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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특집] ‘고난의 시대’ 버틸 내수 확보 정책 시급
벼랑 끝 내몰린 한국 조선업- ② 바람직한 구조조정 방향은?
[74호] 2016년 06월 01일 (수) 최우영 economyinsight@hani.co.kr

산업정책 실종된 채 단기금융적 접근만 횡행…
책임 안 지고 노동자와 지역경제만 희생시켜

최근 국내 조선업계 구조조정의 초점이 ‘다이어트’에 맞춰졌다. 생산능력을 줄이고, 불필요한 인원과 자산을 없애 손실을 줄이자는 식이다. 금융 당국은 선박 제조금융과 선수금 환급보증을 최소화하겠다며 칼을 빼들고, 정부는 조선업계가 그동안 방만경영을 해왔다며 질타한다. 이 와중에 경쟁력을 제고해 산업을 살리고 국민경제가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구조조정 본연의 취지는 실종된 지 오래다. 업체들은 앞다퉈 금융 당국에 ‘다이어트 계획’을 담은 자구안을 제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14~2015년 10조원 가까이 기록한 조선업계 영업손실의 근본적 원인 해결 없는 근시안적 구조조정이 자칫 원천 경쟁력을 훼손할까 우려하고 있다.

최우영 <머니투데이> 산업부 기자
 
2011년까지 한국 조선업계는 명실상부 ‘세계 최강’이었다. 벌크선·컨테이너선 같은 상선부터 액화천연가스(LNG)선·액화석유가스(LPG)선, 심지어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해양플랜트까지 전세계 발주를 쓸어담았다. 조선업체가 밀집한 경남·울산 지역은 ‘강아지도 1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몰락은 내부에서 시작됐다. ‘조선 빅3’라 불리는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을 위시해 STX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업체들은 생산능력을 넘어서는 수주를 노리며 출혈경쟁을 일삼았다. 중국과 일본 업체들이 입찰 욕심조차 못 내는 신종 선박 및 해양플랜트 수주전에서 국내 업체 간 불꽃 튀는 저가 수주 경쟁이 횡행했다.

건조 경험이 없던 해양플랜트 부문은 저가 수주의 절정이었다. 한 업체는 설계부서에서 제출한 한계 원가의 70% 수준으로 무조건 입찰에 응했다. 업계 관계자는 “고유가로 인해 해양유전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국내 업체들은 해양플랜트 시장 선점을 위해 일단 수주한 뒤 원가율 산정 경험을 쌓자는 전략이었다”며 “저마다 싼 가격에 건조하겠다고 나서니 발주처에서는 꽃놀이패를 손에 쥔 셈이었다”고 평했다.

   
▲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 3사에 불어닥친 ‘수주 절벽’과 대규모 구조조정 강풍으로 중형 조선소 역시 꽁꽁 얼어붙었다. 경남 사천 SPP조선 모습. 연합뉴스
저가 수주의 결과는 처참했다. 잘못된 원가율 산정으로 배를 지어 인도할 때마다 손실이 발생하는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졌다. 2016년 4월 기준 전세계 수주잔량 1~5위를 차지하는 국내 업체들의 수주잔량 중 상당 부분이 저가 수주분이다. 2013년 일찌감치 산업은행으로 최대주주가 바뀐 STX조선해양은 선수금을 반환하면서까지 수십 척의 선박 수주 계약을 취소했다.

조선업체들은 저가 수주 경험을 통해 올바른 원가율 계산이 가능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2014~2015년 기록한 10조원 넘는 손실이 ‘수업료’인 셈이다. 문제는 저유가와 해운 시황 침체로 인한 조선 전 부문의 발주 가뭄이다. 빚내 등록금을 물고 공부했지만, 취업할 데가 없는 대학생과 같은 처지다.

금융위원장 입만 바라보는 조선업계

지난 2년간 대규모 적자에 이어 전세계 선박 발주 시장이 급격히 줄어들자 금융권이 가장 먼저 쓴소리를 시작했다. 당장 대부분의 채권을 회수하겠다는 엄포도 들려왔다. 조선 호황기와 같은 이율로 회사채를 연장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조선 빅3의 회사채 중 2017년 만기 금액만 2조2200억원에 이른다. 한진중공업·STX조선해양·성동조선해양 같은 중견업체는 더 심각한 상황에 놓였다.

산업은행 등 조선업체 채권은행들은 자금 회수를 유보하는 데 단서를 달았다. 조선업체 스스로 체질 개선 자구안을 내놓으라는 요구다. 이미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이 각자 주채권은행에 자구안을 제출했고, 삼성중공업 역시 조만간 제출할 자구안을 다듬고 있다. 자구안 내용은 인력 감축, 생산능력 조절, 비핵심 자산 매각 등으로 대동소이하다.

금융 당국 논리는 명확하다. 줄기차게 조선업계에 자금을 지원했지만 수익을 올리지 못해 부담이 채권은행까지 전파되므로 자금회수율을 높일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하라는 것이다. 최근 조선업계 구조조정의 핵심 인물은 단연 임종룡 금융위원장이다. 업체 간 인위적 빅딜, 경영진 문책, 구조조정 컨설팅 실행 여부 등이 임 위원장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서슬 퍼런 금융 당국의 구조조정 주도에 정작 산업통상자원부는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금융 당국 뒤에 정부가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2017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부에서 치적 달성을 위해 채권단을 이용한 업계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에 산업 전문가들은 뒷짐 지고, 금융·회계 전문가들이 나서서 조선업체들을 주무르고 있다. 조선업계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쟁력 제고’는 실종되고 현금을 쥐어짜 단기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다이어트’만 거론하는 이유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은 부실 조선업체를 위해 돈을 찍어내자는 선별적 양적완화까지 거론했다. 이는 제20대 국회의원선거 기간 동안 새누리당이 외친 ‘한국형 양적완화’의 연장선상이다. 아직 한국은행은 박 대통령의 요청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 노조는 “특정 업종을 위한 선별적 양적완화는 21세기 짐바브웨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조선업체 ‘회계 반등’을 위한 구조조정 방안에서 업계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는 뒤편으로 밀려났다.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이 위치한 경남 거제를 비롯해 현대중공업의 도시 울산, 중소 조선업체가 밀집한 경남 통영·고성·사천 지역이 대규모 실직 위기에 놓였다. 이에 조선업계 노조 등은 거제를 고용위기 지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연일 호소하고 있다.

