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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채용을 강제하라
[Issue]청년실업
[6호] 2010년 10월 01일 (금) 김성희 economyinsight@hani.co.kr

김성희 고려대 연구교수·경제학
 
1999년 칸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은 벨기에 영화인 <로제타>에 돌아갔다. 청년 실업자인 로제타의 고단한 삶을 그린 영화다. 로제타는 공장에서 기간 만료로 해고되고 어렵사리 취업하지만 3일 만에 다시 해고된다. 당시 심각했던 벨기에와 유럽 전역의 청년실업 현실이 그려진다. 곧이어 벨기에 정부는 이 주인공의 이름을 딴 ‘로제타 플랜’이라는 청년실업 정책을 발표한다. 실업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와 기업의 공동 책임이라며 기업에 청년실업 의무고용제를 적용하는 ‘적극적 복지국가’ 방안이다.
 
   
2009년 3월 프랑스의 구직자들이 마르세유 기차역에 있는 ‘고용과 기회균등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취업 면접을 위해 줄을 서 있다.

2000년 벨기에 청년실업자 의무고용 시행
서구 국가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우리보다 앞서 심각한 청년실업을 경험하면서 여러 정책 실험에 주력했다. 청년실업자에게 교육과 훈련의 의무를 부여해 개인의 고용 가능성을 높이는 ‘학습을 통한 복지’(Learnfare) 정책이 주축이었다. 전통적 복지국가 체계에서 실업수당 지급과 같은 소극적 실업 대책이 중심이었다면, 수급 자격을 교육·훈련과 연계해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노동 연계 복지’(Welfare to Work)를 적극적인 고용정책으로 표방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취업하려고 해도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현실에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런 고용 전략은 소극적 미봉책에 불과했다.
1990년대 말 벨기에의 청년실업 문제는 심각했다. 졸업한 지 6개월이 안 된 13만3천 명 중 7만2천 명이 실업 상태였으며, 청년 무직자는 22.6%였다(유럽연합 국가 평균 18.3%). 이런 상황에서 1999년 9월 벨기에 사회민주당의 고용노동부 장관 로레트 옹켈랭스는 종업원 25명 이상 기업의 경우 의무적으로 한 해 동안 기존 종업원 25명당 1명의 청년실업자를 새로 고용하도록 하는 로제타 플랜을 제출했다. 총 고용 인원의 4%에 해당한다. 이후 2000년에 시행된 벨기에의 청년실업자 의무고용제는 사용자들의 반발로 ‘기업 규모 기준 50명 이상 3% 의무고용’으로 기준을 완화했다.
로제타 플랜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청년실업자가 실업의 덫에 갇히지 않도록 고용 서비스를 맞춤식으로 제공하면서 학교 방문 캠페인을 벌이는 ‘사회 통합의 길’(Pathways to Integration)이다. 둘째는 의무고용제를 도입하는 ‘최초고용협약’(First Job Agreement)이다. 최초고용협약 대상은 학업을 마친 지 6개월 이내의 18∼25살 청년실업자를 중심으로 해 점차 25살 이하 전체와 30살 이하까지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된다. 이런 구성은 대상을 포괄적으로 설정함으로써 실업자가 경험할 수 있는 ‘낙인 효과’를 방지하고 동시에 고용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신규’ 실업자를 축으로 우선순위에 차등을 둔 것이다.
고용협약의 내용은 세 가지다. 첫째, 정규직, 기간제 또는 정규직 노동시간의 절반 이상을 일하는 시간제(파트타임) 고용이다. 의무고용 비율 3%는 정규 노동시간으로 환산해 적용된다. 둘째, 시간제 고용과 교육·훈련을 결합한 고용 계약이다. 셋째, 자영업이나 전문 직업의 견습 고용 계약이다. 모든 협약에서 고용 기간은 최소 1년 이상이다. 1년 이내의 불안정 고용은 배제된다. 1년 이상의 기간에서 취업과 실업의 쳇바퀴를 도는 ‘회전문 효과’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지만, 단기적인 부정적 효과는 완전히 차단하는 셈이다. 또한 기간이 오래될수록 재정적 인센티브를 높여 2년, 3년의 장기 계약을 유도하고 있다.

