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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문화화’ 전략으로 글로벌 신화 쓰다
미·일 동시 상장 이끈 신중호 라인(LINE) 글로벌최고책임자
[77호] 2016년 09월 01일 (목) 김재섭 economyinsight@hani.co.kr

일본인 취향 공략해 일본의 국민 메신저로 성장…
이해진 의장보다 더 많은 스톡옵션

2000년대 초 일본 시장 진출 실패의 아픔을 딛고 최근 일본과 미국 증시에 동시 상장한 ‘라인’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라인 성공의 이면에 신중호 글로벌최고책임자(CGO)의 리더십이 컸다는 게 중론이다. 그는 라인이 이른 시간에 글로벌 시장에 안착한 비결로 ‘문화화’를 꼽았다. 신중호 CGO가 강조하는 문화화는 라인이 일본에서 서비스할 때도 가장 우선시한 부분이었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던 그가 3개월 만에 통역 없이 회의할 정도로 전력투구했다. 현지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 일본 직원들과 융화해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신중호 CGO는 이번 상장으로 5천억원에 가까운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대박을 터뜨렸다.

김재섭 <한겨레> 경제부 기자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LINE)이 시차 탓에 일본 도쿄증시에 앞서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되던 2016년 7월15일 밤.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상장 기념 타종 행사를 지켜보던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현장에 있는 신중호 라인 글로벌최고책임자(CGO) 겸 라인플러스 대표에게 라인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으니 울지 마라.” 타종 소리에 자신도 가슴이 벅차오르는데 라인 서비스 아이디어를 직접 내고 가꿔온 신중호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어 보냈는데, 뜬금없는 답 문자가 왔다. “쇄도하는 영어 인터뷰 요청 때문에 죽겠습니다.”

네이버재팬으로 출발한 라인은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라인’으로 성장했다. 일본·대만·타이에선 라인 서비스가 한국의 카카오톡처럼 ‘국민 메신저’로 등극했다. 인도네시아와 라오스 같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이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에 힘입어 라인 이용자(월 1회 이상 이용자)는 이미 2억2천만 명을 넘었다. 2016년 라인 매출은 1조2천억원을 기록했다.

라인은 국내 기업의 해외 자회사가 한국 본사와 별개의 사업으로 성장해 뉴욕증시와 일본증시에 동시 상장된 최초의 사례다. 상장으로 직원(신중호)이 오너(이해진)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오너가 직원을 앞세워 통 큰 보상을 한 게 대박을 터트린 비결이란 기록도 남겼다. 기존 재벌은 물론이고 벤처업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 신중호 라인 글로벌최고책임자(CGO)가 라인의 일본과 미국 증시 동시 상장으로 5천억원에 가까운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대박을 터뜨렸다. 라인 제공
실제 신중호는 라인 상장으로 주식 자산이 4700억원이 넘는 ‘주식 부자’가 됐다. 말 그대로 ‘돈방석’에 올라앉았다. 무려 1026만4500주에 달하는 스톡옵션을 받은 결과다. 이에 비해 이 의장이 받은 스톡옵션은 557만2천 주로 신중호의 절반 수준이다. 신중호의 라인 지분율은 5.12%로 네이버(87%)에 이어 2대 주주인 데 비해 이 의장의 지분은 2.78%에 불과하다. 물론 이 의장의 ‘통 큰 보상’ 의지에 따라 이렇게 되었다. 이 의장은 라인을 상장하는 날 강원도 춘천에 있는 데이터센터 ‘각’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스톡옵션은 오로지 능력과 기여도에 따라 부여되는 것이다. 네이버 직원 누구나 신중호처럼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인 상장으로 4700억원 주식 대박

신중호는 1972년생이다. 전형적인 ‘엄친아’ 모습으로 자랐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순박하고 수줍어한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라인 상장 뒤에는 언론 인터뷰 요청과 상 받는 것을 거부해 홍보맨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한겨레>도 네이버 홍보실을 통해 인터뷰 요청을 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는 1994년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졸업했고, 1996년 카이스트 전산학과 대학원(석사)을 마쳤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원 연구개발정보센터(KORDIC)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네오위즈 검색팀장을 거쳐, 2005년 카이스트 출신 장병규 전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대표와 검색업체 ‘첫눈’을 설립했다. 신중호는 첫눈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아 검색엔진과 서비스 개발을 이끌었다. 장 대표는 2009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첫눈 아이디어는 내 것이 아니라 신중호 것이었다”고 말했다.

