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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자사주 매입 열풍과 금융위기
누가 미국 주식시장을 끌어올리는가
[76호] 2016년 08월 01일 (월) 윤석천 economyinsight@hani.co.kr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파로 잠시 주춤하던 세계의 주식시장이 연일 상승하고 있다. 이는 미국 주식시장의 호황에 힘입은 바가 크다. 미국 주식시장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전세계 주식시장 역시 브렉시트로 인한 ‘불확실성’을 비웃듯 동반 상승하고 있다. 문제는 기업의 실적과 상관없이 수급에 의해 주가가 오른다는 데 있다. 기업들이 무차별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면서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과거 금융위기 직전과 비슷한 양상이다. 최근의 금융시장 호황이 불안해 보이는 이유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대체 미국의 주식시장은 누가 끌어올리는 걸까? 대부분은 기관투자가나 개인투자자가 밀어올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이들의 힘은 생각보다 미약하다. 의외지만 미국 주식시장을 견인한 건 일반 기업이었다. 값싸게 풀린 돈을 이용해 기업들은 마음껏 부채를 늘릴 수 있었다. 이 돈은 주식시장으로 향했다. ‘자사주 매입’을 통한 금융공학 열풍이 불면서 기업들은 주당순이익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자사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이것이 미국 주식시장을 끌어올린 주요 동인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강세장의 주역은 개인투자자나 기관투자자가 아니었다. 기업이 주식시장을 선도했다. 기업들은 지난 수년 동안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식시장에 참여해 강세장을 만들어냈다.

   
▲ 미국 주식시장이 연일 급등하면서 전세계 증시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악재 속에 동반 상승하고 있다. 2016년 7월12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트레이더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REUTERS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자사 고객들이 2016년 상반기에 어떤 투자 행태를 보였는지 조사한 결과를 내놓았다. 2016년 상반기에 순매수를 한 유일한 고객은, 다시 말해 판 물량보다 산 물량이 많은 고객은 자사주 매입을 한 기업뿐이었다. 이 기업들은 상반기에 2천만달러(약 23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반면 헤지펀드는 580만달러 순매도를 했다. 개미투자자들은 950만달러, 기관투자자 역시 약 2300만달러를 순매도했다. 물론 이 통계는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 고객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하지만 이것은 투자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투자했는지 잘 보여준다.

미국 기업들이 현금을 동원해 자사 주식을 사는 자사주 매입은 근래 대유행하고 있다. 홍콩 금융그룹 HSBC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지난 5년 동안 자사주 매입에 2조1천억달러를 썼다. 원화로 환산하면 자그마치 약 235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종업원 교육, 새로운 공장 건설, 차입금 상환에 쓴 것이 아니다. 심지어 주주들에게 배당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사 주식을 매입하는 데 많은 돈을 썼다.
 
자사주 매입은 기업 꾸미는 ‘화장술’

이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화장술이다. 기업의 외양을 좋게 꾸미기 위한 방편이다. 기업을 식당이라 가정해보자. 그 식당은 좀처럼 만석이 되는 경우가 없다. 빈 테이블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매출액은 괜찮다. 수익도 나고 있다. 하지만 식당 주인은 테이블당 수익에 항상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 빈 테이블이 불만이다. 식당 주인은 어떻게 하면 테이블당 수익을 높일까 고민한다. 그래야만 투자자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손님을 더 끌어올 마땅한 방법이 없다. 결국 주인은 테이블을 치워버리기로 결정한다.

테이블을 치우고 보관하는 데는 돈이 들지만 그렇게 하니 같은 수의 고객이 찾아와도 테이블당 수익은 올라간다. 매출액은 변함없다. 그러나 투자자는 행복하다.

황당한 일이지만, 이런 일이 미국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자사주를 매입해 주당순이익을 높이고 있다. 주당순이익은 순이익을 전체 주식 수로 나눈 것이다. 여기서 분모(전체 주식 수)가 작아지면 결국 주당순이익은 커진다. 자사주 매입으로 주식 수를 줄이면 총순이익은 불변이라도 주당순이익은 늘어난다. 이는 ‘금융공학’이다. 주목해야 할 건, 실제 가치 창출로 주당순이익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계산상 높아진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테이블을 치우는 것의 유일한 효과는 실제보다 식당을 더 좋아 보이게 하는 것이다. 맞다. 자사주 매입으로 주당순이익은 오른다. 그러나 이익이 늘어서가 아니다.

