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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노믹스’는 현재진행형
[세계는 지금] 새로운 '수출 금맥' 미얀마
[80호] 2016년 12월 01일 (목) 안재용 andya@kotra.or.kr

2015년 11월 군부통치를 끝내고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새정부가 출범한 미얀마는 지금 꿈틀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과 수치의 만남 뒤 미국의 경제제재가 해제되며 미얀마는 경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경제·사회 변혁의 과도기 위험이 존재하지만 중국과 일본 기업들이 앞다퉈 미얀마 시장을 선점해 한국 기업의 분발이 촉구된다. 계산만 하며 뜸 들이다가는 계산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지금이 미얀마 진출의 적기다.

안재용 KOTRA 미얀마 양곤무역관장 

“미얀미얀(빨리빨리) 미얀마.” 국내 예능프로에서 유행했던 개그맨 박성광씨의 말장난은 많은 시청자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2013년 굳게 닫혀 있던 미얀마의 문이 열리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선점하려는 한국 기업에는 마냥 웃어넘길 수 없는 간절함이 생겼다. ‘빠르고’(미얀), ‘강하다’(마)는 뜻을 지닌 미얀마는 이름만큼이나 엄청난 성장 가능성을 품고 있다. 중국·인도·아세안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점, 풍부한 자원, 인구 5300만 명은 새로운 기회의 땅을 찾는 한국 기업에 매력 있는 시장으로 다가온다.

2015년 11월8일(한국시각),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문민정부는 미얀마 민주총선에서 승리하며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국가경제의 불안정성이 감소하고 미국 경제제재가 해제될 것이라는 예상 속에 기업들은 미얀마 경제의 빠른 개방과 성장을 기대했다. 미얀마가 개방한 지 1년, 경제 개방 속도는 아직 기업들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를 준비하는 글로벌 기업들 간 소리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2016년 4월 미얀마 새정부가 출범한 뒤 정부의 주 관심은 화해, 평화, 헌법 개정 등 정치적 현안이었다. 행정 경험이 부족한 새내기 집권당에 군부와의 관계 설정, 소수민족 반군과의 평화협정 체결이 우선 해결 과제였다. 그렇다고 경제정책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미얀마 정부는 2016년 7월 12개 분야의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본격적인 ‘수치노믹스’의 시작을 알렸다.

수치노믹스는 개방적인 재정 관리, 인적자원 개발, 경제 인프라 확충, 균형된 산업화, 중소기업 지원, 도시 개발, 세제 개편 등 현실적으로 필요한 정책이 대거 포함됐다. 하지만 구체적 실행 방안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했으며, 새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각종 규제 장치는 반기업적이라는 불만을 야기했다.

   
▲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이 2011년 12월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직으로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클린턴 방문 이후 미국의 미얀마 경제제재가 완화됐다. REUTERS

 

‘신성장 기회’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

미얀마 정부의 첫 번째 지침은 ‘미얀마식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공무원 선물 수취 가이드라인’이다. 법적 강제력은 없으나 미얀마 정부의 업무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2016년 5월에는 양곤 주정부가 진행 중인 고층 건물 건설 프로젝트를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한 뒤, 7월 55개 프로젝트에 잠정 중단 명령을 내렸다. 이미 건설 중인 건물을 주차 공간 부족, 도로와 건물의 간격 등을 이유로 시정토록 지시해 해당 프로젝트 수행 기업은 물론 건설시장 진출을 노리는 한국 기업에도 적잖은 충격을 줬다.

2016년 8월에는 낙후된 봉제공장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임가공 감독위원회를 구성해 노동자 인권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현지 봉제업계는 2015년 최저임금 도입에 이은 새정부의 친노동자 정책으로 인해 인건비 상승 등 경영 여건이 악화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더욱이 미얀마 투자위원회가 2016년 10월25일 상반기 미얀마에 대한 외국인투자가 전년 30억달러(약 3조5300억원)에서 14억달러(약 1조6400억원)로 50% 이상 감소했다고 발표해 미얀마의 투자 여건이 나빠졌다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부패 방지, 인권 등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집권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이념을 기존 경제 시스템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진통이다. 문민정부가 54년 만에 출범한 점을 고려하면 1년의 적응기도 길다고 볼 수 없다. 실제 외국인투자 감소도 수요 자체가 줄어든 게 아니라 새정부 정책 방향과 조율하기 위해 사업승인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새롭게 외국인투자위원회를 구성하고 2016년 7월4일 8개 투자 프로젝트를 승인하면서 본격적으로 외국인투자 업무를 개시했다. 고층 건물 규제도 일부를 제외하고 전격 해제할 것이라는 방침을 내놓으며 건설시장도 점차 안정을 되찾고 있다.

미얀마는 2016년 9월 수치의 미국 방문을 기점으로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맞고 있다. 우선 미얀마에 대한 미국의 일반특혜관세(GSP)가 2016년 11월13일부터 적용되면서 5천 개 품목이 미국 시장에서 무관세 혜택을 누리게 된다. 현재 동남아에서 미국의 GSP 혜택을 받는 국가는 타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군수물자 외 모든 품목에 관세 혜택을 적용하는 유럽연합(EU)과 비교하면 파급효과가 더 작은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추진하는 미얀마 경제제재가 전면 해제되면 양국 사이 더욱 탄탄한 경제관계 구축이 기대된다.

