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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인터넷은 ‘비순수의 시대’
[IT@econo]
[6호] 2010년 10월 01일 (금) 백욱인 economyinsight@hani.co.kr

백욱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사회학
 
지난 8월17일 정보기술(IT) 전문 경제월간지 <와이어드>(Wired)는 표지 기사를 통해 과감하게, 그러나 교묘하게 웹의 죽음을 선언했다(“The Web is Dead”). 1990년대 초반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에 <와이어드>는 새로운 인터넷 문화를 선도하던 상징적인 잡지였다. 불과 5년 전인 2005년 8월에 “우리는 웹이다”(We Are the Web)라는 표지 기사를 게재한 <와이어드>가 뜬금없이 ‘웹은 죽었다’라고 선언함으로써 많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더 이상 웹은 인터넷의 대명사가 아니란 말인가? 그는 왜 멀쩡한 웹의 죽음을 선언했을까? 그는 ‘활짝 열린 웹’(Wide-open Web)에서 ‘반쯤 닫힌 플랫폼’(Semiclosed Platforms)으로 변화하는 현실이 현재 이뤄지는 가장 중요한 변환이라고 주장한다. <와이어드>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은 2010년의 인터넷 이용 방식이 과거와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웹의 시대가 가고 ‘앱’의 시대가 도래하리라고 주장한다.
   
지난 8월17일 “웹은 죽었다”고 선언한 정보기술 전문지 <와이어드>의 표지 기사와 <와이어드>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
“일어나서 아이패드로 이메일을 읽고 아침 식사 동안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뉴욕타임스>를 훑어보고 회사 가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팟캐스트를 듣고 일터에서 RSS 피드를 불러보고 스카이프와 IM으로 대화를 나누고 일과 후 집에 돌아와서 판도라를 들으면서 저녁을 먹고 Xbox Live에서 게임을 하고 Netflix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화를 본다.”(크리스 앤더슨)

와이어드, 웹의 사망을 선언하다
이런 추세가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기에 그는 웹의 사망을 선언한다. 이 선언 속에는 개방적인 웹을 죽이고 인터넷을 앱과 상업화의 닫힌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바람이 숨어 있다. 그런데 웹이 죽었나 안 죽었나, 앱의 시대가 도래하나 안 하나를 따지고, 그가 근거로 내세운 그래프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은 이런 선언 뒤에 숨어 있는 인터넷 지형의 변화와 권력 이동을 파악하는 데 있다.
네트(Net) 자유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와이어드>가 신자유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런 선언이 나왔는지 살펴보자. 대담한 선언의 근본 동기는 네트를 상업화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시작됐다. 열려 있고 자유롭고 무한 복제가 가능하지만 중앙 통제는 할 수 없었던 웹의 근본 성격을 바꿔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방적 웹 환경에서는 도통 수지가 안 맞고 장사도 안 되기 때문이다. 애플 아이폰의 눈부신 도약과 페이스북의 숨 막히는 성장이 디지털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켰을 것이다. <와이어드>가 뽑은 타이틀은 정말 가관이다. “웹은 죽었다. 인터넷이여 영원하라.” 이 타이틀이 뭘 의미하는지 속을 뒤집어보면 다음과 같다. 수평적이고 분산적이며 ‘열린 체제’(아키텍처)로서의 웹(인터넷)은 죽었다. 하지만 새롭게 전개될 폐쇄적이고 독점적이며 상업화된 인터넷(앱)은 영원하라는 주문(呪文)이다. 크리스 앤더슨은 이제 인터넷이 사춘기를 지나 성숙기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초기의 호환성에 입각한 웹의 세계가 폐쇄적 상업화를 위한 앱의 닫힌 체제로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을 인터넷 트래픽 비율을 표시하는 그래프 한 장에 기대어 과감하게 주장하고 있다.
 
