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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리얼리즘만이 한반도를 구한다!
[78호] 2016년 10월 01일 (토) 정의길 economyinsight@hani.co.kr

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

근대 이후 서방을 필두로 한 국가들의 대외정책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구분할 수 없다. 그보다는 리얼리즘(현실주의)과 아이디얼리즘(이상주의)의 경합과 갈등, 조합의 산물이었다.

리얼리즘이란 국가의 대외정책 목적과 국제사회의 본질은 현실적 국익이며, 이를 위해서라면 대화와 타협, 혹은 전쟁까지 가리지 않는 것이라고 거칠게 정의할 수 있다. 아이디얼리즘은 국가, 특히 국제사회의 본질은 특정 가치에 입각해 이를 구현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고 본다.

   
▲ 연합뉴스
국가의 정책, 특히 대외정책의 성공 여부는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공동의 가치가 없는 지나친 리얼리즘은 국가 사이의 갈등과 분쟁으로 귀결될 소지가 크고, 지나친 아이디얼리즘 역시 협상과 타협을 불가능하게 하며 참극으로 끝난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는 리얼리즘 정치학의 고전인 <20년의 위기>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이상주의가 빚은 참극이라고 결론 냈다. 각국의 현실적 힘에 입각하지 않고 가치에만 기댄 공허한 국제 체제가 전쟁을 불렀다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이미 유럽 최고의 국력을 갖춘 독일을, 제1차 세계대전의 책임을 묻는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에서 배제한 데서 재앙이 시작됐다고 본다.

나폴레옹전쟁 뒤부터 1차 대전 전까지 유럽은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5대 열강 사이의 세력균형으로 비교적 긴 평화의 시대를 누렸다. 하지만 1차 대전 승전국들은 유럽의 세력균형 체제에서 독일의 몫을 박탈했다.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거치며 열강의 지위를 잃고 사실상 몰락했다. 러시아는 볼셰비키혁명 뒤 소련의 성립으로 스스로 국제 체제로부터 철수하기도 했고 자본주의 열강들에 봉쇄당하기도 했다. 유럽에 파병하면서 전세계 세력균형의 한 축으로 부상한 미국은, 이상주의 성향의 고립주의로 유럽에서 철수했다. 영국은 유럽 대륙에 대한 특유의 ‘영예로운 고립’ 노선을 다시 가동하고, 유럽 대륙 문제 개입을 자제했다.

유럽에 남은 것은 쇠락하는 국력의 프랑스와 불만에 찬 독일뿐이었다. 거대한 세력 공백은 결국 독일이 채울 수밖에 없었다. 정치학자들은 의견을 같이한다. 승전국들이 독일의 현실적 힘을 인정하고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시켰다면, 2차 대전의 참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2차 대전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최고 성과인 미국과 중국의 화해는 매카시즘의 실질적 주역인 리처드 닉슨이 추진했다. 미국 정치인 중 가장 강경한 반공매파였던 닉슨은 혁명적 사고 전환을 해서 결국 미소 냉전 승리의 기반을 닦았다. 2차 대전 이후 대외정책의 최대 재앙인 이라크 전쟁은 우파 이상주의 세력인 네오콘의 작품이다. 중동에 민주주의를 전파한다는 그들의 이상은 아노미만 불렀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는 이상주의자다. 특히 북한 문제에서는 거의 100% 그렇다. 북한을 박멸해야 한다거나, 같은 민족이니 무조건 껴안아서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이상주의자들이다. 각 진영 내 편차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렇다.

북한을 우리의 현실적 이익을 챙기는 대상으로 볼 수 없을까? 생존과 국익을 챙기기 위해 몸부림치는 집단으로 볼 수 없을까? 그래서 그런 집단을 놓고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고 챙길 수는 없을까?

독일 통일을 이룬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정책은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룬 독일 통일은 따지고 보면,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반쪽 통일에 불과하다. 이상이란 현실에서 가능해야 이상이지, 그렇지 않으면 도그마일 뿐이다. 우리의 대외정책, 특히 대북한 정책은 여전히 도그마에 기초해 있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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