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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배구조 개선, 혁신의 시작이자 끝
[국내 이슈] 새해 구조조정 전망과 과제
[81호] 2017년 01월 01일 (일) 권순우 progres9@naver.com

‘오너 체제’에선 자발적 노력 어려워… 워크아웃·회생 결합한 ‘P플랜’에 그나마 기대

2017년 새해에는 위기에 몰린 대우조선과 중소 조선사들을 어떻게 살리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지금으로선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한진해운 퇴출 과정에서 드러난 구조조정의 문제점도 개선이 시급하다. 법원의 회생 절차와 채권단의 워크아웃을 결합한 ‘P플랜’이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P플랜이 만능은 아니다. 오너 중심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 없는 한, 기업의 자발적 혁신과 구조조정은 기대하기 어렵다. 경제는 침체 늪에 빠지고 기업들의 경쟁력은 떨어지는 지금, 기업지배구조 개선만큼 시급한 과제는 없다.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경제금융부 기자
 
#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대우조선 
째깍째깍. 대우조선해양이 기로에 서게 될 회사채 만기일이 다가오고 있다. 대우조선이 2017년 갚아야 할 회사채는 9400억원이다. 4월이면 44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다가온다. 7월에 3천억원, 11월에 2천억원을 갚아야 한다. 대우조선은 회사채를 갚을 돈이 없다. 우선 4월 회사채를 갚으려면 경남 거제시에 있는 사원아파트와 기숙사 등 부동산을 팔아야 한다. 그래도 7월에 돌아오는 3천억원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
 
대우조선이 돈을 마련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선박을 신규 수주해서 계약금을 받거나 다 지은 선박을 선주에게 인도하고 잔금을 받는 것이다. 2016년 9월 1조원 규모의 시추선을 인도하기로 했던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난골은 아직 배를 가져가지 않고 있다. 돈도 없을뿐더러, 유가가 낮아 시추선을 인도해봐야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시추선을 덜컥 인도했다가는 소난골이 다시 부도가 날 수도 있다. 서로의 생존이 걸린 치열한 줄다리기가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다.
 
2016년 말 국내 조선업계에 대형 수주 소식이 전해졌다. 현대중공업은 약 13억달러(약 1조5천억원)의 대규모 수주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삼성중공업도 2017년 초 최대 9천억원 규모의 선박 계약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은 12월18일 5개월 만에 2천억원대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 일감 자체가 없는 중소 조선사 
SPP조선 직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2017년 3월까지 짓기로 한 선박을 다 만들고 나면 조선소는 문을 닫는다. 현재 신규 수주는 ‘0’이다. 채권단은 SPP조선에 빌려준 약 1조4천억원의 대출 회수를 포기하고 모두 충당금으로 쌓았다. 배를 지어봐야 손해니 채권단은 문을 닫고 인수자를 구해볼 계획이다. 
 
성동조선과 대한조선도 마찬가지다. 두 조선사는 1년6개월 정도 짓는 수주 잔량을 가지고 있다.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남을지 계획이 없다.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서 신규 주문이 들어오길 기도할 뿐이다. 신규 수요가 생기더라도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중국 조선사와의 가격 경쟁에서 이길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 현대상선의 굴욕적인 협상, 생존에 감사 
현대상선이 글로벌 해운동맹 2M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뒷말이 무성하다. 2016년 초 2M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던 현대상선은 사실 동맹에 가입하지 못했다. 2016년 말 공식 협력 수준을 결정했는데 2M의 머스크-MSC가 맺은 동맹보다 얇은 고리다. 머스크와 MSC는 한 선사처럼 운영되는 ‘선복 공유’ 방식으로 동맹을 맺고 있다. 현대상선은 화물 실을 공간을 사는 ‘선복 매입’, 공간을 빌리는 ‘선복 교환’ 방식으로 협력 관계를 맺었다. 2M과 ‘전략적 동지’라는 어중간한 이름을 달게 됐다. 약한 동맹이라도 유지하려고 2M의 시장점유율을 위협할 수 있는 큰 선박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한진해운의 우량 자산인 롱비치터미널도 MSC에 넘기기로 했다. 사실상 동맹 퇴출 격이라는 비판에 현대상선은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했다”고 자평했고 금융 당국은 생존했다는 데 안도했다. 이러려고 세계 7위 업체인 한진해운을 포기하고 16위 업체인 현대상선을 살렸나 자괴감이 든다.
  
   
▲ 2016년 12월2일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계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종로구 계동 현대중공업 사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조선업계 구조조정과 고용 안정은 2017년 중요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구멍 난 구조조정에 빠진 한진해운
대한민국은 왜 한진해운을 포기해야 했나? 한진해운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조조정 제도의 공백이 드러났다. 한국은 금융 당국이 주도하는 워크아웃과 법원이 주도하는 회생 절차, 두 제도를 가지고 있다.
 
워크아웃은 채권자 중 은행의 대출만 깎아주는 제도다. 회사채나 협력업체 구매 대금 같은 상거래 채권은 탕감하지 않는다. 기업 부채의 대부분은 은행 대출이기 때문에 그것만 깎아줘도 자금 사정은 훨씬 나아진다. 협력업체의 구매대금 등은 모두 갚아주기 때문에 거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연쇄 도산도 막을 수 있다.
 