첫눈은 탁월한 검색 아이디어로 서비스 출시 전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구글이 첫눈 인수를 추진하고, 첫눈 경영진이 미국에 있는 구글 본사를 찾아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는 얘기도 돌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첫눈은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전에 350억원에 네이버에 인수됐다. 구글이 서너 배 많은 금액을 제시했지만 거절하고 네이버 손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쪽 말을 들어보면, 이 의장은 ‘신중호 사단’의 개발진이 탐나 첫눈 인수에 매달렸다. 이 의장이 보기에 신중호는 국내 최고의 검색 전문가였고 함께 일하는 개발자들의 실력도 뛰어났다. 어떻게 하면 신중호를 영입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구글이 첫눈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당시 함께 일하던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회장이 다리를 놨다. 이 의장은 신중호에게 ‘손잡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자’고 제안했고, 신중호는 주저 없이 이 의장의 손을 잡았다.

당시 네이버는 국내시장만으로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글로벌 시장 진출을 꾀했다가 참혹하게 실패한 상황이었다. 네이버는 2000년 네이버재팬을 설립했고, 2004년에는 1천억원을 들여 중국 게임 포털 ‘아워게임’을 인수했다. 이어 2005년에는 미국법인을 설립했다. 하지만 줄줄이 실패했다. 그렇다고 글로벌 시장 진출을 접을 수는 없었다. 신중호가 필요했다. 이 의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절박했다”고 말했다.

신중호를 영입한 네이버는 2007년 11월 네이버재팬을 다시 설립했고, 이듬해 네이버 검색본부장이란 중책을 맡고 있던 신중호를 일본으로 보냈다. 신중호는 첫눈과 함께했던 개발자 10여 명과 일본으로 갔다. 거의 매일 야근하다시피 하며 2009년 6월 드디어 네이버 검색서비스의 일본어 버전인 ‘네이버재팬’ 시험판을 내놨다. 현지 서비스도 몇 가지 인수했다. 하지만 두 번째 도전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 아니 실패였다. 앞서 일본 검색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야후재팬과 구글의 벽을 넘지 못했다.

   
▲ 2016년 7월14일 황준 라인 최고재무책임자(맨 왼쪽)와 신중호 CGO(오른쪽 두 번째)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열린 라인 상장 기념식에 참석했다. AP 연합뉴스
하지만 이 의장도, 신중호도 글로벌 시장 진출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 의장의 일본 출장이 더욱 잦아지고, 기간도 길어졌다. 신중호와 세 번째 도전을 모색했다. 때마침 모바일 시대가 열렸다. 이는 신중호에게 모든 것을 밑바닥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신중호는 이후 한 사내 강연에서 “그동안은 검색포털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했다. PC 시장에서는 기존 강자들을 이기기 어려웠지만, 모바일 시대를 맞아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순간 빠르게 시장에 들어가면 기회가 생긴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신중호를 모바일 메신저에 꽂히게 만든 생각이다.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일본 도쿄의 네이버재팬 사무실은 여진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렸다. 도쿄에 와 있던 외국 기업 직원 가운데 상당수가 귀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신중호와 네이버재팬 개발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책상 밑으로 머리를 들이밀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이디어 회의를 이어갔다. 이 의장도 함께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 의장과 신중호는 물론이고 한국에서 건너간 개발자들이 퇴근을 하지 않았다. 여진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함께 있다가 다치면 서로 돌봐주고 누군가가 죽으면 가족에게 알려줄 수 있지만, 퇴근해서 집에 혼자 있다가 다치거나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농담’이 오갔다. 이런 절박함은 라인에 고스란히 담겼다. 능률도 좋아졌다.

