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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Biz] 애국심도 울고 간 ‘폭염의 힘’
영화 <부산행>이 애국심을 이겨낸 비결은?
[77호] 2016년 09월 01일 (목) 김윤지 economyinsight@hani.co.kr

영화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 리스트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우선 대적할 만한 라이벌 없이 개봉하면서 사실상 ‘무혈 입성’한 것이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영화업계의 최성수기로 꼽히는 여름에 개봉한 덕도 컸다. 특히 2016년 여름은 7월 중순부터 일찌감치 기록적 폭염이 이어지면서 <부산행>이 관객몰이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부산행>보다 일주일 늦게 개봉한 <인천상륙작전>이 애국심 코드를 무기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그다지 위협적이지 못했다. 관객 동원이나 스크린 수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흥행에 도움이 되지만 기록적 폭염 앞에선 맥을 못 추는 형국이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여름방학은 영화시장에서 최성수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방학 때 학생들이 영화관을 많이 찾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찌는 듯한 더위를 영화관에서 식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 흥행몰이에 성공한 영화가 한여름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2016년 8월 현재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는 2003년 <실미도> 이후 최근의 <부산행>까지 모두 14편이다. 이 가운데 7월 말~8월 초에 개봉한 영화가 <명량>(2014), <베테랑>(2015), <도둑들>(2012), <암살>(2015), <해운대>(2009), <괴물>(2006), <부산행>(2016) 등 7편이나 된다. 천만 관객 영화 가운데 절반은 한여름에 개봉했다는 이야기니 의미 있는 분석일 것이다.

94년 이후 최고 무더위 수혜

최근 천만 관객을 달성한 <부산행> 역시 ‘여름 특수’에 힘입어 성공한 예로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부산행>의 영화적 완성도나 메시지 등이 중요했겠지만, 한국에서 좀비영화가 천만 관객을 모을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실제 <부산행>은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조금 갈린다. 이런 영화가 천만 관객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한번 분석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하다.

   
▲ 영화 <부산행>이 2016년 기록적 폭염 덕분에 ‘여름 특수’를 톡톡히 누리며 ‘천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서울 강남구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부산행> 포스터 앞을 지나가는 관객들. 연합뉴스
첫째, 경쟁자 없는 ‘무혈 입성’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영화는 다른 상품들과 달리 가격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을 세우기 어렵다. 최근 시간대별로 영화표 가격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같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밖에 없다. 내 영화만 더 싸게 받거나 비싸게 받기 어렵고 끼워팔기나 덤을 주고 팔 수도 없다.

그래서 개봉 당시 어떤 영화와 경쟁하는가, 즉 어떤 ‘라이벌’과 붙는지가 중요한 전략이 된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고 해도 1년 내내 상영하는 일은 없다. 보통의 영화는 수명이 다하면 영화관에서 내려가고, 계속 다양한 영화들이 영화관에 오르내리며 경쟁한다. 특정 영화가 개봉할 때 어떤 영화와 맞붙는지가 중요한 흥행 변수가 되어 개봉일에 신중을 기하는 경우가 많다.

<부산행>의 경우 대적할 만한 ‘라이벌’이 없는 상황에서 개봉해 관객몰이를 해나갔다. 7월20일 개봉한 <부산행>과 개봉일이 겹치는 영화는 <아이스 에이지: 지구 대충돌>과 <극장판 요괴워치: 염라대왕과 5개의 이야기다냥!> 등 애니메이션 정도였다. 관객층이 겹칠 만한 영화 역시 8월6일 개봉한 <봉이 김선달>, 8월13일에 개봉한 <나우 유 씨 미 2> 정도로 높은 흥행력을 갖춘 영화들은 아니었다.

여기에 ‘여름의 힘’도 가세했다. <부산행>이 개봉한 첫 10일간 서울 기준 평균온도는 28.1℃, 낮 최고 기온 평균은 31.2℃의 무더위 행진이었다. 천만 관객을 기록한 8월7일까지 19일간 평균온도는 28.8℃, 낮 최고 기온은 평균 32.4℃였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무더위는 8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2016년에는 7월 중순 이후부터 찾아와 <부산행>이 이 덕을 크게 봤다. 1994년 이후 최고라는 기록적인 무더위를 피해 극장을 찾은 관객이 선택할 만한 영화가 <부산행>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최근 흥행작들의 주요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인 ‘입소문’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영화가 개봉 전 시사회를 통해 입소문 작업을 한다. <부산행>의 경우 유료 시사회 등을 통해 관객 56만 명을 이미 넘어선 뒤 개봉했다. 최근 입소문으로 높은 흥행을 거둔 영화 <곡성>도 개봉 전 시사회 관객이 17만 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일반적이라면 대략 2만~3만 명 수준이다. 그래서 ‘변칙 개봉’이라는 오명도 얻었지만 긍정적 힘을 덧붙였다. 시사회 호응이 좋으면 ‘입소문’몰이는 물론 개봉 스크린을 많이 확보하는 것도 쉬워진다. 주변 예비 경쟁 영화들의 개봉일을 조금 늦추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물량 공세도 빠질 수 없다. <부산행>은 라이벌 영화가 없던 탓에 스크린도 최대한 확보할 수 있었다. 개봉 10일 동안 <부산행> 스크린 수는 일평균 1474개나 됐다. 관객 1760만 명으로 우리나라 최대 흥행을 기록한 <명량>의 경우 개봉 10일간 일평균 스크린 수가 1343개로 <부산행>보다 적었다. 지난해 천만 관객을 거둔 <베테랑>(1340만 명)의 1004개, <암살>(1270만 명)의 1329개보다 <부산행>의 일평균 스크린 수가 많았다. 뚜렷한 경쟁 영화가 없는 상황에서 극장주들이 <부산행>을 스크린에 올리기로 택했다고 볼 수 있다.