채권은행의 입장에 충실한 조선업체들은 앞다퉈 더 많은 인원을 감축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015년 1300여 명의 사무직을 내보낸 데 이어 2016년에도 생산직을 포함해 3천여 명을 내보낼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3천여 명을 순차적으로 줄이고, 삼성중공업은 1500여 명을 줄인다. 이는 모두 정규직만 포함한 수다.

하청업체들에선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 거제에서는 2016년 들어서만 하청업체 100여 곳이 폐업했다. ‘회계 반등’을 위해 조선업체들이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하청업체가 직원 수를 줄이는 모습도 일상 풍경이다. 조선업계 부실 책임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2013년 해양플랜트가 미래 먹거리라며 호황을 예측한 정부나, 시황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금융 당국의 책임 소재를 추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경영진 역시 급여 일부 반납 등으로 최소한의 책임만 지고 있다. 원천기술을 확보하기보다 수주잔고 채우기에 급급한 데 대한 반성의 목소리 역시 들리지 않는다.
 
조선업계 고통 분담 ‘독박’ 쓴 경남권

   
▲ 조선업계 전문가들은 산업정책이 실종된 채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근시안적 구조조정이 자칫 조선산업 전체의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서울 중구 다동 대우조선해양 사옥. 연합뉴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대표적 노동집약산업인 조선업에서는 비단 원청업체뿐만 아니라 하청업체의 기술력 유지도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요소”라며 “인력 쳐내기에 급급한 작금의 구조조정 방식은 궁극적으로 조선업계 경쟁력을 저하하고 중국 등 경쟁국으로의 인력 유출을 유도해 한국 조선업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지난 3월 기자간담회에서 외주 인력 1만 명 감축 계획을 밝히며 “프로젝트별 공정을 책임지는 ‘물량팀’은 원래부터 조선업종 전문 근로자가 아니다”라며 “옆집(타 업종 및 타 지역)에도 일거리가 없다면 사회적 문제는 되겠다”고 안일한 시각을 드러냈다.

20여 년 전 조선업계 구조조정을 단행한 일본은 현재까지 생산능력이 1990년대 수준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조선산업 전반의 과도한 다이어트로 인해 각 대학에서는 조선해양공학과를 없애고, 업체들은 신규 인력 채용을 한동안 중단했다. 업계에서는 일본을 두고 ‘할아버지들이 배 만드는 나라’라고 부른다.

금융 당국 일부에서도 조선업종을 포기하고 정보기술(IT) 도시로 탈바꿈한 스웨덴 말뫼를 대안으로 내세우며 경남 지역의 산업 체질 변화를 요구한다. 이에 대해 신종계 서울대 교수(조선해양공학·전 한국조선학회장)는 “재래식 선박 건조만 하던 스웨덴 말뫼와 세계 최고·최첨단 조선 기술을 갖춘 울산·거제는 상황이 다르다”며 “공부 못하는 애한테 공부 그만두고 기술이나 배우라고 할 수 있지만, 공부 잘하는 애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전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시 “조선업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비중 8%로 네 번째로 큰 수출산업인데, 이미 큰 야드를 갖춘 울산·거제를 다른 산업으로 돌리자는 것은 너무 생각 없는 이야기”라며 “고용 등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조선 3사 체제 유지로 인한 기자재 업체 생존 등을 고려해볼 때 공적자금을 추가로 투입하더라도 빅3 모두를 살리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조선업계가 살아나기 위한 관건은 시장 회복이다. 2016년부터 전세계 선박의 질산화물 배출량을 90%가량 줄여야 하는 ‘NOx 티어3’ 규제가 시작돼 친환경 선박 수요 부활에 대한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 머스크를 필두로 한 전세계 해운업계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 상선 발주 역시 이어지고, 대형 선박 건조 경험이 가장 많은 한국 업체 독(dock)부터 채울 공산이 크다. 2016년 초 배럴당 30달러까지 떨어졌던 국제 유가는 5월 중순 현재 50달러 가까이 올라왔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논의가 본격화해 유가가 올라가면 해양플랜트 발주가 새로 나올 전망이다.

조선업계에서는 해운업계 구조조정이 마무리된 뒤 자국 선박 발주를 위한 정책금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자국 선박 발주량으로 국내 독을 채워 수주 가뭄 시기를 극복하면서 기술인력을 유지해야 발주시장 부활에 대비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최근 수조원대 손실을 봤지만, 그동안 수십조원의 이익 창출과 수만 명의 고용 창출로 한국 경제의 한 축을 지탱해온 게 조선업”이라며 “글로벌 시황 침체에 따른 ‘고난의 시기’를 버틸 수 있는 정책금융 유지, 고용 안정 정책 외에 조선업을 ‘망조 산업’으로 보지 않는 당국과 국민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한 때”라고 호소했다.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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