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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주류경제학이 진보적이다”
[Interview]안국신 한국경제학회장
[6호] 2010년 10월 01일 (금) 조계완 국내편집장 kyewan@hani.co.kr

조계완 국내편집장
  
한국경제학회는 1952년 한국전쟁 당시 한국 경제 재건을 위한 학문적 토양을 마련한다는 목적으로 창립됐다. 우리나라 경제학계의 대표적인 조직으로 회원은 약 2천 명에 달한다. 한국경제학회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민간 경제기관(단체)들과 공동으로 활발한 정책 세미나(‘금융안정과 정책공조’ ‘국제 금융위기와 우리의 대응 방안’ ‘남북경협과 지자체의 역할’ ‘한국 은행산업의 과제와 전망’ 등)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정책 진단과 수립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학회다. 안국신 한국경제학회장(중앙대 교수)은 <이코노미 인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원래 공정성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정권이 공격적으로 ‘공정한 사회’를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오면 효과가 커질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뒤늦게 반성문을 쓴다는 자세로 공정성을 화두로 들고 나오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또 “지금은 비주류 경제학의 독자적인 활동 공간이 사라졌고 주류 경제학이 유일무이한 경제학이다”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1980∼90년대 대학 경제학 교재 시장을 풍미한 이른바 ‘3인 공저 경제학원론’의 저자이기도 하다. 인터뷰는 9월13일 중앙대에서 이뤄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류 경제학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금융위기 발생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주류 경제학계에서도 자기반성을 하고 있다. 주류 경제학이 그동안 통화와 통화정책에만 주목하고, 금융이 경제 전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경영학 쪽에서 금융기관 경영론, 금융시장론, 금융파생상품론 등에 대한 미시적 연구를 많이 해서 그쪽이 잘 다루려니 하고 믿고 의지한 측면도 있다. 어쨌든 금융 부문이 경제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금융을 거시모형에 제대로 포함시켜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하는 경제이론이 곧 나올 것이다. 경제위기를 사전에 경고하고 위기 발생을 방지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학이 발달해 있지는 않다. 이 점에서 경제학은 기상학보다 더 어렵다. 기상학은 태풍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수는 없어도 태풍이 오는 것을 비교적 정확하게 사전에 경고할 수 있다. 반면 경제학은 위기가 어떤 경로로 어떻게 오는지를 사전에 충분히 규명할 수 없고, 따라서 위험의 크기와 진행 양상을 정확하게 사전에 경고할 수도 없다. 경제 현상은 끝없이 변화하고 진화하기 때문에 사전에 이런 변화와 진화의 폭을 제대로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일단 발발하면 경제학은 그 위기가 어떤 원인으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사후적으로 설명해낼 수는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현실은 초록빛으로 생생한데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라고 탄식했듯이 경제학은 “현실이 먼저 있고 이론은 현실을 뒤따라가게 마련”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경제학이 ‘사회과학의 여왕’이라는 호칭을 얻은 것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현실을 조리 있게 설명하고 미래를 그럴듯하게 조건부로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점쟁이’ 노릇을 하기 어렵다는 경제학자의 한계 상황은 가까운 미래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한국 부자들 ‘체제 유지 비용’ 흔연히 기부 나서야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 시스템은 어떤 측면에서 이전보다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는지?
