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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책]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세상의 ‘행간’을 읽는 경제학
<시가 있는 경제학>
[76호] 2016년 08월 01일 (월) 고우리 economyinsight@hani.co.kr

모래 한 알에서 세상을 보고
한 야생화에서 하늘을 본다.
손바닥에 무한을 잡고
한 순간에 영겁을 담는다.
-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 (Auguries of Innocence)

<시가 있는 경제학>의 저자 윤기향 교수에게 영감을 준 책 <시인을 위한 양자 물리학>(2011)에도 소개된 시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언 레더먼과 페르미연구소의 이론물리학자 크리스토퍼 힐이 함께 쓴 <시인을 위한 양자물리학>은 자연과학 가운데 가장 난해한 학문으로 알려진 물리학을 시에 연계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이 책의 구상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모래 한 알에서, 들꽃 한 송이에서, 그리고 시간의 한순간에서 순수를 보았다. <시가 있는 경제학>은 경제학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시로 그것이 피부로 직접 와닿도록, 그리 하여 어떤 의미에서 독자에게 충격을 주도록 시를 섬세하게 장치한다. 레더먼과 힐이 <시인을 위한 양자물리학>에서도 말했듯, 이 책을 읽으며 “당신이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직 이해하지 못 한 것이다”.

   
▲ <시가 있는 경제학> 윤기향 지음/ 김영사 펴냄/ 1만9천원
이 책에는 총 28편의 영미시, 한국시, 중국시, 일본시가 소개된다. 정통 경제학을 다루지만 숫자 대신 시를 곁들인다.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고 나는 사람들 이 덜 다닌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고 읊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저자는 미국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을 때 선택한 양적완화 정책을 떠올렸다.

‘결과의 80%는 원인의 20%로부터 나온다’는 파레토 법칙은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는 서정주의 시 ‘자화상’으로 설명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3개의 화살론’도 시를 통해 분석한다. 아베 총리는 일본 경제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무제한 양적완화, 적극적인 재정지출, 경제구조 개혁이라는 세 화살을 무기로 꺼내들었다. 저자는 헨리 롱펠로의 ‘화살과 노래’를 읊조리며 그 효과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공중을 향해 화살 하나를 쏘았으나, 땅에 떨어졌네. 내가 모르는 곳에. 화살이 너무 빠르게 날아가서 시선을 따라갈 수 없었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 참나무에서 화살을 찾았네. 부러지지 않은 채로…”

<시가 있는 경제학>은 경제학을 딱딱한 논리의 언어가 아니라 말랑 말랑한 감성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기존 경제학 책들이 배경음악 없이 대사만 나오는 영화라면 이 책은 배경 음악이 흐르는 영화와 같다.

그러나 이 책은 경제학 한 스푼에 시를 살짝 버무린 호락호락한 경제 교양서가 아니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경제학 학술지에 영향력 있는 논문을 발표하며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경제학자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마쳤고, 현재 플로리다애틀랜틱대학(FAU) 종신교수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2001년 이 대학교 경영대학 ‘올해의 교수상’을 받기도 했다.

오랜 기간을 갈고닦은 경제전문가만의 날카로움과 성실함으로 경제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충실하고 풍부한 경제지식을 제공한다. 애덤 스미스부터 자본주의 4.0을 주장한 아나톨 칼레츠키까지 경제사를 쭉 훑으며 한쪽에 치우침 없이 중요한 경제이론과 쟁점, 정책과 대안 등을 생활인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다.

군더더기 경제이론과 경제사를 말끔히 걷어낸 치밀한 구성은 경제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를 위한 최고의 미덕이다. 경제학 입문서이지만 미국발 경제위기와 중국 경제의 부상, 경제적 불평등을 둘러싼 논의 등 동시대 경제의 핵심 쟁점을 다루며 날카로운 현실감각을 드러낸다. 책 결말에선 전 지구적 문제로 대두된 소득 불균형과 복지 등에 대한 고찰을 거쳐 미래 경제 전망까지 아우르고 있다.

<고리오 영감> <잃어버린 지평선> <분노의 포도> 같은 소설도 인용했고, <초원의 빛> 같은 영화도 인용했으며, 또 여러 신화와 그림도 등장한다.

그러나 어느 장르보다 시에는 생각의 힘이 농축돼 있고 언어의 힘이 압축돼 있다. 시는 사람을 감동시키고 감동은 사람을 미지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이 책은 경제학을 시에 접목함으로써 그동안 경제학에 걸어놓았던 높은 빗장을 풀고 독자를 경제학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미국 정부의 정책 입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유명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소장 아서 브룩스는 이 책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전한다.

“경제학은 인간애와 아름다움을 배척한 채 무미한 개념과 건조한 자료들에 초점을 맞추는 분야, 즉 ‘우울한 학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기업가정신, 창의성, 재능의 상호교환과 같은 경제학의 진 짜 주제들은 우리들의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까지도 사로잡는다. 윤기향 교수는 경제학이 인간의 본질과 우리들 자신에 관해서 우리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을 탐구하기 위해 시의 힘을 활용함으로써 경제학의 이러한 진실을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다.”

woori@gimmyo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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