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이슈 > 흐름
     
[세계는 지금]테러 공포로 쑥대밭 된 ‘낭만 도시’
브뤼셀 테러의 여파로 혼란스러운 벨기에
[78호] 2016년 10월 01일 (토) 이윤진 economyinsight@hani.co.kr

세계문화유산 그랑플라스 광장, 서유럽의 베니스로 불리는 브루게, 마니아들의 영혼을 사로잡는 8천 가지 이상의 맥주까지 벨기에는 관광객의 천국으로 꼽힌다. 이는 2016년 3월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발생한 테러 한 방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벨기에 경제는 테러 위협으로 꽁꽁 얼어붙었고, 테러 책임론과 뒷수습 과정에서 그동안 잠재돼 있던 온갖 부조리가 표면화하면서 정치·사회적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벨기에 정부는 이슬람 이민자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고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안보 정보 공유를 체계화하는 숙제를 떠안고 있다.

이윤진 KOTRA 벨기에 브뤼셀무역관 과장

2016년 3월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테러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테러가 발생한 브뤼셀 자벤텀 공항 운영은 상당 부분 정상화됐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테러가 벨기에 경제에 미친 여파는 크다.

2016년 7월26일 벨기에 경제부는 브뤼셀 테러로 인한 경제 손실이 1분기에만 9억3500만유로(약 1조18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산업은 역시 관광업과 소매업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수도 브뤼셀은 테러 이후 2016년 2분기에 전분기 대비 약 12억2500만유로(약 1조5400억원)의 매출 감소가 발생했다. 절기상 2분기가 1분기보다 야외 활동을 하기 좋은 날씨고 여러 축제가 열리는 점을 감안할 때 이례적인 수치다.

   
▲ 벨기에 브뤼셀의 옛 증권거래소 앞에서 우익 시위자들이 테러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이슬람 이민자에 대한 벨기에 사회의 차별은 심각하다. REUTERS
벨기에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인 브루게 역시 손실이 극심하다. 브루게는 벨기에 북서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오랜 기간 홍수로 물에 잠겨 있다가 복구돼 2000년부터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바다와 인접해 대형 유람선으로 외국 관광객 유입이 잦은 곳이지만, 테러 이후 일부 여행사가 브루게를 여행 코스에서 제외해 방문객이 급격히 줄고 있다. 이 여파로 브루게 운하에서 관광보트 사업을 하는 운영사의 상반기 티켓 판매도 전년 대비 22% 감소했다.

세수는 어떠할까? 벨기에 재무부 장관 요한 판 오버르트벨트는 테러 직후 정부 세수가 7600만유로(약 960억원) 감소할 것이라고 글로벌 인터넷매체 <폴리티코>(Politico)를 통해 밝혔다. 이는 벨기에 국내총생산(GDP)의 0.1%에 해당하는 수치로, 테러로 인한 추가 지출 등을 감안하면 부족한 세수는 약 10억유로(약 1조2600억원)에 해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 세수가 얼마나 감소했는지는 2016년 회계연도가 끝나야 알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전망이 좋지 않다.
 
벨기에의 ‘허술한’ 대테러 정책

브뤼셀 테러는 벨기에가 경제적 타격뿐만 아니라 대테러 정책에도 큰 허점이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벨기에 내무부 장관 얀 얌본과 법무부 장관 쿤 헤인스는 터키로부터 테러 용의자 한 명을 주의하라는 사전 통보를 받았으나 조처를 취하지 않았음을 시인하고 테러 직후 사의를 밝혔다.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가 이를 수리하지 않아 일단락됐지만, 이는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2016년 3월24일 헤인스 법무부 장관은 현지 텔레비전에 출연해 브뤼셀 공항 폭탄 테러범인 벨기에 국적자 브라힘 바크라위가 2015년 여름 터키에서 이슬람국가(IS)에 가입하려다 체포돼 네덜란드로 추방됐으며, 이 사실을 터키 정부로부터 통보받았다고 인정했다. 헤인스 장관은 터키 정부가 해당 사실을 네덜란드 추방 이후에 통보해 브라힘 바크라위의 소재지가 파악되지 않아 추적이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벨기에 당국의 허점은 프랑스 파리 테러 이전부터 있었다. 벨기에 일간지 <르수아르>(Le Soir)는 벨기에 경찰이 파리 테러 발생 이전에 테러 용의자로 의심되던 이들에 대한 추적 및 조사 활동을 중단했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벨기에 의회에 제출된 공식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밝혀졌다. 이 보고서는 벨기에 정부가 파리 테러 발생 9개월 전 자금 부족을 이유로 브라힘 압데슬람과 살라 압데슬람에 대한 집중 추적을 중단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브라힘 압데슬람은 파리 테러 당시 카페에서 자폭했으며, 살라 압데슬람은 파리 테러의 유일한 생존 용의자로 도주 뒤 4개월이 지난 3월18일 브뤼셀에서 체포됐다. 브뤼셀 테러는 그가 체포된 뒤 4일 만에 발생했다.