우선 금융위기의 타격을 크게 받은 미국과 유럽 선진국의 위상이 약화되고, 상대적으로 작게 받은 아시아 국가들의 위상이 현저히 강화될 것이다. 이런 위상 변화는 그동안 꾸준히 진행돼왔는데 금융위기로 한층 더 가속화되고 있다. 또 앞으로 상당 기간 세계경제가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저성장 시대의 모습을 보일 것이다. 위기 이후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다. 1930년대 대공황을 겪고 나서 금융 부문에서 예금보험제도와 글래스-스티걸법이 도입됐으나, 다른 부문에서는 종전처럼 무역 자유화, 해외 직·간접 투자 확대, 정부 규제 완화 등이 진행됐다. 비록 자유화와 규제 완화의 속도는 둔화됐지만 그 방향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도 장기적으로 보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금융위기를 겪고 나서 단기에는 국제 간 자본 흐름의 통제, 금융 안전망 설치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외환 자유화와 자본 자유화에 대해서는 종전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이다. 그러나 금융 건전성 규제를 뺀 나머지 부문에서는 세계화와 규제 완화가 계속 도도하게 진행될 것이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최근 백만장자들을 대상으로 기부 서명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워런 버핏의 경우) 주식투자를 하면서 머리 싸매고 노력했겠지만 사실 주식투자로 큰돈을 번 것에 대해 일반 사람들은 육체적 노동과는 다른 불로소득의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빌 게이츠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프로그램을 개발·판매하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을 착취했다는 비판이 있다. 이런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방편으로 이들이 요즘 기부 캠페인을 벌이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또 어차피 (상속·증여할 때)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하는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눈치 빠르게 생각한 것이 기부 캠페인일 수도 있다. 아무튼 한국의 부자들 사이에서도 자발적인 기부 문화가 확산되기 바란다. 우리나라 부자들은 선진국의 부자들에 비해 부의 절대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빈자와의 상대적인 격차는 선진국 못지않게 클 것이다. 또 우리나라 부자들이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지금과 같은 부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자들이 ‘체제 유지’ 비용이라고 생각해 기꺼이 기부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이명박 정부의 최근 ‘서민 정책’ 강조에 대해 일각에서는 “‘서민’이란 말의 정의도 잘 안 돼 있다. 포퓰리즘 정책이다”라고 비판하는데.
그런 비판에 공감한다. 과문의 소치인지 몰라도 서민을 영어로 뭐라 하는지 학술적으로 어떻게 정의하는지 들어본 적이 없다. 차라리 대통령이 지난 8·15 연설문에서 쓴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맞는 담론이라고 생각한다. 실용정부를 표방한 이 정부가 ‘공정성’을 내세우는 것도 어색하고 포퓰리즘의 색채가 큰 것이 사실이다. 현 정부에서 장·차관 위장전입 등이 많이 터져나오면서 공정성이란 이미지와 조금 거리가 있다. 그러나 독일 비스마르크 정권 때 역설적으로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된 것처럼, 원래 공정성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정권이 공격적으로 ‘공정한 사회’를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오면 효과가 커질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뒤늦게 반성문을 쓴다는 자세로 공정성을 화두로 들고 나온 것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공정’과 ‘정의’라는 개념을 별로 중시하지 않는 편인데.
경제학은 이기심을 전제로 하는 학문이다. 공정이라는 개념은 경제학에서 전통적으로 중시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지금까지 ‘공정한 분배’라는 개념은 별로 다루지 않았다. 경제학에서는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중시하는데 이를 ‘파레토 기준’이라는 일종의 만장일치식 기준으로 평가해왔다. 파레토 기준에 따르면, 일부 계층이 사회에 있는 모든 빵을 독식해도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될 수 있다. 이런 효율성 기준은 누가 봐도 트집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낭비가 없는 자원 분배 상태로서 어떤 경제학자도 받아들일 수 있는 논의다. 물론 이것이 공평한 분배는 아니다. 이와 관련해 애덤 스미스는 일찍이 이런 좁은 시각의 효율성과 이기심을 경계해 ‘도덕적 동감’을 강조한 바 있다. 즉 사회의 한쪽에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경우 가진 자들이 이를 외면하면 안 된다는 것인데, 이른바 ‘계몽된 자기이익 추구’를 주창했다. 내가 보기에 경제학자들이 ‘정의’라는 개념을 별로 중시하지 않는다는 통념은 맞다고 하기 어렵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미국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를 세 가지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 정의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개념이라는 그의 말은 주류 경제학의 기본 명제로 수용되고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 개념으로 정의를 이해할 경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경제학에서 즐겨 쓰는 접근 방법이기도 하다.
하나의 사회제도로서 ‘시장 (및 시장 효율성)’에 대한 의견은?
