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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잉카의 로망 ‘치안 확보·경제 도약’
페루 쿠친스키 새 정부의 정책 변화 읽기
[76호] 2016년 08월 01일 (월) 김철희 economyinsight@hani.co.kr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페루 대통령이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대통령에 당선돼 2016년 7월 새 정부를 열었다. 변화의 바람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우선 쿠친스키 대통령은 페루의 고질적 병폐인 치안 문제 해결에 힘을 쏟을 방침이다. 또 2014년 전년 대비 반토막 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에 주력할 계획이다. 그가 새 정부의 정책을 뚝심 있게 끌고 가려면 여소야대 국회의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한국으로서는 지능형 순찰차 수출 같은 공공조달 시장을 공략하고, 에너지 분야와 사회 인프라 투자를 눈여겨봐야 한다.

김철희 KOTRA 페루 리마무역관장

역사상 이렇게 치열하고 흥미진진했던 대통령선거가 있을까? 2016년 6월 같은 시기 열린 남미축구대회 ‘코파아메리카 2016’ 개막식보다 남미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바로 2차 투표까지 진행된 페루 대선이었다. 한 편의 영화 같던 4만여 표 차이의 역전승, 두 달 넘게 진행된 대선 여정을 되짚어보며 그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페루 대선 방식은 한국과 다르다. 후보자가 절반 이상 득표해야 당선되는 제도다. 후보자 중 과반이 나올 때까지 계속 투표하는 구조다. 이번 대선 역시 2차 투표를 통해 대통령이 선출됐다. 2016년 4월10일 실시한 1차 투표에선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후보(변화를 위한 페루인당),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민중권력당), 베로니카 멘도사(광역전선당) 후보가 입후보했다. 게이코 후보(39.9%)가 21.1%를 득표한 쿠친스키 후보를 제치고 1위를 했지만 과반을 얻지 못해, 2차 투표로 넘어갔다.

   
▲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페루 대통령(가운데)이 2016년 6월28일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대통령 당선증을 받은 뒤 국민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여소야대 국회는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REUTERS
게이코 후보와 쿠친스키 후보로 좁혀진 2차 투표는 2016년 6월5일 펼쳐졌다. 개표 완료 뒤에도 두쪽 모두 당선 연설을 하지 못할 정도로 박빙이었다. 결과는 쿠친스키 후보가 50.1%, 게이코 후보가 49.9%를 얻어 4만2597표 차이로 쿠친스키 후보가 당선되는 역전극이 벌어졌다. 1차 투표에서 20% 지지밖에 얻지 못한 쿠친스키 후보에게 두 달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쿠친스키의 당선 요인은 크게 2가지다. 첫째, 독재정치 재연 및 부정부패 방지에 호소했다. 게이코 후지모리는 1990년부터 10년간 집권했던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의 딸이다.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재임 기간 중 초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고 폭력·마약 조직을 와해하는 등 치안 강화에서 성과를 거뒀지만, 독재와 인권 탄압으로 2010년 페루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쿠친스키 후보는 이를 파고들어 반후지모리 정서를 공론화해 반대 진영을 결집했다. 둘째, 1차 투표에서 3위를 차지한 좌파연합 베로니카 멘도사 후보가 쿠친스키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쿠친스키 정부는 2016년 7월28일 새로 출범했다. 이번 페루 대선은 작게는 페루, 크게는 중남미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를 읽는 데 도움이 된다. 바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반영됐다는 점이다. 중남미 전체로 보면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하락에 따른 경제 악화로 2015년 하반기부터 중남미 대선에서 불었던 ‘핑크 타이드’(Pink Tide)의 퇴조와 연결된다. 핑크 타이드는 온건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을 뜻한다.
 
‘핑크 타이드’ 표방한 우말라 전 정부의 부패

2011년 7월 출범한 중도좌파 성향의 오얀타 우말라 대통령은 경제적으로는 직전 10년간 성공적이던 경제정책 모델을 이어가며 집권 초기에 5% 이상 경제성장률을 유지했다. 그런데 2014년부터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 및 세계경제 침체로 성장률이 주춤했다. 중남미 경제성장률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것을 감안하면 경제 분야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정치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집권 내내 문제가 된 여소야대 국회, 대통령 부인 등 여권의 부정부패 사건, 국회의 총리 불신임 등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돼 국내 정치의 불안 요소가 상존했다. 이 여파로 여당은 최근 총선과 이번 대선에 잇따라 불참해 야당만의 ‘반쪽 선거’로 전락했다.

우말라 정부와 한국의 관계는 어땠을까? 한국과 페루의 관계는 2011년 8월 한-페루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지속적인 협력관계에 있다. 우말라 대통령 임기 중 중남미에서 두 번째로 발효한 한-페루 FTA는 발효 이후 연평균 25% 이상 수출 증가를 가져왔다. 양국 대통령의 상호 방문이 성사돼 정상회담을 통한 포괄적 전략동반자 이상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5년 기준 페루는 한국의 대중남미 수출국 중 5위, 수입국 중 4위로 부상했다. 한국은 페루의 광업 등 에너지 분야 48건 사업에 약 18억달러(약 2조400억원)를 투자하고 있다. 한국 제품은 지능형 순찰차 등 다수의 성공적인 정부간계약(G2G)으로 페루에 진출했고, 2015년 4월에는 한국이 위생선진국으로 분류돼 의약품 및 의료기기, 화장품 등 시장 진출 여건이 크게 개선됐다. 이에 정부 공공조달 시장 진출을 위해 코트라 등 한국 정부기관이 앞장서 계약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은 최근 장기 침체형 저성장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및 사드 배치 같은 대내외 변수가 복병으로 등장해 수출 부진에서 탈출하기 쉽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시장 다변화 전략으로 수출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 페루는 훌륭한 대안 중 하나다.

