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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만 남은 ‘게임 강국’
[Culture & Biz] 벼랑 끝에 선 한국 게임산업
[80호] 2016년 12월 01일 (목) 문동열 redbros@redbros.co.kr

한국 게임산업의 침체가 굳어지고 있다. 한때 한국 경제의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던 게임산업은 이제 성숙기를 넘어 쇠퇴기에 접어든 상태다. 국내 게임업계는 당국의 규제 여파에 크게 휘청거렸다. 청소년의 심야시간 게임 이용을 차단하는 ‘셧다운제’는 대표적 규제로 꼽힌다. 중국 등 외국 게임업체의 견제도 성장의 걸림돌이 됐다. 이제 ‘게임 강국’ 명성은 옛 추억으로 남게 됐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콘텐츠 산업에 난이도가 있다면 아마 게임산업은 가장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분야가 아닐까 한다. 여타 콘텐츠 분야와 달리 소프트웨어 형태로 제공되는 게임 콘텐츠의 속성상 정보기술(IT) 산업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산업구조가 하루아침에 쉽게 변화할 수 있다. 최근 모바일 기기 확대로 인해 온라인게임이 주류를 이루던 시장이 일거에 모바일게임으로 넘어간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시나리오, 음악, 그래픽 같은 다양한 문화예술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다른 콘텐츠 분야에 비해 콘텐츠 자체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전문가 집단의 협업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게임산업은 여러 콘텐츠 분야에서도 기술집약도가 높다. 이 때문에 게임을 즐기는 나라는 많아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게임 콘텐츠를 개발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그 가운데 한국은 ‘게임 강국’이란 영광을 누리는 몇 안 되는 나라다.

한국에 게임이 처음 등장한 것은 40년 전인 1976년이다. 서울 명동에 위치한 미도파백화점 본점(현 롯데플라자)에 당시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던 ‘퐁’(PONG)이라는 아케이드 게임기가 몇 대 설치됐다. 탁구를 모티브로 한, 지금 보면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 게임이 인기를 끌자 돈이 되겠다고 생각한 전자제품 생산업체들이 1970년대 말부터 게임 강국이던 미국·일본의 게임기를 라이선스 없이 복제해 국내에서 판매한 것이 한국 게임산업의 초라한 시작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게임산업은 1970년대 학생들의 하굣길에 등장한 ‘오락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당시 최첨단이던 이 놀이 공간은 순식간에 동네 꼬마들의 생활을 바꿔놓았고, 학교가 끝나면 그동안 놀이 공간이던 골목길 대신 오락실로 달려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 과거 한국 경제의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던 게임산업은 당국의 규제와 중국 등 해외 게임업체의 견제로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다. 2016년 10월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참석자들이 <리니지 레드나이츠>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 복제로 시작한 한국 게임산업

한동안 모방이나 외국 게임 유통에만 매달리던 한국 게임이 국산 게임 개발을 시작한 것은 10년 뒤인 1980년대 말부터다. MSX나 애플2 같은 개인용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아마추어 차원의 게임 개발이 조금씩 이루어졌다. 최초의 상업용 국산 게임으로 인정받는 <신검의 전설>은 당시 고등학생이 만든 게임이었다. 부모 몰래 오락실을 다니며 게임의 즐거움에 빠져든 ‘게임 키즈’들은 하나둘 성장해 단지 게임을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한번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몇 년 뒤 그들은 한국 게임 개발 분야의 제1세대로 자라난다.

게임산업 1세대가 사회에 진출할 무렵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라는 거대한 위기를 겪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한국은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당시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과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를 만나 한국이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물어보자, 손 사장은 “첫째도 브로드밴드(초고속 인터넷 통신망), 둘째도 브로드밴드, 셋째도 브로드밴드”라며 정보기술 인프라 확대를 건의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정부 주도로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 보급에 주력해 급속도로 확대됐다. 하지만 인프라는 갖췄는데 콘텐츠가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게임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이라는 지원 부처를 설립한다. 게임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한 건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마련된 국가적 지원 아래 게임 1세대가 적극적으로 벤처 창업을 하고 여기에 개인용컴퓨터로 게임을 즐기기 시작한 게임 2세대가 개발자로 산업계에 유입되면서 한국 게임산업은 그야말로 성장 시대를 맞이한다.  