이들은 파리 테러 이전인 2015년 1월 브뤼셀과 인접한 소도시 몰렌베이크의 지방경찰에 의해 연방경찰에 소재지가 보고됐다. 당시 이슬람국가에 가담했던 테러리스트가 자국으로 돌아가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퍼지는 가운데 전세계적으로 테러 경계 강화에 나섰다. 그럼에도 벨기에 경찰은 인원 부족과 지방경찰의 조사 내용이 부실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이들의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결국 벨기에 정보 당국은 적절하지 못한 대응으로 파리 테러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는 살라 압데슬람이 체포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 관광객들이 벨기에 브뤼셀 시청 앞 그랑플라스 광장 꽃전시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테러 이후 브뤼셀 곳곳에서 무장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REUTERS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이슬람국가 조직원을 추적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벨기에의 대테러 관계자는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려면 그물망처럼 엮인 조직원들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가 동시에 진행돼야 하고 그 과정에서 수십 명의 대테러 요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수사 체계뿐만이 아니다. 테러가 발생한 공항의 보안에도 허점이 있었다. 브뤼셀 공항의 보안 실패로 자진 사퇴한 자클린 갈랑 교통부 장관은 공항 보안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유럽연합(EU) 보고서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사임한 벨기에 교통부의 고위 공직자 로랑 르두가 사임 전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밝혀졌다. 르두는 “벨기에 공항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로부터 보안 감시 장치가 유럽연합 기준에 미달한다는 지적을 받았으며, 개선 작업을 위한 예산 확보를 요청했으나 갈랑 장관이 묵살했다”고 폭로했다. 이는 벨기에 녹색당이 유럽연합 집행위의 ‘기밀 감사 보고서’를 입수해 폭로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르수아르>는 사임한 고위 공직자 르두가 이보다 훨씬 전인 2014년 말에 이미 항공 보안 정책에 허점이 있다는 내부 메모를 작성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 메모에서 그는 “누구나 공항에 쉽게 들어갈 수 있으며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가 출입증을 얻어 공항을 배회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브뤼셀 공항 테러로 평화로웠던 벨기에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렇다면 벨기에가 테러범들의 목표물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급진주의연구센터(ICSR)에 따르면, 2015년 1월 기준으로 벨기에 인구 중 시리아와 이라크의 지하드 참전 비율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인구 100만 명당 참전 비율은 프랑스 18명, 영국 9.5명, 독일 7.5명에 비해 벨기에는 무려 40명에 달한다. 이것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이슬람교에 대한 사회·경제적 차별이다. 벨기에에 정착한 이슬람 이민자들은 완벽하게 현지 언어를 구사하는 등 구직 요건을 충족하고 있지만 단지 무슬림이란 이유로 공정한 취업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몰렌베이크 지역은 총인구 10만 명 중 약 3만 명이 이민자다. 이 지역 주민의 실업률은 25% 이상으로 추정되며, 청년 실업률은 약 40%에 육박한다. 벨기에의 평균실업률 8.5%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이슬람국가는 안정적 직장을 갖지 못해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는 무슬림 젊은이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있다.

둘째, 이슬람교에 대한 문화적 차별이다. 벨기에의 이슬람 이민자에 대한 차별은 경제와 종교, 문화 전반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 벨기에는 2011년부터 부르카(이슬람 여성들의 전통복식으로 머리에서 발목까지 덮어쓰는 통옷 -편집자) 착용 금지법을 국가 전역으로 확대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를 두고 문화적 차별을 넘어 표현하고 선택할 자유, 즉 인권침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슬람 교리를 전파하고 모범이 돼야 할 이맘(Imam·예배를 인도하는 성직자)이 벨기에의 이슬람 젊은이들을 극단주의자로 변질시키는 것도 차별의 원인이 되고 있다. 2015년 7월 벨기에 정부는 젊은 이슬람교도에게 극단주의자가 되도록 설파한 이맘 4명을 추방했다.

셋째, 벨기에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다. 벨기에는 솅겐조약(유럽연합 회원국 간 체결된 국경 개방 조약 -편집자)으로 국경 간 이동이 자유로우며, 위치상 테러범들이 숨거나 다른 국가로 이동하기 쉽다. 하지만 국가 간 정보기관들의 정보가 공유되지 않고 법적 대응이 국별로 상이해 테러범을 검거·축출하는 데 비효율적인 문제가 있다. 또 브뤼셀은 도시 규모와 국제기구 수에 비해 경찰과 군인이 부족하다. 브뤼셀에는 유럽연합 본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제기구 2500개, 국제 민간기업 2천 개가 있지만 경찰 600여 명과 군인 600여 명이 수도 방위 인력의 전부다.
 
테러 방지에 필요한 정책 방향

벨기에는 여전히 테러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테러의 공포는 일상이 돼가고 있으며, 동시에 테러의 주체를 특정하기도 어려워졌다. 최근 발생한 프랑스 니스 테러와 독일 열차 사건만 보더라도 테러는 이제 조직화를 넘어 개인화하고 있다. 이슬람국가와 연계돼 있지 않은 단순한 추종자도 테러에 가담하면서 전세계가 불안에 떨고 있다. 추가 테러 경고도 종종 보도된다.

테러의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벨기에는 자국은 물론이고 유럽연합 내 안보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일부 테러범들이 난민 틈에 끼어 유럽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테러 방지를 위한 국가 간 공조가 없다면 테러 용의자의 범행을 사전에 막을 수 없다. 아울러 소외된 이민자 계층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생계를 위협받는 무슬림 이민자들은 이슬람국가의 좋은 포섭 대상이 돼 극단주의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대비책들은 단기간에 구축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의 문제점을 분명히 인식해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하기 전에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yjlee@kotra.or.kr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윤진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일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최우성 | 편집인 : 박종생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대표전화번호 : 02-710-0201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박종생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