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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Biz] 한류로 불똥 튄 사드 후폭풍
중국 외국 문화 정책의 보수화
[78호] 2016년 10월 01일 (토) 문동열 economyinsight@hani.co.kr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한류 흔들기’가 본격화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국내 스타들이 촬영 중이던 드라마에서 하차하는가 하면 TV 프로그램에서 통편집되는 일도 늘었다. 사드 배치로 중국 내 한류가 인위적으로 통제되는 징후가 나타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사드 논란과 별개로 중국의 문화 수입 정책이 ‘자국 콘텐츠 보호’에 맞춰질수록 보수화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한국 문화콘텐츠 기업들의 고민이 점점 커지고 있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찌는 듯한 무더위가 계속되던 2016년 8월 어느 날, 필자는 한·중 공동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던 중국 업체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당분간 연기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물어보는 필자에게 그는 약간 망설이면서 “소나기가 내리면 잠깐 피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는 선문답과도 같은 말을 남겼다. 2016년 7월 한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결정으로 인한 한·중 관계의 냉각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프로젝트가 어떤 사유로 지연되거나 연기되는 건 비즈니스를 할 때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좀 다른 듯했다. 전화를 끊고 비슷한 일을 하는 동업자 몇몇에게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은 다들 비슷했다. ‘중국 쪽 관련 프로젝트가 올스톱됐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중단된 사유조차 비슷했다.

   
▲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는 2016년 10월 한·중·일 동시 방영 예정이었지만 사드 논란 이후 중국의 심의 지연으로 방영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이영애와 송승헌이 2015년 11월 <사임당, 빛의 일기> 기자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며칠 뒤 중국의 문화, 미디어를 총괄하는 부처인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에서 ‘금한령’(禁韓令)을 내렸다는 말이 업계에 돌았다. 업계 정보 공유에 사용하는 그룹대화방에 등장한 금한령의 내용은 실로 구체적이었다. 한류 스타들의 중국 내 활동과 케이팝(K-Pop) 스타들의 중국 내 공연을 금지하고, 한국 문화산업에 새로운 투자를 하거나 새로운 한·중 합작 프로젝트를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인용된 출처가 일부 중국 네티즌들의 합성으로 알려지면서 금한령은 오보로 판명이 났다. 하지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으로 이런 말들이 떠돌던 시점에 중국에서 잘나가고 있던 가수 황치열이 중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통편집을 당하고,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선 가수 싸이와 아이돌 그룹 아이콘의 출연 장면이 삭제된 채 방영되는 등 ‘징조’들이 나타나면서 금한령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2016년 10월 한·중·일 동시 방영 예정이던 이영애 주연의 SBS 사전제작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중국 심의 지연으로 10월 방영 여부가 불투명해지는 등 여러모로 중국 내 한류의 입지가 점점 미묘해지는 상황이다.
 
금한령, 단순 해프닝일 뿐인가

어쨌든 몇 달간 공들인 사업이 기약 없이 연기된 상황에서 필자를 포함한 제작자들의 맘이 편할 리는 없겠지만, 중국 관련 사업을 오랫동안 해온 베테랑 제작자들은 이번 일이 그렇게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한 중견 제작자는 이번 일들에 대해 “이번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으로 중국 내 반한 감정이 들끓었고, 금한령이니 경제보복이니 하는 말들은 그런 반한 감정에서 생겨난 말이 아닐까 싶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국 기업들이 한국 관련 프로젝트를 연기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은 예민한 시기에 튀지 않으려는 중국 기업들의 자구책일 뿐 제한적이고 한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 근거로 그는 중국인들에게 한류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둘 다 가지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한류가 자국 산업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중국인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은 지금과 같은 경제 발전을 이뤄오면서 어떤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해외의 발전된 노하우를 들여와 그 노하우로 가장 빠르게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을 채택해왔다. 이 노선의 연장선에서 볼 때 한국이 중국 콘텐츠 산업을 비롯한 ‘중화 소프트파워’를 강화하는 데 가장 좋은 파트너라는 건 중국 업계에선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때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정말 한국 업계가 경계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부분은 최근 급격히 보수화하는 중국 정부의 문화 수입 정책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중국은 해외로부터 유입되는 문화콘텐츠를 겨냥한 여러 규제 정책을 발표해왔다.

