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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가난한 사람 위해” 빈곤 퇴치 외길 인생
서울서 태어나 5살 때 미국 이민… 28살부터 의료구호 활동하며 개도국 빈곤 극복 공헌
[79호] 2016년 11월 01일 (화) 김준기 jkkim@kyunghyang.com

세계은행은 2016년 9월27일 이사회를 열고 차기 총재 후보로 단독 출마한 김용 총재의 연임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김 총재는 2017년 7월부터 5년간의 두 번째 임기를 맡게 된다.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에 자금을 지원해 빈곤 퇴치, 경제개발 촉진 임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와 함께 3대 국제 경제기구로 꼽힌다. 1944년 설립 이후 김 총재 전까지 11명의 총재가 모두 정치나 금융계 출신 백인 미국인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5살 때 미국으로 간 한국계 이민자인 김 총재가 그런 국제기구의 수장이 됐고 연임까지 성공했다는 것은 그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김준기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 최근 세계은행 총재 연임이 확정된 한국계 미국인 김용씨는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개도국의 빈곤과 질병 퇴치에 평생 한 몸을 바쳐왔다. REUTERS
 
“금융과 거시경제는 복잡해도 배울 수 있지만 개발 현장을 뛰어다니며 발가락 사이에 끼어든 진흙을 배울 수는 없다.”
 
최근 세계은행 총재 연임이 확정된 한국계 미국인 김용(57·미국명 Jim Yong Kim)씨가 말하는 ‘발가락 새 진흙론’이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 등에서 빈곤과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수십 년간 발로 뛰며 체득한 경험과 식견이 어려운 경제이론에 통달한 것보다 후진국 개발에 더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김 총재는 2012년 세계은행 총재에 처음 선임될 때 이 진흙론으로 호소했다. 김 총재가 연임에 성공하면서 그의 발가락 사이에 낀 진흙은 영롱한 ‘진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김용 총재의 연임은 2016년 8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그를 차기 총재 후보로 지지하면서 이미 예상됐던 결과다. 세계은행의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미국의 의중이 총재 선임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총재의 연임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김 총재가 연임 의사를 밝히자 세계은행 직원조합은 “세계은행이 ‘리더십의 위기’에 봉착했다”며 연임 반대 서한을 이사회에 제출했다. 직원조합은 더 이상 미국 국적자의 세계은행 총재직 독점 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부에서도 미국인인 김 총재가 연임하면 중국이나 브라질 등 대형 신흥국들이 점차 세계은행에 등을 돌릴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내·외부 반발에도 ‘빈곤 퇴치’ 긍정 평가
2012년 김 총재가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처음 지명될 때도 미국 내·외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 등에서는 이제 세계은행 총재가 미국이 아닌 개도국에서 나와야 할 때라며 사상 처음으로 제3세계 출신 후보를 냈다. 미국의 대표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연간 수백억달러를 굴리는 세계은행 총재 후보가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헤지펀드가 뭔지 몰랐다”며 김 총재가 경제, 금융지식, 경험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총재는 취임 이후 “세계은행이 수조달러를 은행에 쌓아두는 것보다 아프리카 등의 인프라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며 자신의 목표를 실천에 옮겼다. 서아프리카에 에볼라가 창궐할 때 4억달러(약 4500억원)의 지원금을 집행하며 단 9일 만에 돈이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했다. 김 총재의 실천력에 대해 개도국 경제개발에 주력하던 과거와 달리 빈곤 극복이 세계은행의 핵심 업무가 됐다는 호평이 나왔다. 또한 행정비용 4억달러를 감축하고 직원 500명을 감원하는 등 ‘관료화했다’고 비판받아온 세계은행의 내부 개혁도 과감하게 추진했다.
 
결국 세계은행 이사회는 2030년까지 하루에 1달러25센트 미만으로 살아가는 절대빈곤층 인구를 3% 미만으로 줄이고 개도국 소득 하위 40%의 소득 수준 증대를 위해 노력한 김 총재의 리더십과 비전을 평가한다며 연임을 결정했다.
 
