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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은 보수적… 신성장동력 선별 투자
[Cover Story] 불확실 시대 생존 가이드- ③ 대기업은 ‘정중동’(靜中動)
[81호] 2017년 01월 01일 (일) 김정필 fermata@hani.co.kr

최순실 특검 및 대외 변수 요인 등으로 주요 기업 몸사리기… 삼성, 전장사업에 주력 

박근혜 대통령과 공모해 정·재계를 떡 주무르듯 한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사건이 블랙홀처럼 재계의 각종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주요 대기업도 최씨와의 ‘악연’에서 자유롭지 않은 탓에 특별검사 수사와 탄핵심판이 예정된 2017년 상반기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대기업들은 새로운 사업 투자 등을 자제하는 등 최대한 몸을 낮춘 채 2017년 경영계획을 보수적으로 세우고 기업의 신성장동력 투자에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고삐를 당길 방침이다.
 
김정필 부편집장
 
“국회가 입법으로 준조세를 막아주십쇼.”
 
2016년 12월6일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나온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이 한마디는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이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대기업은 각종 기업 현안을 매끄럽게 풀기 위해 정치적 리스크를 없애야 하고, 정치권력은 그런 대기업의 속내를 지렛대 삼아 쉽게 돈을 뜯어낸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부정한 결탁이 탄로 나면 대기업은 항상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지만, 실상 그들이 정치권력에 바친 헌금의 대가로 챙긴 실리는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 셈이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 국내 경제가 안갯속에 휩싸인 데는 대기업 스스로 천박한 개발 시대의 부조리한 행태를 끊지 못해 자초한 측면이 크다.
 
2017년은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란 단어가 국내 경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과 탄핵 정치에 매몰돼 2017년 상반기를 보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대외적으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인한 통상무역 환경의 대대적 변화 가능성,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 우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상 경과, 미국 기준금리 인상 등 불확실성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 뒤 국정 공백 상태를 맞아 비상대응 계획을 가동하고 있다. 주요 대기업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최소 3개월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고, 이 기간에는 투자와 사업재편, 인수·합병 등 중대 의사결정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실행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다만 인사와 채용, 조직개편 등 내부 정비 작업은 무작정 미뤄놓을 수 없기 때문에 예정된 사장단·임원 인사 등은 대부분 실시한다.
 
기업들은 정부의 인·허가권, 사업승인권 등 각종 규제 관련 결정이 늦춰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한편, 신성장사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 동력이 약화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 국내 재벌들은 이번에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림으로써 여전히 부정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드러냈다. 2016년 12월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출석한 대기업 총수들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특검 리스크에 발목 잡힌 삼성
삼성은 2016년 12월 초 출범한 최순실 국정 농단 특별검사의 가장 강도 높은 수사 대상으로 손꼽힌다. 특검이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하려면 삼성과 최순실씨의 각종 돈거래는 물론,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관련 인수·합병 이슈를 샅샅이 훑어볼 수밖에 없다.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최씨 등을 재판에 넘기면서 삼성 연루 부분은 기술적으로 공소장에 담지 않았다.
 
이 탓에 삼성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과 탄핵 정국에서 특검 수사 및 이재용 부회장의 청문회 증인 출석 등으로 애초 2016년 12월 초로 잡혀 있던 사장단 인사를 잠정 연기했다. 또 이 부회장이 청문회에서 공언한 그룹 컨트롤타워 미래전략실 해체 등 후속 과제가 남아 있어 그룹 안팎이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다만 연말 전략회의 등 상시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해 사업부문에는 차질이 없도록 신경 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6년 12월19~21일 수원디지털시티 등에서 DS(부품), IM(IT모바일), CE(소비자가전) 부문별로 사업부장과 임원, 해외법인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었다. 삼성 관계자는 “그룹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은 맞지만 2017년 상반기 제품개발, 판매전략 등은 전략회의를 통해 점검하고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가 전자장치(전장) 사업에 본격 뛰어든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커넥티드카와 자율주행차 등의 부상과 함께 세계 전장시장은 한 해 평균 13%씩 성장하며 2025년까지 1864억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완성차 업계의 1차 협력사가 되겠다며 전장사업 시장에 선전 포고를 했다. 뒤늦게 뛰어든 삼성전자는 선도업체들과 기술 격차를 줄이고 진입장벽이 높은 부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인수· 합병을 선택했다.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80억달러에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합병하면서 ‘스마트카 시대’를 이끌 핵심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전장사업에 뛰어든 지 1년 만에 규모 면에서 이 분야 글로벌 리더로 도약한 것이다. 
 