실제 신중호와 개발자들은 2011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모바일 메신저를 기획해 두 달 만인 6월에 ‘라인’이란 이름으로 서비스를 출시했다. 초반부터 ‘싹수’가 보였다. 가입자가 늘어나는 게 눈에 보였다. 라인은 누적 가입자(다운로드 기준)가 1억 명을 넘을 때마다 한국 언론을 불러 간담회를 열었는데, 주기가 갈수록 빨라졌다. 급기야 최근 월 1회 이상 이용자가 2억2천만 명을 넘었다. 네이버 쪽에서 보면, 신중호 덕에 글로벌 시장 진출 시도 ‘삼세번’ 만에 유례없는 성공 사례를 만든 셈이다.

신중호는 개발자다. 그것도 검색 분야에선 최고로 꼽히는, 그래서 구글까지 탐내던 ‘스타’ 개발자다. 개발자는 고지식하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개발자 신중호는 어떻게 라인을 성공시켰을까. 신중호가 첫눈에서 함께 일하던 개발자들과 함께 네이버재팬으로 발령받아 갔을 때다. 신중호는 검색 분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전문가였지만 글로벌 경영은 처음이었다. 일단 일본어가 서툴렀다. 현지 채용된 일본인 직원들과 몇 시간씩 회의했지만, 뭔가 미진하고 거리감까지 느껴졌다. 통역을 거치다보니 눈이 맞춰지지 않았고, 툭 터놓고 얘기하는 게 어려웠다.

동일본 대지진 때도 사무실 지켜

   
▲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라인(LINE)은 일본·대만·타이에선 카카오톡처럼 ‘국민 메신저’로 통한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 최고경영자(CEO)가 2016년 7월15일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상장을 알리는 종을 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어느 날 신중호는 직원들에게 3개월 뒤부터는 통역 없이 회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날부터 일을 마친 뒤 일본어 공부에 매달렸다. 배경이 회사 사무실인 인기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디브이디(DVD)에 담아 갖고 다니며 공부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뒤부터는 약속대로 통역을 없앴다. 여전히 일본어가 서툴러 손짓·발짓까지 섞었다.

얼마 뒤 그는 네이버재팬 사무실의 공용어를 일본어로 바꿨다. 한국 직원들도 사무실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하라고 했다. 전자우편도 일본어로 주고받게 했다. 한국에서 간 직원들은 일본어를 배우느라 죽을 맛이었다. 대신 현지 직원들은 감동했다. 한국 직원들과 일본인 직원 사이에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이는 라인이 대박을 치는 동력이 됐다.

신중호가 일본어 사용을 고집한 이유는 ‘문화화’를 위한 것이었다. 일본 문화를 이해하려면 그 문화의 기초가 되는 일본어를 습득하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2016년 5월 타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라인의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문화화 덕”이라고 말했다. 현지화와 다른 개념이라고 했다. 그는 현지화와 문화화의 차이에 대해 “현지화는 우리를 중심에 두고 현지를 우리한테 맞추는 것이고, 문화화는 현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서비스 방식과 기준도 현지 문화에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인은 일본에서 서비스를 시작할 때부터 문화화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문화화 덕에 ‘라인바이트’ ‘스티커’ ‘라인망가’ 같은 서비스를 내놔 성공했다. 일본은 아르바이트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라인바이트는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정보를 모바일로 쉽게 얻을 수 있게 해 호응을 얻었다. 스티커에는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특징을 반영했다. 메시지를 보낼 때도 단어 하나하나를 이모티콘으로 표현할 수 있게 했고, 일본 문화 색이 강하게 반영된 전용 스티커도 상당수 내놨다. 라인망가는 일본에 거대한 출판만화 시장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만화를 전자책으로 만든 게 라인망가 서비스다.

라인이 대만과 타이에서 먼저 ‘국민 메신저’가 된 것도 문화화 덕이다. 두 나라는 일본 문화에 상당히 우호적이다. 일본 상품을 좋아한다. 일본 기업들도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한다. 타이에서 운행되는 자동차 상당수가 일본 차다. 신중호도 이를 활용했다. 신중호는 요즘 북미 시장 쪽을 자주 쳐다본다고 한다. 라인은 이번 상장으로 1조5천억원 가까운 ‘실탄’을 확보했다.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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