시장은 자원 배분의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하는 사회제도다. 물론 시장은 불완전하고 실패가 있고, 때로 필요한 시장이 형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정부가 시장을 만들고 시장의 불완전성과 실패를 교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지배·관리되는 시장’(Governed Market)이 우리나라에서 1960∼80년대에 상대적으로 잘 작동됐다. 그러나 이런 성공의 추억에 따른 과신이 1990년대에 지나친 외환시장 규제로 나타났고, 환율 왜곡과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한마디로 시장이 불완전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시장을 대신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실패가 시장의 실패보다 으레 크기 때문이다. 나아가 금융시장, 외환시장, 부동산 시장과 같은 자산시장에서는 일반 상품시장과 달리 시장의 실패가 파괴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시장에 대해서는 정부의 ‘건전성 감독’이 매우 중요하다.
 
   
 

이제는 주류 경제학이 오히려 진보적
한국 경제의 독특한 발전 모델이 있다고 보는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싱가포르·대만·한국·홍콩이 연평균 5.5%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1인당 소득 증가율을 보여왔다. 세계 경제학계가 동아시아의 이런 고도성장을 ‘성장의 기적’으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네 마리 용’의 경제발전과 관련해 이것을 일본을 뒤이은 ‘동아시아 발전 모형’으로 뭉뚱그릴 수 있는지, 아니면 독자적인 ‘한국형 발전 모형’으로 특화할 수 있는지에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한국경제학회와 한국정치학회가 공동으로 워싱턴에서 ‘한국 발전 모델의 재조명’이란 주제로 국제 콘퍼런스를 열었다. 일부 학자들이 동아시아적 경제발전 모델의 한 부분으로가 아니라 한국의 독자적인 발전 모델과 성격을 모형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IT가 주도하는 산업으로 바뀌면서 한국 경제의 구조가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인지?
미국에서도 IT 부문의 급속한 확산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눈부시다는 주장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IT 혁신이 생산성 향상에 어느 정도 효과를 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들 사이에 아직 합의가 형성되지 못했다.
최근의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의견은?
IT 산업이 경제를 주도하면서 종전처럼 노동집약적 산업 수요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인 서비스 산업에서 아직 질 높은 일자리가 충분히 창출되지 못하고 있다. 산업이 더 고도화되고 지식 기반 경제가 성숙해지면 고학력 및 숙련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많이 생겨날 것이다. 현재 청년실업 문제를 보면 극소수 학생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장기에 걸쳐 수많은 청년실업자가 생겨나고 있다. 청년실업을 피할 수 없다면 생각을 한번 바꿔보면 어떨까 싶다. 즉, 취업에만 매달리지 말고 재교육·재훈련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서 청년들이 실업 기간에 기죽지 않고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게 하면 어떨까. 요즘은 청년기와 장년기 사이에 ‘오디세이기’가 있다는 얘기가 있다. 오디세이가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오랫동안 방황했듯이, 지금 청년들은 졸업 후에 곧바로 쓸 만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 청년들이 이 기간을 잘 거칠 수 있도록 국가와 기업, 가족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맨큐 교수가 쓴 <경제학>이 우리나라 대학 경제원론 교과서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데.
맨큐의 책은 미국의 경제 상황과 통계를 활용하고 있어서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자기네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제 원리를 나름대로 과감하게 10가지로 압축해 정리한 것이다. 독자들이 <맨큐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10대 경제 원리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 대학의 경제 교육이 지나치게 신고전파 시장경제학에 치우쳐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런 주장은 공허한 레토릭이다. 지금은 비주류 경제학의 독자적인 활동 공간이 사라졌고 주류 경제학이 유일무이한 경제학이기 때문이다. 주류 경제학의 핵심인 신고전파 경제학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관련해 문제점이 있다면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사회제도의 역할을 소홀히 다룬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주체들이 무제한의 합리성을 가지는 것으로 상정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신제도학파와 게임 이론의 도움을 받아 사회제도 측면을 중요하게 수용하고 있다. 또 경제주체들이 최대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기본 전제는 많은 경제 현상과 사회 현상을 조리 있게 설명하는 데 유용한 분석틀이다. 행동경제학과 심리학, 경영학에서 강조하는 ‘제한된 합리성’은 ‘무제한의 합리성’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일부 경제·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보완적으로 활용해야지, 처음부터 제한된 합리성을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한 경제학 교육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이른바 ‘진보 경제학’을 주창하는 비주류 경제학에 대한 생각은?
