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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백수’, 그 한가한 존재
Editor’s Letter
[79호] 2016년 11월 01일 (화) 신기섭 편집장 marishin@hani.co.kr

저는 요즘 편의점에서 싸게 파는 수입 맥주를 마시는 데 재미를 붙였습니다. 특히 금요일 밤 늦게 집 근처 편의점에 들러, 어떤 제품을 할인하는지 둘러보고 맥주를 고릅니다. 늦은 시간에, 그것도 주로 부부가 함께 오니, 아르바이트하는 청년도 알아봅니다. 언젠가부터 물건 값을 치르는 잠깐 동안 말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습니다. 최근엔 집이 어딘지 물어봤습니다. 경기도 산본이라고 합니다.

가게를 나오면서 저희 부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집이 서울 한복판에서 조금 남쪽입니다. 이 젊은이는 이른바 ‘불금’에 밤샘 일을 하려고 족히 1시간씩 들여 ‘상경’하는 겁니다. 버스를 이용할까 지하철을 이용할까, 부질없는 짐작을 하며 돌아오는 길이 너무 길었습니다.

며칠 전에 만난 어떤 젊은이는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최근 새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사람이어서 자연스럽게 전에 하던 일을 묻게 됐습니다. “내가 왜 이런 걸 하나 싶은 일”이었다고 하기에, 바로 경제적 자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훈계하고 말았습니다. 뒤에 이어진 이 젊은이의 말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졌습니다.

그는 신념에 어긋나는 일이어서 할 때는 괴로웠지만, 못하게 된 뒤에야 생계를 위해 일에 절박하게 매달리는 이들의 심정을 몸으로 느끼겠더랍니다. 성인이 된 뒤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취업 준비와 고된 노동을 감당할 체력이 안 된다고 느꼈답니다. 그래서 육체노동이 아닌 일을 찾았고, 할 때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만두라는 말을 들으니 하루를 울게 되더랍니다. 이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는 걸 보며 저는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제 주변에 학생이 하나 있습니다. 본인은 공부하랴 빠질 수 없는 학교 행사 참석하랴 바쁘다지만, 제가 보기엔 그래도 할 건 다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게임도 하고, 컴퓨터로 동영상도 보고, 스마트폰도 손에서 떼지 않습니다. 저는 그동안 ‘청년 백수’라는 말을 들으면, 꼬박꼬박 갈 학교가 없을 뿐 나머지는 이 학생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을 상상했습니다. 취업 준비 공부에 더 절박하게 매달리고 마음의 여유가 더 없는 정도려니 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젠 제 머릿속 ‘청년 백수’가 너무나 한가한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식비 걱정, 차비 걱정 없이 취업 준비만 열심히 할 수 있는 젊은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봅니다. 신문, 방송에서 청년들 어려운 얘기 많이 보고 들었지만 어디 먼 세상 이야기처럼 봤구나 반성도 합니다.

최근 나온 책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와 책의 저자 이야기를 보면, 요즘 한국에서 학생이라는 신분은 ‘공부하는 사람’인지 ‘일하는 사람’인지 정체도 불분명한 지경입니다. 많은 학생이 대학 때부터 이미 빚에 허덕이고 졸업하는 순간 ‘학생’이라는 알량한 방어막도 잃고 마는 것 같습니다.

책 저자 천주희씨가 이번호 ‘경제와 책’(142쪽)에 직접 글을 썼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그리고 주위를 한번 돌아보세요. 다른 세상이 보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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