집 나간 ‘비트’를 회수하려는 자본
2010년의 인터넷은 구글·페이스북·트위터·아이폰으로 이뤄진 사대천왕으로 대표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새로운 하드웨어와 앱을 앞세워 PC 기반의 유연하고 열린 체제를 사업자의 닫힌 성채로 바꾸려 한다. 앤더슨은 아이폰과 페이스북, 트위터로 대표되는 ‘앱의 혁명’과 힘에 주목했다. 우리가 아이폰에 열광하고 새로운 기기의 출현을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인터넷의 열린 세계는 조금씩 자신의 열린 문을 닫는다. 현재의 흐름은 분명 독점 강화와 닫힌 체제로의 회귀를 보여주고 있다. 구글의 클라우드 컴퓨팅 확산이나 페이스북의 성장, 아이폰 혁명 등이 그렇다.
1990년 CERN에서 웹이 개발돼 사용되기 시작한 후 20년이 지났다. 이제 애플 아이튠스에서 117억 곡에 달하는 MP3 파일이 팔리고, 페이스북이라는 단일 서비스 가입자 수만 5억 명에 이르는 디지털 세상이 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디지털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세심하게 돌이켜봐야 할 때가 된 것이다. 1990년대는 콘텐츠의 대이주가 활발하게 진행된 시기다. 책과 신문·사진·라디오·음반·영상물 등 모든 미디어 콘텐츠가 인터넷 안으로 진입해 디지털 세상은 매우 풍성해졌다. 구미디어 사업체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디지털화는 콘텐츠의 가출이다. 수많은 콘텐츠가 현실 세상의 울타리를 넘어 때로는 자발적으로 디지털 세상으로 건너갔고, 때로는 누군가에 의해 약탈돼 디지털 세상으로 넘겨졌다. 디지털 세상에서 콘텐츠는 유연한 모습으로 변형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과 만나 확장되고 변형된다. 디지털 복제는 디지털 변형과 함께하기 때문에 집 나간 콘텐츠의 친자 확인이 필요할 정도였다. 물질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디지털 세상으로 넘어간 콘텐츠들은 비트로 전환돼 무한 복제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본주의 시장 법칙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일단 ‘비트 탈주’는 성공적이었다. 비트는 다른 비트를 만나면서 더욱 성장했다. 비트로 만들어진 콘텐츠에 대한 새로운 사용 방식과 문화도 만들어졌다. 자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집 나간 비트를 회수하거나, 알아서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거나, 안 돌아오더라도 말을 잘 듣게 해야 할 필요가 생겨났다.  
 
애플의 ‘비트 저작물 회수처리기’
여러 궁리 끝에, 콘텐츠 회수 기기를 만드는 애플 모델이 집 나간 야생 비트를 평정하는 강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2003년 애플이 아이팟과 아이튠스를 결합함으로써 저작권을 떨치고 달아났던 비트 콘텐츠들이 회수되기 시작한다. 디지털 세상을 떠돌던 비트 파일들은 ‘비트 블레이드 러너’들에 의해 하나하나 회수돼 저작물로 처리되기에 이르렀다. 애플이 출시하는 가젯 하나하나가 비트 저작물의 회수처리기다.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아이TV로 이어지는 ‘아이’ 시리즈는 매체별로 특화된 회수처리기의 역할을 담당한다. 디지털 세상으로 들어갔던 디지털 존재들이 ‘디지털이다’를 선언하고 자신들의 거처를 꾸리자마자 그들의 흐름과 용도를 제한하는 홈이 파지고 회수 통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팟으로 디지털 음악 파일을 회수하고, 아이패드로 책 파일을 회수하고, 아이TV로 디지털 영상물을 회수하는 단계를 앞두고 있다.
   
아이폰4가 국내에 출시된 9월10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 고객들이 방금 개통한 아이폰4를 만져보고 있다.

