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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경쟁력 잃은 한국산 고사할 판
[세계는 지금] 한국 가전제품 위기의 현장, 알제리
[82호] 2017년 02월 01일 (수) 조기창 kccho@kotra.or.kr

원유와 천연가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알제리 경제가 국제 유가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타개책은 수입 억제와 외국자본 유치를 통한 제조업 육성이다. 이에 따라 많은 외국 가전업체들이 현지 조립공장 건설에 나서고 있다. 현지 공장이 없는 한국 업체들은 입지가 거의 없어질 판이다. 한국산 텔레비전 등의 가격경쟁력이 알제리산이나 중국·터키산 등에 크게 밀리기 때문이다. 이런 알제리 현실은 한국 가전업체들이 가격경쟁력 회복과 차세대 제품 개발 전략에 집중하지 않으면 돌이키기 힘든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조기창 KOTRA 알제리 알제무역관장
 
전체 수출의 98%를 원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알제리는 2014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국제 유가 하락으로 외환보유액 감소와 무역 적자 및 재정 악화가 누적돼 완제품 수입 규제를 강화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한 제조업 육성에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외국 가전업체들이 수입 규제를 피하면서 국산품에 적용되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 알제리에 현지 조립공장을 앞다퉈 건설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 유치 인센티브의 일환으로 알제리 정부는 국산품에는 은행 융자를 통한 신용 구입을 허용하는 반면, 수입 제품에는 이를 불허하고 있다. 소비자는 수입 가전제품을 구입하려면 현금으로 한꺼번에 값을 치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공 목적으로 구입하는 전자제품의 경우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에 구입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다.
 
   
▲ 중동 지역 전통 복장을 한 남성이 삼성전자의 고화질 텔레비전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값비싼 고급 전자제품을 살 여력이 없는 알제리의 소비자들은 값싼 자국 제품이나 중국산 수입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더해 2017년 국민의 에너지 절약 정신을 고취하고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에너지세를 신설했다. 시판 가전제품에 에너지효율 등급을 매긴 뒤 등급에 따라 부가세(현재 19%)와 연계해 차등 세율을 적용하는 내용이다. 신설 에너지세를 수입 가전제품에는 2017년 7월1일부터, 알제리산 제품에는 2018년 1월1일부터 적용할 예정이라서 당장 수입 가전제품은 가격경쟁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알제리에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에너지효율 등급을 심사하는 기관이나 시설이 미흡하고 현지 제조사들이 에너지효율을 허위로 신고할 가능성도 있어 한국 가전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한국 제품은 이미 알제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더 이상 한국 제품은 현지 소비자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이 자리를 알제리 국산 제품과 중국, 터키 등 후발국가 제품들이 대신하고 있다. 백색가전의 경우 매장에서 한국 제품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백색가전은 영상가전에 비해 제조사 간 기술력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한국 브랜드의 백색가전 제품은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설 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듯하다.
  