실업은 사회의 공동 책임
의무고용제 방식에 대한 사용자들의 반발은 거셀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벨기에 정부는 ‘사회적 공동 책임’이란 자세로 책임과 권리의 조화를 실현해야 한다며 재정 지원 방안과 제재 방안을 함께 도입했다. 즉, 기업들은 의무고용이라는 책임을 감수하는 대신 의무고용 비율을 채울 경우 분기당 2만벨기에프랑(약 58만원)의 사회보장부담금 감면 권리를 갖는다. 유인책과 함께 견인책도 마련됐다. 의무고용 할당량에 미치지 못할 때 의무고용제에 미치지 못하는 인원 수만큼 1인당 매일 벌칙금 3천벨기에프랑(약 8만7천원)씩 기업에 부과했다. 이런 견인책이 같이 작용하면 ‘지원+제재’의 복합 효과가 나타난다. 유인책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 마련에도 견인책으로 부과된 벌칙금이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실업은 사회의 공동 책임이므로 고용 의무를 다하면 재정 지원의 권리를 갖는 반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을 경우 제재가 뒤따르는 사회가 요즘 회자되는 ‘공정한 사회’일 것이다. 물론 경제적 곤란을 겪는 기업에는 의무고용 적용이 면제되는데 그 비율은 4% 정도라고 보고된 바 있다. 반면에 적용 대상이 아닌 50명 미만 중소기업의 자발적 참여가 활발하게 나타났다. 이 경우 세금 감면 혜택을 받게 된다.
로제타 플랜을 통한 최초고용계약 실적은 2000년 첫해에 5만 명 이상이었고, 2004년에는 벨기에 국적자 6만5926명, 외국인 4324명, 장애 청년 378명이었다. 2001년까지 누적 고용 효과는 20만 명 수준에 이르렀다. 필자가 로제타 플랜을 변형해 한국에 적용해본 결과, 100명 이상 기업에 총 고용 인원의 5% 의무고용제를 도입하면 2005년에 14만1533명의 청년실업자를 고용할 수 있다. 이 수는 당시 청년실업자의 약 50% 수준이며, 넓은 의미의 청년 무직자 70만 명의 20%에 해당한다. 50명 이상 기업에 적용하면 20만 명 이상이 고용된다. 벨기에처럼 자발적 참여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방안을 도입하면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청년실업 얘기만 나오면 고용 서비스 인프라 확충과 교육·훈련만 강조해왔는데, 이런 처방은 실현되지 못할 공염불에 그쳐왔다. 
물론 로제타 플랜 정책의 고용 효과와 관련해 논란도 많았다. 의무고용제도가 없어도 청년을 고용할 기업이 지원금을 받아 고용함으로써 순고용 효과는 낮아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나 벨기에 고용노동부의 분석에서 로제타 플랜의 고용 효과는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벨기에 경제가 심각하게 침체된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책 효과는 더 높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정부 관료들과 사용자들은 “장애인 의무고용제 등 의무고용 관련 정책이 이미 수십 가지나 존재한다”며 로제타 플랜 같은 강력하고 적극적인 청년실업 해결책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의무고용제의 경우 벌칙금을 내고 마는 기업이 대부분이고, 다른 의무고용제는 형식적인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
벨기에 고용노동부의 조제프 레미는 “로제타는 바늘구멍 같은 구직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일자리를 훔칠 권리라도, 또 해고 결정을 내리는 사용자에게 대항할 권리도 가져야 한다. 로제타는 빈곤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일상적 고투의 상징이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저성장과 ‘고용 없는 성장’의 시기에 신규 채용, 특히 청년층 신규 채용을 기피하는 기업들에 고용을 단순히 유도하는 정책으로는 만연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청년고용 의무를 부과하면서 강력한 유인과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처방이 유력한, 거의 유일한 대안일 수 있다. 투자 확대가 고용으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는 청년실업을 완화할 수 없다. 안전망이 없는 사회로 청년들을 계속 밀어내면서 실업을 개인 탓으로만 돌리는 건 기성 세대의 폭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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