2000년대 초반 게임 벤처기업들이 주목한 건 당시 게임산업의 주력 품목이던 개인용컴퓨터나 가정용 게임기가 아니었다. 이 분야는 미국과 일본이 초강세를 이룬 시장으로 한국 신생 업체들이 뚫고 들어가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그래서 게임 벤처기업들은 한국에 잘 구축된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을 이용한 ‘온라인게임’ 개발에 주력했다. 미국과 일본의 대형 게임 개발업체들은 관심조차 갖지 않던 시장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한국 온라인게임은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 확대로 콘텐츠에 목말랐던 국내 시장에서 그 세를 빠르게 키워갔다.

2000년대 중반에는 초기 온라인게임 시장을 이끈 한국 기업들이 내수시장 확대에 그치지 않고 중국이라는 주요한 수출 시장을 확보했다. 이어 동남아시아, 유럽 등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서 수많은 게임업체가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며 게임산업의 전체 규모는 급격히 커졌다. 한국 게임산업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05년 기준, 한국 게임산업은 8조원 규모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성장해 한국 콘텐츠 전체 수출액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10년이 지난 2016년 현재에도 한국 게임산업의 겉은 여전히 화려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5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5년 한국 게임산업은 10조원 이상 매출과 30억달러에 이르는 수출을 달성했다. 게임산업은 여전히 한국 문화콘텐츠 수출 총액에서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산업 분야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화려한 겉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보인다.

2009년만 하더라도 한국 게임업체 수는 약 3만 개였다. 하지만 해마다 감소해 2013년에는 1만5천 개로 4년 새 절반 가까운 업체가 사라졌다. 게임업체 감소 추세는 현재진행형으로 아직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2016년에는 1만 개 이하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줄어든 업체 수만큼이나 게임업계 종사자 수도 급감했다. 한국 게임산업의 전성기로 불리던 2005년에는 유통업까지 포함한 종사자 수가 14만 명에 달했지만, 2014년 통계를 보면 8만7천 명으로 역시 절반에 가까운 종사자가 사라졌다. 한때 한국 게임산업을 이끌던 PC방 역시 2001년 2만3천여 곳에 달했으나, 2014년에는 1만3천여 곳으로 줄어들었다. 몇 년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수수방관한 사이 한국 게임산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 지나갔다고 지적한다. <스타크래프트2: 군단의 심장> 출시 행사에 참석한 게임팬들이 게임 시영상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규제와 외국 게임업체 성장 ‘이중고’

2008년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정책적으로 게임산업에 대한 전폭적 지원이 조금씩 사라졌다. 당시 이명박 정권이 문화산업 같은 소프트웨어보다 토목산업에 주력한 탓도 있지만, 많은 게임업계 종사자는 다소 정치적 의도도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정권이 이전 정권이 추진한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기 꺼림으로써 게임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것이다. 2011년 실행된 ‘셧다운 제도’(청소년의 게임 접속 시간 제한 -편집자) 같은 규제는 한국 게임산업을 몇 년 뒤로 후퇴시켰다는 지적을 받는다.

2011년 이후 내수시장에서 규제를 비롯해 검열제도와 싸우던 게임업계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국시장에서 중국 게임업체의 급성장이라는 암초를 만나게 된다. 이전까지 한국 게임산업의 주요한 시장이던 중국에서 현지 게임업체가 한국 업체를 인수하는 사례가 늘었다. 게임 개발력도 한국 업체를 따라잡는 정도까지 도달했다. 한때 70%까지 치솟던 한국 게임의 중국 점유율은 중국 정부의 자국 산업 보호 정책으로 인해 현재 20~30%까지 떨어진 상태다.

게임업 관계자들은 한국 게임산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한다. 중국 정부의 압력이 거세지던 몇 년 전 업계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정부에 대책을 호소했지만 이렇다 할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국내 게임 순위 1~10위를 국산 게임이 점령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몇 년째 외국 게임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게임산업은 인적 집약성에서 어떤 콘텐츠 산업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고용 창출이 큰 산업이고 컴퓨터 하드웨어, 통신 같은 산업 인프라 활성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흔히 케이팝(K-Pop)을 한류의 대표 주자로 이야기하지만 한국 게임산업은 케이팝보다 무려 11배나 규모가 큰 산업이다. 하지만 ‘청소년에게 유해한 콘텐츠’라는 주홍글씨를 덧쓰고 규제와 외국 업체의 빠른 성장이라는 악재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 게임산업이 최근 몇 년 새 조금씩 쇠락해가는 조짐을 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한국 게임산업은 40살이 됐다. 다시 한번 게임 강국의 옛 모습을 찾으려면 지금이라도 정부와 사회 각층의 관심과 지원이 간절히 요구된다. 

 

* 문동열은 영상 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 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 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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