다만 본격적 사업 시기는 1년 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하만의 주주와 주요 국가 정부기관의 승인을 거쳐 2017년 3분기까지 인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스마트카 사업 일정은 정부 승인이 조기에 나오면 앞당겨질 수도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선보일 전장사업을 IVI(In-Vehicle Infotainment·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커넥티드카(Connected Car·자체 통신장치를 통해 각종 정보를 얻는 지능형 자동차), 자율주행차 등에 중점을 둘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해외 자동차 시장이 침체한 가운데 국내 정치 상황마저 불확실성이 커지자 내년 사업계획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아 대응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2016년 말부터 해외영업본부 법인장들을 국내로 불러 회의하고 국내외 상황을 공유하며 2017년 사업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전세계 자동차 시장은 2017년에도 침체 양상을 띨 전망이다. 러시아와 브라질 등 신흥국은 경제가 크게 침체된 상태에서 좀처럼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성장이 멈추는 추세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현대차는 시장별 시나리오와 각각 대응 계획을 마련해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대차 관계자는 “2016년 10월 말 기업설명회 때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될 거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다. 국내외 시장 상황이 매우 불안정하다. 보수적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국내 자동차 생산 비중이 50% 가까이 차지하는 터라 국내 상황이 빨리 안정되기 바라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2017년 신년사에서 현대·기아차 글로벌 판매 목표치를 발표할지도 불투명하다. 현대·기아차는 2000년 그룹 출범 이후 2016년까지 매년 신년사에서 연간 글로벌 판매 목표를 공개했다. 국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만 신년사에서 목표치가 빠졌다. 2009년은 현대차의 연간 수출 대수가 100만 대에 못 미치는 등 고전한 시기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2년 연속 목표치에 미달하는 실적을 보였다. 2015년에는 820만 대 판매 목표를 공표했지만, 실제 판매량은 801만5745대에 그쳤다. 2016년에는 813만 대 판매 목표로 전년 대비 7만 대 줄였는데, 2016년 1~11월 누적 판매량은 706만8013대였다. 한 달 평균 64만 대꼴이다.
 
롯데, 내수 위축 우려… 포스코는 슬림화
LG그룹은 2016년 12월 초 총수 청문회를 앞두고도 예정대로 사장단과 임원 인사를 했다. 4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인사를 한 LG는 신성장사업을 지휘하는 구본준 부회장과 새롭게 LG전자 1인 최고경영자(CEO)가 된 조성진 부회장 등을 중심으로 신년 사업 구상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LG는 사업계획을 예정대로 시행하되 투자나 고용은 국내외 경기 상황, 정국 변수 등을 고려해 탄력 대응할 계획이다. 현재로서는 비상대응 계획을 가동할 단계가 아니라고 본다.
 
롯데그룹은 탄핵안 가결 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시장 상황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롯데는 이미 2016년 6월 이후 4개월여 동안의 검찰 수사를 거치며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에, 탄핵안 가결 이후 별도의 대응 조직을 가동할 필요는 없다. 다만 정치 불안, 국정 공백이 길어져 내수와 소비가 위축되면 주력 업종인 유통·서비스 부문이 타격 입을 것으로 걱정하는 모습이다.
 
롯데는 대내외 경영 불확실성을 이유로 2016년 말로 예정된 정기 임원인사를 2017년 초로 연기했다. 탄핵 이후 정국과 특검 수사 상황 등에 따라서는 인사 등 주요 경영 일정이 2017년 1월 이후로 더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롯데는 경기도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과 관련해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출연했다가, 검찰 수사를 전후해 돌려받은 의혹을 사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정치·경제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대부분 기업이 2017년 계획을 짜고 공격적으로 투자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비상경영과 별도로 2016년 10월 신동빈 회장이 밝힌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을 실행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2017년 1월 기업설명회(IR)를 통해 신년 사업계획을 발표한다. 포스코는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계열사·비핵심자산 구조조정, 전사적 비용 절감, 고수익 월드 프리미엄 제품 판매 확대 등을 통해 그룹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공급과잉, 수요산업 부진, 수출 대상국의 수입 규제 강화 등으로 어려운 시장 상황을 돌파한다는 계획이다. 연초 단행하는 인사와 조직개편은 아직 구체적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권오준 회장의 임기가 2017년 3월 종료되는데, 권 회장은 2016년 12월9일 이사회에서 연임 의사를 밝힌 상태다. 연임 여부는 2017년 1월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한화그룹은 주력인 방위·석유화학·서비스·금융·태양광 등의 산업이 탄핵 정국이나 일시적 국정 공백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것으로 본다. 2017년 계획된 투자와 채용을 그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한화는 그동안 계속된 검찰 수사와 청문회 등으로 2017년 사업계획과 투자·고용 계획 수립을 다소 늦췄다. 정책적 불확실성에 따른 내수 경기 위축과 변동성 확대 등에 대비해 상시 모니터링과 사업별 영향성에 대해 면밀하게 대응하는 등 경계 수위를 한 단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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