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 Culture & Biz
     
드라마 쓰는 로봇 등장할까
[Culture & Biz] 인공지능과 창의성
[81호] 2017년 01월 01일 (일)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인공지능(AI) 로봇이 작가들의 작품 속에 담긴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까지 표현해낼 수 있을까. 흔히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학습해 문제를 풀기 때문에 암기와 데이터 해석에는 탁월하지만 창의적 발상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는 인공지능이 예술적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이야기 구조가 정형화된 소설과 드라마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여러 이야기 구조를 ‘창의적’으로 조합해 인간이 가장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국 문화산업 시장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큰 이슈가 생기면 영향을 많이 받는다.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행사가 있으면 영화나 공연, 출판 흥행이 바로 줄어드는 것이다. 영화사, 출판사, 공연사들은 이런 때를 피해 개봉이나 출간 시기를 조정한다. 2014년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한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도 문화산업 시장은 바로 영향을 받았다. 영화, 연극, 뮤지컬을 보지 않는 것은 물론 책을 사보는 것도 줄었고 쇼핑 액수도 줄었다. 여가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돈을 내는 문화산업의 특성상, 즐거움을 느끼려는 욕구가 줄면 구매 활동도 위축된다.
 
최근 일련의 탄핵 국면 역시 문화산업 시장에 적잖이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매주 토요일 대규모 집회에 몇백만 명씩 몰려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영화보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오니 영화나 공연을 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최근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등 한류 규제까지 이어져 문화산업 종사자들은 올겨울이 더 춥게만 느껴질 터다.
 
하지만 대중이 스트레스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는 어렵다.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 적절한 해소 방법을 찾는데 텔레비전 시청이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기존 미디어 연구에서도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는 시기에 텔레비전용 성인물 수요가 높아진다는 분석이 있다. 따로 어딘가를 찾아가기보다, 집에서 홀로 텔레비전 성인물을 보며 스트레스를 조용히 해소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해석이다.
 
나 역시 이런 시국 분위기에 다른 문화 활동을 즐길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머릿속 복잡함을 풀고 싶은데, 고맙게도 마음잡고 볼 만한 드라마들이 생겼다. 인어공주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와, 도깨비 설화를 채용한 드라마가 바로 그것이다. 두 드라마 모두 최근 인기를 끈 대표적 드라마작가의 작품답게 쫄깃한 대사와 화려한 볼거리를 유감없이 보여줘 시청자로서 기대가 크다.
  
   
▲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로봇이 데이터 분석을 넘어 예술적 창작 활동을 하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본다.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인공지능 ‘알파고’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왼쪽) 딥마인드 최고경영자 (CEO)가 2016년 3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UTERS
 
전작과 다르지 않은 스토리
일부에선 이 드라마들이 작가의 전작과 너무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전자의 경우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했지만, 작가의 전작 <별에서 온 그대>의 남녀 주인공 성별만 바꿔 엇비슷한 스토리 구조로 진행된다고 이야기한다. 
 
후자의 경우도 도깨비 설화를 가져왔으나, 유복하지만 사연 많은 남주인공과 가난하지만 역경을 이겨내려는 여주인공의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이라는, 작가의 전작 <상속자들> 스토리가 그대로 유지된다. 여기에 남주인공과 브로맨스(브러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를 합한 신조어로, 남성 간 애틋한 감정 또는 관계를 뜻한다 -편집자)를 보여주는 친구(혹은 경쟁자) 구도까지 덧붙여 전작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많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한국뿐 아니라 외국 드라마나 영화도 비슷한 측면이 많다. 스토리창작론, 주제학 등에선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즐겨 보는 스토리 속에 비슷한 이야기 구조, 즉 모티브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밝히고 이를 분류해왔다.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프렌첼의 ‘세계문학의 모티브’, 장샤를 시뇨레의 ‘문학 주제와 모티브 사전’ 등은 분류 방식에 따라 문학에 등장하는 이야기 구조를 136가지, 232가지 모티브로 분류한다.
 
이인화 교수도 ‘한국 현대소설 창작론 연구’ 등을 통해 영화·소설·신화·연극의 극적 서사를 만드는 210가지 모티브를 제시했다. 특히 이 교수는 스토리 창작 도구인 ‘스토리 헬퍼’를 개발하면서 이 모티브를 205가지로 다시 정리했는데, 그의 책 <스토리텔링 진화론>에 잘 설명돼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살펴보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미국 영화 <데이브>(1993)와 비슷한 구조다. 하지만 이 이야기도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를 만나고, 16세기 영국 민담까지 이어진다. 이 구조를 왕자와 거지, 혹은 신분 위장 모티브로 부른다.
 
