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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아메리칸드림의 추억
소득 불평등 심화되는 미국 경제의 민낯
[77호] 2016년 09월 01일 (목) 윤석천 economyinsight@hani.co.kr

미국 경제는 지표만 놓고 보면 순항하는 듯하다. 하지만 속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딴판이다. 비록 성장과 고용 측면에선 효과를 거뒀지만 국민 대부분의 삶은 나아진 게 없다. 서민들은 여전히 빚에 시달리고 상위층은 그 빚을 이용해 부를 더욱 늘려간다. 빚을 갚으려면 소득분위가 상승해야 하지만 이제 그 길마저 막히고 있다. 성장과 고용의 혜택은 특정 계층의 이득으로 귀속된다. 이것이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 경제의 민낯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금융위기의 발원지인 미국은 적어도 경제지표상으로는 순항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선진국 중에선 나름 안정된 상황이다. 고용률을 보면 평균을 웃돈다. 1950~2016년 미국의 평균고용률은 59.3%다. 한데 미 노동통계국 자료를 보면 2016년 6월 고용률은 59.6%였고 7월 고용률은 59.7%였다. 근소하지만 평균을 웃돌았다. 이는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의 충격을 벗어났다는 방증일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 경제가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세상은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미국 경제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론 안정적인 듯 보이지만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곪아가는지 알 수 있다.

   
▲ 최근 미국 경제는 지표상으론 호전되는 듯 보이지만 성장의 혜택이 부유층에 집중되면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본사 앞에서 신문을 읽는 노숙자. REUTERS
성장과 고용의 확대는 일반적으로 개별 국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주류 경제학이 내세우는 성장의 명분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한데 미국의 성장과 고용의 확대는 전혀 이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외려 서민들의 삶은 나날이 고달프다. 미국 경제는 사상 최저 금리를 이용해 신용을 늘렸고 이는 외형적 성장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로 인해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간극은 점차 넓어졌다. ‘아메리칸드림’은 이제 먼 과거의 추억일 뿐이다.

과장이 아니다. 미국에서 계층 이동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젊을 때 가난한 사람이라면 그는 평생 빈곤 속에 보내야 한다. 첫 번째 직장에서 낮은 보수를 받았다면 그는 아마 수십 년 뒤에도 벌이가 시원치 않은 상황에 있을 것이다. 첫 직장에서 중간 정도의 임금을 받았다면 그 역시 수십 년 뒤 부자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첫 직장에서 높은 임금을 받은 사람만이 평생 많은 돈을 벌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흙수저는 평생 흙수저로 살아야 하고 금수저만 금수저로 남게 된다. 이게 미국의 현실이다.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보스턴 매사추세츠대학의 경제학자인 마이클 카(Michael D. Carr) 교수와 에밀리 위머스(Emily E. Wiemers) 교수가 2016년 5월 발표한 ‘미국의 생애소득 이동성 감소’란 논문에서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잊히는 ‘아메리칸드림’

두 경제학자는 미국에서 계층 이동이 얼마나 활발한지 측정하기 위해 소득 데이터를 이용했다. 미 통계국의 SIPP(Survey of Income and Program Participation) 데이터다. SIPP는 미국의 개인·가계 소득 데이터 수집을 목적으로 개발됐다. 동시에 소득 이전 프로그램에 대한 참여 정도를 조사하기 위해 설계됐다. SIPP는 개별 노동자의 소득을 추적한다. 두 교수는 이 통계를 이용해 1981~2008년 얼마나 어떻게 소득 이동이 나타났는지 조사했다. 사람들을 소득 기준으로 10단계로 나눠 1981~96년, 1993~2008년 두 기간 중 특정 노동자의 분위 수 이동 확률을 측정했다. 물론 계층 이동이 위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아래로도 움직일 수 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소득계층 이동은 교육 배경과는 점점 무관해지고 있다. 교육을 얼마나 받았는지보다 시작한 지점이 중요했다. 시작한 곳이 곧 끝나는 지점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결과를 살펴보면 충격적이다. 시작한 곳에서 끝날 확률은 커졌고, 시작한 곳에서 상승할 확률은 내려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막혀 있지만 소득이 상승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과거처럼 그것이 가파르게 이뤄지지는 않았다.

두 경제학자의 결론은 중산층이 된다는 것의 정의를 바꿔놓았다. ‘아메리칸드림’이란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중간 정도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젠 현재 중산층이어야만 중산층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그보다 하위 계층이라면 중산층에 편입되는 건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민이 노력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이 되어버렸다.

