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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발 보호무역의 공포
[Finance] 트럼프 당선 이후 세계경제는?
[80호] 2016년 12월 01일 (목) 윤석천 maporiver@gmail.com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트럼프가 선거 기간 내내 내세운 보호무역주의는 이 기치의 경제적 해법이다.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한다면 세계경제는 어떻게 될까. 트럼프는 자국 산업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치적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 보호무역주의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예는 많지 않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결국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기괴한 일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민심은 비틀어진 세계를 반영한다. 그런 세계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승리’를 했다. 그 원인을 따지는 건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작금의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미국 월가를 비롯한 선진국 자산시장은 그의 등장에 일시적인 환호를 보낸다. 하나, 세계경제 앞에 드리운 그림자가 점차 짙어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세계화로 정의되는 지난 50여 년의 질서가 허물어지고 있다. 기존 질서가 붕괴될 때는 혼란이 온다.

트럼프가 이긴 뒤 월가 분석가들과 이코노미스트들은 그의 승리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분석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다. 한데 이들 분석의 다수는 세제 개혁과 탈규제와 같이 미국 기업에 우호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은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과 2000년대 초 조지 부시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지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트럼프 경제 정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보호무역주의 강화 비판이다. 문제는 트럼프의 태도다. 이런 비판에도 트럼프는 기어이 자신의 공약을 실천해 옮길 태세다. <CNN>이 2016년 11월15일 보도한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의 ‘무역 200일 계획’ 문건에선 무역협정 재협상과 폐기를 위한 실태 조사, 파급효과 분석으로 공약 이행을 준비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문건대로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탈퇴할 경우 멕시코산 제품에 35% 관세가 부과된다. 동시에 중국산 제품에 45% 관세 부과는 물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트럼프의 선거용 무기였지만 이젠 백악관 입성 뒤 휘두를 ‘전가의 보도’가 되어가고 있다.

트럼프의 공약 이행은 무역갈등을 넘어 무역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이는 얼마든지 글로벌 경제 침체를 촉발할 수 있다. 세계는 지난 50년간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통해 성장해왔다. 한데 트럼프의 등장으로 그렇지 않아도 강화된 지역화와 보호무역주의가 날개를 달고 있다. 이는 기존 성장 방식이 무너지고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심각하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선거캠프 관계자들이 2016년 11월9일 뉴욕에서 지지자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선거 기간 내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친 트럼프는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REUTERS

 

무역갈등 현실화 땐 미국도 타격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이 타격 입을 것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중국과 멕시코산 제품의 관세를 약간만 올려도 미국의 성장률이 후퇴할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경제분석가들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15%, 멕시코산 제품에 7% 정도 관세를 부과하면(현재는 2~10%) 미국은 2017년에만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5~1%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의 논리를 따라가보자.

관세가 오르고 무역갈등이 현실화하면 다른 나라도 미국에 보복을 시작할 것이다. 특히 중국의 대응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의 공약이 실제 이행되면 중국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산 제품 수입을 줄일 것이 너무 당연하다.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 역시 법적 규제는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뿐만 아니다. 중국의 2016년 대미 직접투자 규모는 300억달러(약 35조5천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이 이런 투자를 축소한다면 미국이 입는 직접 손실도 적지 않다. 또 있다. 미국 기업들은 14억 명이 중산층으로 편입된 황금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중국은 보유 중인 미국 국채를 팔아치울 수도 있다. 이 경우 미 국채 가격이 급락하면서 금리가 급등할 것이다. 그에 앞서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하를 강하게 시도할 수도 있다. 갈등은 통화전쟁을 동반한 무역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미국 역시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대외무역에서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보호무역주의의 방편으로 관세를 올리면 일단 수입품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 미국산 상품도 가격 상승 압박을 받을 것이 뻔하다. 부품 역시 해외 수입품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부품 가격이 오르면 기업들은 자사의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가격을 올릴 것이다. 트럼프 당선 뒤 벌써 구리를 비롯한 원자재는 물론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있다. 트럼프 정책은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혹자는 그토록 고대하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이니 문제가 없을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이런 가격 상승은 임금 인상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노동시장 활성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인플레이션이다. 수요가 촉발한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원가 상승이 견인하는 인플레이션이란 것이 함정이다. 이는 소비자에겐 분명 악재다. 미국은 소비에 의존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소비가 움츠러들면 미국 경제는 타격 받을 수밖에 없다.

