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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 ‘환율전쟁’ 재점화?
[Finance] 새로운 통화전쟁 닥쳐오나
[82호] 2017년 02월 01일 (수) 윤석천 maporiver@gmail.com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국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졌다. 느닷없는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국은 고전적 방식을 동원해 전쟁을 벌였다. 자국 통화를 인위적으로 절하시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전쟁의 목적이었다. 무기는 초저금리를 넘어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로 발전했다. 그로 인해 달러 초강세 현상 등 폐해가 심각해지자 선진국들은 2016년 초 암묵적으로 ‘휴전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최근 통화전쟁이 재발할 조짐이 보인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새로운 통화전쟁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2016년 초 중국 상하이에서 주요 20개국(G20) 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고전적 통화전쟁에 대한 일종의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 이 합의는 공식적인 것은 아니었다. 중앙은행 간 암묵적 합의였다. 주요 골자는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미국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리기로 합의한 것이다. 과도한 달러 강세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공감한 결과였다. 이는 달러를 제외한 주요 상대 통화들의 강세로 이어졌다. 회의 뒤 달러 가치는 하락했고 주식과 신흥국 자산, 원자재 등 위험자산 시장은 반등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금리 인상에 더욱 온건한 입장을 취하면서 이른바 ‘비둘기’가 되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강성 발언을 자제하게 되었다. 그 결과 2014년 중반 이후 급등하던 달러는 2015년 11월 달러 인덱스 기준으로 100을 상회한 뒤 2016년 5월 93 언저리까지 하락한다. 이로써 일단 금융위기 뒤 지속돼온 환율전쟁은 수면 아래로 잠복하게 된다.
 
   
▲ 도널드 트럼프(왼쪽)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새로운 통화전쟁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트럼프가 세계적 복싱 프로모터 돈킹과 2016년 12월 플로리다의 한 휴양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REUTERS
 
최근 통화전쟁이 재발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른바 ‘냉전’ 기류가 감지된다.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미국 선거의 이변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가 열리면서 통화전쟁 역시 새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트럼프의 등장은 ‘국가주의’ 부활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국가주의란 망령은 세를 넓혀가고 있었다. 국가주의 회귀의 선두 주자는 일본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을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에 질세라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우며 역시 패권국으로의 지향을 명확히 했다. 영국에선 브렉시트(영국 유럽연합 탈퇴) 지지자들이 유럽연합 이전 ‘영국의 영광’을 재현하자며 들고일어섰다. 그 뒤를 트럼프가 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의 위대성’을 강조하며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역사에서 국가주의가 득세하면 반드시 갈등과 분쟁이 일어난다. 물리적 갈등은 정해진 수순이다. 하나, 그 이전에 국가 간 경제적·문화적 갈등이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다. 국가주의는 상대방에 대한 우위를 강조하며 대립을 양산하고 그 수단을 정당화한다. 트럼프 당선 이후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세계 최대 강국 미국이 국가주의로 회귀하면서 세계는 협력 대신 분열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환율시장도 이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정국 통화의 가치 변화는 상대국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기축통화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통화라면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주의가 세를 넓혀가면서 환율시장에도 국가주의가 스며들고 있다. 주요 중앙은행들이 협력이 아닌 상대방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면서 새로운 ‘냉전’의 바람이 불고 있다.
  
주요국의 통화 절하 움직임
일본은 미국 대통령선거 전인 2016년 12월 이전부터 미세하게 엔화 가치를 낮추고 있다. 일본은행은 2016년 9월부터 일본 국채 10년물 수익률을 거의 0%대로 유지하면서 일본과 타국 사이의 금리차를 확대하기 위해 애써왔다. 당시 글로벌 금리가 내려가고 있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 국채의 수익률이 타국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은 엔화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일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2016년 7월 말 마이너스 0.28% 수준에서 2017년 1월 초 0.04% 수준으로 올랐다. 동시에 같은 기간 달러 대비 엔화는 100엔에서 115엔으로 약 15% 절하됐다. 일본은행은 엔을 솜씨 있게 절하시키고 있다. 2016년 12월 일본은행 통화정책회의에서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수익률 타깃을 변화시키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엔 절하를 경시하는 것 역시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중국 상하이 합의 이전으로 통화정책을 되돌린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질세라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유로화 절하에 나서고 있다. ECB는 2016년 12월 기준금리를 0%로 동결하고 국채를 직접 매입해 자금을 투입하는 양적완화 시행 기한을 9개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ECB는 12월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본부에서 정례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애초 ‘적어도 2017년 3월까지’로 설정했던 전면적 양적완화 시행 기한을 2017년 12월까지 늦추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시행 연장 기간 9개월은 시장이 예상했던 6개월보다 더 긴 것이다. 매입 채권 대상도 넓혔다. 이는 채권 매입으로 부양 조처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한 자신들의 결정을 전격 뒤집은 것이다. ECB 역시 상하이의 암묵적 합의를 번복하면서 유로 절하에 나섰다고 할 수 있다.
 
