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국내 > 국내 특집
     
[국내 특집] ‘미래 먹거리’만 좇다가 중·일 추격 허용
벼랑 끝 내몰린 한국 조선업- ① 한·중·일 조선산업 삼국지
[74호] 2016년 06월 01일 (수) 김연기 economyinsight@hani.co.kr

   
▲ 연합뉴스
조선산업은 한국·중국·일본이 세계시장을 주름잡는다. 3개국이 전체 선박 수주량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시장 상황은 한국이 1위를 질주하고 중국과 일본이 뒤쫓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 ‘빅3’가 2015년 8조원대의 손실을 내면서 주저앉은 사이 일본과 중국이 호시탐탐 1위 자리를 넘보고 있다. 한때 세계 최강이었던 일본은 한국에 밀려 뒤처졌다가 2010년 이후부터는 구조조정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양적 성장에 집중했던 중국 역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초강도 구조조정으로 체질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벼랑 끝에 내몰린 한국 조선산업의 앞날을 진단해본다. _편집자

‘수주 절벽’ 겹쳐 한국 ‘빅3’ 고전…
고부가가치 분야도 중국·일본 무서운 기세


세계 조선산업은 ‘한·중·일 삼국지’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치열하게 세계 선박 수주량 1위 쟁탈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세 나라는 전체 수주량의 90% 이상을 독식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한국은 2000년대 들어 줄곧 세계 1위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최근 한국의 위상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에 크게 뒤처졌던 일본이 치고 올라오는데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은 중국의 약진이 드세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이른바 ‘조선 빅3’가 휘청이는 통에 중국과 일본 기업이 덕을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연기 부편집장
 
2016년 5월4일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 앞길에선 때마침 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참혹한 처지에 빠진 한국 조선산업이 ‘전면 보수 공사 중’ 팻말을 내건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조선소 정문으로 들어서 코너를 도니 현대중공업의 심장인 온산 2공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현대중공업은 5월1일부터 이곳의 가동을 중단했다. 주문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해양플랜트 블록을 만들던 공장 가동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0만m²에 달하는 공장은 적치장으로 쓰기로 했다. 이곳을 안내한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원래 직원들이 작업 소음 때문에 조선소 안에선 귀마개를 끼고 다니지만 지금은 작업할 배가 줄어들어 보다시피 귀마개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의 자랑 ‘골리앗 크레인’이 서 있는 건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높이 128m, 중량 7560t 규모의 으리으리한 크레인이 보는 이를 압도했다. 2003년 스웨덴 말뫼의 조선소에서 단돈 1달러에 넘어온 크레인이다. 1980년대까지 세계 조선산업을 이끌던 스웨덴은 90년대 들어 일본, 한국 등 아시아권 국가에 밀려 조선산업이 고사 위기에 처하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골리앗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에 넘겼다. 스웨덴 성장산업의 상징과도 같던 골리앗 크레인이 한국으로 팔려가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면서 말뫼 시민들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른바 ‘말뫼의 눈물’이다. 반면 이 크레인이 현대중공업 조선소 한복판에 자리잡던 날, 현대중공업 전 직원은 한자리에 모여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뒤 환호는 다시 눈물로 바뀌었다. 조선소 입구에 자리한 한 교회는 벌써 ‘불황 모드’로 전환했다. 이 교회는 2016년 들어서만 신자들에게 퇴직 불안과 스트레스를 위로하는 특별기도회를 열 차례 열었다. 새 직장을 찾는 신자를 위한 전직 상담도 여러 차례 가졌다. “잘 나갈 때는 경영진 덕이고 못 나갈 때는 노동자 탓인가. 더 이상 경영진의 잘못을 노동자에게 떠넘기지 말라.” 교회 앞을 지나자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노동자들로 구성된 시위대의 함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위기감은 도시 전체를 암울하게 만들었다. 이곳에선 어린이날-어버이날로 이어지는 연휴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언제 일자리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구조조정 공포가 황금연휴를 휩쓸어간 것이다.
 
조선 ‘빅3’ 아성 깬 일본 이마바리조선

   
▲ 현대중공업은 선박 주문이 사실상 끊기면서 2016년 5월1일부터 온산 2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현대중공업이 2003년 스웨덴 말뫼에서 가져와 울산 본사에 설치한 골리앗 크레인. 연합뉴스
울산시 관계자는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시내 음식점 등 주요 상가의 매출은 이미 20~30% 떨어졌다”고 말했다. 조선소에서 만난 김성환씨는 “아무래도 구조조정이 인력 감축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직원들 모두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며 “남들은 황금연휴에 여행을 준비하는 등 들떠 있지만 우리는 그럴 처지가 못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2016년 3월 말 국내 조선업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라크슨’은 일본의 이마바리조선그룹이 수주잔량 기준으로 세계 3위라고 발표했다. 1위와 2위는 한국의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었지만, 삼성중공업은 4위로 한 계단 밀려났다. 한국 조선 ‘빅3’는 2010년 초까지만 해도 전세계 수주시장의 70%를 장악했지만 지금은 시장점유율이 30%대로 곤두박질쳤다. 중국 업체들이 가파르게 성장하는데다 이제는 일본 업체들로부터도 거센 도전을 받게 됐다.

