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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마이너스 금리의 역설
초저금리 시대가 낳은 유동성 함정
[78호] 2016년 10월 01일 (토) 이코노미 economyinsight@hani.co.kr

세계는 초저금리와 마이너스 금리의 함정에 빠졌다.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이기는 하지만 굳이 찾지 않고 있다. 세계의 중앙은행은 막연하게 곧 나아질 것이라고 믿으며 오늘도 출구를 외면하고 있다. 그사이 돈을 풀어도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제 실물경제의 동맥경화 현상이 불가피해 보인다. 초저금리 시대가 낳은 질병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마이너스 금리 시대다. 일본이 대표 주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현재 마이너스 0.1% 수준인 정책금리의 마이너스 폭을 더 키우는 방식으로 완화적 통화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폐기할 것이란 주장도 있었으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근거 없는 얘기인 듯하다.

사실, 마이너스 금리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현재 명목수익률 제로 이하로 거래되는 전세계 국채와 회사채의 액면가액은 약 12조6천억달러로 추산된다. ‘거래’란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 채권은 실제 거래되고 있다. 마이너스 수익률 채권 시장이 존재한다. 매수자는 어떤 항의도 하지 않고 매도자는 필사적으로 그 채권을 할인해 팔지도 않는다. 기묘한 일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나 이미 현실이다.

   
▲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주도하는 일본은 현재 마이너스 0.1% 수준인 정책금리의 마이너스 폭을 더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오른쪽)와 아소 다로 일본 재무상. REUTERS
트레이더들이 실성한 것은 아닐까? 아니다. 그들은 비합리적 세계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 선택은 무한하지 않다. 현실 세계에서 결정은 몇 가지 대안 중에서만 가능하다. 모든 대안이 변변치 않을 땐 선택 혹은 결정 역시 변변한 것이 될 수 없다. 마이너스 수익률 채권의 거래 시장은 중앙은행에 의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시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트레이더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것을 거래하고 있다.

금리란 무엇인가? 돈의 가격 또는 투자의 견지에서는 유동성의 대가라고 설명할 수 있다. 누군가 돈을 빌리면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유동성을 잃는다. 이자는 유동성을 포기하는 대가를 말한다. 그것이 바로 금리다. 그렇다면 마이너스 금리가 의미하는 건 뭘까? 플러스 금리는 유동성을 긍정적으로 보기에 가능하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게 대가를 주는 이유는 그가 유동성이란 긍정적 가치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반면 마이너스 금리는 유동성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면 탄생할 수 없는 개념이다. 유동성 포기의 대가로 외려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게 벌금을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축 늘리는 유동성 주체들

마이너스 금리의 목표는 유동성 증진에 있다. 돈의 흐름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한데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중앙은행은 은행과 스스로에게 벌금을 부과하며 유동성 확대에 목매고 있지만 마이너스 금리가 내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소비와 투자의 주체, 다른 말로 유동성의 주체들은 저축을 늘리고 있다. 이것이 초저금리도 모자라 마이너스 금리가 만들어내는 역설이다.

마이너스 금리가 양산하는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것을 살펴보는 건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현재는 일부 선진국에서만 쓰지만 자칫 또 한 번 위기가 온다면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대부분이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계의 중앙은행은 금융위기 이래 초저금리와 마이너스 금리로 경기를 회복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이런 과감한 통화정책의 근거는 뜻밖에도 입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금리를 낮출수록 수요는 늘어난다는 가설이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세계는 이미 회복기에 들어서야 한다. 현실은 중앙은행의 시도가 참담했음을 방증한다.

초저금리와 마이너스 금리는 수요를 진작하는 데 실패했다. 마이너스 금리는 소비자와 기업의 부채 수준이 높거나 신용도가 낮은 경우 역효과를 불러온다. 이들은 빚을 갚기 위해, 혹은 빚을 늘릴 수 없어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인다. 이뿐만 아니다. 여유자금이 있는 저축자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저축과 연금이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비를 늘리기는 쉽지 않다. 기업의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의 투자 결정은 중앙은행의 기준금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래 성장에 대한 전망과 리스크에 대한 태도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현금 비축은 오늘날 기업의 일상이다.

유동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상황에서 기업의 투자는 살아날 이유가 없다. 금리 인하와 소비의 상관관계는 중앙은행이 생각하는 것처럼 높지 않다. 낮거나 때론 역방향일 수도 있다.

