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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탈세계화 부르는 기술 진보
세계화 저물고 거세진 탈세계화 바람
[79호] 2016년 11월 01일 (화) 윤석천 maporiver@gmail.com

탈세계화와 지역화의 바람이 거세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는 탈세계화와 지역화 시대를 알리는 중대 신호다. 그동안 기술 진보가 세계화를 촉진했다면 이제는 또 다른 기술 진보로 탈세계화와 지역화가 가속화한다. 재생에너지, 3D 프린터, 가상·증강 현실, 로봇 기술 진화는 탈세계화와 지역화를 불러오는 핵심 기술 요인이다. 지난 50년이 세계화 시대였다면 앞으로 50년은 탈세계화·지역화 시대가 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20세기는 누가 뭐래도 ‘성장의 시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란 참화를 겪었지만 일본과 독일은 눈부신 성장을 이뤄 미국 등 기존 선진국을 따라잡았다. 그뿐만 아니다. 수많은 신흥국이 뒤를 이어 남루함을 벗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는 ‘세계화’(Globalization) 덕분이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20세기를 상징한다. 국가권력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철학은 결국 물리적 국경을 무력화하는 무역과 자본의 자유화로 연결됐다. 그것은 분명 힘을 가진 쪽의 필요에 의한 정치·경제적 의사결정의 산물이었고 그 부작용도 심각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세계화로 인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무역 확대로 한층 풍요로워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세계화를 가능하게 한 동력은 무엇일까. 정치·경제적 필요성에 따라 세계화가 가시화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간과하는 게 있다. 기술 진보가 없었다면 세계화는 불가능했다. 20세기 후반 기술은 거의 무한 진보를 했다. 특히 통신·운송 기술의 발전은 눈부셨다. 혁신과 신기술, 자본이 제구실을 하려면 그것이 전파 혹은 유통될 통로가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신·운송 기술의 진보야말로 성장 촉진제였고 세계화의 주춧돌이었다. 두 기술로 세계화가 가능했다. 통신과 운송을 누구나 쉽고 값싸게 이용하면서 국제무역은 물론 인적 교류와 금융거래 역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동시에 이를 기반으로 세계화는 그 정도를 더해갔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21세기 들어 지난 50년 동안 끊임없이 지속된 세계화의 속도는 점차 느려지고 있다. 이에 더해 ‘탈세계화’ 혹은 ‘지역화’ 조짐까지 여기저기에서 감지된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는 이를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유럽 통합 대신 지역화 회귀를 웅변한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대선 주자 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한다. 최근 보호무역주의가 재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그 세를 넓히고 있다. 2016년 10월11일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2015년 수입 규제 조치 조사 개시는 총 277건으로 2014년(304건)보다 27건 줄었다.

 

탈세계화의 상징 ‘브렉시트’

하지만 규제가 부과된 것은 210건으로 오히려 28건이 증가했다. 또한 국제무역 연구기관 ‘글로벌 트레이드 얼러트’(Global Trade Alert) 자료를 보면 최근 보호무역 조치가 크게 늘어났다. 보호무역 조치는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500건으로 자유무역 조치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그런데 2015년에는 보호무역 조치가 약 750건으로 급증해 약 250건을 기록한 자유무역 조치보다 세 배 가까이 많아졌다.

이는 무역과 자본 자유화로 상징되는 세계화의 퇴조를 의미한다. 세계는 이미 탈세계화 혹은 지역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탈세계화 바람이 부는 원인은 무엇일까. 우린 정치·경제적 원인만 생각한다. 세계화로 인한 개인 간, 국가 간 불평등 심화는 타국에 문을 닫는 원인 중 하나다. 기업의 해외 이전과 경쟁력 약화 때문에 일자리 상실, 가계소득 감소에 직면한 선진국의 불만도 한몫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원인일까? 아니다. 우리가 간과하는 게 있다. 바로 기술 진보다. 눈부신 기술혁신이 탈세계화를 부추기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50년이 기술 진보로 인한 ‘세계화’ 시기였다면 향후 50년은 또 다른 기술 진보로 ‘탈세계화’ 시대가 될 것이다.

 

   
▲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2016년 6월 런던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영국의 탈퇴 결정은 탈세계화와 지역화 시대를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REUTERS

탈세계화를 부르는 첫 번째 기술은 재생에너지 기술이다. 화석연료는 싸다. 단, 치명적 약점이 있다. 연료를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나르기 위한 인프라 건설이 필수다. 저장소, 부두시설, 송유관, 철도 등은 물론 대형 유조선을 포함한 운반 도구 역시 필수적이다. 화석연료 이용에 필요한 시설 투자비와 그 유지·보수 비용은 비쌀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다.