가격경쟁력 잃은 한국 가전
현지 매장에 가보면 텔레비전을 포함해 대부분의 가전제품들은 외국 가전업체들이 알제리 현지에 공장을 건설해 조립하거나 생산한 제품이다. 한국 브랜드 텔레비전은 매장에서 간혹 볼 수 있으나, 42인치 텔레비전의 경우 한국 제품 가격이 알제리 국산과 중국산 제품의 두 배가 넘는다. 이들 국가 제품의 기술력이 한국 제품 수준까지 따라와 한눈에 봐서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가격 차이는 두 배가 넘으니 어느 소비자가 한국 제품을 구입하겠는가. 알제리 소비자가 60인치 넘는 대형 텔레비전이나 초고화질(UHD) 텔레비전 같은 최고급품을 구입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인지 알제리에 있는 한국 가전사들도 더 이상 텔레비전 판매에 주력하지 않는다. 이미 한국 최대 가전제품사의 텔레비전은 매장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한국산 컴퓨터 등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버텨주던 한국 브랜드 휴대전화도 중국의 맹추격을 받고 있다. 알제리에선 한국 가전제품에 대해 총체적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한국뿐 아니라 외국 유명 가전사들도 제3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그곳에서 제품을 각국으로 수출해 통계만으로는 어느 나라 브랜드 제품이 가장 많이 수입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한국 가전사들도 대부분 베트남과 중국 등 제3국에서 생산해 직접 알제리로 수출하고 있으나, 적어도 현지 매장에서 점점 더 한국 제품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아울러 한국에서 직접 알제리로 수출되는 컬러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제품의 수출액도 급감하고 있다. 최근에는 거리에서 중국산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현지인도 종전보다 훨씬 더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은 2010년대부터 중동 지역에서 나타났다. 2010년대 초반 요르단 암만무역관에서 근무할 때쯤 중국산과 터키산 냉장고·세탁기 등 백색가전 제품이 한국 제품과 비슷하게 평가받으며 그 자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텔레비전, DVD플레이어 등 영상가전 부문에선 한국 제품이 여전히 최고로 인정받았다. 한국 LED, LCD 텔레비전은 얇은 화면에 화질이 깨끗하고 디자인도 세련됐다. 반면 중국 제품은 두껍고 투박한 화면에 화질도 상대적으로 좋지 않고 디자인도 엉성해 한국 제품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일본 제품은 한국 제품과 품질은 비슷했지만 가격이 워낙 비싸 소비자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또한 당시 요르단에서 한국산 가전제품을 구매하면 기술자가 소비자를 직접 찾아가 사후관리를 해줬는데, 이 때문에 한국 가전제품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이때와 대조되는 알제리의 상황은 날로 어려워지는 한국 가전제품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 전체 수출의 98%를 원유 및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알제리는 국제 유가 하락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2017년 7월 에너지세를 신설하기로 했다. 알제리 수도 알제 인근 고속도로변 주유소에 휘발유 가격을 알리는 간판이 세워져 있다. REUTERS
 
첨단 의료기기 개발로 눈 돌려야 
이 위기에서 탈출할 방안은 무엇일까? 가장 시급한 방안은 알제리 현지에 조립공장을 건설해 가격경쟁력을 갖추면서 국산품에 주어지는 각종 혜택을 최대한 받는 것이다. 아울러 특별 세일 기간을 두고 대대적인 판촉과 함께 철저한 사후관리로 고객 만족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무엇보다 현지 소비자는 대부분 한국 브랜드 가전제품의 우수성을 인식하고 있으나 비싼 가격 때문에 구입을 주저하는 만큼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요르단 암만 근무 때 현지 매장에 가보니 중국산 가전제품을 구입하면 중국 중소기업들이 생산한 소형 가전제품이나 전기담요 등을 사은품으로 주는 것을 보았다. 한국 대형 가전사들도 자사 제품 구매 고객에게 협력 중소기업 제품을 무료 증정해준다면 현지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게 될 것이다. 외국시장에서 한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추구 모델이 될 수도 있다.
 
   
 
암만의 상황과 현재 알제리의 상황이 대조되는 면이 하나 더 있다. 당시 암만 시내 곳곳에선 한국 가전제품을 홍보하는 옥외 광고판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알제리에서는 그런 광고판을 거의 볼 수 없다. 반면 현지 생산제품과 중국산 제품을 홍보하는 옥외 광고판은 시내 여러 곳에 설치돼 있고 그 수도 나날이 늘고 있다. 한국 브랜드 가전제품과 할인판매 행사를 알리는 홍보 활동을 좀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한국 가전업체들은 지금까지의 전통적 가전제품 생산에서 탈피해 중국, 터키 등 후발 경쟁국들이 아직 따라오지 못하는 최첨단 의료기기 산업에 관심 갖고 과감하게 뛰어들 필요가 있다. 
 
정보기술산업과 반도체산업이 결합된 최첨단 의료기기는 아직도 미국, 독일, 일본 등이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가전제품과 휴대전화 분야에서 기술력과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다. 이를 의료기기나 장비에 접목해 기술투자를 해나간다면 충분히 승산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가전산업이 한국의 주요 먹거리였다면 최첨단 의료기기와 장비야말로 미래 먹거리라고 할 수 있겠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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