이론적으로, 미국 기업들은 자국 내에서 더욱 많은 것을 생산해 관세 인상으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을 회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해결책이다. 설사 그것이 구현된다 해도 미국의 노동 가격은 더욱 비싸질 게 확실하다. 노동 원가 상승은 피할 수 없고 그로 인한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

언론에서 쏟아내는 ‘트럼플레이션’(트럼프 당선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충분히 가능하다. 재정지출 확대는 일정 부분 미국의 내수 소비를 진작하고 이는 글로벌 시장의 상품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다. 동시에 관세 인상으로 인해 소비자물가는 상승할 것이다. 여기에 2016년 12월로 예정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이 가시화하면 인플레이션은 한층 가속화할 수 있다.

이런 인플레이션은 바람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골드만삭스가 예측했듯,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2018~2019년 미국의 실질 GDP 성장률이 애초 전망에 비해 0.8%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근원 물가상승률은 2019년 초반 2.3%로 높아지는 가운데 실업률은 5.3%로 뛰어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성장은 정체 상태를 보이거나 외려 낮아지는 반면 물가는 오르고 실업률이 높아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보호무역으로 일자리 창출?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일자리 문제다. 흔히 선진국 투표권자들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타국 때문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공장이 사라지면서 일자리를 잃은 자신들의 경험 때문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나 미국의 트럼프 승리는 이런 대중의 믿음을 잘 공략한 결과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89%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중국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미국인의 46%만이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미국 경제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 트럼프 반대 시위대가 2016년 11월14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지옥으로 만들 것’이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REUTERS

실제 세계화로 인한 경제적 이득의 대부분은 신흥국 중산층에 귀속됐다. 세계은행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선진국의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글로벌 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 혜택은 신흥국 중산층의 폭증으로 연결됐다.

이 현상은 대중이 생각하듯 자유무역으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다. 선진국 일자리 소멸은 자유무역이 아니라 오히려 자동화 때문이다. 대중은 이를 잘 알지 못한다. 컴퓨터와 로봇, 그리고 자동화 물결은 일반 제조업뿐만 아니라 학위가 필요한 전문직 일자리까지 위협한다. 이것이 진실이다. 정치적 관점으로 보면, 자유무역을 비난함으로써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기술이 진짜 원인이라고 말하면 정치적 프로파간다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동시에 자본이 공격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론적으로 기술로 인해 현존하는 대부분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자본주의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정치인이 솔직히 고백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무능하다고 인정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야심 찬 정치인이라면 진짜 원인을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치명타를 가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다. 설사 트럼프가 바라는 대로 보호무역이 현실화하고 미국 기업들이 본국으로 회귀하더라도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가 대폭 늘어날 거라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순진한 발상이자 스스로를 속이는 짓이다.

트럼프가 어떤 길을 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확실한 건 가려는 길이 기존 질서를 뒤엎는 새로운 길이란 사실이다.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다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달릴 때는 자신의 자동차도 손상을 입기 마련이다. 상호 연결된 세계에서 미국만 승리할 거란 가정은 터무니없다. 미국이 퇴행하면 세계는 그에 맞서 대응할 것이다. 미국의 신고립주의는 패권의 상실을 뜻한다. 미국이 자기 손으로 포기한 패권은 누군가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미국이 과연 그 길을 갈 수 있을까. 미국의 최종 선택을 현재로선 누구도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것이 리스크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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