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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철에 시달리는 당신 위한 약간의 위안
[경제와 책] 역자에게 듣는 경제와 책
[81호] 2017년 01월 01일 (일) 박중서 번역자 budafest@naver.com

박중서 번역자

2016년은 셰익스피어 400주기였으니 그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영국의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스탠리 웰스는 이 유명한 극작가야말로 사실상 최초의 통근자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극단 활동은 런던에서 이뤄졌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건대 수도에서 160km쯤 떨어진 ‘스트래트퍼드어폰에이번’이야말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집필 장소가 분명하다는 추측이다.

세계 최고 작가가 세계 최고의 작품을 줄줄이 쓰는 과정에서 그 덕을 봤다면, 이 역시 통근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일 법도 하다. 하지만 <출퇴근의 역사>의 저자 이언 게이틀리라면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보기에 셰익스피어 시대보다 수백 년 뒤, 그러니까 산업혁명 결과로 철도가 발달해 도시 근교가 개발된 19세기부터 본격적 의미의 통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런던 근교에 거주하며 런던 중심부 직장까지 오간 출퇴근 경험에서 착안한 이 책에서, 게이틀리는 일터와 가정을 분리해 양쪽 모두에서 최선을 달성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현대사회의 갖가지 변화를 이끈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 이언 게이틀리 지음 | 박중서 옮김 | 책세상 펴냄 | 1만9800원

여기서 말하는 ‘통근’이란 ‘교통수단을 이용한 장거리 출퇴근’이다. 통근 (commute)이란 말 자체가 열차 정기권 구매 방식의 하나인 ‘일괄 지급’이란 뜻이었으니, 애초부터 반복 이동을 의미했다고도 볼 수 있다. 통근이 곧 현대사회를 낳았다는 설명은 어쩌면 과장일 수 있지만, 현대사회를 지금 같은 모습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만은 분명하다.

단적인 예로, 통근으로 도시를 벗어나 교외에 거주하는 사람이 늘고 이 현상이 교통수단 발전을 촉진하며 결국 도시가 확장된 것을 들 수 있다. 통신수단의 눈부신 발전으로 통근이 사라질 거라는 예측이 나왔지만 한때 통근을 폐지한 회사에서도 거꾸로 통근을 권장하는 상황이니, 저자의 말처럼 어쩌면 인간은 통근 선호 성향 또는 통근 유전자를 지녔는지 모르겠다.

이처럼 출퇴근 역사를 되짚는 게이틀리의 여정은 우리 자신의 역사를 되짚는 여정이나 다름없다. 영국과 미국의 사례 중심이어서 한국 실정과 거리가 있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책 만드는 과정에서 접한 여러 소식을 놓고 보면 <출퇴근의 역사>에 담긴 고찰은 21세기 한국 현실과도 밀접함을 실감하게 된다.

2016년을 떠들썩하게 만든 뉴스 가운데 몇 가지를 보자. 우선 서울 인구가 1천만 명 이하로 감소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집값과 전·월셋값 고공행진 같은 부동산 문제가 일차적 요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서울을 떠나 이직했을리는 없으니, 상당수는 이 책에 설명된 영국과 미국의 선례와 마찬가지로 편도 90분 이상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극단적 통근자’가 되었을 것이다.

배출가스 조작으로 인한 폴크스바겐의 차 판매 중지 소식도 놀라웠지만, <출퇴근의 역사>에 따르면 자동차 업계의 횡포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미국 자동차 업계는 효율성과 실용성 모두를 외면한 ‘휘발유 먹는 괴물’을 생산해 소비자를 유혹해왔고, 1950년대에는 ‘자동차 업계의 이익이 곧 미국의 이익’이라며 고속도로 건설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을 제안하고 성사시켰다.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외주업체 직원이 매우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이 충격과 공분을 불러왔는데, 이 책은 수많은 통근자의 이동과 안전을 위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대중교통 종사자의 갖가지 애환도 설명해놓았다.

