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 Finance
     
브렉시트와 트럼프, 다음은?
[Finance] 불신과 분열이 낳은 상식 붕괴 시대
[81호] 2017년 01월 01일 (일)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미국 대선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은 ‘불신의 승리’를 의미한다. 상식이 무너진 시대에 불신이 그 자리를 꿰찼다. 이제 영국과 미국에 이어 유럽으로 불신의 불똥이 옮아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침몰 위기에 처한 이탈리아가 있다. 신뢰와 신용 시스템 붕괴는 국제 경제 질서를 불안하게 한다. 최근 휘몰아치는 국가이기주의, 보호무역주의, 포퓰리즘의 바람은 모두 불신과 분열에서 비롯됐다. 인류 역사는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격변기다. 상식이 무너지는 시대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이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이를 웅변한다. 전문 여론조사마저 헛발질의 연속이다. 민심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서다. 대중은 ‘화’가 나 있다. 격정적 감정은 종종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 팽배는 합리적 선택을 방해한다. 대신 자기에게 즉각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포퓰리스트들의 허황된 공약을 선택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신뢰와 불신의 사이클 역시 마찬가지다. 포퓰리즘은 불신을 먹이 삼아 자라나 마침내 세계를 과거로 퇴행시킨다. 최소 향후 몇 년, 우린 지난 반세기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는 아니다. 이미 20세기 초 혹은 그 이전에 우리 선대가 경험했다. 바로 ‘불신의 시대’다. 안타깝지만 ‘신뢰의 시대’가 저물며 ‘분열’이 가시화하고 있다. 분열과 불신은 유럽에서 시작됐다. 영국이 진원지다. 현재 유럽 대륙은 겉으론 안정적 평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나, 내부에선 분열의 마그마가 끓고 있다. 응급처치로 겨우 메우고 있지만 그 틈은 점차 벌어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정정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일단 새 내각은 출범했다. 헌법 개혁 국민투표 부결 책임을 지고 물러난 마테오 렌치 총리의 뒤를 이어 파올로 젠틸로니 총리 체제가 2016년 12월15일 상원의 신임을 얻음으로써 출범했다. 하지만 이 투표는 포퓰리즘 성향 제1야당인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북부동맹이 투표를 거부한 가운데 진행됐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경제는 정치 행위의 결과물이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는 그리스 스타일의 은행, 부채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이 전망이 전혀 놀랍지 않다. 우리가 이탈리아라 부르는 국가는 소규모 도시국가들의 연합 성격을 벗어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결속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산적해 있다. 안정적 뱅킹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그 목록 맨 위에 자리한다. 이탈리아는 이 과업을 수행할 능력이 거의 없다.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뒤부터 현재까지 65개 정부를 탄생시켰다. 각 정부의 평균 존속 기간은 겨우 1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안정적·지속적 경제 운용은 불가능하다.
  
   
▲ 최근 심각한 정쟁 속에 침몰 위기에 처한 이탈리아가 유럽 분열을 부추기는 핵이 되고 있다.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신임 총리가 2016년 12월15일 로마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UTERS
 
유럽 분열의 핵, 이탈리아
정치 불안은 경제에 직격탄을 날린다. 이탈리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95년 이래 지속적으로 유럽연합 평균을 하회하고 있다. 유럽연합 평균 역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잠시 하락했지만 2009년부터 상승했다. 이탈리아의 1인당 GDP는 회복되기는커녕 추락하고 있다. 이 성적은 유로존에 가입하기 전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탈리아는 유로존 가입 전에 지속적으로 자국 통화인 ‘리라’를 절하해왔지만 그로 인해 GDP 성장은 독일만큼 빨랐다. 실제 경제가 추락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유로를 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이탈리아는 1960∼70년대 경제 기적을 이룬 국가 중 하나였다. 디자인과 제조업에서 세계 최강이었다. 은행 역시 강했다. 이런 나라가 침몰하고 있다.
 
경제적 난국은 이탈리아 은행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은행이 보유 중인 여신 중 약 18%가 무수익여신, 다시 말해 악성 채권으로 파악된다. 2015년 말 기준으로 3600억유로(약 460조원)에 달한다. 세계 어느 나라 은행이든 불량 채권을 갖지 않은 경우는 없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까지 보유한 곳은 거의 없다. 여신은 은행의 주요 자산이다. 한데 자산의 5분의 1이 불량 상태다. 은행은 악성 채권에 대해선 대손상각을 통해 손실 처리를 해야 한다. 손실이 커지면 당연히 신규 자본이 투입돼야 한다. 이탈리아 은행이 적정 자본 규모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돈은 약 400억유로(약 50조원)로 추산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방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BMPS)는 50억유로, 이탈리아 최대 은행 유니크레디트는 130억유로의 자본을 조달하려 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누가 위험한 은행에 돈을 투자하려 하겠는가. 이들의 자본조달 전망은 극히 부정적이다.
 