페루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려면 쿠친스키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쿠친스키 정부의 정치적 상황을 알아야 한다. 당장 국회 의석수가 가장 큰 변수다. 2016년 7월28일 출범한 새 정부가 속한 집권 여당의 의석수는 18석에 불과해 여소야대 상황이다. 게이코 후보가 속한 민중권력당은 73석으로 주요 야당과의 연합전선 구축이 예상된다. 이에 따른 집권 초기의 정치적 불안이 우려된다. 새 정부가 집권 초 여소야대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지가 향후 5년을 좌우할 핵심이다.

지금까지 나온 쿠친스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치안 강화’와 ‘경제 활성화’다.

치안 강화는 페루 정부의 오랜 숙원사업으로 국민 역시 가장 심각하게 여기는 문제다. 집권 초 치안 강화를 위해 경찰조직 개혁과 필요한 예산을 지원해 감옥·경찰서를 추가 신설할 예정이다. 범죄율이 높은 15~20개 지역을 특별 지정해 집중 관리하고, 살인율 감소에 정책 방향을 집중할 방침이다. 코카인 등 마약 생산 단속에도 힘을 쏟기로 했다.

‘페루 형제국’ 중국 활용 방안 절실

   
▲ 안데스 지역 여성들이 페루 카하마르카에서 열린 광산 채굴 반대 집회에서 잉카제국을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쿠친스키 대통령은 치안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좇고 있다. REUTERS
경제 활성화 방안도 눈에 띈다. 페루는 2011년 6.5%, 2012년 6%, 2013년 5.9%, 2014년 2.3%, 2015년 3.3%의 경제성장률을 보여왔다.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가진 쿠친스키 대통령은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게 최우선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쿠친스키 대통령은 향후 5년간 소득세 인하, 부가가치세율 인하(18%→15%)를 통해 기업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투자 활성화 방안으로는, 한국의 코트라 역할을 하는 페루 투자청(Proinversion) 조직을 전국 단위로 개편해 150억~180억달러(약 17조~20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추진하고, 대규모 광산 개발 프로젝트도 재개할 계획이다. 페루가 현재 진행 예정인 프로젝트는 탈라라 정유공장 근대화, 리마지하철, 카야오 북부 리마공항 확장, 쿠스코 남부 가스 파이프라인 확장 등 한국 건설·엔지니어링 업계가 관심 가질 만한 분야가 상당히 많다. 페루는 주요 무역 파트너인 미국·중국과 결속을 더욱 강화하고, 아시아 국가들과도 지속적으로 FTA를 추진할 것이다. 러시아와는 전략적 동반자로서 관계를 지속하고, 칠레와는 미묘한 정치적 마찰은 있지만 장기적으로 정치·경제적 협력관계를 강화해나간다는 자세다. 또 현재 진행 중인 터키·인도 등과 FTA 협상을 마무리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조기 비준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쿠친스키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일단, 우말라 전 정부와 추진해온 정책 방향과 집권 기간 중 체결된 주요 프로젝트 계약은 재검토 및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물론 우말라 정권과 여러 성공적인 정부간계약을 토대로 신뢰를 쌓아온 만큼 새 정부와도 다양한 사업 확장이 가능할 것이다.

우선 지능형 순찰차 등 공공조달 시장 진출 확대 방안을 손꼽을 수 있다. 페루 정부가 정부간계약 분야를 확대해 의약품 및 의료기기, 통신장비, 교육장비 등 공공조달 분야 확장에 관심이 큰 만큼 이를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2015년 4월 박근혜 대통령의 페루 방문과 2016년 11월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등으로 더욱 발전할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활용해 다양한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현지에서 한국의 이미지 및 인지도 제고를 통해 소비재시장 진출을 타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국 기업으로선 현지에서 한국의 기술력 인지도가 높은 점을 활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술이전, 인력훈련 등 산업 협력사업과 연계한 프로젝트 진행이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경제발전 경험 공유’(KSP) 사업 등과 연동한 사업 참여가 절실하다. 페루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점을 이용해 중국 기업과 컨소시엄 형태로 현지를 공략할 필요도 있다. 쿠친스키 대통령은 중국과의 동지적 관계를 증명하듯 부임 뒤 첫 방문지로 중국을 생각하고 있다. 그는 중국 방문 때 교통 인프라와 항만, 공항 분야에 대한 중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중국 수출 물품 확대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현재 페루 주변국들은 쿠친스키 새 정부 출범으로 정책 변화에 따른 대비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수출 경기를 반드시 끌어올려야 하는 한국 역시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면 쿠친스키 정부와 안정적 관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chkim0650@kotra.or.kr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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