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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딸’ 특채 이후 취업의 룰은?
[Issue]청년실업
[6호] 2010년 10월 01일 (금) 우석훈 economyinsight@hani.co.kr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시대정신’이라는 표현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회적 담론의 영역에서도 시대상이 존재하는 것 같다. 분명히 2007년 12월, 대선을 즈음한 한국의 시대정신은 정직이나 도덕성, 이런 말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경제를 외쳤고, 능력을 외쳤다. 한국은 최소한 상류층 혹은 지도층으로 시각을 맞춘다면 부패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신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그린에 나가서 골프를 치는 상위 5%의 네트워크가 한국을 지배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런 5%의 부패 행위와 결탁, 그리고 그들만의 리그에 대해 문제 삼는 분위기는 3년 전에는 없었다.
한국은 이제 건국한 지 50년이 조금 넘는 나라다. 전쟁과 격동의 세월을 거치면서 조선왕조를 형성하던 지배계층은 친일파로 변해 자신을 보존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해체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자리를 부동산을 매개로 한 새로운 계층이 차지하게 됐는데, 나름대로는 전쟁도 없는 안정된 기반 위에서 한국에서 새로운 지배계급이 등장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같다. 이회창은 대선에서 이를 ‘메인 스트림’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일부는 이 말을 한 번도 대통령을 배출한 적이 없는 ‘경기고 출신’이라는 말로 이해했다. 어쨌든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전후로 한 이 시기에 지배층이 어느 정도는 형성된 것 같고,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배층은 완전히 공고해진 것 같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신자유주의’라는 말로 표현하려 했던 것 같은데, 부동산을 매개로 작동하는 특수한 ‘토건 경제’라는 점에서 외국의 신자유주의와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양극화’라는 표현도 시도했는데, 이것도 중산층 붕괴는 설명하지만, 지배층의 형성 과정을 잘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일본에서 주로 사용하는 ‘격차사회’라는 개념이 좀더 입에 달라붙지만, 역시 빈곤화는 잘 설명하지만 그 반대편에서 새로운 귀족이 등장하는 현상을 정확하게 반영하지는 못한다.
 
   
2007년 서울의 한 고시학원에서 서울시 지방공무원 임용 필기시험을 앞두고 학생들이 모의고사를 치르고 있다.

귀족층이 넘보지 못한 ‘공채’ 
하여간 내가 가지고 있는 가설은 새로운 귀족층이 한국에서 형성되는 중이고, 이들의 2세가 이미 대학은 물론 대기업과 언론사 등 한국의 의사결정에 관여된 주요한 직책을 차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곳이 공직사회와 공기업이다. 이곳에 쉽게 살아온 한국의 귀족 2세들이 잘 접근하지 못했던 이유는, 어쨌든 ‘고시’라는 형태로 수년간의 시험을 준비해야 들어가는데, 이건 쉽게 살아온 사람들이 간편하게 매수로 넘어갈 수 있는 장벽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전 같은 공기업은 특채 제도라는 것이 아예 없고, 역시 만만치 않은 입사시험이라는 벽을 넘어야 한다. 물론 ‘박사 특채’라는 제도가 있고 3급 이상 공무원에 대해서는 개방직으로 문호가 일부 개방됐지만, 신귀족 2세들이 들어가기에는 역시 좁은 문이다.
그러는 사이 ‘20대 취업’이라는, 몇 가지 한국 경제의 특수성이 결합돼 생겨난 고질적인 문제가 한국 경제의 근본 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의 파토스를 가장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문제는 대학 입시와 아파트 가격, 두 가지였다. 대학 입시는 사교육 등 이른바 ‘대치동 권력’과 연결되고, 아파트는 토건 경제를 작동시키는 가장 직접적인 메커니즘이다. 이 두 가지는 경제 문제이면서 동시에 정치를 움직이는 힘이었다. 어떤 정권도 대학 입시와 대학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건드리지 못했고, 아파트의 힘 앞에서는 비굴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대선에서 고배를 마셨던 정동영 후보가 바로 직후의 총선에서 뉴타운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사실 그랬다. 이 속에서 취업 정책이라는 것은, 별 유효성이 없다고 이미 증명된 대책들을 새로운 껍데기로 재포장하는 것에 불과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20대가 보여준 기이한 침묵은 정말로 불가사의했다. 놀랐던 경우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공공인턴 등 인턴제를 도입한 시절이었다. 분명히 효율적이지도 않고 비정규직 노동 방식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 분명했는데, 청년들은 불만은 있지만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반응이 없었다. 두 번째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대졸 초임자 임금이 직장마다 20~30% 삭감됐는데, 기존 취업자의 임금은 노조에 의해 보호됐다. 어떻게 보면 이 현상이야말로 ‘세대 결탁’이라고 할 정도로 악질적인 사건이었다. 그 뒤로 취직하는 대졸자들은 전해에 취업한 사람들과는 다른 임금 테이블에 따라 임금이 계산된다.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20대 취업자의 월급을 떼어서 20대 인턴들의 10개월 미만의 임시 임금을 지급한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20대 노동자가 몽땅 뒤집어쓴 형국이다. 그러나 당장 자신들의 미래 소득이 삭감된 취업준비생들 내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들은 너무 바빴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 황당한 구조 속에서 분노마저 잃은 것일까? 나는 자본주의 내에서 자신들의 경제적 운명에 대해 이렇게 무감각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서 정말 놀랐다.
 
