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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커지는 민간부채, 다가오는 금융위기
금융위기는 어떻게 오는가
[75호] 2016년 07월 01일 (금) 윤석천 economyinsight@hani.co.kr

금융위기를 예견해 막는 일은 불가능할까.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금융위기가 ‘우연의 과정’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무엇이 위기를 불러왔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한다. 분명한 사실은 위기는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이란 것이다. 따라서 그 과정을 추적하면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19세기 이후 발생한 금융위기를 살펴보면 높은 민간부채와 가파른 민간부채 성장률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근거한다면 다가올 위기를 막기 위해선 민간부채 축소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세계 주요국은 부채 축소를 이루지 못했다. 또 다른 위기가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2008년의 금융위기는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반대편에선 ‘소가 뒷걸음질하다 쥐 잡은 격’이라 깎아내린다.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2008년의 금융위기를 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금융 거품은 가끔 발생하며 보통 그것은 사전 경고 없이 혹은 거의 없이 발생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금융 거품과 붕괴는 ‘우연의 과정’으로 보인다. 과연 금융 붕괴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분명한 사실은 거품과 붕괴 모두는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이란 것이다. 따라서 그 과정을 추적하면 특정한 ‘인과관계’를 찾아낼 수 있다. 그린스펀은 틀렸다. 그의 발언에선 뭔가 진실을 호도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사실 이는 주류 경제학자 대부분이 취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무엇이 거품을 만들고 그 결과는 어떨 것임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게 일반적이다. 어쩌면 그것이 신용을 배경으로 한 현대 경제의 한계인지 모른다.

   
▲ 19세기 이후 발생한 금융위기 과정을 추적해보면 높은 민간부채가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 막대한 부실채권으로 퇴출 위기에 몰렸던 그리스 유로뱅크의 아테네 지점. REUTERS
<다음번 경제 재난>(The Next Economic Disaster)이란 책의 저자인 리처드 베이그는 2008년의 금융 붕괴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한발 더 나아가, 모든 금융위기는 사전에 알 수 있으며 예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위기를 상당한 수준의 정확성을 갖고 예측할 수 있는 간단한 공식이 있으며 그 공식에 대입해보면 오늘의 세계경제는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에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막연한 주장만 하는 게 아니다. 19세기 이래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바탕하고 있다. 이제 그의 결론을 살펴보자.

“경제위기 혹은 금융위기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높은 민간부채와 급속한 민간부채 성장률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19세기부터 발생한 기존 금융위기를 면밀히 관찰한 후 이런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들 위기가 온전히 과도한 민간부채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다. 다만 대부분의 위기에서 민간부채의 폭증 양상이 관찰됐다. 한마디로 민간부채의 폭증은 위기의 전조 증상이라 말할 수 있다.”

위기의 전조는 민간부채 폭증

먼저 2008년의 금융위기 양태를 보면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민간부채 증가 속도가 정부부채의 그것보다 훨씬 가팔랐다. 1990년대부터 2008년 위기 발생 전까지 미국 정부부채의 증가 추이를 보면 국내총생산(GDP)과 거의 평행하게 늘었다. 반면 GDP 대비 민간부채는 빠르게 늘었다. GDP 성장률보다 훨씬 상승폭이 가파르다. 이런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위기 전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1991년 금융위기를 겪었다. 1975년부터 금융위기가 발생한 1991년 전까지 일본 공공부채는 GDP 성장률에 비례해 증가했다. 반면 민간부채는 1980년대부터 GDP 성장률 이상 폭증하기 시작했다.

주요 금융위기는 GDP 대비 민간부채가 폭증한 뒤에 발생한다. 또 하나 있다. 절대적 민간부채 수준이 높을 때 일어난다. 빠른 부채 성장과 높은 민간부채 수준이 결합해 위기를 잉태시킨다. 더 정확히는 주요 경제국에서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이 150%에 달하고 그 비율이 5년 동안 최소 18% 정도 증가한다면 큰 위기가 가까운 장래에 발생하게 된다.

위기가 본격화하기 전까진 모든 일이 순조로워 보인다. 민간부채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호황 국면’이란 착시를 불러온다. 일본의 1980년대 경제 기적, 1990년대 아시아 경제 호황, 흥분의 20세기까지. 이 모두가 부채를 연료로 쓴 ‘돈 파티’에 불과했다. 무분별한 신용으로 돈은 넘쳐났고 그 돈은 자산시장 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모든 파티가 그렇듯 자산시장 붐도 그 끝이 있기 마련이다. ‘돈 파티’는 경제적 파국으로 연결된다.

이것으로 끝일까? 경제위기의 두 요건, 즉 높은 민간부채와 빠른 민간부채 성장, 이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글로벌 민간부채는 금융위기 이후에도 폭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민간부채는 2015년 기준으로 GDP의 195% 수준이다. 2008년엔 212%에 달했으니 낮아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2000년의 180%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1950년대와 비교하면 천문학적으로 높다. 한국은 2011년 245% 수준에서 2014년 말 254%로 늘었다.