한국 영화 <최종병기 활>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미국 영화 <아포칼립토>(2006)를 연상했다. 이런 요소는 <도망자>(1993)에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30년대 은행 강도와 살인을 저지르다 경찰에 사살된 남녀 2인조 갱 보니와 클라이드 사건이 이 이야기의 원조 격이다. 이를 도망자 모티브, 혹은 탈주자 모티브라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모티브 구조 205개를 분류했다.
 
205개 모티브는 단순히 이야기 구조뿐 아니라 구체적인 소재와도 연관돼 있다. 한 개인이 평생 접하는 스토리 전부를 합쳐도 100가지를 넘기 어렵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205가지는 매우 큰 수다. 우리가 이제까지 접한 모든 이야기가 205개 모티브 가운데 하나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티브 종류를 세분화한 까닭은 ‘스토리 헬퍼’라는 스토리 저작 도구 개발을 위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 구조를 유형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토리 헬퍼는 소재 중심의 기본 모티브 205개를 기본 ‘세팅(설정) 모티브’로 삼고, 여기에 이야기를 끌어가는 20개 ‘드라이빙 모티브’를 적용해 새로운 이야기 창조를 목표로 한다.
  
컴퓨터가 밝혀낸 6가지 이야기 구조
20개 드라이빙 모티브란 추구, 모험, 추적, 구출, 경쟁, 복수 등 이야기가 전개될 때 풀어내는 구조들이다. ‘연쇄살인’ 설정 모티브라도 ‘추격’이란 드라이빙 모티브가 적용되면 영화 <추격자>가 탄생하고, ‘수수께끼’라는 드라이빙 모티브가 적용되면 영화 <살인의 추억>이 탄생하는 것과 같은 형태다.
 
   
▲ 최근 일본의 한 문학상 공모전에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1차 심사를 통과하면서 인공지능의 창작 활동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함께 커지고 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고르는 시민들. 연합뉴스
물론 스토리 헬퍼로 이야기를 완성하려면 작가는 장르, 타깃, 인물 성향, 연령, 직업, 행위 유형 등 29가지나 되는 선택 사항을 모두 지정해야 한다.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지만 기본 구조를 모두 유형화해놓은 뒤 이들을 각각 선택해 다르게 조합함으로써 유사하면서도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보면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구조는 이인화 교수가 제시한 205가지보다 종류가 더 적을 수 있다. 이보다 더 단순하게 사람들의 이야기 취향을 보여주는 구조가 있을까? 이런 호기심을 최근 빅데이터 전문가들이 풀어내는 작업을 했다.
 
미국 버몬트대학과 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대학의 수학자, 통계학자, 컴퓨터과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은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소설 2천여 편이 여섯 종류의 이야기로 구분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2천여 편의 이야기 구조를 단순하게 분해하면 대략 여섯 종류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웹사이트에서 1만~20만 단어 길이로 구성된 1737편의 영문소설을 모았다. 프로젝트 구텐베르크는 고전 명작들을 전자자료로 만들어 무료 공개하는 사이트로 영어뿐 아니라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책들도 있다. 
 
그 뒤 컴퓨터가 이 작품들의 주인공 감정 흐름을 분석해 모두 여섯 구조로 분류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여섯 구조는 △거지에서 부자로(상승) △부자에서 거지로(추락) △곤경에 빠진 남자(추락-상승) △이카루스(상승-추락) △신데렐라(상승-추락-상승) △오이디푸스(추락-상승-추락)이다.
 
특히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은 ‘거지에서 부자로’ 구조였다. 전체 이야기 가운데 약 5분의 1이 이 구조에 해당했다. 인류 고금을 통틀어 작가들이 가장 많이 차용하는 이야기 구조인 셈이다. 하지만 다운로드 횟수를 통해 인기도를 분석했을 때는 ‘곤경에 빠진 남자’ ‘신데렐라’ ‘이카루스’ ‘오이디푸스’ 구조가 더 인기 있었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만나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이 구조라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다.
 
이 작업은 연구진이 미리 구조를 정해놓고 유형별로 분류한 것이 아니었다. 컴퓨터 계산능력, 자연어 처리, 기계학습(러닝머신) 등을 통해 컴퓨터가 스스로 소설을 읽으면서 이야기 구조를 분류한 결과였다. 컴퓨터는 단순히 분류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순서로 감정이 배치될 때 인기가 높아지는지 분석할 수 있다. 컴퓨터가 여러 이야기 구조를 순서를 바꿔 배치함으로써 인간이 가장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쓰는 게 어렵지 않게 된 것이다.
 
최근 일본의 한 문학상 공모전에서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로봇이 인간을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은 ‘창의성’이라고들 했지만, 그것도 사실 여러 유형을 뻔하지 않게 조합해내는 능력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드라마 쓰는 로봇이 나올 날도 있지 않을까. 신데렐라와 오이디푸스를 섞은 남녀 주인공들이 인어공주 모티브를 뒤집어쓰고 로맨스를 보여주는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써내는 로봇을 인간이 이겨낼 방법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 김윤지 연구위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