이 움직임은 중국 인민은행 역시 마찬가지다. 위안화는 지속적으로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물론 위안화 절하 현상은 자본 유출 확대, 외환 보유액 소진에 따른 우려, 개인들의 환전 수요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안화가 중국 정부 및 인민은행의 통제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 하락세가 자연스러운 시장 흐름 때문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위안화는 2016년 초 상하이 합의 뒤 달러 대비 강세를 잠깐 보인 다음 그해 5월부터 다시 약세를 보이고 있다.
 
통화시장의 흐름을 살펴보면 미국 달러만 질주하고 있다. 이 흐름은 겉으론 매우 정상적으로 보인다. 달러 강세 요인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주요국 중 금리 추세를 뒤집은 건 미국이 유일하다. 일본, ECB 심지어 한국까지 저금리 일변도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만 금리를 올리고 있다. 게다가 보호무역을 강조하는 트럼프 정책은 달러의 국외 유동성을 축소해 달러를 강세로 이끌 가능성이 높다. 
 
적자 국채 발행을 전제로 한 재정 확대 정책은 재정 적자를 가속화해 일정 부문 달러 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동시에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키워 달러 강세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재정 확대 정책의 달러 약세 요인은 충분히 희석될 여지가 있다. 전체적으로 달러 강세 요인이 우월하다.
  
   
▲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 중앙은행 총재가 2017년 1월11일 도쿄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웃고 있다. 일본과 중국 중앙은행은 트럼프 당선 뒤 일제히 자국 통화 절하에 나서고 있다. REUTERS
 
‘환율조작국’ 압박 우려 커져
현재까지 미국은 달러 강세를 용인 내지 방관하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의 취임 이후다. 트럼프는 분명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보호무역 등 국가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달러 강세 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 달러 강세는 제조업을 포함한 미국 기업에는 악재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하는 트럼프는 이들을 위해 어떻게든 달러 강세를 억누르려 할 것이다.
 
방법은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에 의존하는 기존 방식을 벗어나 좀더 강압적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 바로 ‘환율조작국’이란 멍에로 상대국을 직접 압박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취임하면 환율조작국에 대한 대응을 시작할 개연성이 높다. 미국은 2016년 초 대미 무역 흑자가 크고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를 보이며 외환시장에 한 방향으로만 개입하는 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고강도 제재를 가하겠다고 공언했다. 구체적으로 대미 무역 흑자 200억달러 이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 흑자 3% 이상, 외환시장 일방 개입 규모가 GDP 대비 2% 이상인 나라를 조작국으로 규정했다. 트럼프의 취임 뒤 이 조건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기준 자체가 법이 아니라 재량권이 행사될 수 있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강경 정책은 강달러 기조가 분명해질수록 강화될 여지가 높다. 달러 상승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면 기타의 방법으로 강달러를 희석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방법은 미국의 힘을 이용한 상대방에 대한 직접 압박이다.
 
환율전쟁은 이로써 새 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냉전으로 치달아 연쇄적 무역전쟁으로 비화할 여지가 크다. 이에 대부분의 국가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할 것이다. 자국 통화 가치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높일 것이다. 그에 따라 달러는 일시적으로 하향 안정화 국면으로 들어설 수도 있다. 모든 국가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패권을 다투는 강대국은 미국에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을 연출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세계경제에 불안 요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환율분쟁은 무역분쟁으로 이어져 세계를 갈등 상황으로 내몰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시 달러는 초강세를 보일 수 있다. 달러 강세, 환율 냉전, 무역 분쟁, 물리적 갈등, 달러 초강세가 반복될 수 있다.
 
분명한 건 달러 강세는 달러 유동성 축소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달러는 세계의 돈이다. 돈이 줄어들면 경제는 그만큼 힘들어진다. 난관은 갈등을 부른다. 세계는 환율이란 소프트웨어 전쟁에서 하드웨어적 갈등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것이 달러 강세를 마냥 반길 수 없는 이유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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