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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의 치명적 매력
Editor’s Letter
[75호] 2016년 07월 01일 (금) 신기섭 economyinsight@hani.co.kr

이번호 표지 기사로는 기본소득제를 골랐습니다. 요즘 아주 뜨거운 주제입니다. 한국에서도 매력적으로 느끼는 이가 많습니다. 청년 실업과 빈곤이 심각하고 상황이 나아질 기미도 별로 없는 현실이 관심을 부르는 배경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일정한 액수의 돈을 조건 없이 지급한다”는 것이니 솔깃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게 좋기만 한지 따져볼 여지가 있습니다.

제가 3년 전 기본소득제와 관련된 글 번역을 부탁받아 작업한 적이 있습니다. 독일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1966년에 쓴 ‘소득 보장의 심리적 측면’이라는 글입니다. 기본소득제를 뒷받침하는 글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기본소득제와 다른 방향을 담고 있었습니다.

사실 기본소득제가 궁극적 이상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좌파, 우파 가릴 것 없이 일부 세력이 주장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보는 게 바른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복지국가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제기한 대안이라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기존 복지 체제는 유지 비용이 많이 들고 허점도 있으니 모두에게 ‘돈’으로 주자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강조점이 ‘복지 서비스’에서 ‘현금’으로 옮겨간 겁니다.

기본소득제는 사람들이 받은 돈으로 시장에 나가 필요한 걸 구매하는 방식인 반면, 프롬은 생계에 필요한 물품을 거저 주자고 합니다. 돈과 시장 대신 ‘현물’을 강조합니다.

그는 빵, 우유, 채소 같은 건 원하는 만큼 동네 가게에서 가져다 쓰게 하자고 합니다. 처음엔 욕심 사납게 많이 가져가는 이도 있겠지만, 조금 지나면 모두 그날 먹을 만큼만 가져갈 테니 걱정 말라고 합니다. 또 사람 한 명당 방 한 칸, 일정한 의복(“예컨대 한 해에 정장 한 벌, 셔츠 세 벌, 양말 여섯 켤레 정도”)도 그냥 주자고 합니다. 그는 “공공서비스를 대폭 개선하면서 이런 기본 생활에 필요한 생산을 하게 되면, 현금 지급을 통해 소득을 보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생산활동이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도 합니다. “탐욕스런 인간은,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있건 상관없이 풍요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언제나 결핍 상태에 있다. …체제를 최대 소비에서 최적 소비로 바꿔야 한다.”

기본소득제나 프롬의 구상이나 ‘빈곤 탈출’을 인권의 기본으로 보긴 마찬가지이지만, 어느 방안에 더 끌리시나요? 아무래도 현물보다는 돈인가요? 그 치명적 매력을 잘 알지만, 저라면 물가 인상 따위 걱정 없이 그냥 매일 가게에 가서 필요한 만큼만 가져다 쓰는 게 더 마음에 듭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싫으신가요? 각자 능력껏 벌어서 쓰는 게 좋다고 보시나요?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의 의견도 전적으로 존중합니다. 다만 이런 분들은 이번호 ‘라이프’ 기사를 눈여겨보시기 권합니다. 독일의 일중독자들을 다룬 “일을 손에서 못 떼는 당신은 환자!”입니다. 먼 외국 얘기만은 아니라는 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신기섭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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