‘애국심’ 코드로 위협했지만…

물론 위기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부산행>보다 일주일 뒤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빼앗으며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애국심’ 코드로 무장해 중·장년 관객에게 호소력이 높다는 점 때문에 잠재력이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 공동투자를 한 한국방송공사가 보도를 통해 ‘영화 띄우기’를 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면서 <인천상륙작전> 흥행에 관심이 더 모아졌다. 언론에서도 앞다퉈 “평론가들에게 낮은 점수를 받은 <인천상륙작전>의 흥행몰이 이유”에 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소개한 바 있지만, 스페인의 한 연구팀이 경쟁 영화와 붙어야 하는 상황에서 언제 개봉하는 게 좋은지 분석했다. 경쟁작과 함께 개봉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면, 경쟁작보다 앞서 개봉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늦게 하는 것이 좋은지를 비교한 것이다. 2000~2009년 미국·유럽 영화를 분석한 연구에서, 강력한 경쟁 영화를 피해야 한다면 뒤에 개봉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결과를 보여줬다. 영화는 첫 주 개봉 효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강력한 경쟁작이 어느 정도 관객을 확보한 뒤 개봉해야 경쟁 영화에 관객을 덜 뺏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인천상륙작전>은 <부산행>이라는 강력한 영화에 맞서 개봉 시기를 잘 조율했다고 볼 수 있다. 강력한 경쟁 영화의 개봉 뒤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내걸린 <인천상륙작전> 포스터. <인천상륙작전>은 ‘애국심’ 코드를 무기로 <부산행>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관객 동원에서 크게 밀렸다. 연합뉴스
여기에 많은 언론에서 거론한 ‘애국심’ 코드도 중요했다. 최근 한국의 흥행 영화 가운데 중·장년층의 ‘보수 감성’을 자극해 관객몰이에 성공하는 영화가 늘어나면서 애국심이 영화 흥행에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2010년 고정민 홍익대 교수가 ‘미국 영화와 한국 영화의 흥행 요인에 관한 연구: 애국심 유발 요인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통해 재미있는 분석 결과를 보인 바 있다. 미국 영화와 한국 영화 모두 영화 소재나 마케팅에서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이 흥행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2004~2007년 한국과 미국의 개봉 영화를 분석한 고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미국 영화와 한국 영화에서 흥행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조금씩 달랐다. 미국 영화의 경우 제작비가 많을수록, 소비자 평점이 높을수록, 유명 감독이 연출하거나 유명 배우가 출연할수록 흥행했다. 한국 영화에선 스크린 수가 많고 소비자 평점이 높을수록, 장르가 코미디이거나 호러인 경우 더욱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두 국가 모두 애국심 코드가 자극될 때 높은 흥행 성적을 거둔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인천상륙작전>은 <부산행>의 강력한 라이벌이 될 듯했다.

하지만 객관적 데이터로 살펴보면 <인천상륙작전>의 흥행 성적이 좋기는 하지만 <부산행>을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인천상륙작전>이 개봉되기 전 일주일간 <부산행>의 평균 관객 수는 하루 81만 명 수준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의 경우 개봉 뒤 일주일간 평균 관객 수는 하루 51만 명 수준이었다. 스크린 수에서도 차이가 많이 났다.

<인천상륙작전>의 개봉 10일간 평균 스크린 수는 921개로 평균 1474개인 <부산행>보다 떨어졌다. <인천상륙작전>의 개봉일 이후 <부산행>의 일주일간 평균 관객 수가 하루 41만 명 수준으로 떨어져 박스오피스에서 밀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미 <부산행>은 일주일 동안 600만 관객을 돌파한 뒤였다.

앞서 인용한 스페인 연구팀의 분석에서도 어느 영화와 경쟁하느냐 하는 ‘라이벌 효과’가 중요했지만 스크린 수 효과를 뛰어넘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개봉일을 조정해도 스크린 수가 많은 영화가 더 높은 흥행을 거두는 것이 일반적이란 이야기다.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흥행에 도움이 되지만, 천만 관객 영화의 조건에서 애국심 코드가 결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14편의 천만 관객 영화 가운데 <명량> <국제시장>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정도가 그런 영화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암살> <변호인> <괴물>, 그리고 이번의 <부산행>처럼 일반적인 사회 역사 인식을 재조명하거나 비틀어보는 영화들의 비중도 비슷한 수준이다. 여하튼 <부산행> 천만 관객의 비결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무더운 여름, 극장주들의 선택’이 아닌가 싶다. 자본의 선택이 애국심보다 더 결정적이었다는 이야기다.

yzkim@koreaexi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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