중국의 상황은 특히 엄중하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결제은행(BIS) 등의 자료를 취합해보면, 2008년부터 2013년 사이에 중국의 GDP 대비 민간부채는 약 60% 늘었다. 민간부채 조기경보 기준을 중국에 적용해보면, 중국 경제는 가까운 장래에 중대한 금융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위상과 중요성을 고려하면 심각하다. 민간부채 비율은 GDP의 200%에 달한다. 중국의 경제 데이터를 신뢰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어떤 경우라도 최근 5년의 민간부채 성장률은 40% 이상이다. 중국의 경우 정부가 경제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어 몇 년 동안 ‘금융 폭발’을 미룰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민간부채 수준이 경보를 울리는 것만은 확실하다. 한국은 안심할 수 있을까? 모건스탠리는 한국의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합한 민간부채가 여타 아시아 신흥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기 이후 신용 증가의 영향으로 한국의 가계부채는 2007~201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6%, 기업부채는 21%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놀라운 점은 글로벌 부채의 심각성에 대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장을 갉아먹는 주범인데도 말이다. 과중한 부채에 신음하는 민간부문은 투자와 소비에 써야 할 돈을 부채 상환에 사용하고 있다. 특히 중산층 이하 계층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중산층은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필수 세력이다. 이들이 투자와 소비를 망설이면서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 부채 누적은 총수요를 악화시킨다. 수요 악화는 성장을 막는다. 부채가 성장을 좀먹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성장 둔화를 설명하는 핵심 열쇠이다.

중산층 부채 부담 축소가 관건

   
▲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오른쪽 네 번째)와 가계부채 태스크포스(TF) 소속 의원들이 2016년 6월14일 서울 서대문구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를 찾아 채권·채무 계약서를 파쇄하는 ‘부채 탕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정부부채를 줄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지워야 한다. 1929년의 붕괴, 1997년의 아시아 위기, 1991년 일본 위기 등 대부분의 위기에서 정부부채 성장률은 평탄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5년 정부부채 상승률은 거의 0에 가까웠다. 스페인의 경우에도 위기 직전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16%포인트 하락했다. 위기를 불러오는 건 정부부채가 아니다. 낮은 정부부채 비율이 미덕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정부부채가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경우는 드물다. 민간부채 처리 과정에서 정부부채가 급속히 늘면서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이르는 경우는 있으나, 민간부채가 안정적인 상황인데 정부부채가 폭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사 그렇다 해도 위기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초점은 민간부채 축소에 모아져야 한다. 성장이 한계에 다다른 현재, 금융위기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중산층 이하의 부채 부담을 줄여주는 것뿐이다. ‘부채 재조정’ 혹은 ‘부채 탕감’ 정책이 필요하다. ‘디레버리징’, 즉 부채 축소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세계 주요국은 미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부채 축소를 이루지 못했다. 되레 위기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민간부채를 늘려왔다. 이는 분명 다음번 위기를 불러오고 그 시기도 앞당길 것이다. 부채 축소를 서둘러야 한다. 구체적으로 민간 차입자한테 구제금융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성장은 날개를 달게 된다. 중산층 이하 소비자들이 부채 축소로 남은 돈을 소비와 투자에 쓸 것이기 때문이다. 성장이 해결책이라면 중산층 이하 계층의 부채 부담을 줄여주는 게 길이다. 부채 재조정이든 부채 탕감이든 상관없다. 그게 없다면 다음번 위기는 불가피하다.

물론 은행을 비롯한 기존 금융기관은 반대할 것이다. 차입자의 대차대조표에서 부채를 줄이는 것은 대출업자의 대차대조표에서 자산이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반길 대출업자는 없다. 하지만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또 금융기관은 분명 대중의 ‘모럴 해저드’ 카드를 들고나올 것이다. 이에 대해선 은행도 할 말이 별로 없다. 정부와 국가는 위기가 발생하면 국민의 세금으로 은행을 구제했다. 왜 보통 사람들에 대한 구제에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는가. 은행을 포함한 대출업자가 모럴 해저드를 들먹이는 건 명분이 없다. 무분별한 신용을 남발한 건 그들이기 때문이다.

성장의 가장 이상적인 조건은 낮은 민간부채에 더해 수요보다 낮은 혹은 수요 수준의 적정 생산능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과잉 공급은 언제나 화를 부른다. 수요 이상의 공급을 처리하기 위해 신용을 남발하고 끝내 붕괴로 이어지는 게 현대 경제다. 수요 이상의 생산은 가격 폭락으로 연결될 소지를 안고 있다. 민간부채의 감축과 동시에 마르크스가 언급했던 ‘생산의 무정부성’을 해결하지 않고는 현대 경제의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문제는 언제나 정치에 있다. 우리를 짓누르는 정치적 강박을 극복하지 않는 한 다음번 금융위기는 불 보듯 뻔하다.

maporiver@gmail.com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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