특히 2016년 7월1일부터 시행되는 중국 광전총국의 ‘자생적이며 창의적인 TV 프로그램 제작의 대대적 추진에 관한 통지’ 규정을 보면 최근 유행처럼 번지던 해외 수입 방송물 등에 일대 규제를 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통지에 따르면 중국의 방송사나 제작사들이 해외 프로그램을 수입할 때 최소 방영 두 달 전까지는 광전총국의 심의를 거치게 돼 있고, 저녁 7시30분부터 밤 10시30분까지 이어지는 황금시간대에는 해외 작품보다는 공익성 있는 자국의 작품을 우선 방송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런 식으로 최근 중국 문화 수입 정책이 예전과 달리 직접적인 규제보다는 교묘할 정도로 간접적인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한국 기업들의 고민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예전처럼 직접적으로 수입을 규제할 경우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무역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사드 국면에서 중국 기업들이 보여준 행동같이 당국의 공식적 발표 없이도 ‘일정 수준의 시그널’만 던져주면 중국 기업 스스로 자기 검열을 통해 알아서 대처하면서 이전에도 컸던 중국 시장의 변동성이 더 커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중국에 진출하려는 많은 한국 기업들 사이에선 오히려 ‘튀면 안 된다’는 말이 돌고 있다. 너무 떠버리면 당국의 주목을 받게 되고 곧 어떤 규제가 발표되기 때문에 예전 같으면 보도자료니 기자간담회니 하면서 떠들썩하게 했던 일도 조용히 진행하거나, 중국 쪽 사업에 대해 국내 쪽에는 아예 보도자료조차 내지 않는 기업도 조금씩 늘고 있다. 한때 한국 드라마의 안전지대였던 중국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들이 몇몇 드라마의 큰 히트 이후 잇단 규제를 받는 것이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 문화 정책의 보수화

   
▲ 아이돌 그룹 위너가 2016년 6월 중국 상하이 푸둥공항에 도착하자 한류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한류 흔들기’가 본격화했다.AP 연합뉴스
중국의 문화 수입 정책의 보수화는 일차적으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수출에 직접적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그동안 규제에서 많이 벗어나 있던 연예 매니지먼트 분야에도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방송사들이 황금시간대 프로그램에 ‘공익성’을 우선하게 되면 광고 수익이 감소함으로써 앞으로 중국 시장에서 한류 스타의 입지는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중국의 문화 수입 정책의 보수화가 잠깐 지나갈 규제가 아니라, 시진핑 체제 이후 가속되는 이른바 ‘문화 굴기’에서 비롯된 정책의 연장선이라는 점이다. 시간이 갈수록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보수화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그야말로 무서운 속도로 높아지는 한국 콘텐츠 산업의 중국 의존도는 양날의 검처럼 새로운 기회이자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 한 제작자가 “몇 년 전만 해도 한·중 문제로 이렇게 콘텐츠 산업이 동요한 적은 없었다. 사드 배치 결정으로 이렇게 요동치는 건 그만큼 한국 콘텐츠 산업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방증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 차이나머니는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본다.

코트라(KOTRA)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5억달러(약 5600억원) 수준이던 중국의 대한국 투자 규모는 2016년 상반기에만 17억달러(약 1조9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70%가 넘는 투자금이 기존 제조업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분야 같은 서비스업에 치중되고 있다. 물론 차이나머니로 인해 한국 콘텐츠의 중국 수출 활성화와 TV 드라마의 사전제작이 느는 등 한국 콘텐츠의 질이 높아진다는 긍정적 면도 있긴 하지만, 한편으론 대만의 사례와 비슷하게 ‘중국 시장의 하청공장화’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제 한국 콘텐츠 시장도 다음 단계로 가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까지는 내수 콘텐츠를 한류라는 이름으로 중국 시장에 내다 파는 것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중국을 ‘시장’으로만 보는 개념에서 벗어나 ‘전략적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중국과의 활발한 인적·물적 교류를 통해 중국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 산업의 역할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중국 콘텐츠 산업이 현재 가장 원하는 작가나 프로듀서, 편집자, 기획자 같은 고도의 노하우를 지닌 ‘콘텐츠 고급 인재’ 양성에 주력해야 한다. 이들이 가진 무형의 능력을 보호하기 위한 지적재산권 제도 정비 등을 통해 한국 콘텐츠 산업 시스템을 한 차원 더 고도화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redbros@redbros.co.kr
 

* 문동열은 영상 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 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 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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