성과연봉제 도입 논란으로 철도 파업이 72일간 최장기 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이 있는데, <출퇴근의 역사>에는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고찰이 들어 있다. 영국 통근 열차는 처음부터 높은 요금 정책을 유지해 부유층을 우대하고 노동자를 홀대했다. 이후 철도 국영화와 요금 인하를 통해 대중화가 이뤄지나 싶더니, ‘경영 합리화’란 미명하에 일방적으로 군소 노선을 폐지해 일반 시민에게 피해를 끼쳤다.

그 외에 최근 한국에서도 문제로 부상한 ‘보복운전’의 원조에 해당하는 미국 ‘노상분노’(로드레이지)의 기원과 사례가 있고, 자율주행차와 하이퍼루프 같은 미래 교통수단에 대한 제안과 비판도 찾아볼 수 있다. 부제에 적은 것처럼, 이 모두가 매일 5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일하러 가면서 겪는 일들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미국 작가 E. B. 화이트는 뉴욕을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오가는 통근자를 가리켜, 평생 먼 거리를 여행하지만 정작 자기 주위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딱한 인간이라고 폄하한 바 있다. 하지만 게이틀리는 계속 움직이려는 성향이야말로 오늘날 세계를 만든 원동력인 동시에 미래의 세계에서도 인간다움의 의미를 유지하는 요인일 것이라고 고찰한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서 마주친 통근자라면 대뜸 ‘누가 좋아서 이 짓을 하느냐?’고 반문할 법하다. 하지만 지금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의 판단 결과가 ‘이 짓’이란 사실만큼은 아무도 부인 못할 것이다. 맞다. 출퇴근길은 괴로울 수도 있다. 다만 그 행위에 개인의 선택뿐 아니라 역사적 기원까지 있음을 자각하면, 매일 만원버스와 지옥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약간의 위안도 가능하리라 말하고 싶을 뿐이다.


 

● 인사이트 책꽂이

   
 

미국의 신자유주의 실험

이준구 지음 | 문우사 펴냄 | 1만8천원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명예교수가 “사대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정치인들의 분별 없는 ‘미국 따라하기’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어처구니없는 방향으로 표류해가는 것을 보며 미국의 신자유주의정책을 심도 있게 분석”한 책이다. 2011~2015년에 쓴 네 편의 논문을 재구성하고 살을 덧붙여 한 권으로 묶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 실험은 부분적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총체적 실패로 끝났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꼭 알아야 할 김영란법 핵심 가이드

이철우 지음 | 소담출판사 펴냄 | 1만5천원

2016년 9월28일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은 한국인 전체의 생활 방식을 바꿔놓기에 충분한 법이다. 일부 공직자의 행동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사소한 행위까지 두루 다룬다. 그래서 사람을 귀찮고 피곤하게 만드는 법이란 선입견이 꽤 널리 퍼져 있다. 현직 변호사인 저자는 이 법이 한국 사회를 건전하고 청렴하게 만드는 좋은 법이란 걸 널리 알리기 위해 책을 썼다.

 

 

 

   
 

빈대는 어떻게 침대와 세상을 정복했는가

브룩 보넬 지음 ㅣ 김혜정 옮김 ㅣ 위즈덤하우스 펴냄 ㅣ 1만8천원

현대사회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빈대가 2010년께 뉴욕 등 미국 대도시 곳곳에 다시 등장했다. 과학 언론인인 저자는 빈대의 공격에 시달리면서 빈대가 언제부터 인류와 공존했고 사람의 ‘공격’을 어떻게 버티며 살아남았는지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책을 쓰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저자는 어쩌면 현생 인류가 등장하기 전부터 지구에 살던 빈대가 마치 낙후하고 더러운 사람들 때문에 '내 주변'에 등장한 것처럼 탓하는 행태를 목격한다.

 

 

   
 

잡노마드 사회

군둘라 엥리슈 지음 ㅣ 이미옥 옮김 ㅣ 문예출판사 펴냄 ㅣ 1만3800원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차이퉁> 주필을 지내는 등 언론인으로 미래의 생활과 직업을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오랫동안 인류가 정착해 살면서 잊은 삶의 방식, 곧 유목인의 삶이 미래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또 유목민의 전략과 적응 방법이 불확실한 미래를 개척하는 인류에게 창조적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말미에 2035년에는 사람들이 어떤 얘기를 할지 상상한 시나리오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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