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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받는 아프리카 개도국 식량주권
[Issue] EU-ACP 국가 간 경제협정 타결되면…
[80호] 2016년 12월 01일 (목) 로랑스 에스티발 economyinsight@hani.co.kr
유럽 상품 대거 유입 땐 아프리카 지역 산업 붕괴 우려… 나이지리아 등 반대로 최종 타결 미지수
 
유럽연합(EU)과 아프리카·카리브해·태평양지역국가(ACP) 간에 추진 중인 경제동반자협정(EPA)이 아프리카 지역의 발전을 위협하고 있다. 협정이 발효되면 ACP 국가들은 국내 시장 개방을 대가로 유럽 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아프리카 상황에선 득보다 실이 많다. 당장 유럽연합에서 거둬들이는 관세 수입이 준다. 나아가 유럽 상품이 대거 유입되면 지역 산업이 붕괴될 우려도 있다. 특히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면 장기적으로 아프리카 국가의 식량주권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이 협정 서명 반대에 나서면서 최종 협상이 타결될지 미지수다.

로랑스 에스티발 Laurence Estival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드디어 시작이다. 2016년 9월부터 유럽연합(EU)과 아프리카·카리브해·태평양지역국가(ACP)는 양쪽 무역관계를 규율할 경제동반자협정(EPA)의 세부 조항을 두고 막바지 협상에 들어갔다. 참고로 ACP 국가 중 절반 이상이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다. 세부 조항이 확정되면 ACP 79개국이 지역별로 협정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유럽의회가 협정에 동의하면 온전한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유럽연합이 ACP 국가들과 진행하는 협정 중 남아프리카 국가와의 협정만이 15년에 걸친 협상 끝에 간신히 세부 조항 작성을 끝냈다.
 
유럽연합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따르기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과 협상을 시작했다. 당시 남미의 바나나 수출업자들이 유럽연합을 WTO에 제소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럽연합이 ACP 국가들의 발전을 촉진하려고 1975년부터 부여하던 수출 특혜 덕분에 ACP 국가들이 유럽에 무관세로 바나나를 수출할 수 있지만 자신들은 관세를 내야 한다며 이는 WTO 규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유럽연합이 특정 국가에 이익을 준 것은 모든 WTO 회원국에 공히 적용되는 ‘최혜국대우’(어떤 국가가 통상조약에서 특정 국가에 유리한 혜택을 부여했으면 다른 국가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편집자)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이후 유럽연합은 다른 국가들로부터도 최혜국대우 위반으로 세 차례나 제소당했다. 그러나 WTO는 체결국 간 상호 이익을 부여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은 WTO 조약 위반이 아닌 것으로 인정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ACP 국가들을 상대로 일종의 FTA인 경제동반자협정(EPA·관세 철폐, 투자, 인적 교류 등 폭넓은 분야에서 경제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협정 -편집자)을 제안했다. 지금까지처럼 유럽 시장에 자유로운 접근을 보장할 테니 국내 시장을 개방하라는 요구였다. ACP 국가들은 지역별로 6개 그룹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협상도 6개 그룹과 각각 진행했다. 
 
   
유럽연합과 아프리카·카리브해·태평양지역국가(ACP) 간에 경제동반자협정(EPA)이 타결될 경우 장기적으로 아프리카 국가의 식량주권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 케냐의 한 농장에서 농민이 카카오 더미를 정리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관세 수입 감소 우려하는 아프리카
 
2016년 9월에 시작된 막바지 협상이 잘 끝날지는 미지수다. 일단 서아프리카에선 나이지리아와 감비아가 2년 전 유럽연합과 서아프리카 16개국 대표가 모여 협상을 끝낸 EPA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험이 커졌다. 이런 의견 대립은 서아프리카라는 특정 지역을 넘어 모든 ACP 국가가 처한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협정 반대 국가들은 무엇보다 관세 수입 감소를 우려한다. EPA가 발효되면 ACP 국가들은 유럽 시장에 상품을 무관세로 수출하는 대가로 유럽산 상품에 부과하는 수입관세를 크게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과 서아프리카의 협정 문서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WAS) 국가들이 협정 발효 뒤 20년이 지나면 무관세로 수입되는 유럽산 상품 비중을 75%까지 늘려야 한다고 규정한다. 경제학자이자 농업 문제 전문가인 자크 베르텔로는 2016년 4월 발표한 논문에서 EPA 타결로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관세 수입이 협정 발효 즉시 262억유로(약 33조2천억원) 감소하고 2045년 590억유로, 2050년 780억유로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유럽산 상품이 대거 유입되면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역 산업이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서아프리카 체약국(발효 여부와 관계없이 조약의 구속을 받기로 동의한 국가 -편집자)에 시장 개방에 대처할 수 있도록 5년 동안 지원금 65억유로(약 8조2천억원)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체약국에 실제 필요한 자금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게다가 파스칼 에라르 프랑스국제연대협회(CFSI) 수석대표에 따르면 65억유로의 지원금조차 유럽연합이 추가 제공하는 것이 아닌 원래 해당 지역으로 들어간 자금을 재활용한 것에 불과하다.
 