한계생산비용 제로(0)에 수렴함으로써 희소성의 틀을 벗어났던 비트 파일들은 각종 회수처리기 앞에서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당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음반회사로 대표되는 저작권자들은 처음에는 비트 경찰력에 의지해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려 했다. 이것은 매우 소극적인 방어책이었고 복제되는 비트 파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트 복제를 막는다고 자신들의 저작물이 팔리는 것도 아닐뿐더러 비트 해적을 잡아내 문제를 해결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저작권이라는 법적 강제력을 휘두르는 ‘비트 경찰’이 본보기로 집 나간 비트 저작물을 사용자로부터 회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이 진정 ‘해적’ 사용자를 잡으면 비트 저작물도 따라서 잡히거나 수명을 다할 거라 생각했을까? 그것은 길거리 공개 처형과 같은 겁주기였지만 디지털 세상의 사람들은 그 정도의 쇼에 겁먹지 않았다. 애플은 법적 강제력이 아니라 코드와 아키텍처를 통한 더 적극적인 회수책을 속속 실현 중이다. 애플의 ‘하드웨어-앱 재결합’을 통한 콘텐츠 회수 아키텍처는 애플의 창의적인 디자인보다도, 스티브 잡스의 개인적인 카리스마보다도, 더 무섭고 강력한 포획 틀이다. 애플은 디자인으로 사용자를 사로잡고, 오래된 미디어를 인터넷과 결합해 형식 안에 내용을 담아내고, 소비자의 지지와 호응을 발판으로 비트 파일을 저작권의 틀 안으로 포획하고 있는 것이다. 탈물질화된 미디어의 내용물을 자사 신제품과 결합해 다시 물질화함으로써 소유권의 영역에서 탈주했던 비트를 애플 홈통을 통해 다시 상품의 모습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것이 애플이 주도하는 재물질화 모델을 통한 재상품화다. 이러한 재상품화는 경제 외적 강제와 아키텍처를 결합한 것으로서 산업자본주의적이라기보다는 절대왕정기의 상업주의적인 틀에 더 가깝다. 그러니까 디지털 세상의 사용자와 비트의 진화라는 입장에서 보면 복고적이고 반동적이다. 그러나 소비자는 미친 듯이 열광하며 줄 서서 ‘포획기계’를 기다린다. 이런 상황에서 똑같은 비트가 PC에서는 공짜고 애플 기기에서는 돈 주고 사는 상품이 된다.
 
탈주한 비트들, 애플 통해 다시 상품화되다

한편 구글은 여전히 웹의 시대를 지배하는 최대 강자다. 구글은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사용자들의 활동을 구글 사이트 안에다 묶어둔다. 또한 그들의 활동 결과물을 구글 서버에 자동으로 축적한다. 구글 노트에 쓴 글, 프레젠테이션, 저장해둔 도서 목록 등 모든 것이 클라우드 컴퓨팅의 결과물로서 고스란히 구글의 서버 속으로 이동된다. 그들은 사용자들의 활동 결과물을 사회적으로 전유하는 것이다.
비트는 사람들이 시간과 맞바꾼 결과물이다. 상대 홈페이지에 링크를 걸고, 구글로 검색을 하고, 네이버 ‘지식iN’에 올라온 물음에 응답해주고, 또 그런 응답에 점수를 주는 모든 행위가 비트를 만든다. 내 활동이 비트로 변할 때, 나는 비트의 생산자가 된다. 네트의 비트를 내 컴퓨터로 끌어올 때 난 비트의 소비자가 된다. 내가 네트를 이용할 때 생산과 소비를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가끔 유료 비트를 사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뒷골목을 뒤지거나 구멍난 포대를 찾아내 공짜로 비트를 쓴다. 그렇다고 내가 만든 비트의 가치와 가격에 대해 한 번도 네트에 청구한 적은 없다.
미국의 경우 지난 8월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머문 시간은 4100만 분, 구글에 머문 시간은 3980만 분이라고 한다. 이용자들은 그 시간 동안 검색을 하고 메일을 주고받고, 댓글을 남기고 사진을 올리고 동영상을 봤을 것이다. 이런 모든 활동은 비트의 유통을 동반한다. 이용자들의 활동은 비트를 만들고, 비트를 복제하고, 비트를 가져오고, 비트를 보내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하다못해 비트를 보내거나 받는 단순한 행위도 비트를 낳는다. 구글 검색창에 내가 쳐넣은 검색어는 검색어 순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나의 검색  활동으로 창출된 비트가 나도 모르게 구글의 비트로 전환돼 축적된다.
이것이 사업자에 의한 사용자 비트의 전유(appropriation)다. 네트 안에서는 사업자와 사용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서로를 전유한다. 구미디어 사업자는 자신의 재산이 비트로 전환돼 해적질당하고 있다고 저작권법 강화에 목숨을 건다. 이제 개인의 ‘공정한 사용’조차도 저작권법에 걸어 비트 해적의 뿌리를 뽑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비트는 비트를 낳고 네트의 사용 자체가 비트 복제에 기반하고 있는 한 비트 해적을 격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꾸로 수많은 사용자들이 만들어놓은 비트 저작물에 대해 네이버·다음·싸이월드·페이스북은 저작권료를 주고 있는가? 그들은 사용자 저작물을 공짜로 전유해 자신의 세력을 넓힌다. 그들은 사용자들이 꿀벌처럼 열심히 모아온 꽃가루와 꿀로 꿀단지를 만들지 않았는가? 그들은 양계장의 닭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트윗질한 비트 달걀들을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고 있지 않는가? 인터넷에서는 비트의 전유를 둘러싸고 양계장 주인과 해적 간의 숨가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월13일 구글이 ‘망중립성’ 대상에서 무선 인터넷을 제외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여러 시민들이 캘리포니아 구글 본사 앞 공원에 모여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 할머니들까지 가세한 이날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미국 민요 <클레멘타인>에 맞춰 구글을 ‘닭장을 지키는 여우’에 패러디해 노래를 불렀다. “여우에게 닭장을 맡기면 지켜질 수 있을까?/ 농부들은 알고 있지 자물쇠가 필요하다는 걸/ 구글은 말하지, ‘믿어달라’고/ 하지만 나의 사랑 FCC(미 연방통신위원회)여/ 여우로부터 컴퓨터를 보호해달라/ 동등한 접속권이 열쇠란다.”