김 총재는 연임이 확정된 직후 “두 번째 임기에는 민간부문 투자 인프라를 통한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교육·보건·기술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경기 침체 위험에 맞서 세계경제를 위한 완충재를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용 총재는 5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갔다. 청소년 시절을 아이오와주 머스커틴에서 보낸 그는 고교 시절 총학생회장을 하고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미국 아이비리그(미국 북동부 지역 8개 명문 사립대학)인 브라운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인류학박사 학위를 받고 이 대학 의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가 하버드대학 교수 자리에 만족했더라면 그저 두뇌가 명석해 미국에서 성공한 많은 한국계 이민자 중 한 명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를 세계은행 총재라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적 인물로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이력이 따로 있다. 바로 하버드대 재학 시절인 1987년 동료들과 함께 설립한 의료구호단체 ‘파트너스 인 헬스’ 활동이다. 김 총재는 20여 년 동안 남미와 아프리카 곳곳에서 결핵, 에이즈 등의 병마와 싸우며 의료구호 활동을 했다. 결핵 치료약 가격 내리기 운동을 통해 약품 가격을 90% 이상 낮췄고, 아이티 결핵 환자 약 10만 명의 목숨을 건졌다.
 
의료구호 활동이 알려지면서 그는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국장이 됐다. 김 총재는 세계보건기구에서 일할 당시 30만 명 수준이던 개도국의 에이즈 치료 받는 감염자 수를 130만 명으로 늘리면서 ‘에이즈 퇴치 전도사’란 별명을 얻었다. 미국의 유력 언론 <US뉴스&월드리포트>가 선정한 ‘미국 주요 지도자 25인’과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세계를 변화시킨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 총재는 2009년 아이비리그 명문 다트머스대학의 제17대 총장으로 선임됐다. 다트머스대학 204년 역사상 첫 동양계 총장이었다. 2012년 3월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하면서 그의 이력은 절정에 달한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김용 총재를 후보 지명하는 기자회견에서 “김 후보자는 20년 이상 세계 개발도상국가의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해 일해왔으며 그의 경험을 볼 때 세계 빈곤을 줄이는 데 적합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김 총재가 28살 때부터 시작한 의료구호 활동이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해 흐르는 핵심 자산이 된 셈이다.
 
김 총재는 자신이 의사가 되고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된 데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고 회고한다. 애초 철학과 정치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성공하려면 확실히 먹고살 기술이 필요하다”는 치과의사인 아버지의 조언으로 의사가 됐고,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해야 한다”며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얘기를 해준 철학박사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의료구호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 김용 총재(가운데)가 2016년 10월8일 미국 워싱턴의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연례회의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오른쪽) 국제통화기금 총재와 이야기하고 있다. REUTERS
 
“가난하고 불평등한 사람들을 위해”
많은 사람이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과 세계은행 총재가 된 큰 성공을 칭송할 때마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어떤 자리에 오르거나,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늘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에 관심을 두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자리에 오를지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지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하고 불평등한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나”를 고민했다는 김 총재는 이제 그런 일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력과 수단을 갖춘 국제기구의 수장이 됐다. 사실 세계은행은 저개발 국가에 차관을 제공해 경제개발을 촉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국가 내 빈부 격차나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 면에서 김 총재가 하버드 의대 교수 시절인 2000년 동료 교수들과 공동 집필한 책 <성장을 위해 죽어가고 있다: 세계의 불평등과 빈국의 보건현실>(Dying for Growth)은 김 총재의 세계은행에 작은 희망을 기대하게 해준다. 이 책은 성장에만 치우친 경제정책이 오히려 개도국 국민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총재는 책에서 “국내총생산(GDP) 증가와 기업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사실 일반 서민의 삶을 어렵게 한다는 점을 입증한다”고 썼다. 또 “신자유주의 정책이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성공의 혜택이 극심한 빈곤을 겪는 세계 4분의 1 지역까지는 미치지 않는다”며 선진국 중심 글로벌 경제정책은 빈곤국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세계은행 등의 국제기구도 이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김 총재는 또 최근 영국 공영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무역이 성장과 번영을 가져온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었지만, 선진국 내에서도 임금 불평등 심화 등 이에 대해 비관적 의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며 “자유무역의 부작용은 정말 큰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자유무역을 통한 세계경제의 발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이면도 봐야 한다는 얘기다.
 
김 총재가 경제개발과 성장, 자유무역과 신자유주의가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를 제대로 파악하고 앞으로 5년 더 세계은행을 이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성공한 한국인, 미국인 나아가 세계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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