오늘날 중앙은행가들은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함으로써 자신들이 그토록 숭배하는 케인스를 배반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위대한 저작물인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이미 금리가 제로에 다다른 경우 금리를 더 낮추는 것은 고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노동 수요를 자극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케인스는 분명 중앙은행이 ‘최종 대부자’ 구실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 공짜로도 빌려줘야 한다고 했다. 다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이며 대부분의 경우엔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데 오늘의 중앙은행은 공짜로도 모자라 마이너스 금리로 빌려주고 있다. 케인스 주장의 한쪽만을 받아들인 것이다.

중앙은행이 ‘최종 대부자’로 돈을 빌려줄 때는 되도록 무거운 벌금을 부과해야 하며 실제 빌릴 필요가 없는 기관의 차입을 금해야 한다. 그래야 비합리적 경영에 대한 단죄가 가능하며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무엇보다 빌리지 않아도 될 돈을 빌려 금융공학이나 투기에 나서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한데, 오늘의 중앙은행은 이런 고전적 규칙을 전혀 따르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금융, 자산시장은 물론 실물경제까지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다. 중앙은행의 과보호가 민간의 독립성, 자생력을 앗아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과보호가 풀리는 순간 세계경제가 침몰할 것이란 가정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중앙은행의 잘못된 처방전

   
▲ 유럽의 은행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는 가운데 스코틀랜드로열뱅크는 기업고객에 예금 수수료를 물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런던의 스코틀랜드로열뱅크 지점. REUTERS
보험, 연기금, 은행까지 서서히 고사해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중앙은행의 잘못된 처방전 때문이다. 보험사의 수익모델은 대부분 장단기 금리차를 이용한 방식이다. 고객의 돈을 받아 장기대출로 수익을 내 그것을 보험금으로 쓴다. 연기금 역시 대부분 장기대출 혹은 투자로 수급자에 대한 재원을 마련한다.

이 때문에 채권과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역시 장기적으로 이뤄지는 게 상례다. 하지만 이 모델은 초저금리와 마이너스 금리 체제에서는 쓸모가 없다. 이들의 수익모델이 무너지고 있다. 유럽의 보험회사는 의무적으로 장기 국채에 투자하도록 규제받고 있다. 그중 상당수가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중앙은행은 이들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

은행도 심각하다. 은행이 보유 현금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외려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은행이 존재할 수 있을까? 2016년 9월 초, 스코틀랜드로열뱅크는 자사의 기업고객에 드디어 예금 수수료를 물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독일 은행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아니더라도 은행은 분명 타격을 받고 있다. 은행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필사적으로 비용을 줄이고 있다. 자동화를 통해 직원을 해고하고 지점을 폐쇄하는 것이 은행이 처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산시장마저 파열한다면 과연 살아남을 은행이 몇 개나 될까?

중앙은행은 민간기업을 국유화하고 있다. 무슨 말이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이게 현실이다. 선진 중앙은행은 회사채를 매입하고 있다.

심지어 유럽중앙은행은 공개시장이 아닌 직매입 형태로 회사채를 매입하고 있다. 2016년 8월 중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유럽중앙은행이 공개시장을 우회해 직접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제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중앙은행이 행사하는 시대가 되었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자칫 채권시장 자체가 심하게 위축될 수 있다. 중앙은행의 개입으로 채권시장에서 우량 채권들이 사라지고 있다. 살 만한 매물이 없는 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 채권시장 참여자 중 상당수가 시장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날이 갈수록 중앙은행의 채권시장 독과점 현상은 깊어질 것이다. 중앙은행은 이를 원치 않겠지만 현실은 점차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선진 중앙은행의 정책은 이미 기능 부전 상태다. 오늘의 금리는 분명 잘못됐다. 하지만 이를 수정하는 건 초저금리가 시행되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더욱 힘이 들 것이다. 정책의 오류는 분명하지만 이를 수정하면 혼란은 가중될 수 있다. 출구를 찾는 건 만만치 않다. 그런대로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마저 각종 핑계를 대며 금리 인상을 주저하고 있다.

이유가 있다. 주식시장 등 자산시장의 붕괴 가능성 때문이다. ‘금리 인상’이란 단어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는 시장을 보며 그것을 부양시킨 자신들의 결정을 철회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의 중앙은행은 분명 자산시장의 ‘노예’다. 자산시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출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유일한 대안은 그저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그런 날이 올 수도 있다. 반대로, 상황은 얼마든지 악화될 수도 있다. 그땐 과연 중앙은행이 어떤 ‘도구’를 쓸 수 있을까? 이미 수소폭탄까지 쓴 마당에 선택할 게 과연 남아 있기는 할까?

maporiver@gmail.com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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