굳이 이렇게 하는 직접적 이유가 있다. 경영자들에 대한 보상이 주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경영자들이 주식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건실한 투자가 아닌 손쉬운 자사주 매입을 선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이유는 또 있다. 기업이나 투자자는 현금을 운용하지 않고 놔두는 것을 싫어한다. 인플레이션으로 현금 가치는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현금을 이용해 수익을 높이려 한다. 성장 국면일 때는 공장을 짓거나 고용 확대에 현금을 쓰게 된다. 이것은 기업의 미래에 대한 투자다. 그러나 경제가 악화될 때 이런 선택은 위험할 수 있다.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질 때, 기업은 투자보다는 보유 현금을 주주에게 주는 것을 선택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자사주 매입이 기업 이미지를 좋게 하는 화장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주당순이익은 투자자와 미디어가 기업의 실적을 평가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이다. 주식 수가 줄어들면 주당순이익은 늘어난다. 이런 이유로 기업은 자사주 매입을 선택하지만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오히려 악화되는 게 일반적이다.

아이비엠(IBM)을 보자. 영국 통신 <로이터>에 따르면, 아이비엠은 2016년에만 46억달러(약 5조2500억원)를 자사주 매입에 썼다. 10년 동안 1250억달러를 썼다. 그로 인해 지난 5년 동안 총 주식 수는 5분의 1로 줄었다. 그 결과 주당순이익은 15% 상승했다. 그러나 실제 순이익은 같은 기간 11% 하락했다. 매출액 역시 줄었다. 외양은 좋아졌지만 펀더멘털은 악화됐다.

그렇다고 기업의 자사주 매입을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자사주 매입 지지자들의 주장처럼 자사주 매입은 주주들의 기업소유권을 높여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장기투자 주주들은 보상받고 주주 가치 또한 높아진다. 기업이 보유한 현금을 즉시 사용해야 할 이유가 없을 때, 자사주 매입은 막대한 투자 등 위험한 지출보다 기업 가치를 높이는 단기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워런 버핏 역시 주주에게 현금을 환원해주기 위한 방편으로 자사주 매입을 이용하고 있다. 그는 배당보다 자사주 매입을 선호한다. 하나, 버핏은 자사주 매입에 단서를 달고 있다. 자사주 매입은 주식의 시장가치가 본질가치보다 저평가된 경우에만 의미 있다고 말한다.
 
자사주 매입 열풍 뒤 터진 금융위기

   
▲ 버지니아 로메티 IBM 최고경영자(CEO)가 2016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가전박람회(CES)에서 연설하고 있다. IBM은 2016년에만 46억달러(약 5조2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REUTERS
문제는 무분별한 자사주 매입이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본질을 외면한 채 화장술에만 집중하는 기업의 행태는 자칫 시장을 망가뜨릴 수 있다.

현재 미국의 긴축 기조는 브렉시트 등의 여파로 주춤한 상황이다. 하나, 미국이 긴축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확실하다. 이에 신용조건은 점차 악화되고 달러 강세 현상도 지속될 전망이다. 결국 미국 기업들은 가까운 장래에 자사주 매입 자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지난 몇 년간 자사주 매입 용도의 자금 마련은 매우 용이했으나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올리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시장의 가장 큰 매수자 구실을 했던 자사주 매입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기업의 자사주 매입이 중단되면 주식시장은 강한 하락 압박을 받을 것이다. 이에 투자자들은 혼란에 휩싸일 것이 분명하다. 그에 비례해 주식시장의 위험은 커질 것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주식시장을 지배하던 자사주 매입이 끝나면 다음 라운드의 주식시장 매수가 진행될 거란 주장이다. 긍정론자들은 자사주 매입이 끝나더라도 개인투자자와 연금펀드 등이 새로운 수요원으로 자연스럽게 등장할 거라 낙관한다. 게다가 투자 등급의 우량 회사들은 여전히 부채 조달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계속 자사주 매입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생각보다 시장 충격은 강하지 않을 거라고 강조한다.

과연 그럴까. 시장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 가계는 이미 금융시장에 투자할 여력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거기에 메가뱅크마저 금융위기 이후 규제가 강화돼 금융시장에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주식시장은 이미 역사적 고점을 경신한 상황이다. 연금펀드 등이 시장을 얼마나 지탱해줄지 의문이다.

자사주 매입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기업의 지속 성장에 필요한 투자와 혁신의 자원을 엉뚱한 곳에 낭비하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 열풍은 ‘주주 가치 극대화’란 미명하에 건전한 자본 형성을 막고,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투자 자원을 축소시키며 노동자를 무력화한다. 고용을 위축시키며 궁극적으론 성장을 저해한다. ‘가치창조’란 명분으로 자행되는 무분별한 자사주 매입은 실제론 ‘가치 적출’(value extraction)에 불과하다. 극소수 주주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

상황이 금융위기 직전과 너무 비슷하다. 당시에도 자사주 매입 열풍이 불었고 그것이 미국 주식시장을 강하게 밀어올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 끝은 잔인했다. 주식시장은 금융위기 여파로 폭락했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역사는 반복된다. 조건이 비슷한 경우 시차는 있지만 결과는 같게 나타난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세계에서 유독 금융시장만 호황을 보이는 현상이 두려운 이유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상승세가 위태로워 보인다.

maporiver@gmail.com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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