학사학위를 가진 고학력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육이 계층 이동 수단’이란 등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더 높은 소득분위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하나, 과거의 경우보단 더 낮은 소득분위에서 은퇴한다. 교육을 통해 신분 상승을 하는 게 과거보다 힘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경쟁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과거보다 학위를 가진 사람이 많아졌다. 특히 대학을 졸업한 여성이 늘어나면서 남성은 소득분위를 상승시키는 게 더 어려워졌다.

이 논문은 경제적 이동성이 어려워진 현상에 대한 연구다. 그 원인을 파헤치려는 연구가 아니다. 다만 추론을 한다. 일례로, 노동조합 약화도 한 요인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직화한 노동조합은 임금협상에 유리하다. 한데 미국에서 노동조합은 과거보다 영향력이 많이 축소됐다.

노동자의 임금교섭력이 약해지면서 자연스레 회사가 벌어들인 수익은 노동자에게 배분되지 않고 대주주와 경영진에 집중됐다. 이것이 소득 이동성을 축소했다고 추정한다.

두 경제학자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오터(David Autor)의 연구를 인용했다. 그는 컴퓨터와 로봇의 일상화로 중간 직종이 점차 사라진다는 것을 밝혀낸 경제학자다. 만약 중간 임금의 고용 성장이 늘어난다면 하위직에서 일을 시작한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버는 중간 직종으로 옮길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 한데 중간 직종이 사라지기 때문에 임금 상승 여력 역시 줄어든다고 이들은 강조했다.

점증하는 소득 불평등이 원인일 수도 있다. 두 경제학자는 상위 소득분위 사람들의 소득은 과거보다 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다. 금융위기로부터 회복이 자본 소유자인 부유층에겐 엄청난 이득을 줬다. 반면 임금은 정체 상태를 지속한다. 2007~2012년 부는 최상위 소득 가계에 집중됐다. 이는 소득재분배 정책의 부재에 부분적으로 기인한다. 이로써 일반인이 상위 소득분위에 도달하는 건 더욱 어려워졌다. 그들은 결론지었다. “점증하는 불균형이 존재하는 한, 계층 이동 사다리의 발판 간격은 더욱 넓어지게 된다. 결국 사다리에서 이동하는 건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심화하는 ‘빈익빈 부익부’

   
▲ 2016년 8월 ‘30% 할인’ 행사 중인 미국 뉴욕의 의류 매장을 한 고객이 나서고 있다. 미국에선 계층 이동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아메리칸드림’ 역시 먼 과거의 추억이 되고 있다. REUTERS
외형적 안정에 비해 미국의 서민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것이 미국에서 소비자의 파산이 점차 늘어나는 이유다. UBS 리포트에 따르면, 미국 국민은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점증하는 소비자 연체는 또 다른 구조적 역풍이다.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불평등 심화는 신용 붐의 연료가 됐다. 부의 집중은 ‘가진 자’, 즉 투자해 수익을 얻기 원하는 쪽과 빌려야만 하는 ‘갖지 못한 자’ 사이의 비대칭을 낳았다. ‘갖지 못한 자’가 늘어나면서 신용 수요는 급속히 팽창했다. 반면 고소득층은 소비보다 저축과 투자를 선호했다. 마침내 그들의 돈은 자본으로 전환되거나 민간부문에 대출자금으로 쓰였다. 너무 많은 자본이 대출시장으로 쏠렸다. 이는 비정상적으로 낮은 저금리 환경이기에 가능했다. 고소득층의 자본은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좇아 비은행 대출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대출은 공격적이 되었다. 미국의 신용 팽창은 비은행 대출자들이 주도했다. 은행은 많은 경우 대출을 줄였다. 그 차이를 비은행 대출자들이 메꿨다.

저소득자의 3분의 2는 소득만으론 지출을 충당하지 못한다. UBS가 21살 이상 2100명의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저소득자의 3분의 2, 중간소득자의 3분의 1이 소득만으로 비용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 결과 자동차 대출과 신용카드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다. 밀어내기식 대출로 서민의 빚은 나날이 쌓여가고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 역시 늘어나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잘나간다는 미국 경제의 민낯이다. 미국의 저금리 기조는 생각보다 오랜 기간 지속될 여지가 많다. 섣불리 금리를 올릴 수 없는 ‘함정’에 미국 경제가 빠졌다. 자칫 금리를 올렸다간 신용시장이 붕괴할 수 있다. 통화정책의 한계가 명확히 밝혀졌다. 세계는 미국을 추종하지만 미국의 길이 과연 ‘선’인지는 의문이다. 다수의 희생을 담보로 한 성장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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