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국내 > Network Research
     
‘체제적 공포’ 엄습한 자본시장
[Network Research]
[6호] 2010년 10월 01일 (금) 홍기빈 economyinsight@hani.co.kr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한때 급락했던 전세계 자산시장 가격은 2009년 초를 기점으로 다시 크게 회복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 제대로 된 ‘균형’ 자산 가격의 회복인지, 아니면 그저 ‘죽은 고양이가 바닥에서 튀어오른’ 현상인지에 대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 조너선 닛잔과 심숀 비클러의 최근 논문 ‘체제적 공포, 현대 금융과 자본주의의 미래’(웹사이트 bnarchives.yorku.ca/289/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는 이보다 훨씬 근본적인 차원에서 미래에 대해 예견하고 있다. 요컨대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라고 할 자본화(Capitalization)가 이미 2000년대 들어 작동을 멈춘 상태이며, 20세기 역사상 자본주의가 근원적 위기에 봉착한 1930년대에만 볼 수 있었던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금융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는 투자가 계급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미래에 대해 공포를 품는 ‘체제적 공포’(Systemic Fear)가 전반화한 상태가 현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조너선 닛잔 캐나다 요크대 교수

저자 중 한 사람인 조너선 닛잔(캐나다 요크대학 정치경제학과 교수)이 9월 말 한국에 와 두 차례의 강연(29일 오후 4시 서강대, 30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지구적 금융·재정 위기와 한국 시민사회의 과제’ 토론회)을 통해 이런 논지를 설명한다. 이 글에서는 이렇게 중대한 예견을 하는 논거가 무엇인지를 간략하게 드러내 닛잔의 강연과 논문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자 한다. 본 논문의 방대하고 정교한 논리를 간략하게 해설하기 위해 필자가 고안한 논리를 약간 섞어넣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리 알린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공산주의 체제와 현대 금융자본주의 체제는 대극점의 경제 질서로 여겨진다. 핵심적인 차이는, 공산주의에서는 모든 인적·물적 자원의 동원, 조직, 배분이 중앙 관료기구의 명령에 의해 이뤄지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이것이 무수한 시장의 자발적인 가격 형성 작용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실상과 어긋나는 관찰이다. 그렇게 ‘무수하고도 자발적인 가격 형성 시장’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실제로 경제 질서의 변동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대규모 생산조직들(대기업과 정부)이다. 그리고 이들의 행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금융시장, 특히 지구적 규모의 자본시장- 오늘날 ‘시장’이라고 하면 보통 이를 일컫는다- 에서의 가격 변동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공산주의 체제에서 공산당의 중앙계획기구가 차지하는 위치를 현대 금융자본주의에서는 지구적 자본시장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미래 가치 환산하는 자본화라는 의례
그렇다면 현대 자본시장의 작동 알고리즘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본화다. 즉, 특정 자산이 미래에 가져올 수익의 흐름을 리스크와 미래 가치(hype), 그리고 현행 이자율을 감안해 현재 가치로 할인하는 하나의 의식(ritual)이다. 이것이 20세기 중반 이후 이론적·제도적으로 현실화된 금융자본주의가 이전의 금융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예전의 금융이 과거에 이뤄진 경제 실적을 행동의 근거로 삼아 작동하는 것이었다면, 현대 금융은 미래에 벌어질 일을 예견해 그것을 현재 가치로 포착하는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지구적 자본시장이 지구적 경제를 지난 몇십 년간 엄청난 힘으로 재구조화하며 지도해올 수 있었던 이유다. 리스크와 미래 가치를 계산으로 포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굳건한 신앙에 근거해 그것의 현재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를 ‘가격 신호’로 삼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적·물적 자원의 동원·조직·배분을 지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무적의 아킬레스처럼 보이는 현대 금융자본주의에도 뒤꿈치는 있다. 미래의 불안정성에 대한 취약성이 그것이다. 물론 미래는 본래 불확실한 것이기에 이런저런 개별적 위험 요소는 항상 있게 마련이며, 이는 리스크로 포착해 자산 가격에 반영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체제 전체에 대한 불안정성은 어떻게 되는가? 석유가 떨어져버린다면? 지구온난화의 악몽이 현실이 돼버린다면? 지정학적 불안 요소가 정도를 넘어선다면? 피지배 계층이 지구적 차원에서 광범위한 저항을 벌인다면? 이렇게 ‘개별’ 수익의 흐름이 아닌 ‘모든’ 수익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흔들 사회적·정치적·생태적 요인은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 자본화는 미래 수익의 흐름을 영원이라는 시간 지평으로 놓을 때 작동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다. 그런데 미래 어느 시점에 아예 수익 흐름의 존재 자체를 좌우할 사건이 존재한다면? 이 경우 단순한 자산 가격의 하락이 아니라 아예 자본화라는 의식 자체가 붕괴될 것이다.

미래 수익 흐름이 붕괴된다면
이런 체제적 공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역사상 존재한 모든 사회 체제는 예외 없이 이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현대 금융자본주의가 특히 이에 취약한 원인이 있다. 바로 자본화 자체의 ‘미래지향성’ 때문이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지구적 자본시장이 미래 수익의 모든 가능성을 포착해 즉시 현재 가치로 반영해 세상을 역동적으로 재구조화하는 위력의 원천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가능성이 ‘불안과 공포’일 때에도 이 장치가 똑같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대규모 투자가들의 마음속에서는 올지 안 올지조차 알 수 없는 미래의 걱정거리도, 감지되는 즉시 가장 심각한 현재의 문제가 돼버린다. 이는 투자 행태에 결정적 영향을 줘서 ‘현재’ 경제 전체의 작동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체제적 공포’로 인해 자본화라는 알고리즘 자체가 작동을 멈추고 현대 금융자본주의가 19세기 이전의 그것처럼 힘없는 수동적인 과거지향적 체제로 돌아가는 일이 정말 벌어질 수 있을까? 닛잔과 비클러는 그런 일이 20세기 이후 단 두 번뿐이지만 실제로 벌어졌음을 보여준다. 1930년대,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2000년대다.
   
