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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이슈] 아리송한 청탁금지법, 기업들 우왕좌왕
김영란법 본격 시행… 떨고 있는 기업들
[78호] 2016년 10월 01일 (토) 이현호 economyinsight@hani.co.kr

식사·선물은 기준 있지만 비용 산정 힘든 편의 제공은 논란…
편법 성행 땐 되레 지하경제 확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2016년 9월28일 시행되면서 기업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해온 접대문화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시행 초기인 만큼 허용 범위의 판단 기준이 모호해 사내 법무실이나 외부 법무법인, 주관 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문의해도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어 눈치 보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명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가이드라인 마련에 고심하는 것은 물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들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당분간 영업활동을 아예 중단하는 게 위험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이현호 <서울경제> 경제부 기자

2016년 9월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하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서 기업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당장 기업들은 대외 업무 부서에 술자리 ‘경계령’을 내렸다. 정부 부처 관계자들도 기업이나 언론인 등과의 술자리에 몸을 사렸다. 청탁금지법 시행 뒤 6개월간 사정기관이 총동원된 ‘사정 한파’가 몰아칠 수밖에 없어 그 첫 번째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한 포석이다. 최근에는 경찰이 서울 전 지역 술집을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해 저녁 자리가 2차로 이어지는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공무원과 언론인을 상대로 한 기업들의 저녁 술자리 접대 문화가 사실상 사라지는 셈이다.

   
▲ 2016년 8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청탁금지법 시행과 기업의 대응과제 설명회’에서 참가자들이 자료집을 받아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언론을 상대하는 홍보팀과 정부와 국회를 담당하는 대관(對官)팀은 업무가 거의 모두 정지된 상태다. A기업 대관팀의 아무개 차장은 최근 희한한 경험을 했다. 부처 공무원과 저녁 자리를 위해 1인당 2만9천원짜리 식당을 예약해 장소를 공지했더니 공무원이 “무슨 큰일 날 소리 하냐”며 면박을 줬다. 그 공무원이 자신의 단골집에서 만나자기에 찾아갔다가 내심 당황했다. 서울 시내 한 재래시장에 있는 한식당이었다. 1인당 7천원짜리 부대찌개에 3천원짜리 소주 한 병씩 마시고 총 2만원을 결제한 뒤 바로 헤어졌다. 그는 10년 넘는 대관팀 근무 중 이런 저녁 자리가 처음이다.

술자리 등 접대문화가 이미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급 식당에서 접대하는 대신 3만원 내에서 식사와 술을 즐길 수 있는 맥줏집이나, 식당보다 카페에서 만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저녁 자리는 줄고 점심때 만나는 경우도 많아졌다. 골프 접대의 경우 대다수 기업이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보통 1인당 30만원 안팎의 비용을 대신 계산하면 청탁금지법 처벌 대상이라 일찌감치 포기한 상황이다.

명확한 한도가 제시된 식사비(3만원)와 선물비(5만원), 경조사비(10만원) 등은 기준대로 지키면 되지만 비용을 산정하기 힘든 편의 제공이 골칫거리다. 기업이 언론인에게 제공하는 기자실 운영은 당장 해석이 엇갈린다. “기자 누구나 출입할 수 있게 운영하면 문제없다”는 찬성 의견과 “출입 가능 대상을 기자로 한정한 것 자체가 특혜가 될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맞선다. 논란의 여지가 많아 대다수 기업은 아예 기자실 운영을 폐지하는 분위기다. 항공업계는 공무원과 언론인이 가장 많이 부탁하는 ‘좌석 민원’이 고민이다. 비용이 들어가는 좌석 승급이 아닌 같은 등급 안에서 좌석 이동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칫 ‘부정 청탁’에 해당될 수 있어 어찌해야 할지 전전긍긍한다.

청탁금지법 시행 뒤 기업들의 마케팅 활동도 크게 위축될 지경이다. C그룹 금융계열사 마케팅실 김아무개 차장은 10월 말 VIP 고객에게 마케팅 차원에서 제공하는 문화 후원 행사 초대권과 관련해 청탁금지법에 저촉되는지 회사 법무실에 문의했다. 법무실에서 처음엔 “된다”고 회신했다. 사회상규에 해당하는 통상적 업무로 볼 수 있다는 게 법무실의 해석이다. 김 차장은 법무실의 해석을 근거로 서둘러 초대권 발송 작업을 진행했는데 막바지 단계에서 중단해야 했다. 법무실 쪽이 재회신을 했는데 “티켓 가격이 5만원 이상으로 고객 중에 혹시 공무원이나 교사, 언론인이 있을 수 있어 당분간 오해 살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통보였기 때문이다.

기업들, 마케팅 활동 크게 위축

사정이 이렇다보니 청탁금지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편법을 쓰는 접대문화가 성행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접대비 실명제’ 때처럼 지하경제 확대 위험성이 커지는 것은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2009년 2월 폐지된 전례가 있어, 청탁금지법 시행 초기에 ‘데자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접대비 실명제 때와 마찬가지로 시행 초에는 ‘본보기’가 되지 않도록 법을 준수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편법 사례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회의론’이다.

