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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Editor’s Letter
[80호] 2016년 12월 01일 (목) 신기섭 편집장 marishin@hani.co.kr

저는 지난여름 영국인들이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을 탈퇴하기로 결정했을 때 혼돈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6개월 뒤의 세상이 지금 같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에 비하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은 별것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5%까지 떨어졌습니다. 대통령과 여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대구에서조차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집니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벌인 일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나라 운영의 기본을 무시한 개인의 국정 개입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정경유착이 판을 쳤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국가 제도가 이런 국정 농단을 전혀 막지 못했다는 겁니다. 공직자들의 방관, 무책임, 무기력은 그들이 국민을 대표할 자격을 상실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국민이 직접 거리로 나선 건 필연입니다.

미국 대통령선거도 충격입니다. 막말과 성추행 논란으로 궁지에 몰렸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리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가 소속 정당인 공화당 조직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당선됐다는 것도 주목하게 됩니다. 그를 견제할 세력이 마땅치 않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 이후 벌일 일이 미국을, 그리고 세계를 얼마나 충격과 혼란에 빠뜨릴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주목을 덜 받고 있지만,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과정에서 유럽 전체에 몰아칠 혼란과 불안도 만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안별로 보면 가장 걱정스런 것은 기후변화를 막고 지구를 지키기 위한 국제 공조입니다. 미국은 지금까지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제 공조를 깰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호무역 대두도 걱정입니다. 트럼프는 미국의 번영을 위해 경제 장벽을 높이 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그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극우 정치집단이 만만치 않은 세력으로 컸습니다. 보호무역의 끝은 무역전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과 유럽, 중국이 무역전쟁에 들어가면 전세계가 영향받게 됩니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받을 타격은 더욱 클 것입니다.

혼돈과 불안의 먹구름이 몰려오지만, 한국에는 책임지고 대처할 정부가 실종됐습니다. 그 피해는 힘없고 의지할 것 없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심하게 나타날 겁니다. 그러니 가장 예민하게 세상 돌아가는 걸 주목해야 하는 이들도 힘없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걸 제대로 파악하려면 지식이 있어야 하고,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야말로 힘없고 의지할 것 없는 이들에게 가장 부족합니다.

하지만 절망할 것은 아닙니다. 코앞까지 다가온 미래는 지금까지 우리가 익히 알던 것과 다른 것이 될 겁니다. 이런 미래에 대처할 때, 과거의 것에서 비롯된 지식과 정보는 무기력합니다. 미래를 판단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선입견 없이 세상을 보고, 작은 변화의 실마리도 놓치지 않는 예민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께서 예민하게 세상 변화를 보는 데 도움이 되는 잡지를 만들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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