 

<그림>은 187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대 기업의 주가와 주당순이익(EPS)의 두 시계열을 나타낸다. ‘미래지향적’ 자본화 알고리즘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면 주가의 형성은 실제의 주당순이익 흐름과 상당한 ‘분산’을 보여야 마땅하다. ‘현재’ 발표되는 주당순이익이 어떠하든, 투자자들이 정말로 미래의 여러 가능성을 미리 내다보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면 주가로 반영되는 현재 가치는 항상 주당순이익과 괴리할 수밖에 없고, 주가 변동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주당순이익의 변동을 앞서가는 특징을 보여야 할 것이다.
먼저 1919년까지의 기간은 아직 이런 ‘미래지향적’ 현대 금융이 자본시장의 규범이 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이 기간의 투자자들은 대부분 주식 배당금에 관심을 두고 행동하는 ‘과거지향적’ 행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두 시계열은 등락이 긴밀하게 함께 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 자본화라는 의식이 자본시장의 작동을 지배하는 알고리즘으로 자리잡고 난 뒤부터는 그 패턴이 명확하게 달라진다. 주가 변동은 주당순이익의 변동과 거칠게 괴리되기 시작하면서 자본시장이 역동적으로 살아 숨쉬는 심장박동을 보여준다. 이는 1940년 이후 2000년까지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 자본화의 이론적·제도적 장치가 발달하면서 그 분산도 점점 더 커져서, 닛잔과 비클러가 계산한 바에 의하면 1940년에서 2000년까지의 기간에 두 시계열의 상관계수(coefficient)는 실제로 마이너스로까지 떨어진다.
그런데 1930년대와 2000년대는 그런 괴리가 사라짐을 볼 수 있다. 자본시장의 역동적인 심장박동이 멈춰버린 셈이다. 이 기간에 투자자들은 실제 수익이 발표되면 그것을 뒤따라가면서 행동했던 패턴이 명백하게 보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1930년과 2008년의 극단적인 수익 하락이 나타났을 때에도 주가는 자신 있는 미래 전망에 근거해 힘차게 저항하기는커녕 이를 순순히 따라 깊은 심연의 고행으로 끌려가는 ‘매가리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미국 자본주의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지면의 한계로 여기에 싣지 못하지만, 닛잔과 비클러가 보여주는 2000년대를 전후한 전세계 주식시장에서 두 시계열의 관계 또한 이와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30년대와 같은 상황일까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점을 발견한다. 2008년에 벌어졌던 패닉이 아무리 요란하고 극적인 것이었다고 해도, 자본시장의 심장박동이 극히 약해진 것은 이미 2000년 ‘닷컴’ 거품 붕괴 이후 10년간 지속돼온 현상이며, 2008년의 사태는 단지 그것에 치명적 타격을 안겨줬을 뿐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21세기로 접어든 지난 10년간 이미 지구적 자본시장은 1930년대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미래지향적 성격을 상실한 셈이다. 그렇다면 현대 금융자본주의에서 인적·물적 자원의 동원·조직·배분을 결정하는 최고 기구라고 할 지구적 자본시장이 사실상 미래의 구상과 조직의 기능을 멈춘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닛잔과 비클러는 1980년대 말 소련 경제가 이미 이전 10년간 기능 부전이 누적돼온 중앙계획기구의 개혁 실패로 붕괴하던 상황에 주의를 환기한다.
2000년대가 도대체 어떤 상황이었기에 이런 일이 지속돼온 것일까? 그 성격은 1930년대와의 비교 속에서 짚어볼 수 있다. 그 시대는 한마디로 앞에서 말한 ‘체제적 공포’가 투자자들을 지배해 자본화라는 자본시장의 알고리즘이 거의 붕괴했던 때다. 대공황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도처에서의 사회·정치적 불안,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대두, 뉴딜과 국가 개입으로 인한 경제구조 변환, 세계대전의 가능성- 은 그야말로 투자자들로 하여금 미래의 시간 지평을 ‘영원’으로 설정하고 그에 기초해 안심하고 미래 수익을 현재 가치로 고친다는 자본화의 의식에 어떤 신뢰도 가질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2000년 닷컴 거품 붕괴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담론들- 9·11 사태, 지구온난화, 오일피크, 지정학적 불안, 세계무역기구(WTO)의 한계 등- 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앨런 그린스펀을 필두로 전세계의 유력한 인사들이 하나같이 내놓고 있는 ‘자본주의의 미래’- 이는 <파이낸셜타임스>가 2009년 연재했던 칼럼 시리즈의 제목이다- 에 대한 불안한 전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닛잔과 비클러의 글에는 여기에 담지 못한 숱한 이야기가 있다. 체제적 공포의 본질과 성격은 무엇인가? 무엇이 2000년대에 그것을 극대화하고 있는가? 또한 그렇게 되었을 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무엇인가?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홍기빈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고경태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윤종훈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