설상가상으로 은행 예금과 자본은 이탈리아를 탈출하고 있다. 유럽연합 은행 간 결제·청산 시스템인 TARGET2 (Trans-European Automated Real-time Gross Settlement Express Transfer System 2) 추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탈리아의 TARGET2 잔액은 2010년까지 플러스를 보였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현재 마이너스 20% 수준을 하회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빠져나가는 돈이 들어오는 돈보다 훨씬 많다는 얘기다.
 
이탈리아 정부는 세금을 동원해서라도 위기에 처한 은행을 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원칙적으로 유럽연합은 납세자 돈으로 은행을 살리는 구제금융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는 2014년 11월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공동선언문에 규정된 사항이다. G20은 일단 구제금융(Bail-Out) 대신 내부 구제금융(Bail-In) 방식을 선택했다. 내부 구제금융 방식은 부실은행의 자본 확충에 불특정 다수의 세금이 투입되는 것이 아닌, 해당 은행의 채권 보유자와 예금자가 책임지는 것을 말한다. 내부 관련자의 자금이 강제로 은행 주식으로 전환되는 방식이다.
 
설사 유럽연합이 구제금융에 동의하더라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4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더라도 이탈리아 은행의 회생은 여전히 의문이라는 게 문제다. 이탈리아 은행이 발행한 은행채는 2400억유로에 달한다. 거기다 천문학적 무수익여신은 성장이 가시화하지 않는 한 여전히 이탈리아 은행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구제금융이 당장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언제든 다시 문제가 불거져 또 다른 구제금융을 불러올 것이다. 그리스를 생각하면 된다.
 
2016년 12월15일 유럽연합은 107조원가량의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에 대해 부채 경감 중단을 결정했다. 그리스 정부가 저소득층 연금 지급을 늘리겠다고 결정한 것에 대한 대응이다.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인 그리스가 연금 지원액을 늘리겠다는 걸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이탈리아가 유럽중앙은행(ECB)의 구제금융을 받는 순간 이탈리아의 정책 상당 부분은 유럽연합 손아귀에 놓이게 된다. 
 
사실상 독자적 주권 행사가 불가능하다. 이탈리아는 그리스와 다르다. 대국이다. 과연 이탈리아가 이를 수용할까. 이탈리아의 선택을 전망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화난 대중은 ‘포퓰리스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이는 분명 유럽 대륙 분열의 씨앗이 될 것이다. 이탈리아는 현재 유럽중앙은행의 채권 매입 덕분에 버티고 있다. 이탈리아 대중이 포퓰리즘을 선택하면 유럽중앙은행은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등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이는 곧 유럽 대륙 분열을 의미한다.
  
   
▲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불신과 분열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2016년 12월1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트럼프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시위하고 있다. REUTERS
 
분열과 불신의 대가
신용은 신뢰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기원한다. 신뢰와 신용은 그 뿌리가 같다. 신용처럼 신뢰는 건설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무너지는 건 순간이다. 우린 20세기에도 이것을 목격했다. 1920년대 대공황, 1970∼80년대 신뢰의 정점은 마침내 붕괴했다. 이 기간에 많은 국가들이 ‘디폴트’에 처했다. 이 모두는 신뢰 대신 불신이, 협력 대신 불화가 깊어지면서 발생했다.
 
대공황은 좋은 예다. 대공황은 단순히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붕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뒤 세계는 단절되고 새로운 무역장벽이 조성됐다. 전쟁 이후 각국의 영토는 경제적 고려를 무시한 채 ‘민족자결’ 원칙에 따라 분할됐다. 이에 기존 경제 관계가 단절되고 새로운 무역장벽이 생겨났다. 대대적 신뢰·신용 시스템 붕괴는 전후 국제 경제 질서에 큰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 현재 불고 있는 국가이기주의, 보호무역주의, 포퓰리즘 창궐 모두 당시와 너무 닮았다.
 
최근 금융위기를 그나마 진정시킬 수 있었던 힘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깊은 협력이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한데 2016년이 지나면서 신뢰 사이클은 깊은 골로 추락하고 있다. 트럼프의 승리, 브렉시트는 불신의 승리를 의미한다. 이 정도면 다행일 수 있다. 유럽 대륙에서도 이런 흐름이 감지된다. 이탈리아는 그 핵심에 있다.
 
경제적 파국은 극단적 정치를 불러온다. 극단적 정치는 내부 문제를 어떻게 하든 외부로 투사시키려 한다. 내부 갈등을 회피할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것을 외부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외부를 적으로 돌리는 ‘분열의 정치’는 이렇게 탄생해 마침내 파국에 이를 때까지 영향력을 확대해나간다. 신뢰 대신 불신을, 협력보다는 불화를 택한 결과는 결국 모두의 공멸을 불러올 수 있다. 분명한 건 이런 흐름은 일단 진행되면 당분간 지속된다는 것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인류 역사는 가끔 퇴행을 보인다. 오늘날이 그렇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