특히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 ‘빅3’가 2015년 8조원대 적자를 내면서 휘청거리는 사이 일본과 중국이 발 빠른 구조조정을 통해 한발 앞서나가고 있다는 평가다. 한때 세계 1위를 차지했던 일본은 선두 자리를 한국에 내주고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2010년 이후 시장점유율을 서서히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수주 점유율을 30%까지 높이며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해왔다.

특히 한국 조선업계가 ‘최후의 보루’라던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도 일본과 중국의 약진이 무섭다. 이미 벌크선과 중소형 선박 등 이른바 ‘범용 선박’ 시장은 중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여기에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의 주도권마저 뺏기면 한국 조선산업은 설 땅이 없어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클라크슨에 따르면 2016년 4월 말 기준 초대형 유조선(20만t급 이상),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8천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 해양플랜트 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한국 수주잔량은 4480만GT(총톤수)다. 2014년 12월(5070만GT)에 견줘 11% 넘게 감소했다. 자연스럽게 세계시장 점유율 역시 2014년 12월 50.7%에서 2016년 4월 말 44.8%로 떨어졌다. 1년4개월 만에 5.9%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 고부가가치 선박의 시장점유율은 27.3%에서 28.5%로 늘어났다. 일본의 성장세는 더욱 눈부시다. 2014년 말 680만GT에 그쳤던 일본의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잔량은 4월 말 1370만GT로 늘었다. 시장점유율은 9.7%에서 17.7%로 증가했다.

사실 일본 조선업은 1990년대 초까지 ‘세계 최강’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후 한국과 중국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면서 순식간에 3위로 주저앉았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의 위세에 눌려 10년 넘게 고전을 면치 못하다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를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2013년 유니버설조선과 IHI마린유나이티드가 통합해 세계 4위의 JMU가 출범됐고, 이마바리조선과 미쓰비시중공업의 LNG선 사업부를 따로 떼어내 합쳐 MI-LNG를 만들었다.
 
중국, 해양플랜트 분야서도 약진 예고

   
▲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이른바 ‘조선 빅3’가 휘청이면서 한국의 조선산업 위상에 빨간불이 켜졌다. 2016년 4월28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독에서 선박 건조 작업이 한창이다. 연합뉴스
일본은 단순한 몸집 키우기를 벗어나 친환경 선박 등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중심으로 산업 재편을 시도했다. 특히 2015년 6월부터 삼성중공업을 밀어내고 글로벌 수주잔량 3위에 오른 이마바리조선의 약진이 눈부시다. 이마바리조선은 최근 18년 만에 초대형 독을 새로 짓고 경쟁력 키우기에 나섰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본 기업들은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구조조정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해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역할도 한몫했다. 사실상 제로금리로 통폐합 조선사에 파격적인 대출을 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 자국 내 발주량이 늘면서 세계적 경기 불황에도 한국과 같은 ‘수주 절벽’을 피해갔다. 일본 선사인 쇼에이키센카이샤(Shoei Kisen Kaisha)는 최근 이마바리조선에 2만TEU급 극초대형 컨테이너선과 1만8천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했다. 자국 선사 발주가 최근 몇 년간 자취를 감춘 한국의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섬나라인 일본은 무엇보다 해운시장 중심으로 물류가 형성돼 있다”며 “특히 일본 조선소는 자국 선박에 대한 맞춤형 설계가 가능해 내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 조선업은 10년 이상 장기 침체를 겪으면서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이마바리조선이 설계부문 자회사를 한국에 두고 인력을 모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일본은 핵심 설계 인력 부족으로 선박의 다양한 진화를 따라가지 못해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의 약진도 무섭다. 중국 정부는 2014년 해양플랜트 전문 조선소를 선정하는 등 해양플랜트 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중국이 기술 노하우를 갖춰 본격적으로 해양플랜트 경쟁에 뛰어든다면 장기적으로 해양플랜트를 미래 먹거리로 삼은 한국 조선소에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중국 조선소가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전에 기술 격차를 키워놔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설계 인력을 확보해 기술 측면에서 중국과 일본을 압도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며 “여기에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국 조선업이 부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울산 현대중공업의 조선소 한복판엔 창업자 정주영(1915~ 2001)의 어록이 어른 키만 한 글씨로 붙어 있다. “우리가 잘돼야 나라가 잘되고, 나라가 잘돼야 우리가 잘될 수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이른바 ‘중후장대’(규모가 큰) 산업의 대표 주자였지만 지금은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한 한국의 조선산업이 언제쯤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ykkim@hani.co.kr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김연기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