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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책] 감세가 탈세를 낳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세금전쟁>
[77호] 2016년 09월 01일 (목) 이지윤 economyinsight@hani.co.kr

대선을 1년5개월여 앞두고 이른바 ‘세금전쟁’이 시작됐다. 2016년 7월28일 정부가 발표한 ‘2016년 세제 개편안’이 그 신호탄 격이다. 이번 개편안은 경제활력 제고와 민생안정 및 공평과세 도모를 기본 방향으로 삼는다. 경제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반복되는 식상한 타령이건만, 비슷한 시기에 독일 스타 경제학자 하노 벡이 알로이스 프린츠와 함께 쓴 <세금전쟁>을 옮겨 내놓은 번역자인지라 기본 방향 이 세 가지라는 지점에서 안구운동을 멈췄다. “세금은 여러 주인을 둔 가련한 하녀와 같다”던 책 구절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세금전쟁>은 세금이 섬기는 주인들의 종류와 여러 주인을 동시에 섬기느라 발생하는 문제,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책 등을 세심하고 면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 <세금전쟁> 하노 벡, 알로이스 프린츠 지음 | 이지윤 옮김 | 재승출판 펴냄 | 1만8천원
저자들은 최근 10년간 독일 정·재계를 뒤흔든 다양한 탈세 스캔들로 이야기를 연다. 그중엔 슈테피 그라프나 보리스 베커 등 낯익은 이름도 눈에 띈다. 하지만 독일에서 탈세가 더 이상 유명인, 백만장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독일 지하경제 규모가 국민총생산의 15% 가량을 차지하고, 국민의 25%가 이 ‘어둠의 경제’에 정기적으로 관여한다. 탈세액 규모가 사회보조금 지출의 총합을 넘어설 상황에 이르자 세무 당국은 유명인 탈세범을 공공연하게 덮치거나 성실 납세자를 포상하는 식으로 국민의 양심 회복을 도모했다. 그러나 전 국민을 사로잡은 탈세의 마수는 정서적 호소로 해결하기엔 너무 강한 상대였다.

독일인들의 세금 의식을 회복할 방책으로 이 책이 제시하는 것은 간단하고 투명한 시스템이다. 서로의 고지서를 비교해 봐도 누가 얼마만큼 어떤 근거로 세금을 더 냈는지 파악할 도리가 없는 현 제도가 건전한 납세자를 협잡꾼으로 만들었다는 게 그 주장이다. 독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가 ‘탈세가 부도덕한 것을 알지만 세법 또한 그 만큼 불공정하기 때문에 탈세는 합리화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세법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탈세의 여지가 사라질 것이란 논리는 명쾌하다.

하지만 투명한 세금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저자들은 누구보다 세법을 만드는 정치인들이 투명한 세금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제도가 간단해지면 선거철에 감세 공약으로 표심을 살 여지가 줄기 때 문이다. 선거철엔 세제 혜택, 보조금 등으로 곳간에 구멍을 내고 선거가 끝나면 세율을 높이고 세목을 늘려서 구멍을 메꾸길 반복하다보니, 시스템은 누더기가 되고 탈세는 횡행하게 된다. 이 와중에 재미를 보는 건 이른바 ‘절세법’을 조언하는 세무사나 투자 컨설턴트, 비밀은행, 그리고 조세회피처다.

세금이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볼모로 활용된 사례 중 몇 가지는 한국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제도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대륙까지 덮친 2008년 가을, 독일 산업의 핵심인 자동차 분야 지원 을 위해 정부가 시행한 자동차 폐차 보조금 제도가 대표적이다. 9년 이상 된 차를 폐차하고 신차를 사면 2500유로를 지급하는 이 제도의 배후에는 경기 활성화와 더불어, 자동차 사랑이 유별난 독일인의 환심을 사서 경제 악화로 이반된 민심을 누그러뜨려보자는 의도도 숨어 있었다. 유난히 미세먼지가 심각했던 2016년 봄, 노후 경유차가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자 한국에서도 노후 경유차를 폐차하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 시행된 바 있다. 비슷한 보조금이 독일에선 ‘경기 부 양’이란 주인을, 한국에선 ‘환경 개선’이란 주인을 위해 복무하는 꼴이다.

담뱃세 인상 또한 독일과 공유하는 이슈다. 시민들의 악습을 바로잡겠다는 것은 포장에 불과할 뿐, 가격에 탄력 있게 반응하지 않는 담배 수요를 마르지 않는 세금의 원천으로 활용하려는 것이 담뱃값 인상의 실제 의도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2016년 5월, 담뱃세 인상 1년을 맞아 복지부가 발표한 자료는 이 주장을 적절하게 뒷받침한다. 복지부는 담뱃세 인상으로 성인 남성 흡연율이 사상 처음 30%대로 떨어졌다고 했지만, 감소한 흡연율 자체는 예상치인 8%포인트에 크게 못 미쳤다. 대신 늘어난 세수는 4조원 이상으로 애초 예상치의 1.5배에 달했다.

현재 독일의 평균 담뱃값 5200원가량 중 세금의 비율은 약 60%다. 2000년 이래 이런저런 명목의 세금이 붙어 담뱃값이 50% 이상 올랐다. 그 결과 베를린에서 소비되는 담배의 53%가 밀수 담배인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의 담뱃세는 각종 세금과 건강증진부담금 등의 비중이 70%가 넘는 한국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세금이 품은 선한 의도와는 무관하게 특정 소비에 너무 많은 세금 부담을 지우면 오히려 회피 현상이 나타나 정부의 곳간에 구멍을 내고 만다”는 지적을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이유다.

이제 ‘세금전쟁’의 격전지는 미국으로 보인다. 힐러리에게 선두를 빼앗기고 조바심이 난 트럼프는 8월8일 상속세를 폐지하고 법인세를 파격적으로 인하하겠다며 초강수를 띄웠다. 부자 증세 대 감세로 붙은 힐러리와 트럼프의 전쟁은 한국 대선판에서도 재연될 조짐이다. 그 전쟁을 앞두고 <세금전쟁>을 열심히 읽어봤자 승리의 묘수 따위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세금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는 소상히 알려주니 헛발질을 멈추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esgehts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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