머지 불황 5계는 최근 암울한 트렌드 때문에 생겨난 계책들이다. 세 번째 ‘독신지계’처럼 말이다. ‘N포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가 가장 많이 포기하는 것은 연애나 친구 같은 인간관계다. 인간관계란 것이 필수적으로 소비가 동반되기 때문에 연애나 모임을 기피하다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늘게 된다. 혼술(혼자 먹는 술), 혼밥(혼자 먹는 밥)으로 상징되는 ‘1인 경제’가 부상한 배경이다. 콘텐츠 역시 1인 경제 시대를 맞아 변모해가는데, 최근 급부상하는 ‘1인 방송’이 대표적이다. 상대적으로 가볍고 편한다는 의미로 ‘스낵 콘텐츠’라 불리는 새로운 미디어 양식은 스마트폰 보급으로 N스크린(하나의 콘텐츠를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를 통해 접한다는 의미의 신조어 -편집자) 시대를 맞아 혼자 있는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짧고 가벼운 콘텐츠를 제공한다. 제작자 처지에서도 스낵 콘텐츠는 제작비 부담이 적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므로 적은 비용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받는 불황기의 새로운 콘텐츠 제작 기법이다.
 
   
▲ 판타지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한 神-도깨비>(tvN)는 최근 경기 불황 속에 큰 인기를 얻었다. 드라마 촬영지인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 방사제에서 관광객들이 드라마 속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황이 변화시킨 콘텐츠산업
네 번째는 ‘팬덤지계’다. 아무리 어려운 시기라 하더라도 팬심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자신의 소비를 줄여서라도 팬덤(Fandom·연예인이나 특정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또는 그런 현상을 부르는 말 -편집자)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소비를 아끼지 않는다. 그 종류는 다양하다. 아이돌의 열광적 팬층뿐만 아니라 캐릭터, 장난감, 만화 등 다양한 콘텐츠가 갖는 각종 팬덤은 고정적이며 지속적인 소비를 일으킨다. 그래서 불황기에 제작자는 어떻게든 작품 흥행을 위해 팬덤을 끌어들이려 노력한다. 아이돌의 팬심을 끌어들이기 위해 중요한 배역에 아이돌 출신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거나, 많은 팬을 확보하며 높은 관심도를 유지하는 웹툰이 차례로 영상화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장 제작자에 따르면 늘 연기력 부족 논란에 휩싸이기는 해도 아이돌이 출연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마케팅 홍보 단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물론 너무 많이 팬심과 타협하다보면 콘텐츠 질이 전체적으로 떨어지는 위험부담도 있고 흥행을 위해 끌어들인 팬이 질 떨어지는 작품 수준에 오히려 안티(Anti)로 돌아서는 일도 종종 있기에 팬덤지계는 ‘양날의 검’같이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은 ‘단순지계’다. 안 그래도 어렵고 복잡한 세상, 잠시 머리 식히려고 들여다본 영화나 책, 드라마가 더 스트레스를 준다면 어떨까. 그래서인지 불황일수록 단순한 플롯의 드라마나 게임이 더 인기를 끈다. 출판시장도 쉬운 책에 손이 많이 간다. 영화나 드라마도 이런 시기에는 어려운 스토리보다 선악 구도 같은 명쾌한 스토리를 선호한다. 예전에 <애니팡> 같은 단순 명쾌한 게임이 국민 게임이 된 것은 재미도 있겠지만 불황기에 어려운 게임보다 단순한 게임을 선호한 흐름을 잘 읽은 것이 크다. 실제로 <애니팡> 대박 이후 한국 게임업계에선 시스템이 복잡해 플레이가 어려운 ‘하드코어 게임’이 주류를 이루다가 상대적으로 쉬운 ‘캐주얼 게임’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최근에는 게이머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하드코어 게임을 대표하던 롤플레잉게임이 단순하게 바뀌어가고 어려운 조작보다 ‘자동사냥’ 같은 기능을 제공하면서 더 심플하게 바뀌고 있다. 한때 게임 밸런스를 망친다며 ‘자동사냥’을 엄격하게 단속한 게임업계들도 바뀌고 있다. 
 
불황은 경영자에게 생존을 강요한다. 콘텐츠기업 경영자를 겸임하는 제작자 대부분은 불황에서 늘 ‘상술’과 ‘예술’의 기로에 서기 마련이다. 제작자로서 트렌드를 끌어갈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은 늘 있지만, 불황기에 이런 욕심은 사치라 치부될 정도로 투자 단계에서 외면받기 때문에 경영자는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한다. 그래도 불황 속에 어떻게든 살아남아 호황기가 올 때까지 버텨낼 수 있다면 작품 욕심은 미루고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오늘도 스스로 위로하는 제작자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이 자리를 빌려 전하고 싶다. 
 
 * 문동열은 영상 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 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 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4층 | 대표자명 : 양상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기섭 | 사업자번호 : 105-81-50594
구독신청·변경·문의 : 1566-9595 | 기사문의 : 02-710-0591~2 | FAX : 02-710-0555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