‘공시족’ 사상 첫 집단 움직임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 사건’이 벌어진 날, 나는 결국 장관이 물러나게 될 것임을 예감했고, 예전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어떤 것이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김대중 정권을 무기력하게 만든 ‘옷 로비 사건’이 이와 비슷한 사회적 파토스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사건 자체는 대수롭지 않겠지만, 온 국민이 고통을 분담하고 있을 때, 그것도 민주화의 공로로 정권을 차지한 사람들이 그런 짓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로비의 규모와 성격과 상관없이 정권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이어서 터진 ‘홍삼 트리오 사건’과 함께 김대중 정권은 식물정권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널리 퍼진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채 사건을 패러디한 동영상의 한 장면.

사건의 전모는 단순하다. 장관의 딸을 계약직 5급으로 특채한 사건인데, 당연히 그 과정에서 편법이 난무했다. 5급 사무관 한 명을 잘못 뽑았다고 해서 국민경제에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물론 기안권을 가진 중앙부처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리한 일이기는 하지만, 본인들은 이 사건이 정년이 보장되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 계약직이라는 점에서 별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건의 여파는 대단했다.
언론을 통해서 사건이 알려진 주말이 지나지 않아서 장관은 사퇴를 했다. 그리고 일주일 내에 다른 부서로 감사원의 감사가 확대됐다. 그리고 아마도 해방 이후 단 한 번도 집단행동을 하지 않던 이른바 ‘공시족’들이 집단 움직임을 보였고, 고시촌에는 행정고시 폐지를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행시를 폐지하고 50%까지 전문가 특채를 하려고 했던 행정안전부의 조치가 없던 일이 되었다.  
마침 맞물려 있던 ‘공정한 사회’라는, 정권 후반기를 맞아서 새로 채택한 국정 운영 기조와 총리 후보자 등이 도덕성 논란으로 사퇴한 인사청문회의 여파라고 설명하기에 유명환 전 장관 딸 사건의 파장은 너무나 컸다. 작게 보면 정권의 도덕성 문제지만, 넓게 보면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고위 공직자를 포함한 한국의 지배층이 지난 시간에 보여준 행태에 대한 대중의 분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의 파장과 ‘에너지’는 전무후무했던 것 같다. 이 정도 규모로 국민들이 대통령을 압박한 사건은, 아마 1966년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 이후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도대체 무엇이 이 사건에 이토록 강렬한 에너지를 부여한 것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구조화된 청년실업 문제와 ‘기회 균등’이라는 오래된 테제를 만나게 된다. 기회 균등을 박탈당한 ‘공시족’ 등은 단지 자리 하나지만, 이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청년실업의 문제는 대입과 아파트를 넘어서는 시대의 파토스 1번이 됐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업 대책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던 청년들이 반칙으로 자신의 기회가 박탈당한 순간에 목소리가 터져나온 셈이다.
 