트윗질한 비트 달걀을 빼앗는 해적들
<와이어드>의 ‘웹 사망 선언’의 이데올로기가 갖는 문제점을 지적했으니 이제 그들의 문제제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인터넷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 당돌한 선언을 네트워크에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 사용자들의 문화에 이르기까지 독점을 향한 중대한 변화가 몰려오고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독점은 당연히 소수의 거대 ‘공룡’ 회사에 의한 인터넷의 지배를 의미하고, 그것은 인터넷의 토대가 되었던 상호호환성과 상호연결성이라는 아키텍처, 그리고 아키텍처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열림과 나눔의 문화를 위협한다.
인터넷의 미래 추세에 대한 경고는 팀 우의 망중립성, 조너선 지트레인의 연줄 애플리언스 분석, 이미 1990년대 중반에 제출된 브라이언 아서의 소프트웨어 독점에 관한 논의, 로런스 레시그를 포함한 디지털 저작권 비판 등에 관한 논의들에서 더 확실하게 들을 수 있다. 미래의 인터넷이 망과 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츠의 모든 차원에서 독점이 강화되고 폐쇄적 체제를 갖추는 틀로 변화할 조짐이 보이거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그런 경향을 예측할 수 있다면 이에 대한 비판과 개입을 활성화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와이어드>의 앤더슨은 1900년대 초반에 철도·전화·전기가 경쟁 상태에서 독점화 단계로 변화하는 경로를 예로 든 뒤 이제 인터넷 웹에서 똑같이 독과점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그는 열린 체제가 개인 간 거래(P2P) 생산에 바탕을 둔 비화폐경제에서는 훌륭한 역할을 하지만 결국 간편함과 신뢰성 같은 요소를 제공하는 화폐경제의 닫힌 체제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웹브라우저가 PC 혁명의 정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다”라는 지트레인의 문구를 인용하면서 그는 오늘날 인터넷은 무수히 많은 ‘닫힌 정원’(closed garden)으로 이뤄져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트레인은 그런 미래에 제동을 걸라는 것이고 앤더슨은 그런 추세에 편승하려는 점에서 서로 완전히 반대 입장에 서 있다. 중요한 것은 거대 공룡 기업이 제공하는 닫힌 플랫폼과 독점의 편에 서는가, 아니면 사용자의 편에서 열린 체제를 위해 싸우느냐의 선택이다.
 
수많은 ‘닫힌 정원’과 ‘거대 공룡’의 독점
나는 <와이어드>의 ‘웹 사망 선언’이 이데올로기 비판을 넘어 인터넷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인터넷은 앤더슨의 말처럼 18살 사춘기를 넘어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다(그는 인터넷에 웹이 도입된 시점을 1살로 친 것 같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13살부터는 인간이나 인터넷도 도통 순수해질 수가 없나 보다. 자유주의자들의 낭만적이고 이상향적인 인터넷의 유년기는 이미 2000년대 ‘닷컴’ 시대를 거치면서 사라졌다. 2010년의 인터넷은 이성(異性)의 유혹을 받는 ‘비순수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웹 사망 선언’을 계기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인터넷 환경을 다시 돌아보고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용자로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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