대표적인 예가 식사비 한도 등에 맞추기 위한 ‘쪼개기 결제’ 같은 편법이다. 영수증 날짜를 조정하거나 여러 업소로 나눠 따로 계산하는 방법은 기본이다. 회사의 법인카드를 여러 장 가져가 업소 주인이 갖고 있는 여러 사업자 명의별로 나눠 계산하는 방법도 있다. 접대 자리에서 각자 계산한 뒤 접대하는 쪽에서 증거가 남지 않는 방법으로 돈을 되돌려주는 ‘페이백’(Pay back) 방법도 있다. 이럴 경우 지하경제가 더욱 확대될 위험성이 있다. 계열사나 관계사끼리 카드를 빌려주는 ‘품앗이 결제’도 청탁금지법을 문제없이 피해갈 수 있는 수단으로 업계에서는 농담처럼 거론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미 대부분의 공무원이 골프 접대는 본인의 이름이 아닌 가명을 이용하고 있다”면서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 편법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 고위 공무원도 “사법 당국이 모든 식사 자리와 모임을 조사하지 않는 이상 위반 사항에 대한 현장 적발은 불가능해 결국 신고나 제보에 의한 사후 적발로 접근할 텐데 위법 기준을 사법 당국이 판단할 수밖에 없어 논란의 여지가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존 국민 실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온 청탁금지법이 가뜩이나 위축된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고급 식당이나 골프 등 접대문화의 변화가 불가피해지면서 기업들의 법인카드 사용이 대폭 축소돼 일정 부분 소비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이찬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법인 59만1694곳이 법인카드로 결제한 접대비는 총 9조9685억원이다. 접대비가 10조원에 육박하며 최근 8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루에 약 270억원이 접대비로 나간 셈이다.

그러나 청탁금지법에 따라 식사 접대가 3만원으로 제한되면서 소비 부문에 상당 부분 타격이 예상된다. 식사 등 접대비 규제에 따른 카드업계의 경제적 피해는 2004년 도입된 기업 접대비 실명제 사례로 유추가 가능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법인카드 이용액은 2003년 100조2171억원에서 2004년 83조3419억원으로 16.8% 급감했다. 이듬해 96조8706억원으로 다소 회복했으나, 다시 100조원대로 올라온 것은 2006년의 일이다. 기업 접대비의 경우 2004년 5조4373억원에서 2005년 5조1626억원으로 5.05% 감소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2004년 민간 소비 증가율은 -0.3%로 2003년(-1.2%)에 이어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해 성장동력을 떨어뜨렸다.

사회 투명성 높이기 vs 소비 침체 조장

   
▲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에 맞춰 서울 강동구의 한 식당에 1인 2만5천원 가격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김영란법에 따라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이 직무와 관련 있는 사람으로부터 3만원이 넘는 식사 대접을 받을 경우 과태료를 물게 된다. 연합뉴스
한국경제연구원 쪽은 “청탁금지법이 시행될 경우 연간 11조6천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음식업 8조5천억원, 골프장 1조1천억원, 소비재·유통업(선물) 1조9700억원 등의 손실이 예상되는데 이는 소비 침체에 따른 간접적 효과가 계산에서 제외된 만큼 실제 손실액은 더 클 수 있어 관련 산업의 피해 경감 대책을 포함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역시 “청탁금지법이 사회 투명성은 높이겠지만 일부 업종의 업황과 민간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어느 정도 미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행도 2016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8%에서 2.7%로 하향 조정하면서 “청탁금지법이 관련 법령보다 적용 범위가 넓고 처벌 조항도 강화돼 정착 과정에서 관련 업종의 업황이나 민간 소비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물론 일각에서 “청탁금지법은 더치페이법이다”라고 지적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얘기처럼 더치페이 문화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다면 접대문화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긍정적 분석도 나온다. 다만 우리의 오랜 관행을 벗어던지고, 심리적으로 더치페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화와 인식을 바꾸는 게 관건이다.

당장 더치페이가 정착되면 상대방의 부담을 감안해 너무 값비싼 식사 자리는 자제하게 된다. 2차와 3차 등 심야까지 이어지는 장시간, 고액의 접대문화가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접받았다는 인식이 줄어들면서 암암리에 형성되는 ‘보답 심리’도 피할 수 있다. 얼마까지 접대해야 위법이 아닌지 골치 아프게 계산하거나 편법을 동원해야 하는 문제가 깔끔하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김귀옥 한성대 교수(사회학)는 “청탁금지법은 기업들의 접대문화에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국민의 실생활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더치페이는 정 없는 문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치부됐지만 법 시행을 계기로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하고 부정부패와 도덕적 해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hhlee@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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