점수 vs 스펙, 그리고 정당성
자리는 한정됐는데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넘쳐난다면 당연히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원칙적으로는 사회적 일자리와 일자리 나누기 등 노동에 대한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겠지만, 그것들은 장기적 대책이고 당장 졸업하는 학생들에게는 먼 곳의 이야기이기는 하다. 어쨌든 이렇게 경쟁이 치열해지는 과정에서, 한 가지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우리는 운영하는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시험도 전부 객관식으로 바꾸어 컴퓨터가 채점할 때에만 비로소 안심하는 나라였다. 그로 인한 폐해가 만만치 않지만, 사람을 믿는 것보다는 컴퓨터를 믿는 게 낫다는 나라였다. 그렇게 점수는 한국의 질서가 되었다. 그러나 ‘상징적 자본’이 한국에서도 본격화되면서 점수 대신 ‘스펙’이라는 비인간적 단어로 표현되는 경력과 자격증으로 채용 방식이 전환되고 있다.
대학 입학사정관에서 ‘취업 5종 세트’ 등의 말로 불리는 취업자 스펙이 그런 변화 속에서 등장한 것이다. 여기에 단순한 시험 점수가 아니라 입학 자격부터 경험 자격까지, 그런 상징적 자본을 ‘전문가’로 포장하는 로스쿨, 외교아카데미, 그리고 공무원 특채까지 그렇게 전환하는 방식으로 채용 시스템이 바뀌는 중이다.  
물론 점수도 요즘은 어느 정도는 돈이다. 각종 고시학원은 결코 싸지 않은 비용이 드는데, 돈이 많은 편이 점수를 잘 받는 데도 유리하다. 점수로 배치가 결정되는 사법연수원에서도 사교육이 등장한 상황이니 점수라고 해서 부의 편차에 따른 영향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스펙은 완전히 다르다. 외교통상부가 말한 기타 외국어와 경력 등은 국내에서 태어나 국내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가질 수 없는 기회다. 경제적·정치적 지배층에게 유리한 스펙 방식이냐,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열려 있는 점수 방식을 선택할 것이냐, 그 문제가 청년실업 위기가 클라이맥스로 가는 와중에 터져나온 것이다.
문제의 양상이 실업이라는 ‘시대 파토스’였다면, 그 문제의 본질은 하버마스가 지적한 ‘정당성’(Legitimacy)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지금의 고위 공무원과 지배계급에게 그들이 하는 일을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시를 폐지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지만, 우리는 입학사정관을 포함한 면접관들의 정당성을 지금 믿을 수 없고, 그들이 가난한 집 자식이라도 ‘열심히 살았다’고 인정해줄 것이라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정성의 문제를 뛰어넘는 정당성의 문제, 지금 정권과 지배층은 이 정당성의 문제에 부딪힌 셈이다.
별수 있겠는가? 점수제의 폐해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국민에게 정당성을 획득할 때까지 스펙보다는 점수제를 운용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취업준비생들이 스펙을 준비하는 것은,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서가 아니라 그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시대의 파토스가 된 취업 문제, 그리고 한 번도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의사결정자 그룹, 그 사이의 격차가 유명환 전 장관 딸 사건으로 터져나온 셈이다. 행정에는 ‘어떻게 하느냐’ 못지않게 ‘누가 하느냐’의 문제가 크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이 되려나? 국민들이 드디어 ‘정당성’이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탈정치화된 집단으로 비치던 청년들이 말이다. 시대의 파토스가 ‘파괴의 신’ 타나토스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질서를 잉태하는 ‘사랑의 신’ 에로스가 될 것인가? 우리는 분노한 청년들의 거대한 에너지와 함께 시스템의 분기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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