마르크스 경제학(혹은 좌파 경제학, 비주류 경제학)과 부르주아 경제학(혹은 주류 경제학)이 쌍벽을 이루던 시대는 동구와 소련이 붕괴한 1990년대 초를 계기로 끝났다. 비주류 경제학은 사회주의가 실질적으로 사라짐으로써 자기네 입지를 잃어버렸다. 한국 경제와 세계경제의 성격과 전망을 놓고 우리 경제를 혁명이론이나 종속이론으로 설명하려는 비주류 경제학자는 이제 없다. 반면에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는 주류 경제학자도 없다.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식과 정책에 관해 견해가 다를 뿐이다. 1980년대까지는 비주류 경제학을 우리 사회의 변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진보 경제학’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비주류 경제학이 ‘진보’라는 말을 전유할 수 없다. 진보의 의미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존엄, 재산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이념이 보수이고, 공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존엄, 재산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이념이 진보다. 같은 주류 경제학자라도 사안과 정책에 따라 진보적 입장을 취할 수도 있고, 보수적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주류 경제학자가 꼭 주주자본주의나 영미식 자유시장경제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북구식 사회적 시장경제를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경제체제라고 신봉할 수도 있다. 예전과 같은 주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의 ‘경계 짓기’는 이제 무의미하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적 자유와 생명, 재산권 등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따라서 이런 가치를 신봉하는 보수가 오히려 진보적이고, 이미 물 건너간 사회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좌파가 수구적인 것이 돼버리는 역설도 있다.
 
현실참여 경제학자들, 의욕 컸으나 성과 미흡
우리 경제학계의 미국적 편향이 심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대학교수진 구성 면에서 편중된 측면은 있다. 그러나 이것이 큰 문제를 일으킨다고는 보지 않는다. 물론 경제사나 비주류 경제학은 유럽 쪽에서 더 잘 가르치고 비교 우위가 있을 수 있다.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경우 수만 적을 뿐 국내에서 입지가 취약한 것도 아니고, 그쪽 성향의 학자들도 나름대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물론 공교육에서 비주류 경제학의 자리가 필요한 건 맞다. 하지만 학생들도 요즘은 비주류 경제학을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사실 미국 쪽 주류 경제학자가 많다는 것이 학문에서는 오히려 규모의 경제 효과도 일으키고 좋은 면도 많다. 그만큼 경제학 훈련을 잘 받았기 때문에 다른 영역에도 잘 적응해 경제학적 연구 분석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경제학회 회원 중에서 그동안 정치 영역에 참여한 사람도 꽤 된다. 한국경제학회가 한국 경제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해왔다고 보는가?
정부에 들어가 정책결정자로 활약하거나, 경제정책 결정에 조언을 해주거나, ‘재야’에 있으면서 정책을 활발하게 비판해온 회원이 많이 있었다. 물론 현실에 참여한 경제학자들이 대단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제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한계적’ 의미에서 한국 사회와 경제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어느 정도는 했다고 본다. 남덕우·김재익·한승수 장관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다른 분들은 너무 큰 의욕을 내세웠다가 처음에 표방한 만큼의 성과를 이뤄내지는 못한 듯하다. 물론 정치학자들이 정치 현실에 참여해 한국 사회에 기여한 것보다는 경제학자들의 기여가 더 컸다고 본다.
경제정책 수립과 관련해 경제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경제 관료들이 많이 채택하고 있는지?
학계에서 경제 관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과 초점을 이미 세운 뒤에 경제학자들에게 관련된 연구용역을 맡기는 것으로 생각한다. 정책 당국은 경제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 입맛대로 선택하는 권한을 갖고 있고 이를 행사하기도 한다. 엘리트 경제 관료들을 보면 대개 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따온 사람이 꽤 많다. 경제정책 수립 과정에서 경제학자들은 일부 문제점을 개선하거나 보완하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고 본다.
한국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앞으로 나올 수 있을까?
현재 30~40대 젊은 경제학자들은 선진국 경제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까지 올라섰다. 이 젊은 경제학자들이 길러내는 제자 세대에 가서는 수상자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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