은행 대출 외에 다른 빚이 많으면 워크아웃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 없다. 은행 대출을 탕감해줘도 다른 빚을 갚느라 망하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은 선박을 빌린 대가로 줘야 하는 용선료, 상거래 채권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정부가 한진해운에 자금을 지원하면 그 돈은 고스란히 해외 선주사로 빠져나간다. 해외 선주사의 주머니를 국민의 세금으로 채워줄 수는 없었다.
 
회생 절차는 모든 채무를 법원의 명령에 따라 강제로 조정한다. 은행 대출뿐 아니라 상거래 채권, 해외 채권 등 모든 채권이 조정된다. 악성 장기용선계약도 회생 절차에선 끊어버릴 수 있다. 매우 강력한 방식이지만 기업 경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순간 해운동맹에서 퇴출됐다. 해외 선주들은 한진해운에 빌려준 선박을 나포했고 항만들은 한진해운 선박의 화물을 받아주지 않았다. 컨테이너 선사인 한진해운에 법정관리는 곧 파산이었다. 채무조정 권한은 강하지만 경영에 타격을 주는 회생 절차, 경영을 도울 수는 있지만 채무조정 권한은 미약한 워크아웃. 한진해운은 그 공백 사이로 흘러내렸다.
 
금융 당국은 한진해운 퇴출을 계기로 워크아웃과 회생 절차의 장점을 합친 ‘한국형 프리패키지, P플랜’을 도입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P플랜은 법원과 채권단이 참여하는 일종의 합동작전이다. 우선 채권단이 채무재조정과 신규 자금 지원 계획을 세운 뒤 기업을 법정관리로 보낸다. 법원은 계획에 따라 신속하게 채무재조정을 마치고 회생 절차를 종결한다. 채권단은 채무조정이 끝난 기업을 다시 받아 워크아웃 프로그램으로 지원한다. STX팬오션의 경우 법원이 악성 장기용선계약 등을 전방위적으로 채무재조정 하고, 산업은행이 자금을 지원하는 합동작전을 펼쳐서 살렸다. P플랜은 이 방식을 좀더 체계적으로 제도화하려는 것이다.
 
P플랜이 본격 도입된다고 해서 만능열쇠가 생긴 것은 아니다. 제도보다 중요한 건 기업 경영 환경 변화에 맞춰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다. 경쟁력이 약한 사업은 정리하고 경영진이 무능력하다면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 경쟁력 높은 기업이 부실한 경쟁기업을 인수해 합병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악성 계약, 부채 때문에 구조조정 제도에 기댈 수 있다.
 
한국 기업의 구조조정은 ‘막장’이다. 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인 오너는 끝까지 부실을 숨기려 하고, 이 과정에서 장부를 조작하기도 한다. 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받은 기업의 이전 3년간 평균 자산경상성장률은 -200%가 넘고 매출액 영업이익률도 -150%였다.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고 그때에야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는 의미다. 3년 연속 이자보상비율이 100% 이하인 기업이 2008년 8.2%(1646개)에서 2015년 11.2%(2474개)로 늘어났다. 번 돈으로 은행 이자도 내지 못하는 기업이 이렇게 많은데 선제적 구조조정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소유와 경영이 결합된 기이한 한국형 기업지배구조의 영향이 크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경우 회사를 부실하게 만든 경영자는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회에 의해 퇴출된다. 애플은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도 쫓아냈다. 새 경영진은 새로운 마음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소유주가 경영하면 부실 책임을 물어 쫓아낼 수가 없다. 채권단이 압박해도 오너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동부그룹, 현대그룹, STX그룹 등 구조조정 대상이 됐던 기업들의 오너는 끝까지 사익을 추구했다. 구조조정 절차에 돌입하면 채권단, 법원의 통제를 받게 된다. 대주주는 지분이 소각되거나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고 사재 출연 압박도 받는다. 버티면 버틸수록 더 많은 급여를 뽑아내고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또 다른 사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데 누가 미리 구조조정을 하겠는가.
 
   
▲ 한진해운 퇴출 과정에서 드러난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개선할 대안으로 법원의 회생 절차와 채권단의 워크아웃을 결합한 ‘P플랜’이 주목받는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016년 10월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머리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집단, 재벌로 가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한 회사가 힘들어지면 구조조정을 하는 대신 다른 계열사의 내부 지원으로 연명한다. 상장회사라면 우량 계열사가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것은 배임이다. 하지만 순환출자 등으로 공고하게 계열사를 지배하는 재벌 대주주에게 ‘아니요’를 말할 수 있는 주체는 없다.
 
가장 효과적인 구조조정은 이해관계자들이 견제와 균형을 통해 스스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이다. 경영을 잘못하면 경영진을 교체하고, 지배주주가 잘못하면 나머지 주주들이 연합해 지배주주 그룹을 쫓아낼 수 있어야 한다. 형편이 좋은 기업이 부실한 경쟁기업을 인수해 시장 장악력을 높일 수도 있어야 한다. 언제든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야 지배주주와 경영진이 선제적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선제적 구조조정이 작동하려면 뿌리 깊은 한국형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돼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당장 경제성장률이 눈에 띄게 낮아지고 기업들의 운명은 풍전등화인데, 기업지배구조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답은 명료한데 해결은 난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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