미국은 1997년 미얀마 신규 투자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시작으로 2003년 버마 민주화법, 2008년 버마 군부의 반민주 노력저지법 등을 통해 미얀마 상품의 미국 수입 금지, 자산 동결, 금융서비스 금지 등의 제재를 가해왔다. 2011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과 수치의 회담 이후 미국-미얀마 관계가 회복되며 미국은 상품, 서비스, 금융거래를 원칙적으로 허용했다.

하지만 일종의 블랙리스트인 특별제재대상(SDN·Special Designated Nationals)을 지정해 제재를 유지함에 따라 실질적으로 미국과 미얀마의 경제교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 명단에는 군부 계열 기업들은 물론 투그룹(Htoo Group), 아시아월드(Asia World), 맥스미얀마(Max Myanmar) 등 미얀마 대기업 대부분이 포함됐다.

미 행정부는 미얀마 제재 프로그램을 전면 해제하며 6개 행정명령을 취소하고, 203명의 제재 대상 기업 및 기업인들을 명단에서 제외했다. 애초 미얀마 새정부의 군부 통제력 유지를 위해 군부 제재는 유지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으나, 포괄적 해제가 이뤄져 양국의 투자시장은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가장 큰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은 봉제산업이다. 미얀마의 대미 의류 수출은 2001년 4억달러(약 4700억원)에 달했으나 2003년 버마 민주화법 시행으로 전면 금지됐다. 2015년 미국 수출을 재개했으나 연간 4천만달러(약 470억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현지 업계는 단기간에 2000년 수준 이상으로 회복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미 대선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미얀마에 반사이익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봉제산업의 특성상 미얀마는 베트남 이후 투자 적격지로 주목받아왔다. 베트남의 동반자협정 가입으로 대미 수출관세 혜택이 예상되면서 봉제업계의 베트남 투자가 크게 늘었으나 통상 여건의 변화로 향후 미얀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 2015년 12월9일 미얀마 정부 관료들이 양곤증권거래소 개소식에 참석해 박수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미얀마 시장 선점에 팔을 걷어붙였다. REUTERS

 

미얀마 진출의 최대 걸림돌

미얀마 시장이 발전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전기, 물류, 부동산이다. 첫째, 전기 공급이 불안정하다. 미얀마의 전력보급률은 27%에 불과하며, 송배전상의 전력손실률은 25%에 달한다. 미얀마는 양질의 가스와 풍부한 수자원 등 발전을 위한 기본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이미 개발된 가스는 대부분 중국과 타이로 직수출된다.

둘째, 도로 부족과 철도 노후화로 운송물류 환경이 열악하다. 샨, 카친 등 내륙지방은 농업 및 광업에 큰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물류상 제약으로 실제 투자는 미미하다. 더 큰 문제는 심해항의 부재다. 양곤항은 하천항으로 수심이 낮아 2만t급 이상 선박이 입항하기 어렵다. 물류 대부분을 싱가포르에서 환적해야 한다.

셋째, 토지 가격이 올랐다. 2007년 부동산 거래세가 감면되고 부동산 개발 기대가 고조되면서 토지 가격이 급등했다. 이는 투자기업에 큰 부담이다. 공단의 연간 임차료는 2배, 50년 장기 임차료는 3배 이상 올랐다.

전기, 도로, 항만 등 부족한 인프라 구축을 위한 경쟁국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의 핵심사업으로 중국 윈난성과 미얀마 차우크퓨 간 연결망에 집중하고 있다. 개별 투자는 물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프로젝트 개발도 활발하다. 전 정권부터 추진해온 차우크퓨 경제자유구역(SEZ)이 개발되면 심해항 개발을 통해 중국의 인도양 진출 거점이 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미얀마의 최대 채권국으로서 공적개발원조(ODA)로 일본 기업의 미얀마 인프라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양곤 인근에 틸라와 경제자유구역(SEZ)을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남부 다웨이에 방콕과 연결하는 새로운 경제자유구역 개발을 진행 중이다. 2016년 11월 수치를 일본에 초청해 향후 5년간 77억달러(약 9조원)의 차관을 제공키로 하는 등 미얀마 진출을 위한 통 큰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 결과, 재미얀마 일본 상공회의소 회원사가 3년 전 80개에서 250개로 급증했다.

한국 기업들도 바빠졌다. 한국 기업에 경쟁력 있는 공단 부지를 제공하려고 한국토지주택공사와 민간기업들이 산업단지를 개발 중이다. 봉제업계도 준비가 한창이다. 미얀마한인봉제협회는 2016년 9월 설명회를 열어 미국 수출을 위한 사전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특히 CJ의 진출 방식은 미얀마 정부의 농업 부가가치 증대 정책과 연계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농작물 작목 지도를 통한 품질 향상과 직접 수매, 물류, 식품 가공, 내수 및 제3국 수출로 이어지는 농업의 ‘서플라이 체인’(연쇄적인 생산 및 공급 과정)을 구축해 한국만이 줄 수 있는 사업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일부 기업이 선전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의 전반적인 미얀마 진출은 여전히 부진하다. 미얀마 기업인들은 한국 기업의 공격적인 해외 진출에 실망한 나머지 안타까운 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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