서아프리카 16개국 중 12개국이 최빈국임을 고려하면 지금 상황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 수 있다. 12개국은 지금도 유럽연합 회원국에 ‘무기를 제외한 모든 상품’을 국내 시장 개방이라는 반대급부 없이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EPA를 체결할 이유가 없다. 코트디부아르·가나·나이지리아·카보베르데 등 나머지 4개국은 이 조항의 혜택을 받지 않지만 역시 유럽 시장 무관세 접근과 관련해 이렇다 할 이점이 없다. 자크 베르텔로의 설명처럼 “나이지리아는 농산물을 거의 수출하지 않는다. 주력 수출 상품인 원유에는 관세가 붙지 않아 사실상 나이지리아의 대유럽 수출 적용 관세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빈국들은 협정 체결을 거부하면 유럽의 개발지원금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울며 겨자 먹기로 유럽연합이 제시한 굴욕적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유럽연합은 이들 국가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다. 서아프리카 수출 상품의 36%가 유럽으로 가고, 수입품의 30%는 유럽산이다. 농업은 서아프리카 각국 경제의 핵심 부문이다. 농업 생산은 서아프리카 국내총생산(GDP)의 80%에 육박하며, 경제활동인구의 60%가 농업에 종사한다. 서아프리카 대표들은 협상 과정에서 몇몇 농산물을 수입관세로 보호받는 ‘민감한 상품’으로 간주하도록 관철했다.
 
그러나 긴급개발비정부기구유럽연맹(CONCORD)은 2015년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농산물을 가공해 생산된 원료에는 관세가 부과되지 않아 이 원료를 사용하는 지역 산업체는 아프리카 농산물을 가공한 유사 원료 대신 유럽산 원료를 선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역의 해당 원료 생산업체와 수입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량 수입 뒤 현장에서 재포장되거나 우유로 가공되는 유럽산 분유는 아프리카 현지 분유산업과 직접 경쟁 관계를 형성한다.
 
이에 대해 프랑스국제연대협회에 속한 프랑스개발연대시민단체(GRET) ‘식량 및 농업경제’ 분과 대표 세실 브루탱은 EPA가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 발전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 공동체의 움직임과 반대되는 흐름이라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들은 식량 생산 사업에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아프리카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농업이 새롭게 핵심 부문으로 떠올라 아프리카 곳곳에서 비용을 줄이면서도 수확을 높이는 농업생태학 사업들이 시작되고 있다. 현재 관련 부문의 구조화가 진행 중이고 몇 년 동안 농업예산을 삭감했던 국가들도 최근 다시 늘리는 추세다.
 
농업 전문가인 자크 베르텔로는 유럽연합이 협정 체결을 통해 ACP 국가, 그중에서도 서아프리카 국가의 식량주권을 침해하는 것은 제 손으로 자기 발등을 찍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유럽연합은 고부가가치 제조업 상품과 서비스산업 수출에서 아프리카라는 광대한 시장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아프리카 국가들은 폭발적 인구 증가를 경험하게 된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발전하지 못하면 유럽도 잠재적 수출시장을 잃을 것이다.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일부 아프리카 국가는 자국 농업 붕괴를 우려해 EPA 협정에 반대했다. 아킨우미 아데시나 아프리카개발은행 총재가 2015년 5월 나이지리아 농업장관 당시 EPA 협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UTERS
 
EPA로 흔들리는 지역 통합
 
마마두 시소코 서아프리카농업생산자·농민단체네트워크(ROPPA) 명예회장은 “선진국들의 발전 경로를 살펴보면 예외 없이 시장 개방 전에 국내 산업 보호 조건부터 구축했다”며 “오늘날 아프리카 국가들에 시장부터 먼저 연 다음 경제 발전에 힘쓰는 첫 번째 사례가 되라고 요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서아프리카 국가들은 산업구조가 상호보완적인 주변국에서 판로를 모색해왔다. EPA가 타결되면 이들 국가는 주변국 판로를 상실함에 따라, 서아프리카 국가 간 역내 교역 발전이 저해될 수 있다. 현재 역내 교역은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교역량의 9%에 불과하다.
 
유럽연합에서 수입되는 상품은 서아프리카 상품보다 경쟁력이 매우 높은데 EPA 타결로 관세 인하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 더구나 자크 베르텔로에 따르면, 유럽 농업 생산자는 유럽연합 공동농업정책 차원에서 지급되는 소득지원금 덕분에 수출보조금을 계속 받을 수 있어 상대적으로 서아프리카 상품의 경쟁력이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지역 통합은 아프리카에서 생활수준 향상을 보장하는 수단이고, 유럽연합이 아프리카 각국에 EPA 협상에 나서도록 설득하려 제시한 근거 중 하나도 지역 통합이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6년 11월호(제362호)
La souveraineté alimentaire du Sud menacée
번역 박수현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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