재생에너지는 어떤가. 태양에너지를 보자. 우린 맘만 먹으면 태양광 패널을 지붕이나 베란다에 설치해 가정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해낼 수 있다. 배터리를 이용해 생산된 전기를 저장할 수 있어 밤에도 에어컨을 가동한다. 심지어 전기자동차를 충전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태양에너지는 화석연료를 거의 대체할 수 있다. 생산원가가 문제지만 이 또한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임이 틀림없다. 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장점은 생산지와 소비지를 일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대형 인프라 건설과 수송이 거의 필요 없다. 물론 환경파괴 위험도 덜하다.

지난 세기 세계화가 필요했던 것은 화석연료의 원활한 수급 때문이었다. 그런데 화석연료를 운반하지 않아도 충분한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면 세계는 어떤 모습을 할까. 현재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화석연료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최종 소비자와 가까운 곳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재생에너지의 경제적 효익은 날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에너지 수급을 위한 세계화의 필요성이 그만큼 줄어든다. 재생에너지는 세계화 대신 지역화를 부를 것이다.

탈세계화를 가속화할 두 번째 기술은 3차원(3D) 프린터다. 오늘날 제조업은 글로벌화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원가절감에 있다. 임금과 재료비가 낮은 국가를 찾아 수많은 기업이 생산기지를 옮겼다. 이는 수송 문제를 낳는다. 생산량 중 일부만 생산지에서 소비되고 나머지는 다른 지역으로 운송된다. 이는 자원과 시간 낭비를 초래한다. 만약 최종 소비자 가까이에서 필요한 양만 생산할 수 있고 비용도 적게 든다면 기존의 거대한 글로벌 제조 시스템은 필요 없다.

 

지역화 촉진하는 재생에너지

3D 프린팅 기술이 그것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 기술의 가장 큰 장점은 유연성에 있다. 동일한 장비를 사용해 완전히 다른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고 기계 설비를 조금만 손보면 된다. 그 보급에 결정적 장애물인 가격 또한 급격히 내렸다. 이것은 지금과 다른 제조의 세계가 가까이 있음을 말해준다. 동일한 물건을 대량생산하는 전문 공장 대신 지역 제조업 센터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제품을 필요한 만큼 만들어낼 수 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대량생산되는 현 제조 시스템은 저물 것이다. 미래엔 지역 제조업체에 의한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 혹은 소비자가 필요한 제품을 직접 만들어 쓸 것이다.

로컬 제조는 글로벌 제조를 완전히 대체할까. 아니다. 그러나 수송 총량을 줄일 것이다. 무엇보다 국내 기업이 경비 절감을 위해 생산, 용역, 일자리 등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뜻하는 ‘오프쇼링’(Offshoring)의 유인이 줄어들 것이다. 오프쇼링의 가장 큰 동기는 인건비 부담이다. 하지만 로봇이 발전하면서 기계가 인간을 급속히 대체하고 있다. 기업이 인건비 때문에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길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엔 글로벌 제조보다 로컬 제조가 대세가 될 것이 분명하다. 세계화의 필요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가상현실, 증강현실 기술도 탈세계화를 부추길 것이다. 통신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우린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과 화면을 보며 대화한다. 함께 서류도 검토한다. 놀라운 일이기는 하나 직접 대면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이 이를 극복해줄 것이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은 비즈니스 형태를 바꿀 것이다. 이 기술을 이용해 사람들은 가상 회의실에서 만나 현실세계의 만남처럼 회의할 것이다. 상대의 표정, 목소리 톤, 몸짓 등을 직접 만난 것처럼 느낄 수 있어 가상 회의는 실제와 거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리적 대면이 필요 없으니 비즈니스 여행이 줄어든다. 물론 관광 목적의 여행도 지금보다 적어질 것이다. 그에 따라 운송 인프라와 그것에 투입되는 자원이 줄어들게 된다. 세계화 필요성이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 재생에너지, 3D 프린터, 가상-증강 현실, 로봇 기술 진화는 탈세계화와 지역화를 불러오는 핵심 기술 요인이다. 태평양 횡단, 대서양 횡단에 성공항 태양광 비행기 '솔라임펄스2'가 2016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상공을 선회하고 있다. REUTERS 

컨테이너, 선박, 제트여객기, 위성, 자본펀드가 없었다면 세계화는 불가능했다. 유·무형의 기술 진보로 세계화는 가능했다. 같은 이유로, 향후의 기술혁신은 지역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재생에너지, 3D 프린터, 가상현실·증강현실, 로봇 기술의 진화는 우리를 지역화로 몰고 갈 것이다. 물론 기술만이 탈세계화와 지역화의 변수는 아니다. 정치적 판단, 경제적 필요성, 국제 무역협정 등도 중요한 결정 요인이다. 하지만 기술 진보는 정치와 경제의 지형을 종종 바꾸기도 한다. 산업혁명은 세계를 바꿨다.

기술의 변화와 진보를 막아낼 수는 없다. 혁신은 가치가 있는 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적 의도가 그 흐름을 일시적으로 지체할 수 있지만 역류시킬 수는 없다. 운송과 통신에 기초한 세계화는 또 다른 기술이 성숙하면 약화할 것이다. 기술은 세계화의 기본 원칙을 변화시키고 있다 .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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